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소리지만 송주혁은 서은혜가 콘크리트의 미궁이라는 세계가 실존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그가 콘크리트의 미궁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녀는 이미 미궁이라는 세계를 접하고, 그곳에 존재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나.


“저기... 저, 잠시만...”


그러니까 송주혁이 그녀에게 콘크리트의 미궁이라는 단어를 꺼내든 것은 일종의 메시지였다.


‘나도 너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어.’라는 내용의 메시지.


서은혜의 손 끝이 덜덜 떨렸다.


서은혜는 자신의 손 끝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깐... 담배 한 대만 필게요.”


질문, 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러세요.”


서은혜는 송주혁의 대답이 채 나오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있었다.


칙, 칙, 칙, 칙-


“하아...”


서은혜의 입에서 흘러나온 안타까운 하얀 한기가 송주혁의 랜턴에서 흘러나온 보랏빛에 뒤섞여 흩어진다.


서은혜는 천천히 시간을 보냈다.


담배를 피는둥 마는둥 그저 담뱃대에 붙은 조그만 불씨를 쫓으며 그저 관성처럼 숨을 들이켰다가 죽은 숨만을 토해냈다.


“한 대. 한 대만 더...”


송주혁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안타까워 하는 얼굴이었다.


서은혜는 또 다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고, 이번에도 불을 붙인 채 시체처럼 시간을 보내기를 반복했다.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주혁씨, 혹시 알아요?”


서은혜는 꽁초만 남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중얼거렸다.


“우리 아빠도 이 담배 폈었는데..”

“압니다.”

“사실 이 담배를 샀던 거도 아빠가 그리워서 샀던거 거든요. 이거 사들고 집에 돌아가면 또 엄마에게 쫓겨난 아빠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고 있지 않을까... 하고요.”

“.....”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가족을 그리워한 사람이 그 가족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쫓는다는 것은.


서은혜에게는 그것이 서동철이 피던 담배였던 것 뿐이다.


그리고 주머니에 담배가 있으니 힘들 때 한번 쯤 손이 가게되고 다시는 끊지 못하게 되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썬더버드’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은.”

“네?”


서은혜는 다 꺼져가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중얼거렸다.


“아빠를 죽인 살인자를 쫓다가 만난 그 사람들은... 자신들을 썬더버드라고 했어요. 그리고 말 했죠. 범인은 미궁의 주민이 분명하다. 하지만 넌 미궁에 발을 들여도 머지 않아 죽기만 할거다..”


맞는 말 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미궁에 발을 들여 봐야 싸울 힘과 용기가 없고서야 머지않아 시체가 될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강력한 사업 아이템으로 무장해 스스로를 지키던가.


서은혜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떨어트렸다.


“사실이겠죠. 멀리 갈 것도 없었어요. 그 사람들중 한 사람이 후드를 벗는 순간 전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말았거든요.”


그녀는 부끄러운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랄까. 파충류를 닮은 얼굴이랄까. 노란 뱀 같은 눈동자에 비늘이 섞인 얼굴을 보니 너무 무섭더라구요.”


“그냥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을 하면 여기서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서은혜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죠. 당장에라도 죽을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안을 하더라구요. 미궁에서 살아갈 기반을 주겠다... 라면서요.”

“네?”


평소의 썬더버드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


인신매매는 기본에 평범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마약을 유통하고, 테러를 일으키기도 하는 집단이 썬더버드다.


그런 썬더버드가 서은혜에게 제안을 하다니?


웃긴 일 이었다.


“숙소도 제공하고, 밥도 주고, 월급도 주겠다. 우리들의 공장에서 일을 해라.. 그리고 미궁에서 생활할 기반이 닦이거든, 원할 때 언제라도 떠나도 좋다.. 라구요.”


“비밀서약만 한다면 막지도 않겠다... 라고도 했지요.”거기까지 말 한 서은혜는 후후! 하고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그 공장에서 일한지가 벌써 세 달이에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콘크리트의 미궁? 위험천만한 세계라고? 마법과 괴물이 공존하는 도시의 이면?”

“은혜씨...”

“주혁씨. 난 알고 싶어요. 미궁이라는게 도대체 어떤 섹인지. 아빠는 왜 죽은건지.”


서은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송주혁에게 다가와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알려주세요.”

“.....”


송주혁은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요?”

“위험한데요.”

“.....”

“죽을수도 있어요.”


서은혜가 고개를 들고 웃었다.


“오히려, 좋네요.”


지친 사람의 얼굴이었다.


정말로 지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런 사람의 얼굴.


당장에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어떻게든 웃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를 보며 송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일단... 이 자리를 뜨죠.”



*



사람의 신뢰를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 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어려운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것도 확실한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들 뿐만이 아닌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공통의 시간, 어려운 사건을 함께하는 것 만큼이나 확실한 신뢰를 얻는 방법이.


‘비밀의 공유.’


두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 이다.


이 비밀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 꺼려지는 것 일수록 두 사람의 유대와 신뢰는 강해지기 마련.


콘크리트의 미궁이라는 소재는 그런 조건을 더없이 훌륭하게 충족해내는 비밀이었다.


평범한 사람 그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도 믿기 어려운 두 사람만의 비밀이 되어줄테니까.


어딘가로 전화해 시체와 전투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한 송주혁은 서은혜를 이끌고 차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 왜 그래요?”


잠깐 동안 침묵하던 송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잠깐 고민했어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다.. 알고 싶어요. 적어도 저와 관계 된 거라면.”

