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무림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창공성의 중심가.
휘황찬란하게 치장된 천화객잔은 오늘도 왕래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본래 창공성의 금제로 중심가 지역 안에서는 살수의 고용이나 음식에 독을 타는 등의 일체의 암살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문파인 천궁파의 장문인이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춤에 따라
천화객잔은 살수들이 암암리에 작업을 하는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 놓인 덫에 걸려버린 한 소녀가 있었으니,
무공을 수련한 지 십삼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본인만의 무공을 칠 성까지 습득하였고 사파 무리를 제거하고 다니는 그녀였다.
그렇기에 최근 화두에 오르는 장본인이었고 그녀에게 손해를 본 자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객방에서 음식을 먹던 그녀는 미미하게 흘러나온 살기를 감지하고 검을 뽑았다.
정확히는 뽑으려 했다. 그녀가 살수 한 명을 바라보고 검에 손을 올렸을 때,
이미 다섯의 살수들이 쏘아낸 암기는 그녀의 목에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현존하는 살수단 중 최강이라 알려진 사접단이었다.

일순간 섬광과 함께 시야가 사라졌다.
그리고 소리가 사라졌다.
감각 또한 사라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 건가..? 이럴 순 없어..'
그녀는 억울함에 분개하며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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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되어 눈을 뜨자,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의 절세 비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절벽과 폭포로 둘러쌓인 죽림을 헤메이다 기이한 풍경을 보고는 멈춰섰다.
마치 한 곳에 거듭 벼락을 맞은 것만 같은 흔적이 있는 공터.
그리고 사람 두 명 정도가 겨우 살 만한 작은 통나무집이 있었다.

"누추한 곳을 보이게 되었군. 어떤 기연이 닿아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갑작스레 쏘아져 온 것은 어떠한 적의도 담겨있지 않은 낭랑한 음성이었다.
이윽고 집에서 걸어나온 자를 본 그녀는-
'가히 절세의 미모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것처럼 생겼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듯한 표가 나는 아리따운 소녀' 라 생각했다.

"소저는 어찌하여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분명.."

"음, 무엇부터 설명해야 하나. 일단 나는 사내일세. 그리고 그대는 죽을 고비에 처해 있지."

"죽을 고비에 처해 있다니..? 그리고 남자라고?! 말도 안 돼!"
그녀는 그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놀라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 발언은 조금 무례하지 않은가.."
"아무튼, 그대는 객잔에서 천하제일살수들의 습격을 받았고.. 여기까지는 기억하고 있나?
 하필이면 그대가 있던 그 방이 내가 천화객잔에 들를 때마다 사용하는 방이었으니.."

요악하면 이러했다.
암습에 대비하여 개인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방에 운 좋게도 머물던 그녀가,
하필이면 암습을 받아 안전장치에 의해 그의 허수공간에 전송되었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그녀가 아직 살수의 손아귀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 곳에서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이 수십의 암기에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리라.

"이것도 인연이니 그대가 돌아가도 살아날 수 있게 도움을 주겠다는 거지."
아무리 봐도 무공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이 생긴 소년이 이러한 말을 하니 그녀로서는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곧, 그녀는 생각을 바꿀 수밖엔 없었다.

"먼저 통성명을 하자면.. 나는 천궁파의 27대 장문인 천화무결 진해청이라 하네. 이 허수공간에서 폐관수련을 하던 도중 경지를 깨우쳐 우화등선하게 되었지."
독문무공의 전설! 단 일인일지라도 능히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알려진 천궁파의 인물이 눈 앞에 있던 것이다.

"아..? 뭐라고, 아니,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진 대협. 소녀는 비류 소소라 하며, 현재 어떤 문파에 속해 있지는 않은 몸입니다."
급히 포권을 하며 예를 차렸지만, 조금 전의 무례한 발언의 처분을 걱정하는 그녀였다.

"문파에 속하지 않았단 말이지..내공은 꽤나 잘 정제된 상태이니 내 무공을 전수해도 되겠나?
 분명 돌아가면 그 살수들 정도는 단 일검에 해치울 수 있을 것인데.. 물론 원치 않는다면 이대로 돌려보내 주겠네."
당장 돌아간다면 암기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를 거절할 자가 있으랴, 그녀는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여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제의 연을 맺는 의미로 그와 술 한 잔을 하자, 그녀는 몸이 이상할 정도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운기행공을 하게. 내 도와줄 터이니."
급작스레 기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고, 무언가 몸 속을 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격통이 시작되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알고 있기에..

약 네 시진의 사투 끝에-
그녀의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천하에 두 개는 없을 영약과도 같은 술을 마시고 새로운 운기법을 깨우치며 임독양맥을 타통한 경지에 이르러,
그녀의 내공은 십이 성에 가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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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공간에서의 세월이 5년 정도 흘렀다.
얼핏 보기엔 길어 보이지만 보통 무공을 익히고 하산한다는 것은 삼십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녀의 경우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습득한 것이다.
5년이란 세월이 무림에서는 짧지만 사람 간의 시간은 긴 세월이다 보니 그새 두 사람은 가까워져 있었다.

"정말 돌아가야겠나? 이대로 함께 우화등선하여 이곳에서 사는 건.."

"무림에 발을 들인 건 소녀의 뜻이었으니,
 일생을 검과 의기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겠어요.
 사실 이곳에 남아있고도 싶지만 아직 무림을 전부 돌아본 것도 아니니까, 언젠가 속세에서 만나자구요."

"으음."
설득이 두 번이면 회유, 회유가 반복되면 협박이라 했던가. 
그는 결국 마음을 접고 그녀를 보내주며 말했다.

"돌아간다면 나에 대한 기억은 전부 사라지게 되겠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속세에서 만나자꾸나.
 부디 악인은 되지 않아주었으면 하네.. 그리고 돌아간다면 시간이 재생되기 전 오 초의 유예시간이 주어지니 적절히 대응하게."

"기억이 사라져? 그런 말은 안 했잖아, 이 배신자야---!!"
그녀는 급히 고함을 치며 떠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전송은 시작된 것,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시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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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객점의 한 객방,
암기를 쏘아낸 살수들은 완벽한 일처리를 위하여 검을 뽑아들고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섬광이 일었고 소녀를 꿰뚫어야 했을 암기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십 개의 검광이 흩뿌려지고 일순간 합쳐지며- 하늘을 갈랐다.

천궁의 비전검법인 유성검의 초식, 유성사십이검과 단벽섬의 완벽한 연계였다.
천궁의 무공이 속세에 나타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물론 이 무공이 천궁파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없을 테지만.
소녀는 너무나도 강력한 검강의 기에 놀라 모여든 구경꾼들에게 일갈했다.
"본녀는 천화낙검 비류 소소다! 감히 암습을 한 자들의 수급은 깔끔하게 베어졌으니 그 누구라도 본녀를 해하려 한다면 그 문파를 박살내 버리겠다!"

너무도 당돌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발언.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바닥에 나뒹구는 사접단의 사체들.
창공성에서 시작된 그녀의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머지않아 그녀는 명실상부한 천하제일고수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천궁의 무공을 펼칠 때마다 가슴속이 아련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녀 자신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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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글을 써주신 해청1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