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바의 휴대폰에는 언제나 두 개의 알람이 설정되어 있다. 


하나는 일어날 시간에 맟춰진 알람. 


다른 하나는 잠에 들기 5분 전에 맞춰진 알람.


잠이야 언제든지 들면 되지 않겠냐고들 하지만, 그녀에게는 반드시 자신이 잠에 들 시간이 다가왔음을 보고받을 필요가 있다. 


그 시간이 되면, 그녀는 '무조건' 잠에 빠지기 때문이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 그렇게 되는 건지, 왜 매일 일찍 잠에 드는데도 아침엔 피곤한 건지, 솜바에게는 자신의 이 체질에 대해 해결해야할 의문점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빌런들과 싸우는 히어로인 자신이, 지금 빌런에게 잡혀버렸다는 것이다. 



*



"크윽......"


불빛 하나 없이 오직 달빛만이 비추는 어느 한 공사 중인 건물. 


솜바는 자신의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보려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만, 의자 뒤에 단단히 묶인 밧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때 히어로 솜바."


솜바가 마치 자석처럼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나뉜 양갈래 머리를 찰랑이며 안간힘을 쓰는 것을 맞은편에서 즐기듯이 지켜보던 남자가 우월감에 가득 찬 웃음을 지으며 솜바의 앞으로 다가왔다. 


"네임드 빌런도 아닌 C급 빌런에게 사로잡힌 기분은?"


솜바는 대답 대신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붉은 눈과 푸른 눈으로 눈 앞의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솜바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을 예상한 남자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그 능력으로 어떻게 이 프로 히어로를 이길 수 있을지 영리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하여 그는 오랫동안 섬세하게 함정을 팠고, 그것을 예상하지 못한 솜바는 결국 덫에 걸려버렸던 것이다. 


"큭큭큭, 멍청한 히어로 본부 꼰대새끼들."


남자는 솜바의 사나운 눈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게 왜 빌런 랭킹을 능력의 물리적 파괴력으로 측정하래? 나같은 별 볼일 없는 능력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유용한데."


안 그래? 하고 물으며 남자가 손으로 솜바의 턱을 움켜쥐고는 강제로 턱을 들어올려 자신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자신과 신체적 접촉이 이뤄진 것을 본 솜바는 남자를 째려보며 무언가를 할 듯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크하하! 솜바, 네 능력에 대한 대책도 없이 내가 널 함부로 만졌을 것 같아?"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은 솜바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본 남자는 더욱 크게 웃었다.


"이 밧줄에는 능력자들의 능력발현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 네놈의 몸을 손상시킬 정도의 출력을 내지 않는 이상 내게 너의 전기가 닿는 일은 없을거야."


"이익......이거 풀어!"


솜바가 조바심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소리쳤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것을 본부에서 알아채고 지원을 보내기까진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남자와 육탄전을 벌여 이길 수 있을 가능성 또한 낮고, 설사 저 남자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저 남자가 혼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큭큭, 왜, 이제서야 자기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감이 오나?"


남자는 덜컹덜컹 의자를 흔들며 어떻게든 빠져나오려는 솜바를 무시한 채 그녀에게서 빼앗은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과 잡동사니들을 휙휙 바닥에 던진 남자는 솜바의 휴대폰을 집어들었을 때였다. 


띠띠띠-띠띠띠-


"뭐, 뭐야?"


갑작스러운 알람에 화들짝 놀란 남자는 얼른 휴대폰의 화면을 쳐다보았고, 화면에 뜬 알람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씨익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잠들기 5분 전'? 큭큭, 우리 공주님은 아직도 코코넨네할 시간을 알려줘야 하나봐?"


하지만 솜바는 남자의 시덥잖은 농담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안돼. 


솜바의 얼굴이 굳어져갔다. 


벌써 시간이?


솜바가 자신의 잠드는 시간을 경계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정상적으로 정확한 수면시간과 거스를 수 없는 강제력뿐만이 아니었다. 


잠이 드는 그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이질감.


꿈 속으로 가라앉는 나 대신 수면 위로 올라오는 또 다른 '나'의 존재.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 미지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안돼! 이거 풀어! 당장 풀란 말이야!"


더 다급한 목소리로 몸부림치는 솜바에게 짜증이 난 듯 남자는 바닥에 휴대폰을 내던졌다. 파직, 하는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알람소리가 사라졌다. 


"닥쳐! 애새끼마냥 징징거린다고 내가 다 들어줄 것 같냐? 우선 네년이 잡아쳐넣은 내 동료들에 대한 정보들을 끄집어낸 다음에 철저하게 부숴줄테니까 입 다물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그런다고 한 마디라도 할 것 같아?"


