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는 화창한 태양빛이 비치고, 새들의 지저귐이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주말 아침, 이혜민과 윤동현은 서로 끌어안은 모습으로 침대에서 잠에 취해 있었다. 

 

정확히는 혜민이 동현을 끌어안고 있는 자세였지만, 둘은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는 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편안하게 잠들어 있기도 잠시, 문 밖 복도에서 다다다— 하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쾅—! 

 

"엄마! 아빠! 우리 게임하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청객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혜민과 동현은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답해주었다. 

 

"음...하연이니...?" 

 

"이 시간에 들어오면...당연히 하연이지...흐아아암..." 

 

짧은 문답이 끝나자 곧장 다시 잠에 들기 시작하는 두사람, 아니 한명의 신과 한명의 인간을 쳐다보던 반인반신 딸—윤하연—은 마치 삐졌다는 듯 크게 볼을 부풀렸다. 

 

"아아앙아아아 아빠아~ 같이 놀자아아~" 

 

"컥— 하연아 아빠좀 놓아주면 안될까아..." 

 

갑작스럽게 뛰어든 딸에게 붙잡혀버린 동현은 그대로 하연이의 볼 부비부비를 당해야 했다. 

 

"아빠 귀여워~!" 

 

"이젠...놓아줘...숨막힌다구..." 

 

계속되는 스킨쉽으로 고통받던 동현을 구해낸 것은,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즐겁게 노는것을 지켜보던 혜민이였다. 

 

"자, 하연아 그만하렴. 아빠가 힘들어 하시잖아." 

 

"힝... 하지만 아빠는 너무 귀여운걸." 

 

말대꾸를 하면서도 하연이 동현을 끌어안고 있던 팔의 힘을 조금 풀어내자, 동현은 겨우 살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허억— 죽는 줄 알았어..." 

 

혜민은 헉헉거리는 동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딸에게 물었다. 

 

"그래서 하연아, 이른 아침부터 무슨일이니?" 

 

"아니 자고 일어났더니 문 앞에 택배가 있더라구!" 

 

"택배가...? 딱히 배송시킨 물건은 없는 것 같은데... 안에는 뭐가 들어있었니?" 

 

"트...위스트 게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 편지도 같이 있었어!" 

 

"흐으음, 어디보자... 일단 트위스트가 아니라 트위스터 게임이라고 하는 건가봐. 

 

편지랑 함께 게임을 보내다니... 누가 보낸거지?" 

 

혜민은 오배송된 물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주소가 정확하게 입력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편지를 열어보았다. 

 

  

   트위스터 게임! 

 

   트위스터 게임 해주세요! 

 

   -미소브-                    』 

       

"........??" 

 

편지에는 트위스터 게임을 해달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혜민은 편지에 다른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한참 살펴보았지만, 이내 발신자가 미소브...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음... 딱히 위험한건 없는 것 같네." 

 

"그럼 같이 트위스트 게임하죠! 아빠도 어서 일어나!" 

 

"으으으... 하연아... 아빠는 잠이 더 필요해..." 

 

하연은 잠시 택배를 뜯는 사이 다시 잠에 빠져든 동현을 흔들어 깨웠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오늘 하루종일 들고다니면서 부비부비해버릴거야!" 

 

"으악! 일어날게!" 

 

하루종일 딸에게 붙잡혀 부비부비라니... 물론 아빠로써 이런 일은 기뻐 마땅할 일이지만, 신장 40cm 정도의 동현에게 있어서 딸에게 들려 부비부비를 당하는건 원치 않는 일이었다. 

 

"후훗, 그럼 오빠까지 3명이서 해보면 되겠다.  

 

하연아 거실에서 하게 들고 나가자." 

 

"네~" 

 

"아니... 내 의견은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거야...?" 

 

동현의 작은 물음은 모두가 떠나간 침실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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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우선 보드판을 바닥에 깔고... 룰을 한번 볼까?" 

 

   

    트위스터 게임의 룰! 

     

    가위바위보를 통하여 순서를 정합니다. 

 

    룰렛을 돌려 해당하는 신체를 알맞은 칸에 올  

    려줍니다. 

 

    손, 발을 제외한 다른 신체부위가 땅에 닿으면 

    게임오버! 

                                                  』 

 

"에잇! 설명같은건 필요없어! 자 아빠부터 시작하는걸로!" 

 

혜민이 룰북을 읽어주고 있었지만, 하연은 빠르 게 게임을 시작하고 싶다는 듯 동현에게 차례를 넘겼다. 

 

"나부터?!  

 

.. 이 룰렛을 돌리면 되는거랬지?" 

 

휘리릭— 

 

룰렛이 돌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세사람 모두 집중하며 룰렛을 쳐다보았다. 

 

이내 룰렛이 멈춘곳은... 

 

"빨강에 오른손...인거네." 

 

"자 아빠! 빨강색은 여기야." 

 

동현은 몸을 조금 숙여 빨간색 원에 오른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별로 어려울 건 없는 게임인가본데...? 그냥 이렇게 손이나 발만 올려놓으면 되는거잖아." 

 

"흐음... 오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의미심장하게 웃는 혜민을 동현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내 몇번의 순서가 지나가고, 트위스터 판은 난장판이 되었다. 

 

"와~ 나는 파란색에 왼발이네. 아빠! 옆으로 조금만 움직여봐요." 

 

"엇차.. 알겠어." 

 

"나는 노란색에 오른발이네? 하연아 조금만 더 기울여봐." 

 

"엑...나도 움직이기 힘든데에~" 

 

고작 대여섯번의 차례가 지나갔을 뿐이었는데 트위스터 판 위에는 짧은 팔다리를 최대한 뻗으며 팔굽혀펴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동현과 그 위로 엎어지듯 몸을 숙이고 있는 혜민, 그 옆에서 홀로 몸을 베베 꼬아가며 힘들게 버티고 있는 하연이가 생겨났다. 

