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은 움직이지 않는다. 루카는 그런 과녁의 부동성을 좋아했다. 


움직이지 않는 과녁을 응시할 땐, 오로지 숲을 휩쓰는 바람의 소리와 스치는 나뭇가지의 소리만이 자신을 가득 채울 수 있기에. 


루카는, 자연에 완전히 녹아든 듯한 그 일체성을 좋아했다. 


***


"후."


시위를 떠난 마지막 화살이 나무에 걸어둔 과녁의 중간에 박히는 것을 본 루카가 참았던 숨을 짧게 내뱉었다. 


"연습 끝."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루카의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루카는 몇 시간 동안 집중하느라 자기도 모르게 땀이 흐르는 뒷덜미가 기분좋게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과녁으로 걸어가 천천히 박힌 화살들을 하나씩 뽑아냈다. 


모든 것이 적절했다. 활을 쥔 왼손에 느껴지는 활의 강도, 시위를 당길 때 뿌드득하고 나지막이 들리는 나무의 팽팽함, 화살을 걸친 시위의 단단함, 그리고 바람을 읽고 그 속에서 나아갈 화살의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는 루카 자신의 감각까지. 


뽑은 화살을 하나씩 화살통에 넣으며, 루카는 오늘 해야할 일을 떠올렸다. 


지키는 일과 죽이는 일. 오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드물게 그 둘을 다 하는 일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고 마을에 침범하는 마물들을 처리하는 비교적 건전한 일. 


매일 훈련하는 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차가워졌다. 인간보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동물들은 이미 겨울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겠지. 


겨울은 곧 배고픔의 계절이다. 마물을 포함한 상위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의 대부분은 이미 겨울잠에 들어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배를 채울 먹잇감을 찾지 못한 숲의 마물들은 이맘때가 되면 곧 따뜻함과 음식의 냄새에 이끌려 곧잘 인간의 마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매년 있는 일이다. 본래라면 프리랜서인 루카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는 연례행사같은 것일 터였다. 


하지만 몇 년전부터 마을에 침범하는 마물의 수와 흉포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한두 마을, 한두 도시의 이변이 아니라 온 나라의 숲에서 겨울을 앞둔 마물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저 먹이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목적인 것 마냥.


급기야 마을의 청년들이 크게 다치는 일까지 벌어지자, 마을에서는 돈을 모아 용병을 고용해 마을에 접근하는 마물의 처리를 맡기기 시작했다.


오늘 루카가 지키게 될 마을은 성읍에서 제법 떨어진 시골마을. 경비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외진 마을이기에 루카 혼자서 모든 마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만큼 두둑한 받게 되었으니 불만은 없다. 


"......"


이번 의뢰를 수락한 이유는 돈 뿐만이 아니었다. 겨울철 마물이 흉표해지기 시작한 때부터 루카가 드문드문 느끼던 숲의 변화. 숲의 중심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변화. 


마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이 숲에서조차 느껴지는 이 변화는, 틀림없이 인간을 향한 '악의'를 담고 있었다.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숲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루카 정도의 실력자에게도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루카는 이번 의뢰를 처리하면서, 흉포해진 마물들로부터 무언가 단서를 찾아볼 생각이다. 


쏴아아-


바람이 불어왔다. 갑작스레 불어온 칼바람에 루카는 읏, 하며 눈을 감고 휘날리는 머릿결을 붙잡았다. 


"......역시, 심상치가 않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루카는 하늘을 힐끗 쳐다봤다. 하얗게 불타는 태양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걸치기 직전이었다. 


슬슬 의뢰를 맡긴 마을에 갈 시간이었다. 


루카는 마지막으로 바람이 불어온 숲의 중심을 노려봤다. 우거진 나무들이 만들어낸 어둠보다도 깊은 저 중심을 눈빛으로 꿰뚫으려는 듯이, 루카의 붉은 눈은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쉬익-하는 소리와 함께 루카는 바람이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이대로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 몇 시간도 안걸려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순식간에 자신의 뒤로 쳐지는 풍경들을 스쳐지나가며, 루카는 자신이 곧 자신이 마주하게 될 표적들을 떠올렸다. 


움직이지 않는 과녁들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들. 


하지만 루카는 그러한 표적의 생동감 또한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열기가, 생명력이, 투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중심에 화살을 꽂아넣는 것은 루카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기에. 


"......"


루카는 바람에 박차를 가했다. 가속된 흐름 속에 몸을 맡기며, 루카는 자신의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사냥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촉촉한옥수수 


동적인 글보단 정적인 글이 더 익숙한지라 이런 글이 나와부렸읍니다.


 이런 비루한 글도...글미션을 받을 수 있을까오? 


아무튼 맘에 드셨음 좋겠씁니다 호에ㅔ에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