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붕업니다.

글버스 글을 새로 팔까하다가 귀찮아서 전에 있던 것을 재소환했음붕어.

승객은 @soOoo#54554281 님이시고,

요청사항은 #소설작가가 자기가 쓴 판타지세상에 들어가서 나무검이랑 나무방패들고 슬라임과 긴박한 전투입니다.

딱히 자캐 이름이 없기에 쏘오라고 임의로 적었습니다.

이번엔 3천자로 잘 맞췄으니, 그럼 잘 감상하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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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깜깜한 방하얀색 네모난 화면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따각따각.

 

이따금 키보드를 두드리지만벌써 세 시간째단 한 글자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쏘오.

 

놈피아에 판타지 소설을 연재 중인 그녀떨리는 시선이 화면 오른쪽 아래로 향했다.

 

00:10

 

이미 지각이다.

 

문제는 아직 한 글자도 떼지 못했다는 것과 지각이 이번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아도 독자들 반응이 눈에 훤했다.

 

-또 지각이냐지각쏘.

-님들 왜 화냄쏘오가 뭐 그렇지그냥 월~금 연재가 아니라~토 연재라고 생각해.

-ㅅㅂ 작가년 100원은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냐?

-ㅋㅋㅋ 야 이거 정액제야.

-정액 ㅗㅜㅑ한 발 뽑으러 간다.

-댓글 창에서 냄새나는 것 처음이네.

 

이 댓글을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니 어질어질했다기분만 그런 것으로 생각했는데눈앞에 모니터가 찌그러져 보였다.

 

우웁!”

 

진짜 넘어올 뻔했다.

 

호재다!’

 

쏘오는 바로 공지를 올렸다.

 

[저 오늘 속이 너무 안 좋아서 계속 토했어요죄송합니다오늘 휴재입니다.]

 

공지를 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댓글이 달렸다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댓글은 열 개 중 하나.

그래도 당장 모니터 앞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하니,

 

꺼어어억.”

 

묵힌 체증이 쑤욱 내려갔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꺼냈다.

 

맥콜.

 

보리의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그녀의 냉장고에는 맥콜 캔만 가득했다.

이것이 오늘 그녀가 흡수한 유일한 칼로리였다이제 배가 고픈 것을 넘어 속이 쓰렸지만,

 

귀찮아.”

 

쏘오는 그대로 침대에 다이빙했다.

 

.

 

가벼운 그녀의 몸이 침대에 방방 튕겼다두툼한 오리털 이불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 더워.”

 

그녀의 손이 침대를 더듬어 에어컨 리모컨을 찾았다.

 

.

 

참 좋은 세상이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고돈을 쓸 수도 있다여름에도 겨울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다니.

물론 그러면 전기요금이 문제고돈을 벌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지금이라도 다시 의자에 앉아야 하나 생각을 하며잠에 빠졌다.

 

 

 

눈을 뜨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중세풍 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허리춤에는 멋들어진 검과 방패 혹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나 창을 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뿐만 아니라 유사 인류가 존재했다.

 

여기서까지 서로 앙숙인 엘프와 드워프는 물론이고골렘과 정령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 수인도 존재했다.

 

저기 멀리서 시바견 인간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쏘오는 무심코 소리치고 말았다.

 

귀여워!”

… 고양이 인간에게 칭찬을 받다니고마워.”

고양이 인간?”

 

시바견 인간의 커다란 눈망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커다란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다.

 

꺄아!!”

깜짝이야.”

내가내가고양이 인간이야?”

킁킁냄새가 고양이인 것 같은데혹시 다른 종족이었다만 미안.”

아냐너무 기뻐서 그래!”

… 그래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고마워잘 가!”

 

시바견 인간은 뭔가 찜찜한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쏘오는 그런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커다란 귀도 만져보고등 뒤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를 붙잡으러 빙빙 돌기도 했다.

너무 신이 났던 걸까그녀가 등에 메고 있던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투툭.

 

탄탄한 철목을 깎아 만든 검과 방패.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모험이닷!”

 

처음은 무슨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지,

 

고블린아니지 역시 판타지는 오크가 제맛이긴 한데.’

 

쏘오는 가슴이 설렜다마치 소설 1화를 놈피아에 올렸을 때처럼처음 조회수가 올라가고추천이 박히고댓글 알림이 울렸을 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산에 오르는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고블린도오크도 아니었다.

 

에게슬라임이잖아.”

 

슬라임도 나름 초반에 등장하는 전통 있는 몬스터였다요즘은 그게 조금 유행이 지난 느낌이지만초보자 상대로 제격이기는 했다.

그러나 쏘오가 원하는 것은 인간형 몬스터와 무기를 맞대는 긴박한 전투였다.

 

빨리 해치우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녀는 왼팔에 착용한 버클러를 점검하고오른손에 든 나무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도 모르고몽글몽글 풀밭을 뛰노는 슬라임에게 달려들었다.

 

얌전히 내 경험치가 되어랏!”

?”

 

촤아악!

 

단단한 나무검이 푸른색 슬라임을 둘로 나누었다.

 

컷뜨역시 나는 최고얏캿캿!”

 

허리에 손을 올린 채목젖이 드러나도록 크게 웃는 쏘오그녀를 향해 죽은 줄 알았던 슬라임이 쏘아졌다.

 

!

 

!”

 

쏘오는 가슴에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에 뒤로 발라당 쓰러졌다말랑말랑한 장난감 같은 녀석이근육도 없는 게 어떻게 이런 파워가 있는지.

다행히 입고 있는 가죽 갑옷 덕에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그러나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콜록콜록!”

 

땅에 팔을 짚은 채 숨을 허덕이는 그녀를 슬리임은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 “몽몽!”

 

이제 둘이 된 슬라임은 서로 몸을 꼬아 나선형 드릴로 합체했고쏘오의 무방비한 엉덩이를 향해 돌진했다.

 

캬울!!!”

 

꼬리가 바짝 서고 귀가 파르르 떨릴 정도로 고통과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쏘오.

그녀는 눈에 불을 켠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죽인다슬라임 너 죽일 거야캬하!!”

 

?” “?”

 

쏘오의 절규에도 그저 제자리에서 통통 튀어 오르는 슬라임들그들을 향해 나무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MISS! MISS! MISS!

 

젠장젠장젠장!!”

 

두 녀석은 초보존에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날렵했다.

쏘오가 나무검을 휘두를 때마다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요리조리 피했다심지어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그녀의 검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그녀의 가랑이 아래로 미끄러져 앞뒤로 공격을 하기도 했다.

 

야아!! 정정당당히 싸우라고!”

 

쏘오는 전방에서 몸통 박치기를 시도하는 슬라임을 파리채로 파리를 잡듯 버클러로 후려치고곧바로 바닥을 굴렀다.

그녀의 등이 있던 공간으로 다른 슬라임이 지나쳤다.

 

짱돌투성이인 산길을 구른 탓에 머리는 산발이고 등도 아팠지만,

 

놓치지 않는닷!”

 

그보다 슬라임에 대한 증오가 컸다.

 

땅을 박찬 그녀는 몸무게를 그대로 나무검에 실었다.

 

54kg Smash!!

 

그녀의 나무검에 맞은 슬라임은 그대로 터져버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산길을 데굴데굴 굴렀다.

흙투성이가 된 그녀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산산조각이 난 푸른 슬라임은 액체로 변해 땅을 촉촉하게 적셨다.

 

마침내 승리를 확인하고 포효했다.

 

누가 54kg이라는 거야! 48 kg라고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