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세계관의, 다른 시간선의 캐릭터들이 연결되는 스토리입니다.

재밌게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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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시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든 당연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이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항구도시. 

여러 발자취가 뒤섞이며 돈이 오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중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것은 역시 청부업이다.

내로라 하는 뒷세계의 청부업자들을 제치고 단신 영업으로 정상에 오른- '무엇이든 해결해 드립니다, 미래 심부름센터'

"미래는 당신의 돈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를 홍보문구로 걸고서 오늘도 의뢰를 기다리는 그녀, 주시우였다.


'영업용 헤실미소 장착 완료, 고객응대용 멘트 암기 완료.. 하,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는 역시 힘들어.

 없는 걸 끄집어내는 건 매일 해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어서오세요, 고객님~ 어떤 것을 의뢰하러 오셨을까요? 암살, 사람 찾기, 일수 등등이 있고 가격은.."

"안내는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 중원을 알고 있나?"

갑작스레 옛 전설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오늘의 고객을 보니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이런 작자들과 얽히면 고생만 한다는 경험을 뼈저리게 느꼈던 기억이 뇌리에 박혀 있었기에-

한 번 떠볼 심산으로 질문을 받아쳤다.


"전설이나 민담은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련이 있는 유물을 가져오시거나.. 직접 증명해 보이세요."

"발뺌은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나. 이 사무실에 진까지 설치해 놓고 중원과 관련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

그녀는 일전에- 

소위 '아마추어' 시절에, 집안 금고에 박혀 있던 일종의 암살, 암기술이 쓰여져 있는 고서를 읽고 수련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고대 중원 무림 제일 살수 가문인 암혼살문의 비전서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고객님'은 어렴풋이 그녀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실상 그녀의 몸엔 단전은 물론이고 어떠한 강기 같은 것도 없을 뿐더러, 그저 살수 무공과 진법 정도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지만.


"아아, 뭐.. 간파당했으면 어쩔 수 없나. 연기도 그만둘까?"

"그러는 편이 편하지. 헤실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영 신뢰가 가지 않아서 말이야."

"하아..현대 사회에선 필수라고. 어쩔 수 없어. 나도 구역질이 난다고."

어느새 표정 변화가 하나 없고, 눈에는 생기가 사라진 모습의 그녀가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 대충 설명할 테니 알아들으라고.

 중원은 전설이 아니라, 실재했던 곳이지. 그리고 나는- 

 그 중원을 멸망시켜 전설로만 남아 있도록 한 장본인을 쫓고 있다."

"잠깐, 고대엔 기술도 발전해 있었고 현재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강자들이 널려있었다 들었는데.

 그걸 전부 쓸어버린 미친 놈을 나보고 상대하라고?"


'고객'은, 폭소를 터뜨렸다.

"누가 상대하라고 했나, 자네 정도면 일 검에 두 동강이야. 그저 흔적을 뒤쫓아 찾아내 주길 바라는 것이지.

 사진이나, 몽타주 정도여도 상관없어. 이제 겨우 그의 그림자를 밟았을 뿐이니..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을 뿐이야."

"그럼, 목표가 소유했던 물건이나 피, 머리카락 등은 없나? 그런 게 있으면 찾기 편할 건데."

"있을 리가. 그러고 보니 저 목걸이는 어디서 난 것인가? 그의 기운과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데."


그녀의 책상 위, 강화 유리 케이스 안에 핏빛 보석의 펜던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로, 먼 옛날 선조가 자신과 깊은 인연이 있던 사람에게 받았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물건이었다.

"저건, 우리 집안 가보인데.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네?"

"잠깐 꺼내 줄 수 있겠나? 물건에 손상은 절대 안 간다고 보장하네. 담보로 2만 달러도 잠깐 맡겨두지."

"그런 조건이면 당연히 가능하지. 그럼.."


그가 보석 위에 손을 가져다 대고 무언가 주문을 외는 그 순간,

보석에서 강렬한 빛 기둥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 자는, 창해시 안에 있어. 그의 기운과 완전히 같아. 이건.. 발동 시 상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물건 같군."

"이 미친놈이! GPS라는 거잖아? 그런 걸 켜면 이미 목표가 우리를 인지했을 건데..!"

"아니. 일방통행적이라는 거지. '우리'가 그를 포착한 것이야.

 나는 책사이니..이 이후의 일은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목표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고,

의뢰 선금도 받았으니 그녀가 나설 차례였다.

언제나처럼 군용 바요넷을 양 손에 들고, 권총을 숨긴 후 사무실을 나서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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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밝게 빛나는 창해시의 밤.

한 소녀가 폐건물의 옥상에 서서 자신의 펜던트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근방에, 목표가 있다. 내 실력으로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인 것 같으니 들키면 끝이다.

 높은 곳에서 도주 경로를 짜 놓고, 기습으로 기절시킨 후 증거를 확보해 간다.'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뒤에서 급소를 가격하면 기절할 수밖엔 없지."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고, 소녀는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착한 목표를 향해 돌진하여, 단검의 칼자루로 목표의 뒷목- 마혈을 가격했다.


[목표는 당연히 쓰러졌고, 그녀는 몇 가지의 '표본'을 수집하여 돌아가 남은 의뢰비를 받았다.]

보통이라면 이야기의 전개는 위와 같았을 것이다.

그녀는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내리친 듯한 충격을 느끼고 빠르게 뒤로 물러나 후퇴했다.

