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BS

https://arca.live/b/commissionimglink/22534230 => 여기서 두번째 캐릭


게으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게으른 나머지 자신이 선택해야 할 순간에도 선택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다.


멸망하기 전에 잘 먹고 잘 살았다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고, 지금의 그녀가 그랬다. 


얼마나 게으른지, 말에다가 들것을 묶어두고, 그 들것에 누운 채로 거적때기만 뒤엎어쓰고, 말이 멈추면 멈추고, 말이 움직이면 움직였다. 이 멸망한 희망 없는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보면 정말로 한심하다며 비웃었겠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이 일도 꽤 돈이 됐기 때문이다. 그녀 혼자만 다니는 것을 보고 달려든 모터사이클 갱, 마적단들을 죽여서 값나가는 물건만 챙겨도 그게 얼마인가.


 그렇기에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B라 부르건 바냐라 부르건, 아니면 블레이드라 부르건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끌려다닐 말과 누워있을 들것, 그리고 적당히 맛있는 밥, 칼 한자루만 있으면 뭐가 문제랴. 그렇게 생각하며 누워있는 그녀를, 말은 한 마을로 인도했다. 흔들리는 느낌이 없어 이상하게 여긴 그녀가 눈을 떠보니, 이 멸망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목가적인 풍경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경치는 좋았다. 지붕을 파란색으로 마감하고 벽을 흰색으로 칠한 동화같은 건물들은 쭉 뻗은 바닷가까지 이어졌다. 바다의 짠내는 피비린내와는 달리 맡으면 맡을수록 기분이 좋았다. 여기서는 해산물을 잔뜩 먹을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묶어두고 들것을 위에 올린 뒤에, 칼을 차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늙은 주인장,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인부, 사냥꾼들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이었지만 다들 공통점이 있었으니, 지금 여기에 들어온 B라는 여자에게, 불편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이 B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년인지 알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녀 역시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여관 테이블 한구석에 앉아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먹을 거. 마실 거. 빨리."


 "...돈은 있겠지?"


 "...먹을 만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우가 둥둥 떠 있는 스튜와 빵이 나왔다. 그 뒤를 술이 따랐다. 여급이 잔을 꺼내서 바닥에 약간 깔리게 럼을 들이부었다. B는 여급을 바라보다가, 럼이 바닥에 깔리는 것을 보고는 성에 차지 않는 표정을 짓고, 팔을 다짜고짜 잡고 럼을 더 부었다. 그걸 보고 주인장 옆에 서 있던 사람이 홀스터로 손을 가져갔지만, 주인장이 막았다. B는 스튜를 빠르게 먹고, 술을 마신 뒤 한 잔을 더 요구했다. 


 "한잔 더. 그리고 스튜 한 그릇 더."


 "...네. 네. 꺄악?"


 쾅! 문이 부서지며 술잔에 럼주를 붓던 여급이 술잔을 엎어버렸다. B는 엎어진 술이 흘러서 자신의 치마를 적시는 광경을 목격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애시당초 더러운 옷이라 상관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무덤덤한 걸까. B는 뒤에서 우락부락하게 생긴 불량배들이 들어온 상황에서도 여급에게 술잔을 도로 들이밀며 투정을 부렸다.


 "술. 한잔 더."


 하지만 그녀의 말을 끊으려는 듯, 불량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 씨발새끼들아! 여기는 클뤼크 보이즈 구역이라고! 어?! 알아 몰라!"


 "..."


 여급이 벌벌 떨면서 뒷걸음질쳤다. B는 술 먹을 기회가 물 건너가고 나서야 주변 상황을 돌아보았다. 주인장은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서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술집 쪽은 총이 한 4개, 그리고 불량배 쪽은 총이 11개. 아무래도 술집 쪽이 불리했다. 하지만 불리하건 유리하건 B는 알 바가 아니었다. 


 "뭐야, 이 년은?"


 하지만 한 불량배가 그녀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이 일을 그녀의 일로 만들어버렸다. B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자기를 때린 사람을 보았다. 모히칸 머리를 하고, 웃옷을 벗은 깡패였다. 그녀의 이마를 총구로 쿡쿡 밀면서 도발하고 있었다.


 "이 년아, 불만 있냐? 엉?"


 "..."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저 불량배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술도 음식도 못 먹을 상황이었다. 


 "어?"


 눈보다 빠른 동작에 불량배의 팔이 잘려나갔다. 다른 불량배들이 그것을 보고 총구를 B 쪽으로 돌렸지만 너무 늦었다. B는 이미 그들 뒤에 서 있었다. 불량배들 중에 눈치가 빠른 이가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저, 저년이... 어떻게 저기로 간 거야?"


 "..."


 B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동료의 팔을 잘라놓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앉은 그녀를 보고 분개한 불량배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 어어?"


 몇 걸음 걷자마자 그들의 몸은 한 부위, 한 부위씩 떨어져나갔다. 처음에는 양쪽 팔이, 그 다음에는 왼쪽 다리, 한 걸음 더 걸으면 오른쪽 다리. 그리고 넘어지면, 상반신에 새로 생긴 절취선을 따라 온 몸이 동강동강 조각나버렸다.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행복한 죽음이었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에 여관 주인장 쪽에 선 이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잔상이 이리저리 생기더니, 어느새 불량배들이 몰살당했다. B는 손가락을 딱딱 퉁기며 다음 음식을 주문했다.


 "밥, 술. 빨리."


 "..."


 주인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여급 대신 자기가 나섰다. 주인장은 잔에 럼주를 잔뜩 채워주고, 음식도 다른 이들이 먹는 것보다 훨씬 푸짐하게 담아주었다. B는 그것을 받고, 자신의 뒤에 쓰러진 불량배의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치워. 피냄새 나잖아."


 "...조쉬, 유타. 갚지도 못할 외상 술값, 이 새끼들 시체 치우고 갚아."


 "하지만 어디다 버리라고..."


 "대충 바다에다 던져! 가재가 먹던 조개가 먹던 하겠지!"


 "..."


 주인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지?"


 "몰라. 말이 가는 대로 갔거든."


 "...뭘 하고 살았지?"


 "야쿠자 두목. 근데 그것도 하다보니 짜증나서."


 "...이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돈이 아주 잘 될 일을 알고 있어. 이 마을이랑, 여기서 30분 걸어가면 있는 도시를 통치하는 아주 끝내주는 대부호가 있거든. 그분 보디가드를 한다면 말이지..."


 쾅! 보디가드라는 말에 B는 테이블을 내려쳤다. 주인장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얻는 건?"


 "...일단 돈은 두둑할 거야. 그건 약속하지."


 "내가 돈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보여?"


 "..."


 그 질문에는 주인장도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더듬다가, 단어를 하나하나 조합해갔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돈이..."


 "정답이야. 그 사람 어디 있어?"


 "..."


 그리하여 B, 어디서는 블레이드로 불리고, 어디서는 바냐로 불리고, 어디서는 블렌이라고 불리고, 하여간 B자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로 불리던 사람은 두둑한 돈자루를 찾아, 자신의 선택권을 말이 아닌 이름모를 한 대부호에게 맡기게 되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게으른 나머지 자신이 선택해야 할 순간에도 선택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다.


멸망하기 전에 잘 먹고 잘 살았다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고, 지금의 그녀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