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ㅁㅊ 승객님의 순애!순애!순애!순애, 일명 사순애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순애물을 써본붕어.

짭짤한 된장찌개보다 슴슴한 된장국이 어렵듯이

뿍찍하는 섹스보다 달달한 순애가 더 어렵붕.

노력해야겠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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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빈과 김우진의 순애

 

이하빈이 고개를 들자익숙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김우진.

 

그녀의 하나뿐인 소꿉친구이고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인이기도 했다.

그 증거로 두 사람의 왼손 약지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사파이어 보석이 박힌 반지가 있었다.

고작 몇십만 원에 불과하지만당시로써는 학생인 두 사람에게는 꽤 큰 돈이 들었다같이 롯데리아 알바를 하며 샀던 커플링.

 

처음엔 반지를 끼고 생활한다는 것이 어색했다여자라고 하지만별다른 액세서리를 잘 하지 않는 그녀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빼고 있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는 김우진을 보며 반지를 매만졌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영화관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돼지국밥집.

이제는 영화를 보고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발이 이곳으로 향했다.

 

우리가 김유신의 말도 아니고.’

 

국밥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번 데이트가 영화관 그다음 국밥집 그리고 모텔인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하빈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도 다 동의하는 바였다.

 

우진아.”

밥 나왔나?”

 

국밥집에 들어온 뒤로 스마트폰을 보며 웃던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왜?”

… 아니야.”

뭐야싱겁게.”

 

그가 다시 스마트폰을 켰다.

김우진이 속한 대학교 축구 동아리 단톡방안경 쓴 범생이에 집에서 놀기 좋아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의외로 스포츠를 좋아했다.

특히 늦은 밤 유럽축구를 즐겨보는 그가 축구 동아리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저기 말이야.”

?”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그 한마디가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래서 마음에 없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다년간 그녀를 봐온 김우진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무슨 일인데이야기하다가 말아얘기해줘?”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딱딱하고 어른스러운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 하는 모습을.

김우진의 애교 아닌 애교에 또 홀라당 넘어간 이하빈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번 주말에 은하 커플 캐리비안베이에 놀러 간다는데… 우리도 갈까?”

캐리비안 베이?”

 

그가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사람들이 가슴만 본다고 그런 데는 가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기는 한데.”

가면 입을 수영복은 있고?”

… 아니.”

 

김우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말고이번 주말에 마블 영화 시작 개봉한 데그거나 보자.”

?”

또라니너도 영화 좋아하잖아아니야?”

 

이하빈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하빈아진짜 왜 그래너답지 않게.”

 

나 다운 게 뭔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너무 식상하기도 했고정말 화를 낼 것 같아서.

 

그냥… 남자 동기들 하나둘씩 군대 가는 거 보니까너랑 추억이라도 하나 더 만들려고 그랬어.”

뭐야그런 거였어내가 어디 전쟁터 가는 것도 아니고어휴못 말린다정말.”

 

김우진이 피식 웃으며 다시 스마트폰을 들며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영화 보러 가고캐리비안 베이는 다음에 가자.”

나 이번 주말에 조별 과제 때문에 모임 있어서 안 될 것 같아.”

뭐야 진짜어차피 너 가지도 못하는 거였잖아나 떠본 거였어그럼 난 축구 동아리 애들이나 만나야겠다.”

… ….”

 

그날 두 사람의 데이트는 그걸로 끝이었다.

 

* * *

 

캐리비안 베이?”

 

김우진은 갑작스러운 이하빈의 선언에 정말 오랜만에 당황했다.

 

지난번처럼 장난치는 걸까?’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진심이었다.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계좌에 얼마가 남았더라?’

 

캐리비안 베이 입장료에 가서 먹을 것도 먹어야 했고두 사람 모두 수영복도 새로 마련해야 했다아니 자신이야 그냥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지만여자친구에게 대여 수영복을 줄 수는 없었다.

 

물론 친구들의 여자친구와 달리이하빈이 남친에게 데이트 비용을 전액 부담하게 하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와 비슷한 김우진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그 못지않게 많은 돈을 썼다.

그래도 남자로서 자존심이 있었다.

 

김우진은 여자친구의 절친그 앞에서 당당하게 카드를 내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달은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올 때까지 조금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퉁명스럽게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결국그녀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데이트가 일찍 끝났다.

 

들어가.”

우진아 너도 들어가서 전화하고.”

 

그렇게 끝난 데이트의 찝찝한 기분은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축구 동아리에도 집중하지 못했다심지어 시합 중간중간 그녀에게 톡을 보내보지만답이 없었다.

 

아직 화가 안 풀렸나전화해볼까방해하는 건 아니겠지?’

 

옷을 갈아입다 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그에게 친구들이 소리쳤다.

 

김우진뒤풀이 호프집으로 간 데빨리 와!”

그래잠깐만.”