"몇 날 며칠 동안 고문 당한 다음에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보자고."


남자가 방 구석에서 펜치를 꺼내들었다. 


"지금부터 내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이 안나올 때마다 네년의 손톱이 하나씩 뽑혀나갈 거야. 그래도 입을 안 열면 그땐 개처럼 따먹어주지."


펜치를 깔짝이며 남자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지만, 솜바는 다가오는 남자가 아닌 다가오는 시간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탈출한다고 해도 길 위에서 잠들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툭. 


"엉?" 자신을 노려보던 솜바가 갑자기 죽은 듯이 고개를 떨구자 남자가 의문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뭐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갓 잡은 생선마냥 펄떡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큭, 너무 무서워서 기절이라도 해버린 건가?"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펜치를 들고 솜바에게 접근했다. 


"뭐 손톱이라도 하나 뽑으면 싫어도 일어나겠ㅈ......우왁!"


남자가 의자 뒤로 묶인 솜바의 손을 향하려는 그때, 솜바의 두 다리가 마치 뱀처럼 남자의 몸통을 휘어감았다. 


"......"


"젠장! 기절한 척한 건가!"


남자는 필사적으로 솜바의 다리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등을 꽉 잡은 채 자신의 몸에 밀착시킨 솜바의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뭔 놈의 힘이......아까는 이렇게 세 보이진 않았는데!'


"히어로 포박 수칙 그 첫 번째."


바로 그때 솜바가 희번뜩 고개를 치켜들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손과 발을 모두 묶고,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입에도 재갈을 물려둘 것."


정말 같은 사람인지 의구심이 들게하는 소름끼치는 목소리와 눈빛. 


그 살기에 압도되어 남자는 솜바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널 가르친 머저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초 중의 기초도 제대로 못 하는 벌레한테는 C급이라는 타이틀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니? 응?"


"너, 넌 뭐야!"


"그러게? 내가 누굴까?"


당황과 두려움. 남자의 눈에 스치는 그 감정을 읽은 솜바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눈에는 아직도 내가 히어로 솜바로 보이니이이~? 어때, 괴담 같은 말투 제법 잘하지? 응? 응? 깔깔깔!"


"이, 이 미친 년이! 이거 안 놔!"


남자가 아직 자유로운 두 팔을 휘둘러 솜바의 얼굴을 마구 가격하기 시작했다. 


"능력을 봉인당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 병신년이 어디서 까불어! 뒤져! 뒤져! 뒤져어어!"


사정없는 남자의 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솜바는 여전히 고개를 꼿꼿이 치켜든 채 남자를 응시했다. 


"능력억제 밧줄을 썼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귀여워라."


"허억......허억......"


남자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솜바를 때리던 팔을 거뒀지만, 솜바는 오히려 아쉽다는 듯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피를 할짝 핥아 먹었다.


"벌써 지쳤어? 그럼 이제 내가 재밌는 걸 하나 가르쳐줄게."


솜바가 남자를 붙잡은 다리를 확 당기자 남자의 허리가 숙여지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 밧줄은, 능력을 봉인하는 게 아니라 억제하는 거야. 그건 아주 큰 차이점이란다?"


"어쩌라고......" 남자가 땀으로 젖은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대꾸했다. 


"니가 능력을 쓰려면 니 몸부터 먼저 아작난다니까?"


"히힉, 그래 나도 알아."


남자는 자신의 코 앞에 있는 솜바의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재밌다는 거야......덕분에 오늘 밤은 흥분되서 잠을 못 잘 것 같거든! 아하하하하하하하!"


귓청을 울리는 웃음과 함께, 두 사람에게서 마치 번개와도 같은 전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온 몸을 휘젓는 고압전류에 몸을 기이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인기척 없는 건물에서는 한동안 요란한 번갯불과 찌지직 하는 전류의 소리만이 어둠을 채웠다. 


이윽고 그을린 의자, 재가 된 밧줄, 그리고 새까만 덩어리가 되어버린 남자 사이에서 솜바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업계 선배의 말씀을 잘 들었어야지."


과도한 능력의 사용으로 아직 몸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솜바는 태연스럽게 창 밖을 바라보았다. 


달이 밝았다. 


"평소처럼 산뜻한 하루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솜바가 창틀 위로 올라가며 중얼거렸다. 


"가끔은 이런 자극적인 것도 나쁘진 않은 걸?"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달빛을 한껏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솜바는 밤공기 속으로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맡겼다. 


살인의 시간이었다. 




@전자기장


주말에 일이 있어서 평소보다 더욱 늦게 도착해버린 고장난 리어카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글미션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질 때까지 바퀴빠진 리어카는 투비컨티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