 

"이거...이거 언제까지 해야해...?" 

 

"룰북대로면... 한 명이 먼저 넘어지거나 해야하는거 아닐까?" 

 

"나...나 힘든데에..." 

 

상대적으로 편한 자세를 유지하는 혜민에 비해 강제로 플랭크를 하는 동현이나 온몸을 꽈배기처럼 꼬고 있는 하연이는 버티기 힘든 했다. 

 

사실 동현은 이정도라면 몇분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인해 시시각각 몸에 힘이 풀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팔과 팔이 맞닿거나, 그녀의 몸이 자신을 끌어안듯 포개지는 정도였는데... 

 

뭉클— 

 

가슴이 등에 닿는 느낌을 감지한 동현이 흠칫하자, 혜민은 그걸 기다렸다는 듯 동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동현오빠... 왜그래요...? 어디 불편한곳이라도 있으세요? 후훗." 

 

가슴의 감촉과 귓가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혜민의 목소리에 결국 동현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흐에엑..." 

 

"앗! 아빠가 먼저 넘어졌다! 내가 이겼어!!!" 

 

하연은 자신이 오래 버텨냈다는것에 기뻐했지만, 이내 혜민이 아직 자신이 버티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어라~ 딸, 아직 엄마는 멀쩡히 서있는걸~?" 

 

"엣. 어...그럼 아직 더 버텨야해?" 

 

"정 버티기 힘들면 룰렛을 더 돌려서 위치를 한번 바꿔볼까?" 

 

"룰렛! 아빠 룰렛좀 대신 돌려줘~!" 

 

이제는 정말 한계였는지 하연은 룰렛을 다시 돌리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이미 탈락해 쉬고있던 동현을 불러 룰렛을 돌리게 했다. 

 

"귀찮아아..." 

 

동현은 입으로는 귀찮다고 말하면서도 룰렛으로 다가가 하연이 대신 룰렛을 돌려주었다. 

 

"오...이번에는 흰색에 오른팔이네!" 

 

"흰색에...오른팔....? 으으... 흰색 어디있어..." 

 

하연이는 꼬일대로 꼬여버린 몸을 최대한 비틀며 흰색 칸을 찾았고, 하얀색 칸을 찾은 뒤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라구?! 저기에 어떻게 손을 뻗어!" 

 

"저런~ 엄마는 아직 편한데, 우리 딸은 벌써 포기하는건가?" 

 

"으으으...!" 

 

어떻게 몸을 비틀다 보니 간신히 오른팔을 흰색에 놓는것에 성공한 하연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혜민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엄마 차례야!" 

 

"그래그래, 동현오빠 룰렛 좀 돌려줄래요?" 

 

"응, 알겠어." 

 

어느새 참가자에서 룰렛도우미가 된 동현은 이번에도 룰렛을 대신 돌려주었다. 

 

"빨간색에 오른발이네." 

 

"흠~ 빨간색이라면... 저기네요." 

 

혜민이 빨간 원을 향해 다리를 뻗고 자세를 고치자, 이내 혜민과 하연, 둘은 흡사 서로 끌어앉은듯한 자세가 되었다. 

 

"어...엄마, 너무 가까운거 아니야...?" 

 

서로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상태에서 하연이 혜민에게 부담스러움을 어필하자  

 

"흑...딸은... 엄마가 싫은거야...? 엄마는... 우리 하연이 없이 못사는데... 흐윽...흡..." 

 

갑자기 시작된 울음 섞인 목소리에, 축 쳐진 고양이귀 모습의 옆머리가 처량함을 더했다. 

 

분명 방금전까지 생글거리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리려 한다면, 누구나 거짓 울음을 의심하겠지만, 존경하는 엄마가 울음을 터트린다는 사실에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한 하연이에게는 그 사실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어...엄마?! 엄마 울어?" 

 

"흐으윽...흑 아니야... 엄마 안울어... 미안해 하연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떨어지는 눈물 한방울, 하연은 그 순간 자신이 트위스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혜민을 끌어안았다. 

 

"엄마 내가 미안해! 그게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그럼~ 우리 하연이가 엄마를 싫어할리가 있겠어~?" 

 

"....?" 

 

방금 전까지 울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웃으며 자신을 마주 끌어안아주자 하연이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가득 띄웠다. 

 

"....?? 뭐야...?" 

 

"하연이가 먼저 손을 떨어뜨렸으니, 엄마가 이긴거네? 후훗." 

 

"............!!!!" 

 

뒤늦게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분화하기 시작하는 화산처럼 하연이는 폭발하려 했지만...  

 

혜민이 하연을 끌어안은 상태로 '우리 딸 착하지~ 착하다~ 예뻐라~' 하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이내 화가 순식간에 풀린 듯 포옹하는 자세 그대로 히히— 하고 웃음을 흘렸다. 

 

동현은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모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혜민이 하연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챘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말하지 않기를 잘 한것 같았다. 

 

그때 혜민이 동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동현씨...오랜만에 움직였더니 운동도 되는 것 같고 좋았는데... 조금 부족한 것 같으니까 우리 둘이서만 방에서 볼까요...?" 

 

잘한게...아니었나...? 

 

이러나 저러나 혜민의 승리로 끝난 트위스터 게임은 하연이에게는 존경하는 엄마의 나데나데를, 동현에게는 추가 운동이라는 형벌을 남겨주었다. 

 

거실에 홀로 남은 트위스터 게임은 이내 가루가 되어 점점 흩어졌다. 

 

보드판이 흩어져가는 거실에서, 작게 '트위스터 게임 최고—!' 라는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