벽을 타고 뛰어올라 옥상 턱을 잡고 올라서야 했지만, 자각하지도 못 한 채 오른손이 사라져 있어 꼴사납게 추락하고 말았다.


"너는 누군데 쉬고 있던 사람을 기습.."

타앙-


한 소녀가 폐건물의 옥상에 서서 한 건물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첫 시도는 실패, 기습의 효과가 없었다. 무언가 강력한 실드 같은 것이 주변에 쳐져 있는 느낌이었고.

도망치려 뒤를 보이자 손목이 잘렸어. 이번엔 정면승부로 가 봐야 하나.'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건물로 진입하여 방 안으로 연막탄을 굴려 넣은 후-

'하나, 둘, 셋. 지금!'

목표가 검을 꺼내 들고 응수하자 단검으로 막아내고, 

그녀의 단검 째로 왼팔이 잘려나갔다.

타앙-


'이번에는 다른 수단을..'

고정형 와이어를 투척하여 목표의 발을 묶고, 눈에 단검을 꽂아넣으려다 몸이 두 동강이 났다.

화염병, 수류탄, 크레모아, 기관총, 유독 가스, 수면 가스 등등,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소득이 있었으니-



소녀는 건물로 침투해 수류탄 세 개를 시간차를 가지고 던져 넣었다.

방 안에는 파편이 난무하고 이미 반격 태세를 갖춘 목표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걸어들어가 샷건을 그의 검에 조준한 후 발사했다.

"이걸로 딱 삼백 번째야. 검을 잡고 있는 이상 이 정도의 충격이 가해진다면 균형을 잃기 마련이지.

 그럼- 수고했어."


산탄총을 그대로 받아낸 충격으로 휘청이는 목표를 넘어뜨리고, 단검으로 목을 그었지만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이딴 의뢰를 받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며 다시 돌아가면 안가로 숨어들어 이 시간을 넘기고 나오겠다 생각한 그녀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서로를 죽이려 들었던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순간 깨어진 건물의 벽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며 그녀와 그녀의 표적을 비추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표적을 올려다보던 그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으로 들었던 절대 강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한 아름다운 외모에, 먼 고대에 존재했다는 사람 치고 너무나도 젊어 보였기에.

그리고 남자라고 들었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어엿한 숙녀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정적을 깨고, 한 마디의 말이 건네어져 왔다.

"현월..? 영약을 얻어 살아 있던 건가..?"

당연히 자신을 죽일 줄 알았던 눈앞의 적이, 말을 건네오자 놀라 답했다.

"날..죽일 생각이 아니었나?"

"기습을 당하면 역공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나."

.....

"의뢰를 받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당신 마음대로 해, 어떻게 가지고 놀던 불만은 없으니까."

시간을 돌릴 자살용 총탄도, 단검으로 심장을 찌를 여유도 없었다.

어떤 행동을 하던지 상대는 자신보다 빠를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다.


"넌, 현월의 후계자인가? 암혼살문의 무공을 익혔더군.

 그리고 그녀와 완전히 닮아 있어. 이 칠흑같은 머리칼부터, 깊은 적색의 눈동자까지.."

"하..?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천천히 가지고 노는 게 취향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상대를 앞에 두고, 그녀는 혼란스러워 했다.


"진한천수단이 불완전하게 발현되었어. 내공이 미약한 상태로 약을 받아들인 건가?

 내가 의도한 것은 '신체가 최상의 상태로 각성한 순간'의 시간을 고정하여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었지만..

 네가 약을 섭취할 당시엔 이것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약했군. 

 어떤 효과가 나타난 건지 알려줄 수 있겠나?"

이 질문을 받은 순간 떠오른 생생한 기억.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던 사건.

고문서를 나침반 삼아 시작한 여행의 종착지.

이 모든 것이- 그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 조건은, 내가 죽어야만 하는 것.."

"오늘 밤, 얼마나 죽은 것이냐."

"말했잖아. 삼백 번. 이제 더 시도하고 싶지도 않아, 당신을 상대로는."

"가엾은 것.. 우리가 서로 검을 맞댈 이유는 없거늘."

말을 끝마치고, 그는 그녀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지금껏 겪었을 고통을 이해하기라도 한다는 듯, 위로의 말 또한 건네 주었다.


시우는 그의 품에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살짝 밀쳐냈다.

그녀가 진정된 것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 영약은 내가 아주 각별한 인연이었던 자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것이었지.

 네 목에 걸려 있는 보석 또한.. 내가 준 것이었고.

 대체 넌, 현월과 무슨 관계인 것이냐."

"몰라, 그런 이름.. 보석은 가보로 내려온 거였고.."

영약을 얻게 된 연유를 설명하니, 미안하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당신이 고서에 적혀 있던 진해청 인 거야?"

"내가 바로 그, 진해청이야.

 시작부터 얽혀 있던 운명의 끈을 따라 이제야 널 만났구나."

"난..아니,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어.

 너와 똑 닮은, 귀엽고 예쁜 소녀였어.

 그리고 아마.. 네가 그녀의 후손인 거겠지."

"그 사람, 이름이..?"

"주 현월. 너 또한 주씨임에 틀림없을 거야."

"맞아, 난 주시우라고 하는데. 

 이제 당신한테 더 죽지 않아도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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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 왔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오랜 인연의 끈을 찾으러 방랑하던 한 협객과,

그의 인연인 한 소녀가 만나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나랑 공조하는 거니까, 당신 이야기도 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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