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XX년 12월 21일의 화창한 한낮, 스토이코프 해방전선 군복으로 갈아입은  아이온이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민간구호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역에 우호적인 여론을 확보하고 그 민심을 통하여 얻은 정보로 해결했던 문제가 여럿 있었기에 그와 연방에게 이 활동은 결코 헛되이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와! 처음보는 멍멍이 아저씨다!"


 한 어린이가 아이온를 보고 호기심 많은 눈을 띄었다.


"하하,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친구" 


아이온이 살갑게 웃으면서 어린이에게 막대 사탕 한개를 건넸다.


그를 따라 온 SAX부대원들도 구호물자를 스토이코프 시민들에게 전달하며 아이온를 돕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있으면 힘의 애국자들에게 습격을 당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에 오스카와 그녀의 부대원들이 멀리서 경호를 맡고 있었다.


"저렇게 애한테 친절하다니.....뭐, 저것도 작전 중 일부니까 하는 거겠죠?" 

제로데이의 저격수 한명이 쌍안경으로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온를 관찰하며 오스카에게 묻는 투로 말했다


"그러겠지. 민간인이 제공하는 정보는 굉장히 귀중한 자원이니까. 그리고 폭압정치를 하는 쪽과 저렇게 구호품을 주는 쪽에서 누구에게 호감을 갖겠나? 답은 자명하지" 오스카 역시 스코프 너머 아이온과 그 주변을 감시하며 대답했다


"참 희한하죠. 브리핑이나 심문할때는 싸늘하게 말하면서 저렇게 온화한 태도를 유지하다니. 완전 이중인격자 아닙니까?''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하지그래? 아이온 지부장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감당하지도 못할거면서"


"예 예 예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준장님은 지부장이라는 사람과 같은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하셨죠?"


"그래. 한낱 한시 떨어지지 않고 함께 공부하고 훈련을 했지"


"그럼 혹시 준장님이 학연 이용해서 지부장님을 일로 오라고 하신건 아닙니까?"


"하아.......방금 그건 못들은걸로 하겠네. 경호나 계속 해" 


오스카는 저격수의 질문에 한심하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고선 아이온의 구호활동이 끝날때까지 침묵속에서 경호를 마쳤다


'하 아이온....너랑 결혼해서 애 낳고 기르면 네가 저런 모습을 보이겠지....'

나지막이 살가운 그의 미소를 보며 잠시 망상에 빠진 그녀


"찰리, 모든 물자를 전달했다. 베이스로 귀환하고 작전을 준비한다" 

그녀의 망상을 끝낸 것은 아이온의 무전


"알겠다. 경계태세 늦추지말고 베이스로 복귀한다" 오스카 가 응답 후 턱을 까딱이며 부대원들과 함께 차량으로 기지를 향해 달렸다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오스카와 아이온, 그리고 부대원들이 일제히 준비해뒀던 힘의 애국자들 군복으로 환복하고 개인 장비를 챙겼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장비 확인하고 10분 후에 출발한다. 그리고 어제 브리핑에 이어서 추가로 알려줄 사항이 있다."


그녀의 말에 모든 부대원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아이온 지부장, 알려주도록" 

다시 그에게로 일제히 눈을 돌리는 부대원들


"안전가옥에서 확보한 데이터와 아침에 추가로 슈타이너 박사를 심문한 결과, 어제 안전가옥에서 빼내던 병력들은 중앙관제소의 경비와 임무교대를 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경비구역으로는 중앙관제탑, 탄약고, 비품창고, 그리고 지하벙커가 있습니다."


아이온이 PDA에 화면을 띄우며 보여줬다


"지하벙커라기보다는 이들만이 쓰는 비밀통로에 가깝습니다만, 슈타이너 박사가 수르트의 검이 폭발하여 가스가 새어나올때를 대비하여 만든 공간이라 경비병력이 꽤나 있다는 진술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중앙관제탑보다 먼저 탄약고와 지하벙커를 제압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이 장비와 함께 말이죠"


그러면서 아이온이 섬광탄 크기의 무언가 2개를 보여줬다


"저희 정보국의 자랑 중 하나인 EMP 재머입니다. 한번 작동하면 사실상 부대 하나 넓이 범위 안의 전자기기와 통신기기들이 먹통이 돼버리는 강력한 무기죠. 이 재머는 저와 오스카 준장이 각각 소지하여 지하벙커와 중앙관제탑에서 작동시킬 예정입니다"


"그러면 저희 무전장치와 야간스코프가 망가지지 않습니까?"