종진이 형이 쏜다니까빨리 오라고!”

알았다니까!”

 

그는 결국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톡을 보면 답장하겠지아직 1이 안 사라졌으니까.’

 

맥주로 시작한 뒤풀이는 어느 순간 소맥으로 넘어갔다얼큰하게 취하기 시작한 동아리 사람들은 왁자지껄 축구와 여자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리고 오늘따라 거기에 끼지 못한 한 사람.

 

김우진너 무슨 일 있냐아까부터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어술맛 떨어지게.”

내가 언제!”

언제는 무슨 계속 스마트폰이 무슨 애인인 양만지작만지작하드만.”

내가내가 그랬다고?”

그래 임마너 여자친구랑 있을 때도 그러냐잠깐만이라도 좀 내려놔라섭하다진짜사람이 사람 얼굴을 보고 살아야지.”

 

김우진은 요즘 이하빈과의 데이트가 어땠는지 떠올렸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이건 스스로 생각해도 아니었다.

 

내버려 둬여친이랑 싸웠나 보지.”

뭐래그런 거 …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1이 사라지지 않는 톡이 신경 쓰였다.

 

곧 확인하겠지?’

 

그러나 저녁 여덟 시가 지나고 아홉 시가 지나도록 그녀에게서는 답장이 없었다.

 

얘 진짜 뭐지내가 잘못한 거 같기는 하지만그렇다고 내 톡을 씹을 것까지는 없잖아!’

 

김우진은 앞에 놓인 소맥을 벌컥벌컥 들이마셨고그 모습에 친구들은 남자답다고 환호했다.

 

나 먼저 일어날게.”

가려고이 자식이 너 여친 있다고 그러는 거 아니다!”

맞아!”

동아리에 유일한 커플이면 좀 새끼도 치고 그래야지우리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꼭꼭 숨겨두기나 하고.”

옳소!”

시끄러!”

 

그는 아예 바지 끄덩이를 붙잡는 주정뱅이들을 뿌리친 채이하빈의 집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버스를 탔을 그가 택시를 잡았다도저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뭘 하길래얼마나 대단한 과제를 하길래종일 스마트폰조차 안 보는 거지?’

 

그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대학 과제이니만큼 남자도 있을 것이다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과제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하다못해 화장실이라도 한 번 안 갔겠는가!

 

김우진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멀쩡하게 울리는 신호음그러나 열 번 스무 번이 울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정말!”

 

술기운과 함께 화가 훅 올라왔다가,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니겠지?’

 

걱정과 함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택시 밖으로 빠르게 오가는 자동차들차가운 도로 위에 피를 흘린 채 누워있는 이하빈의 모습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차라리 전화를 안 받은 거라도 좋으니까 무사해야 하는데.’

 

김우빈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식은땀으로 젖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그 모습이 퍽 수상해 보였는지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님이 악셀을 꾹 눌렀다.

평소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한 그녀의 집.

 

김우진은 초인종을 누를까 고민했다.

이미 부모님도 아는 사이라지만늦은 밤 그것도 술에 취해 찾아뵙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제기랄.”

 

그는 한 손에 안경을 벗어들고거칠게 고개를 털었다머리를 꽉 채우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술기운인지아니면 고개를 흔든 탓인지 어지러움을 느껴 비틀거리는 그,

 

우진아?”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걸어오는 실루엣만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요정 같은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그리고 평소 같지 않은 남자친구의 모습에 걱정이 된 듯.

 

오늘 친구들 만난다면서한창 술 마실 시간이라 생각했는데여기엔 무슨 일이야?”

하빈아.”

왜 그래어디 아파?”

 

김우빈은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대는 이하빈을 꽉 끌어안았다.

 

우빈아!”

사랑해.”

으응갑자기?”

 

고작 사랑한다는 말에 당황했다는 것이 몸을 통해 전해졌다.

 

“ 내가 요즘 너에게 소홀한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한 것도 많아서.”

우빈이 너 취했구나.”

취한 거 아니야아니 맞아취했어그래도

 

김우빈은 그녀를 놓아주고반짝이는 그녀의 갈색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내 진심이야.”

우빈아.”

 

이하빈이 두 팔을 그의 목에 걸었다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김우빈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진한 입맞춤 이후 그녀는 그대로 그를 껴안아 귓가에 참았던 뜨거운 숨을 토했다.

 

나도 미안해.”

하빈아.”

 

그녀가 그의 입술을 검지로 막았다.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데이트 일정을 너에게 떠넘기고그러면서 매번 똑같다며 투정만 부리고 … 무엇보다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그래서 미안해.”

나도 미안해앞으로는 너랑 있을 때 스마트폰 그만 볼게.”

 

그녀는 속마음을 들켜 부끄러운 듯 얼굴을 그에 품에 묻었고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나도.”

… 사랑해.”

 

김우빈은 아마도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을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