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붕어데스요.

이번 정차역은 @Axia 역입니다.

순애는 참 어렵붕어.

요리로 말하자면 콩나물국 같아요.

간이 세도 안되고, 그렇다고 맹탕이 되서도 안 되는...

아무튼 즐감하시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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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순애

 

종교국가 헨벡마을 행정관을 겸하는 신부가 저무는 햇빛을 등불 삼아 마지막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행정실 문이 열리고 수수한 차림의 처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책상에 코를 박은 채 서류를 읽던 신부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손을 뻗어 자리를 권했다.

처녀는 맞은편 나무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신부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이윽고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신부는 눈을 찌푸렸는데그를 대신해 촛불에 불을 댕겼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음 … 저기조금만 기다려줄래요?”

알겠습니다.”

 

신부는 서류를 뒤져봐도 답이 없는지 이 종이 저 종이 뒤적거리다가결국 긴 한숨을 내쉬며 서류철을 덮었다.

처녀가 방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고개를 든 신부,

 

… ….”

 

뒤로 단정히 땋은 녹색 머리카락에 푸른색 체크무늬 원피스그의 눈에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이 마을에 부임하고 나서 모든 아이를 축복해준 그였다그가 모르는 아이가 있을 리 없었다.

 

프리데 경.”

신부님.”

매번 느끼는 거지만그 인식저하 마법이 걸린 베일은 신기하네요아무리 보고 있어도 프리데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프리데는 머리에 쓰고 있는 베일을 벗으려 했다.

 

괜찮습니다그대로 두세요.”

 

그녀를 만류한 신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빤히 바라보면 쑥스러워하기도 하련만프리데에게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프리데 경은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시나요?”

모르겠습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는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신부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오늘 추수 감사제가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그게 오늘이었습니까?”

 

추수 감사제는 한 해의 가장 큰 마을행사였다처녀총각은 당연하고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다리고 고대하는 이벤트였다.

 

휴우… 죄송한 말이지만 오늘 야근을 하셔야겠네요밤늦게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순찰을 부탁드려요.”

부탁이라니아닙니다사람들을 수호하는 일은 제게 내려진 사명어느 때라도 상관없습니다.”

… 남편분께는 따로 연락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인형같이 변화가 없던 그녀의 얼굴에 살짝 훈풍이 불었다.

프리데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밤늦게까지 잘 부탁드리고내일은 점심을 먹고 늦게 출근하셔도 좋아요.”

괜찮습니다언제나처럼 정시에,”

이건 명령이에요.”

알겠습니다.”

 

프리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를 취하고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휴우어렸을 때는 조금 더 감정에 솔직했던 것 같은데.”

 

갓난아이 때 교회에 버려진 그녀를 직접 기른 신부는 그 점이 안쓰러웠다.

 

프리데가 교회에 도움이 되겠다며 나섰을 때신부는 그저 봉사활동에 한 손 걷어붙이는 정도를 생각했었다남다른 외모로 교회 사람들의 아이돌 같은 그녀였으니.

그러나 무기를 든 순간 운명이 변했다천부적인 재능으로 최연소 교회기사가 된 그녀과연 몬스터와 이교도 광신자를 처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녀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자애로운 기네스시여저 불쌍한 아이를 돌보소서.”

 

습관처럼 프리데를 위한 기도를 올린 신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한산했을 거리가형형색색 등불을 밝히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신부는 이렇게라도 그녀가 사람들과 섞이기를축제를 즐기기를 바랐다.

 

* * *

 

프리데는 왜 많은 교회기사 중에서 항상 자신이 추수 감사제 순찰을 맡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거둬준 신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검은 천에 금실로 수놓은 교회기사 정복을 갖춰 입고언제나 함께하는 그녀의 애병 붉은 낫을 손에 쥐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으나 상관없었다인식저하 마법이 걸린 베일이 그녀를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여줄 테니까.

 

… ….”

 

그렇다고 경계를 늦춘 것은 아니다예리한 눈으로 거리를 오기는 사람들을 살폈다.

 

속임수를 쓰는 야바위꾼.

술에 취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소매치기.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싸움꾼.

고래고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취객.

 

처음 추수 감사제 순찰 때는 죄다 감옥에 잡아들였다그 때문에 잠을 신부가 잠옷을 입고시청으로 달려와 퍽 곤란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도 어느 정도 융통성과 관록이 생겼다.

 

야바위꾼의 속임수를 눈치채 사람들에게 은근히 구슬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소매치기 소년은 뒷덜미를 붙잡아 꿀밤을 먹여주었고주먹다짐으로 주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싸움꾼에게는 여물통에 든 물을 뿌려주었다.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취객을 처리하기 위해 뒤를 따라가는데한 남자가 취객을 스쳐 지나갔다.

 

코니?’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뜬지 감은지 알 수 없는 눈을 한 남자는 그녀의 남편 코니 레이븐이었다.

 

코니도 추수 감사제를.’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는데한번도 축제를 즐겨보지 못한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추수 감사제 때도 일하느냐고 물어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지어떡해야.”

 

그녀답지 않게 발을 동동 구르며 우물쭈물하는 사이취객은 이미 거리에서 사라졌었다그리고 남편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이건 순찰의 하나니까.”

