0.
진실은 때론 슬플 정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도 설명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오인성이 줄곧 가지고 있던 가족들에게의 의혹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당신의 아들조차도 그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소모했던 어머니가 과연 할머니의 죽음에도 개입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

물론 그것은 정보상, 항구를 통해서 손쉽게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

적당량의 정보료를 지불하면 항구는 어지간한 정보는 모두 구해낼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인성에게 있어서 언제나 궁금해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할머니의 죽음에까지 개입했다면 오인성은 정말로 가족은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던전에서나 나타날 괴물의 일종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손으로 처리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오인성은 악몽의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바다는 피로 물들어 춤추고 있었고, 발가벗겨진 채 그 속에 내던져진 그는 눈조차 감지 못한 채 그 아래에 잠긴 도시를 방관 해야만 했다.

붉은 바다속에서 쏟아지는 비.

바다 아래에 가라앉은 도시의 건물 안에서는 익숙한 그림자가 비쳐보인다.

가족들이다.

오인성은 눈을 감았다.

"경미야..."

저 우뚝 선 아파트 안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오인성은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항구에서 받은 보고서를 통해서 그 내용은 얼추 알고 있었다.

오인성은 비명을 질렀다.

'그만--!!!'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왔다고 해서 멈출리도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 자신의 손으로 할머니를 죽였다.

그렇게나 알고 싶었던.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몇 번이나 설마설마 하면서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렇게나 끔찍한 일 이었다.

시뻘건 바다안에서, 그보다 붉게 물든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은 오인성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절망과 분노를 느끼게 해 주었다.

가족이 없이 살았던 그가 평생에 걸쳐 그리워했던 평화로운 일상이라거나, 더 없이 소중한 가족이라거나, 행복한 미래라거나.

그 모든 것이 새벽에 피어오른 물거품이 되어 스러져 사라져야만 했다.

시점이 바뀐다.

쓰레기장이나 다름 없는 방에 남자가 쓰러져 있다.

오인성은 제 3자의 시점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남자가 허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내려보고 있는 남자야말로 이 세계에 도달하기 전 오인성 그 자체였으므로.

그리고 그의 건너편에 서서 쓰러진 오인성을 내려보던 중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 했다.

"인성아. 알고 있제?"
"....."
"어차피 니 애미는 널 정말로 사랑하지도 않았데이. 그래도 편이 뒤진게 아니고. 안그나?"
"....."
"하, 정말로 뒤져부렀나..."

쓱, 쓱, 하고 옷깃을 여미던 그는 쓰러진 오인성의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담배를 꺼냈다.

칙, 칙- 화륵!

"스읍- 하..."

긴 호흡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방 안.

남자는 담배를 피며 마찬가지로 쓰레기가 가득 쌓인 책상 위에 놓여있던 패트병의 뚜껑을 열어 방 안 곳곳에 뿌렸다.

지독한 석유냄새가 방 안에 가득찬다.

"좋은 곳으로 가라. 거기서는 이딴 가족 만나지 말고. 알았제?"

툭.

화르르륵!

번쩍!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된 오인성이 깨어났다.

가족들이 그에게 내어준 방 안으로 싸늘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는 싸늘한 기운에 자신의 손으로 두 팔을 감싼 채 벌벌 떨었다.

이 방 이었다.

이 방이야말로 꿈 속에서, 그리고 항구에서 내어준 자료에서 말 하는 할머니가 죽은 그 방 이었다.

'알아.'

누군가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를 이 세계로 보내온 남자가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고 말 하며 악몽을 보여준 것 인지도 모른다

'알아 이 새끼야.'

아니면 단순히 오인성 본인이 가족들에게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꿈 속에서도 그런 광경을 본 것 일지도 모른다.

악몽이라는 것은 으례 그런 것 이니까.

'그러니까 이 관계를 완전히 정리 하지 못하면, 내 본분이고 나발이고 할 수 없다고 하잖아.'

오인성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을 갈아입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간은 고작해야 새벽 3시.

잠에서 깨어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깨어나기에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라는 것은 곳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활동하기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무리 플레이어들이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총칼을 들고 도심지를 배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던전의 입구는 평범한 건물의 내부에 생성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함부로 총칼을 들고 움직일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어둠은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가자.'

오인성은 항구에서 챙겨와 침대 밑에 숨겨뒀던 장비들을 꺼냈다.