 소총수 한 명이 당연한 의문을 품고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전파 보호장치를 지급한 것입니다. 모두 왼팔에 착용해주시고 켜주시면 재머를 작동해도 저희끼리는 정상적으로 무전과 장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온의 모든 브리핑을 마치고 오스카가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말했다


"따라서 나와 제로데이 부대원들은 탄약고를 통해 지하벙커로 가서 모든 병력을 소탕후 중앙관제소로 합류하고, 그 동안 아이온과 SAX는 중앙관제탑에 가서 대기하다가 우리 구역이 모두 진압되면 그때 진압 후 모든 미사일을 무력화한다. 기억해둬. 결코 어떠한 잡설도 하지 말고, 한번에 성공해야한다. 가자"


침착한 아이온의 목소리로 추가 브리핑이 끝나고 모든 부대원들이 일제히 트럭에 탑승하고 아이온과 오스카, 그리고 슈타이너 박사까지 타고나서야 비르자나로 향했다


침묵만으로 가득한 트럭의 공기가 무겁게 깔린다. 이런 작전은 수도없이 행해왔던 두 부대지만 매번 한번에 막힘없이 수행해야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혹시 안전가옥이 습격당했다는 정보를 본부에서는 알고 있습니까 박사?"

오스카가 고개를 떨구며 앉아있던 슈타이너에게 물었다


"ㅇ,ㅇ,ㅇ,ㅇ,ㅇ,예..........무전을 치려다가 전력이 끊기는 바람에.......그러니 목숨만은...."


"알겠소. 자연스럽게 행동하시오. 잘못하면 당신도 죽을 수 있으니"


어제 있었던 심문에 공포심이 각인돼 벌벌떠는 박사에게 경고를 하며 트럭이 거친 도로를 지나 중앙관제소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도착했군. 전원 복면 착용해. 박사는 아이온와 함께 내려서 문을 여시오" 오스카의 명령에 부대원 모두가 복면을 착용해 힘의 애국자들 군사처럼 위장했다


슈타이너는 역시 위장을 한 아이온과 함께 내려 정문에서 지키고 있던 경비를 향해 걸어갔다


"늦으셨군요 박사님. 뭐 교대할 병력이 뜬금없이 온다는 소리는 본부로부터 들었습니다만, 그쪽 안가에서 여기까지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을텐데요


경비가 굉장히 불만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박사에게 경례를 했다


"미안하오. 이동하던 도중에 차가 고장이 나서 말이지. 워낙 구식이라 고치는데도 애를 먹어서 그랬으니 이해해주시오."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는 슈타이너였다


"하긴 워낙 이 망할 미사일에 예산을 쏟아붓느라 운송수단들이 구리긴 하죠. 들어가시죠. 저희도 본부로 복귀해야하니까" 하면서 경비는 정문의 모든 게이트를 개방하여 트럭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트럭이 멈추고, 그들을 향해서 두 명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흠, 못보던 얼굴이구만. 하긴 편안하게 민가에서 꿀빨다가 온 놈들 치고는 빠져보이진 않는데" 중앙관제소의 대령 한명이 트럭 안의 부대원들을 슥 보더니 한마디했다


"반갑습니다 슈타이너 박사님. 위대한 애국을 위하여"


"위대한 애국을 위하여. 시간이 없습니다. 중앙관제소의 경비를 빨리 교대하시오. 기존에 있던 인물들은 모두 본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오"


"그런 명령은 저희가 못들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겠지. 안가에서 루드비히 수장님이 나에게만 내렸던 지시니까. 해방전선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 같아 내리는 조치니 잔말말고 이 신참들에게 경비를 맡기고 복귀하는게 좋을거요. 안그러면 당신 목이 날라갈테니"


뻔뻔하게 루드비히의 지시로 인해 다급해보이는 투로 연기하는 슈타이너의 거짓말에 대령이 깜빡 속아넘어갔다


"알겠습니다. 그럼 탄약고랑 중앙관제탑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어이 신참들,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대령의 거만한 목소리가 나오자 아이온과 SAX부대원들이 대령을 따라 중앙관제탑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스카와 제로데이, 그리고 슈타이너 박사는 소령을 따라 탄약고로 갔다


"그런데 박사님은 왜 저를 따라오십니까? 탄약고와 관련이 없으신 분 같은데"


"당연히 가야지. 지하벙커의 병력까지 모두 복귀하라고 지시하셨으니 말이오. 탄약고에 비밀 문이 있는거 잊으셨소 소령?"