 

붉은 낫을 꽉 쥔 프리데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는 남편 코니의 뒤를 따랐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멀리 스무 걸음도 멀리 떨어져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거리를 빼곡히 메운 사람들로 인해 남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깜짝 놀란 프리데,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사람들을 밀치며 남편이 사라진 곳으로 이동했다.

 

어디에?”

 

적의 허점도 귀신같이 찾던 눈썰미도 많은 사람 속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다급해진 마음이 막 전투를 마쳤을 때처럼 콩딱콩딱 뛸 때,

 

~♪ 흠음~

 

익숙한 멜로디가 시끄러운 기리 소음을 헤치고그녀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저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솜사탕 줄에 있는 남자의 뒤통수가 눈에 익었다.

프리데는 슬쩍 그의 뒤에 섰다.

 

이곳이라면 … 그도 알 수 없을 거야.’

 

과연 뒤에 아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는지코니는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와 눈을 맞추며 장난쳤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

 

꺄르르르.”

 

아이가 해맑은 웃음 터트렸다아이의 부모가 뒤를 돌아보자싹 표정을 지운 코니.

 

귀여워.’

 

프리데는 잠복 순찰 중이라는 것도 잊고 남편인 코니에게 말을 걸 뻔했다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야 간신히 참았다.

순식간에 줄이 사라지고드디어 코니의 차례가 되었다.

 

뭐가 맛있으려나?”

남성분들은 아무래도 무난한 흰색 솜사탕을 많이 좋아하시죠.”

흰색이라.”

 

잠시 고민에 빠진 코니,

 

전 빨강색이 좋아요.’

 

프리데의 속마음을 엿들은 것처럼,

 

딸기 맛으로 주세요.”

네에잠시만 기다려주세요뒤에 여성분은 어떤 걸로 드실래요?”

 

네넷??”

 

혹여나 들킬까목을 잔뜩 움츠린 프리데가 모기같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위이이이잉!

 

솜사탕 기계가 맹렬히 돌아가고다행히도 코니는 프리데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목을 쭉 뺀 그녀가 힐끔 코니의 얼굴을 훔쳐보았다그만 그 모습을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에게 들키고 말았다.

한쪽 눈을 찡긋한 아저씨가 코니에게 말했다.

 

잘 생긴 총각이 왜 혼자 다니고 그래여자친구 없어?”

여자친구는 없는데,”

 

‘!’

 

남편이 자신 몰래 총각행세라도 하고 다니나 싶었는데,

 

아내가 있네요.”

뭐야유부남이었어아직 어려 보이는데.”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서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하하하.”

 

느닷없는 남편의 칭찬에 프리데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넘어서정신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장사꾼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아니 그렇게 이쁜 마누라는 어디에 두고 혼자 다니실까?”

하하하너무 예뻐서 남들은 못 보게 꼭꼭 숨겨두었죠.”

옛끼총각이 농담도 잘하시네혼자 왔으면 이 아저씨가 한 명 소개해 주려 했는데여기 솜사탕이나 받아가.”

감사합니다.”

뒤에 여성분도.”

.”

 

프리데가 솜사탕을 받아들 때코니와 눈이 잠시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인 코니가 솜사탕을 들고 휘적휘적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프리데도 급히 그의 뒤를 따라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다행히 못 알아봤어.’

 

조금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그래도 당장 남편을 미행할 수 있다는 재미가 더 컸다마치 같이 축제를 즐기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니야나는 어디까지나 순찰 임무 중이니까.’

 

그저 순찰 동선과 남편의 동선이 겹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활쏘기 게임에서 단 1점 차이로 커다란 곰 인형을 놓쳤을 때그의 뒤에서 누구보다 아쉬워했고.

공던지기 게임에서 그가 바구니에 집어넣을 때마다 누구보다 환호했다.

 

아가씨가 목청이 좋네여기 이건 응원상!”

 

이때는 정말 긴장했다.

 

괜찮으시면 이것도 가질래요?”

 

그러나 코니는 프리데에게 자신의 경품도 건넬 뿐이었다그의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인형에 파묻힐 때쯤,

 

~! 피우우우 … !

 

시청 옥상에서 쏘아 올린 불꽃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우와!!”

 

모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누군가 프리데의 손을 꼭 잡았다.

 

“!!”

 

깜짝 놀란 그녀가 주먹이 멈춘 것은 손을 잡은 사람이 다름아닌 코니였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실눈이 반원으로 휘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오늘 재미있었죠?”

어떻게?”

프리데잖아요.”

 

프리데는 잘 익은 사과처럼 붉은 얼굴을 인형에 묻어 숨겼다.

 

거짓말이요이건 신부님도 못 알아보는데요.”

그분은 마음에 많은 사람을 담고 계시니까.”

… ….”

 

코니가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조용히 속삭였다.

 

나에겐 오직 프리데 뿐이야.”

 

그리고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려,

 

코니.”

프리데.”

 

입술을 맞추었다.

 

지상의 연인들을 축복하듯화려한 불꽃이 어두운 하늘을 환하게 밝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