두터운 철판을 덧댄 워커. 양쪽 다리에는 짤맛한 단검이 두 자루씩. 손목에는 장식을 당기면 와이어를 꺼낼 수 있는 팔찌를.

허리 뒤에는 총기를 걸고 다소 사이즈가 큰 후드를 입는 것으로 상체에 입은 장비들을 가린다.

그는 조용히 움직여 누나가 잠들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새벽 3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잠들어도 진작에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그의 누나는 아직도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며 낄낄 거리며 웃고 있었다.

달각-

"응?"

한참동안이나 스마트폰을 보며 낄낄대던 그의 누나는 고개를 슥 돌리더니 오인성과 눈을 마주쳤다.

"응? 인성이니? 역시 잠이 잘 안오나? 히히, 하긴 얼마만에 본 가족인데. 왜. 누나랑 이야기라도 하려고 온거야?"
"....."

오인성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화장대에서 의자를 끌어와 그녀의 옆에 걸터앉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 했다.

"오은혜. 길계 말 하지는 않아."
"응?"
"할머니. 누가 죽였어."
"할머니? 그야..."

오은혜의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오인성은 다리에 걸려있던 단검 중 한자루를 꺼내 콱! 하고 침대위에 꽂아넣으며 말 햇다.

"혹시 몰라 말 하는 건데, 소리를 지른다거나 잡생각을 하는 기색이 보인다거나 하면 꽤나 즐거워질지도 몰라. 이 단검. 꽤 날카로운 물건이거든."

실제로 오인성이 꺼낸 단검은 침대의 두터운 프레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관통해 꽂혀있었다.

"누군가의 성대를 자루고 눈을 찔러도 날 하나가 상하지 않아."

오인성은 그렇게 말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내구성을 누나의 몸으로 증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똑바로 말 하는게 좋아."
"그건... 흡!"

오인성은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려는 오은혜의 입을 틀어막으며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방금 전 말 했지? 소리를 내려고 하지 말라고. 나도 장난으로 이러고 있는게 아니거든. 믿기지 않을테니까 직접 예시를 보여줄게."

그는 침대에 꽂아뒀던 단검을 뽑아 그대로 송지혜의 허벅지에 박아넣었다.

"으으읍!! 으읍..!!!"

그녀는 당장에라도 비명을 지를 것 처럼 눈을 치떴지만 그 뿐 이었다.

오인성에 의해서 틀어막힌 이상 내뱉을 수 있는 소리는 읍! 읍! 하는 짤막하고도 덧없는 비명소리 뿐이었던 것이다.

"흠. 아직도 비명을 지르려는거 같은데... 이걸 어쩐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새로운 단검을 꺼내 들더니 이번에는 오은혜의 눈 앞에 들이밀며 흔들어보였다.

창백한 달빛을 반사하는 단검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다.

오은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맹렬한 통증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에 눈물도 줄줄 흘러내리는데, 오인성이 원하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고통을 계속 느껴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녀는 고개를 미친듯이 저었다.

"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이야기를 하겠다고? 진작부터 그랬으면 피는 보지 않아도 됐을텐데."

오인성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던 손을 떼며 웃었다.

"좋아. 그럼 이제 조용히. 둘이서 천천히 이야기를 해 볼까?"
"엄마가... 엄마가 널 가만두지 않을거야."
"그래서?"

오인성은 손에 들린 단검을 다시금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이 방에 온 이유 말이야."
"너...! 그래도 가족인데...!"

난 언제고 널 죽일 생각이었다.

어머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 살벌한 목소리에 오은혜가 치를 떨었다.

"그건 내가 판단을 할 문제야. 그렇지? 그런데 네가 내게 해 줘야 할 말은 그게 아닐텐데."

오인성은 얼굴을 굳혔다.

"내가 궁금한건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가야."
"그, 그냥 사고였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거라고!"
"그래?"

오인성은 오은혜의 허벅지에 박혀있던 단검을 쑥! 하고 뽑아버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네."
"후.. 이, 이제 된거지? 일단 그... 거실에서 붕대부터..."
"어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신거라고 하시던데."

오은혜가 두 눈을 치켜떴다.

"그건....!"
"이 거짓말쟁이야."

오은성은 실눈 아래에 감춰져 있던 칼날같은 눈을 빛내며 쿡쿡쿡! 하고 웃었다.

