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붕업니다.

이번 승객은 @망나뇽#16993864 님 입니다.

요청사항은 포켓몬과 주종관계가 뒤바뀜이네요.

정확하게 장르 설정이 안되서 그냥 막 썼어요.

2차 창작이라 이것저것 알아볼게 많았는데, 나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럼 즐감하세요.


--------------------


올해 여름은 뜨거웠다.

 

얼마나 뜨거웠는가 하면, 바로 관동 지방부터 알로라 지방까지 아우르는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이 열렸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리그 챔피언과 사천왕급의 실력자들이 모두 모인 그야말로 최대 규모의 포켓몬 대전!

그리고 이번 대회는 새로운 월드 챔피언의 등장을 알렸다.

 

관동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단 한 마리의 포켓몬을 데리고 여행을 시작했다는 그는 마침내 포켓몬 리그의 정점에 올라섰다.

그리고 수만 명이 운집한 스타디움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남겼다.

 

포켓몬과 인간이 동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스타디움의 하늘에 포켓몬 신이 나타났다.

 

[너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포켓몬 신의 몸은 환한 빛을 내뿜고, 전 세계로 흩어졌다.

 

다음 날 새로운 포켓몬 챔피언이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 * *

 

호연 지방의 한 산악마을.

 

이른 새벽부터 산에 오르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망순이.

가장 좋아하는 베이지색 니트베레를 눌러쓴 소녀는 눈꽃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고, 한쪽 옆구리에는 소쿠리를 들고 있었다.

 

하아.”

 

이제는 많이 쌀쌀해진 새벽 공기를 헤치며 등산을 하는 그녀, 망순이도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포켓몬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포켓몬 리그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고, 장래에 트레이너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런 망순이에게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은 올해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늦은 시간이라 부모님이 시청을 허락해주시지 않은 탓에, 이불 속에서 라디오로 숨죽여 들었던 포켓몬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마침 그녀가 응원한 트레이너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부푼 가슴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아마 그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아. 하아.”

 

당장이라도 친구들과 경기에 대해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은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산에 올라야 했다.

 

휘우.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랭나무 숲이야.”

 

망순이가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등교 전 가족 사업인 우르목장 일을 도와야 했다.

나아가 그녀의 꿈인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서도.

 

우르가 좋아하는 오랭열매~, 오랭열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오랭나무, 마을 뒷산에도 오랭나무 자생지가 있었다. 오랭열매는 그 능력이 미비했지만, 엄청 흔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 가족이 키우는 우르는 오랭열매를 좋아했다. 아니었다면 우르가 아니라 다른 것을 키웠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고개만 넘으면 오랭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그랬어야 했다.

 

어라?”

 

태풍이라도 쓸고 지나간 듯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오랭나무들,

 

어째서.”

 

놀란 망순이가 쓰러진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나무들은 태풍이나 돌풍에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열매가 달려 있어야 할 가지들이 무언가에 뜯겨있었다.

마치 나무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뺀 것처럼.

 

!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망순이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노란색 거대한 생명체가 오랭나무를 뽑아, 커다란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 , 망나뇽?!”

나뇽?”

 

그녀의 목소리를 녀석이 들어버렸다.

망나뇽의 미간이 좁혀지고, 동글동글한 두 눈이 매서워졌다. 당황한 망순이를 노려보던 녀석.

 

.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나아아뇽!!”

 

아침 식사를 방해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망나뇽은 산이 흔들리도록 포효했다.

망순이는 아버지가 호신용으로 주었던 몬스터볼을 꺼내다가,

 

히끅.”

 

손을 떠는 바람에 그만 땅에 떨구었다.

 

데구르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탓에 땅에 주저앉은 망순이, 황급히 굴러가는 몬스터볼을 주으려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을 벗어나는 몬스터볼.

 

쿵쿵쿵쿵!

 

성큼성큼 다가온 망나뇽이 그대로 몬스터볼을 밟아버렸다.