“좋습니다. 가면서 이야기하죠.”


우우우웅....


송주혁이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매끄럽게 주차장을 벗어난 차량이 강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썬더버드라고 했죠?”

“네.”


시작은 서은혜가 이야기를 꺼낸 썬더버드에 대한 이야기였다.


“흠... 클랜.. 이라고 설명하긴 좀 애매하니 그냥 온라인 게임의 길드 같은 존재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서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을 썩 즐기는 편이 아닌 그녀였지만 길드가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미궁에서도 유달리 강한 유저를 우두머리로 삼은 길드를 클랜이라고 해요. 썬더버드는 뇌제라는 유저를 우두머리로 삼은 길드인셈이죠.”

“왜 필요한 건데요?”

“시작은 일종의 팬클럽이랄까.. 추종자의 무리였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역사는 저도 잘 몰라요.”


거기까지 말 한 송주혁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냥 미궁에서도 왕.. 이라고까지 불리는 강자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클랜을 만들고 왕을 클랜마스터로 추대하게 되었다.. 라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일목요연하네요.”

“뭐... 일단 썬더버드의 마스터는 공식적으로는 공석이긴 하지만요.”

“네? 아까는 뇌제라는 유저를...”

“그 뇌제가 썬더버드를 인정하지 않고 있거든요. 일종이 비공식 팬클럽인셈이죠.”


사실이었다.


초창기의 썬더버드는 뇌제를 클랜 마스터로 추대하려 했지만 뇌제는 썬더버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썬더버드의 클랜마스터 자리는 사실상 공석.


그래서 썬더버드는 명확한 지도자가 없이 그저 일부 수뇌부에 의해 움직이는 기묘한 클랜이 되었다.


“뭐 이제와서 썬더버드의 수뇌부는 뇌제가 찾아와 자신이 클랜 마스터라고 주장해도 받아줄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래서요?”

“썬더버드라는 클랜은 그렇게 미궁의 악동... 이랄까 사고뭉치랄까..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거죠.”

“그렇군요...”

“그래도 다행인거에요. 썬더버드는 엄청 거대한 클랜이니까요. 그들의 공장에서 일을 한다면 어디든 미궁에서 제대로 자리 잡을 때 까진... 음?”

“왜 그래요?”


끼이이익-!


송주혁이 도로변에 차를 세우며 서은혜를 돌아보았다.


“썬더버드의 공장이라구요?”

“네. 그런데요?”

“울산에 썬더버드의 공장이 있어요?”

“네. 어제까지만 해도 근무했는걸요.”

“울산에 썬더버드의 공장은 존재하지 않는데?”

“네?”

“.....”


송주혁은 운전대를 잡은 채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넷.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 썬더버드의 공장 맞아요?”

“그렇다고 하던데요?”

“확신하는 이유는?”

“.....”


없다. 있을 리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미궁에 대해서는 초짜나 다름없는 서은혜가 알아 볼 수 있을리도 없었다.


“뭘... 만드는지는 알아요?”

“그건...”


서은혜는 망설이다가 가지고 온 백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건... 데요.”

“약?”

“네... 몰래 훔친거에요. 일을 하면서도 아마 마약이 아닐까.. 그런 생각만 했어요.”

“왜요?”

“그야... 미궁에서 만드는 물건이잖아요? 사회에서 이런 약은 본 적도 없고 공장에 드나들 때 부랑자들이 슬쩍 챙겨 온거 없냐면서 추근 대기도 했구요..”

“.....”


송주혁은 서은혜가 건네준 알약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유리병을 챙기며 말 했다.


“좋습니다. 일단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그래도 될까요?”

“네.. 뭐...”

“그리고 서은혜씨는.. 저와 헤어지고 나서라도 저와 만났다는 사실을 티내지 않는게 좋아요. 메시지로만 대화하는 겁니다. 아셨죠?”

“네...”


송주혁은 “후...”하고 죽은 숨을 토해내며 글러브 박스에서 사탕을 꺼내 포장을 뜯었다.


“알약은... 앞으론 빼돌리지 마세요.”

“네? 왜요? 더 훔치면 주혁씨에게도 좋은거 아니에요? 샘플은 많으면 많을수록...”

“위험하니까.”

“네?”

“은혜씨가 위험하다구요. 훔치다가 걸리면 정말로 썬더버드든, 썬더버드를 사칭하는 간 큰 놈들이든! 당신 같은 나약한 사람 하나쯤 죽이고 묻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

“.....!”


서은혜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송주혁은 운전대에 머리를 박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무튼, 하지 마요. 위험하니까. 그리고 아까 공장에서... 아니야. 공장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마요.”

“그건... 왜죠?”

“공장의 위치도 알고 있고, 사용법은 모른다지만 뭘 만드는 지도 알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 준 다구요?”

“.....”

“가장 쉽게 그 사람이 비밀을 지키게 하는 방법이 뭘까요?”


아무리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해도 진실은 언제고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비밀을 약속한 상대가 확실하게 침묵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장담컨대 계약서를 작성한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서은혜는 그 방법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살... 인...”

“그래요. 죽이면 되는겁니다. 서은혜씨는 그 공장에서 나오겠다- 라는 말을 하는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지도 몰라요.”

“그런...!”

“그러니까, 나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그럼 전 어떻게 하죠?”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요.”


송주혁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 공장을 박살내 줄 테니까.”

“.....!”


















이런거 읽고 있으면 시간 술술감


보닌의 욕망 8120791509124%들어가서 그냥 재미있음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