"거짓말이야. 아직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서 이렇다할 대화를 한 적은 없어."
"너...!"
"하지만 네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 쯤은 확신하고 있지. 그러니까 마지막 기회를 줄게."

그는 불안한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오은혜를 노려보며 물었다.

"넌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뭘 했지?"
"물론 어머니를 말렸..."
"거짓말쟁이."

오인성은 보고서에 적혀있던 내용을 떠올렸다.

오은혜는 어머니가 할머니를 살해하는 그 날.

드디어 귀찮은 노친네 하나가 없어진다며 신나서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오인성은 단검을 휘둘렀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은혜의 목을 갈랐다.

"끄르륵...! 꺽, 꺽, 꺼억....!"

오은혜는 그대로 엎어지며 목을 움켜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바람빠지는 소리와 가래끓는 소리만 새어나올 뿐.

오인성은 담담한 얼굴로 단검을 한자루 더 꺼내 그녀의 등을 내리찍었다.

콱! 하는 무미건조한 소리와 함께 단검은 깔끔하게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후..."

오인성은 그녀의 사망을 확인한 뒤 단검을 회수하고 방에서 나와 유령처럼 걸었다.

어머니의 방문 앞에 선 그는 잠깐 방문에 손을 얹었다가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달각.

"어머니. 이야기를 좀 하죠."
"으응...? 인성이니? 엄마 늦게까지 일 하다가 들어와서... 하암... 날이 밝고 이야기 하는게 어떠니?"

달각.

삑!

오인성은 말 없이 문을 닫고 불을 켰다.

새까만 배낭과 두 다리에 착용한 단검이 드러난다.

"엄마 피곤해서 잔다니까...!"

짜증을 내려던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오인성을 올려보았다.

눈치채지 못했던 쇠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담검을 한손에 든 오인성이 그녀를 내려보고 있었다.

"대화를 해보죠 어머니."

짤각.

오인성은 단검을 칼집에 꽂아넣었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미리 출력해둔 항구의 인증마크가 박혀있는 서류철-가족들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을 그녀의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할 말이 있으실텐데요."
"그건..."
"어머니가 플레이어들의 사이에서 한참 세력을 넓히고 있다거나 재미있는 물건을 팔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인성아 그러니까 그건..."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 주춤거리다 조금씩 침대위에서 뒤로 물러났다.

"재미있는 내용이 꽤 많더라구요. 플레이어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손으로 직업 할머니를 살해했다 라거나."

할머니의 시신은 제대로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고 토막낸 뒤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소각차량에서 대충 처리했다거나.

"인성아..."
"그러니까 이야기를 해 보죠. 왜 죽였어요?"

다시는 울 일이 없을테다.

그렇게 생각했던 오인성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말 해보라고!!! 왜, 죽였어!!!"
"오인서어어어엉!!!"

타앙!

침대 머리맡에 숨겨놨던 것으로 보이는 총기가 어머니의 손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오인성을 향해 시뻘건 불길을 토해냈다.

하지만 자세부터 조준까지 엉망이다.

아무리 가까이에 있었다고 해도 제대로 조준이 될 리가 없었다.

그걸로 끝 이었다.

오인성은 지금껏 훈련받은 대로 재빠르게 접근하여 그녀의 손을 쳐낸 후 자연스럽게 가슴팍에 단검을 찔러넣었고, 마무리하듯 다른 단검을 꺼내 목에도 꽂아넣었다.

누나와 마찬가지로 잠깐동안 끄륵, 끄륵, 하고 바란 새는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르던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뜬 채로 사망했다.

오인성은 쓰러진 어머니의 시체를 내려보았다.

한참동안이나.

그리고 부엌에 적당한 장치를 해 둔 뒤 집을 나섰다.

그가 집을 나서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부엌에서부터 일어난 불이 집을 통째로 불태울테다.

오인성이 집에서 벗어난 뒤 뒷산 어간에 장비를 숨긴 뒤 아카데미로 향하던 새벽이었다.

그는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헤치며 소방차 몇 대가 집이 있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

오인성은 담배라곤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흡연욕구를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소년은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한참동안이나.

정말로 한참동안이나 오열하며 울부짖었다.

"흑... 으흐흑.... 흐으윽... 끄으윽.... 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겜빙의물 쓰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