의외로 자신의 작품을 몰라주자 까칠하게 대하는 슈타이너


"죄송합니다 박사님. 제가 비품창고랑 헷갈렸나봅니다" 

그러면서 소령이 탄약고로 진입했다


탄약고에 우두커니 서있던 경비병 2명과 마주친 오스카와 부대원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흠....신참이 여자인것 같은데, 여기 경비를 할 수나 있겠나 낄낄" 한 경비병이 그녀를 얼핏 보더니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순간 경비병을 째려보는 그녀.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울대를 쥐어뜯고 싶지만 작전을 위해서 겨우 화를 참고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소령이 탄약고 문을 닫고는, 그들에게 인수인계사항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쪽은 7.62mm탄, 저 쪽은 5.56mm탄, 그리고 저어기 구석에는 50구경 탄들이 있다. 매일 탄약량 점검은 오전 11시와 오후 5시에 시행하면 된다. 완료하면 여기 있는 장부에 기재하고 보고하면 되니 어려울건 없다"


이어서 계속되는 지루한 소령의 안내사항에 따분함을 느낄 때 즈음 슈타이너박사가 한쪽 벽면에 손가락을 두들기더니 삐빕하는 소리와 함께 숨겨진 문이 열렸다


"아, 저걸 잊어먹을 뻔했군. 마지막으로 저긴 지하벙커인ㄷ"


[푸슉]


마지막 소령의 안내사항이 끝나기도 전에 오스카가 소음기 달린 권총을 꺼내들어 찰나의 시간에 소령과 경비병의 이마에 총알을 박았다


"크헙!"하는 단말마와 함께 맥없이 쓰러지는 소령과 경비병들, 그녀가 권총을 집어넣자 부대원 세명이 일제히 시체를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치웠다


"알파 여기는 브라보. 탄약고 제압을 완료했다. 이제 지하벙커로 진입한다 오버"


"톡 톡 톡"그녀의 이어폰 너머로 무언가를 건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리 아이온와 그녀가 맞춘 알겠다는 수신호였다.


"빠,빨리 오시오. 심장터져 죽을뻔했잖소"


"총알 박혀 죽는것보단 낫지 않나? 내려갑시다" 그녀와 부대원들이 슈타이너 박사가 있는 엘레베이터에 탑승하더니 슈타이너 박사의 조작에 따라 점점 지하벙커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벙커에 가까워질수록 우우웅 소리와 철컹이는 소리가 점점 메아리친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복면 너머로도 느껴지며, 마침내, 엘레베이터가 멈췄다


"박사는 엘레베이터에 계시오. 제군들, 명심해라. 러시아어는 쓰지말도록"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그녀가 재머를 작동했다


재머를 작동하자마자 지하벙커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멎으며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아잇 씻팔 누가 코인 채굴했ㄴ"


[탕! 탕!]


작전 개시를 알리는 오스카의 총소리에, 부대원들도 총격을 시작했다


"끄아악! 기습! 기습이다! 긴급상황이다!!!"


"무전도 안터집니다! 손전등이라도 쓰십시오!"


급작스러운 정전과 제로데이의 기습에 무참히 적들이 쓰러졌다


개중에는 손전등을 써가며 격렬한 저항을 하는 경비병들이 있었으나 야간 스코프를 사용하는 그녀와 부대원들에게는 그저 눈먼총알 뿐이었으며, 오히려 스스로 위치를 노출하는 적 병사들 덕분에 그들의 죽음을 앞당길 수 있었다


"아아악!!!메이데이!!! 메이데ㅇ-"


[콰직-!]


마지막 남아있던 적 병사 한명의 머리를 군화로 으깨며 복면을 내려 숨을 내뱉는 그녀, 부대원들도 다시 한 번 적 병사들이 죽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모든 지역 이상 없음!"


확실히 그들이 지하벙커의 모든 경비병들을 죽였다. 적들이 들고 있다 떨군 손전등은 무참히 총알에 구멍이 뚫린 시체와 흥건한 붉은색 피 웅덩이를 비추고 있다


"알파, 여기는 브라보. 지하벙커를 모두 진압했다. 챙길 수 있는 디스크는 모두 챙기고 중앙관제탑으로 합류하겠다"


이미 중앙관제탑에 들어가 인계사항을 듣던 아이온의 무전기에 들린 그녀의 목소리, 그에게 두번째 단계를 시행할 시간이 온 것이다


뒷주머니를 뒤지는 척을 하며 은밀하게 그가 재머를 작동하자, 중앙관제탑의 모든 제어콘솔 화면들에 노이즈가 꼈다


"뭐지?! 해킹인가?당장 상황 파악하고 백업해놔!!!"다급하게 외친 대령의 명령에 그가 넌지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해킹이 아니니까요"


"뭐, 뭐야? 신참 네녀석이 왜 이러는지 안다고?" 당황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는 대령 앞에 보인 것은 복면을 내린 아이온의 차가운 눈빛과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였다


"너희들이 죽으면 해결될 문제라서 말이지"


"ㅁ,뭣"


짤막한 유언과 함께 그의 총구에서 섬광과 함께 총알이 나와 대령의 머리를 뚫으며 모니터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굉음과도 같던 총소리에 관제탑의 병사들이 빠르게 권총을 뽑아들어 대응사격을 하려 했으니 이미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그의 부대원들의 격발보다 빠르지 못했다. 동시에 쏜 총알들에 대령 뒤의 병사들도 맥없이 쓰러져 피를 쏟아내고 만다


