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졌습니다."

흙바닥에 널브러진 사내가 무기를 내려놓고 조심히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목덜미에 드리운 칼 그림자가 거두어진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더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납도를 하는 앳된 여인의 이름은 비류소소, 방년(芳年)에 환골탈태를 이룬 무림 고수이다. 사내가 몸을 추스를 때까지 예를 갖추어 기다리던 그녀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조용히 발걸음을 떼어놓으려 했다.

"저, 낭자.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경의를 담아 본인이 명주(名酒)를 한 잔 대접하고 싶사온대, 그것이 술을 잘 빚기로 유명한…"
"죄송해요! 저는 좋아하는 감정도 없는 남자와 속없이 잔을 맞댈 성격이 못 돼요. 감사하지만 호의만 받는 것으로 할게요."

정중하면서도 명료한 거절에 눈이 동그래진 사내는 납득한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걔 있잖아, 걔. 몇 달 전부터 졸졸 따라다니면서 한 수 겨뤄달라고 한다던… 아 글쎄, 오늘은 걔가 나보고 한잔하자고 살랑거리던 거 있지? 하… 꽤나 귀엽게 생겼던데, 그냥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걸 그랬나?"
"허구헌날 칼질이나 하고 다니는 계집애가 뭐 이쁘다고 그러나 몰러 들. 눈만 맞으면 여우에 홀린 것마냥 헬렐레~ 헤가지고. 에잉… 쯔."
"후후… 그거야말로 이 몸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방증이지! 그런 내가 허름한 주막집에서 만두에 밀주나 마시고 있으려니까…"
"뭐어? 허름해? 만두에 밀주나? 그래서 불만이여? 먹지 마, 이년아. 뱉어!"
"아야야야… 내가 이모한테만 이러는 거 알면서! 우리 이모 만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단 말야♡"
"…"

순간, 까르르- 웃던 소소와 주막에 들어오려다 말고 넋을 빼고 섰는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까 그녀와 합을 겨루었던 사내이다.

"… 실례했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퍼뜩 정신을 차린 듯한 사내는 여전히 맹한 얼굴로 몸을 돌려놓으려 했다.

"저기요!"
"… 예?"

소소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당차게 일어나 성큼성큼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검은 칼집에 가만히 손을 얹으며 그를 올려보았다.

"내가 이 칼을 뽑게 할 수 있겠어요?"
"…"
"저는 강한 사람이 좋아요. 당신이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소 또한 그런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당신보다 강해지고 싶고, 지금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희망과 현실은 다른 법이니까요."
"그리고… 무공 증진에 대한 노력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망하셨다면 죄송하군요. 그럼…"
"어떤 술이라고 했죠? 제게 대접하고 싶다 했던…"
"저는… 강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노력하는 사람도 좋아해요."

소소의 눈꺼풀이 고운 호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사내의 얼굴이 화하게 밝아진다.

"어… 그, 그러니까 그게 어떤 술이냐면… 사실 이 집 밀주인데요…"
"아니 잠깐! 아까는 명주라면서?"
"이 년이!"



 =========================

유쾌한 글을 써주신 ㅉㅉㄷㅂ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