 

파직.

 

안 돼! 우르야!!”

 

몬스터볼이 부서지고, 호신용으로 데리고 다니던 우르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르야 공, 공격해! 누르기!”

 

우르는 망순이를 힐끔 바라보고는 땅을 통통 굴렀다. 열심히 굴러 멀리 도망쳤다.

 

우르야아아아아!!”

 

망순이의 찢어지는 비명에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우르.

 

망나뇽은 그녀가 떨군 몬스터볼 중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그녀를 향해 던졌다.

 

[망나뇽은 몬스터볼을 썼다!]

 

몬스터볼에서 쏟아진 빛이 망순이를 휘감았다. 그대로 볼 안으로 빨려 들어간 망순이.

 

이게 뭐야? , 날 내보내 줘! 살려줘요! 엄마! 아빠아!!”

 

망순이가 몬스터볼의 벽을 마구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래도 끄떡없는 벽에 몸을 부딪쳐보기도 하지만, 좌우로 몇 번 흔들릴 뿐 밖으로 나갈 순 없었다.

 

[신난다~! 망순이를 잡았다!]

 

망순이를 빨아들인 몬스터볼이 망나뇽의 손에 들어갔다.

 

몬스터볼.

 

어느 박사가 말했다. 그 안은 포켓몬스터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아니다.

 

그 안은 어둠 그 자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그 가운데 텔레비전처럼 네모난 화면이 둥둥 떠 있었다.

그것을 통해 몬스터볼의 소유자가 보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몬스터볼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래서 몬스터볼에 꺼내주면 그렇게 좋아했던 거였구나.’

 

새삼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망나뇽의 눈을 통해 마을이 망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았다.

몬스터볼을 갖게 된 야생 포켓몬이 혹은 주인의 몬스터볼을 훔친 포켓몬이 인간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사는 터전을 짓밟아 자연으로 되돌렸고, 인간들끼리 억지로 싸움을 하게 했다.

 

마치 인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 * *

 

화가 잔뜩 난 망나뇽이 과거 인간이 사용하던 통신기기를 꺼냈다.

그리고 새롭게 친구로 등록한 코드에 메시지를 보냈다.

 

(인간 여자 원래 이렇게 안 좋냐?>

<ㅋㅋㅋㅋ 인간 여자? 보통은 그렇지 뭐. 종족값도 낮고. 상성도 구지고. 기본 깡 스텟도 낮으니까.)

(제길.>

<그래도 예쁘잖아. 이쁜 쓰레기. ㅋㅋㅋ. 치코리타가 인간 여자만 보면 환장해서 잡아들이던데.)

(오우쉣! 그 녀석이 쓰는 거라면 버려야겠다.>

<잡았어? 체감 어때?)

(구져. 야생 꼬렛의 몸통 박치기에 한 방에 나가떨어지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빌어먹을.>

<그럼 교환 신청 넣어봐.)

(얘 받은 포켓몬은 뭔 죄야.>

<아니면 교배라도 시켜보든지. 극악의 확률로 엄청 좋은 인간이 나오기도 한데.)

(교배? 그거 가챠야?>

<ㅇㅇ. 그거 슬리프가 교배시키는 데 일인자야. 내가 코드 보내줄게)

(그 인간 성애자? … 찝찝하긴 한데. 에이 모르겠다. 일단 보내줘.>

<ㅋㅋㅋㅋㅋ)

(그보다 네 인간은 어때?>

<그 멍청한 녀석? 뭐 그럭저럭 새로운 삶에 적응한 것 같아.)

(그럼 성공했네. 혹시 괜찮다면 나중에 내 것이랑 교배시켜도 될까?>

<좋아.)

(땡큐! 나중에 또 연락할게. 피카츄!>

 

망나뇽은 야생에 풀어주려던 인간 여자, 망순이가 들어있는 몬스터볼을 다시 가방에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