"싱겁게 끝났군. 재머를 끌테니 통신기록 조회하도록 해"


"네 지부장님!"대령의 가슴에 한 발 더 쏴 확인사살하며 재머를 다시 끄는 아이온의 명령에 부대원 두명이 전면 콘솔에 붙어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미 상황이 정리된 후 몇 초 뒤에 슈타이너 박사를 대동한 오스카 와 그녀의 부대원들이 중앙관제탑에 도착했다. 빨간 홍수가 들어찬 바닥을 보며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쪽은  사상자가 없었다. 그 쪽 상황은?"


"전원 사살 완료에 사상자 없음" 


노이즈가 잔뜩 꼈던 화면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중앙의 화면에는 일곱개의 발사대에 대한 상태창들이 띄워져 있었다


"히, 히익....."


피로 흥건한 시체들을 보며 기겁하는 슈타이너


"흠.....예상대로 그 큰 건물이 본부였군......데이터 다 드라이브에 복사해놓고 있어" 


ㅎㄷ기록을 통하여 본부의 위치를 확인한 3호기가 뒤돌아 슈타이너박사를 쳐다봤다


"좋습니다. 이제 박사님 차례입니다. 미사일을 무력화해주십시오"


하지만 슈타이너는 요지부동이었다


".....안 돼.....내 일생일대의 역작을.....내 손으로 망가트릴 수는 없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박사님. 협조를 하면 안위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연방으로 망명하시면 언제든지 이걸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에서야 돌변한 박사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한 그였다


"그런 거짓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절대로 내 손으로 망가트리는 일은 절대 없끄아아아아아악!!!!!"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슈타이너가 비명소리를 질렀다. 오스카가 그의 팔을 뒤로 꺾었기 때문이다


"이 씹새끼 내 그럴 줄 알았지....기껏 목숨을 살려줬더니 되도 않는 개수작을 벌이려고 해? 당장 꺼!!!" 


호랑이 울음소리처럼 저주파로 울리는 그녀의 호령같은 고성에 박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에 신음했다


"으으으윽....알겠소....하면....하면 될 거 아니오....!"


"진작 그랬어야지"마지막으로 팔을 한번 더 꺾고 그녀가 그를 풀어주었다


"으으......아파....."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가며 박사가 지문을 인식하더니 화면이 제어모드로 바뀌고 박사는 능숙하게 7개의 발사대에 일제히 무력화 모드를 작동시켜 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비활성화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사님. 당신은 방금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일조한 것이오"


".....아직은 아니오" 박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아직이라뇨?"


"중앙발사대의 미사일........이 미사일 하나만큼은 중앙 시스템이 무력화 돼도 우리가 설정한 시간에 발사를 할 수 있소....전파방해와 제어권 상실에 대비하여 발사대 지하에 설치된 폭약을 기폭하여 발사도 가능하게 하기도 했고...."


박사가 이제와서 실토한 사실에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박사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메다꽂았다


"이 새끼가 그걸 왜 이제 말해!!!! 너도 여기 바닥에서 피에 익사하고 싶냐!!!!!"


"아아아악 나, 나도 이제서야 생각난걸 어떡하란 말이오!!! 저,저건 그냥 포,포,포,폭탄만 해제하면 해결될 문제라오..."


공포감에 잠식된 슈타이너가 그녀의 핏빛같이 서린 눈동자에 흐느끼며 말했다


"그만하도록 준장. 이런다고 상황이 나아질 문제가 아니야" 


아이온의 말에 그녀가 다시 박사를 일으켜세웠다


"후우.....어쨌든 이 곳에는 유사시 지정시간에 해당 폭약을 기폭할 수 있도록 하는 비상콘솔이 있소. 문제점이라면 그 곳의 위치인데......나도 그 콘솔을 만들어주기만 했지 어디에 설치됐는지 모르겠소...."


"그럼 누가 아는데?"귀찮다는 듯이 그녀가 박사를 쏘아붙였다


"그건.....루드비히 수장과 또.....브ㄹ"


박사가 대답하고 있는 순간, 박사의 복부에서 급작스런 폭발이 일어나 두 동강이 나버렸다


[퍽!]


그의 산산조각난 살점과 내장이 한 쪽 벽에 흩뿌려지며 상체를 잃은 다리만이 우두커니 서있다 힘없이 쓰러졌다


"이....이런 개같은 상황은 또 뭐야...."


온갖 상황을 겪었다고 생각한 그녀도 전례없는 일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치...치직.....너는 규칙을 무시했다.....나의 정체를 드러내는 자에게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할 이유는 없겠지'


 다리가 쓰러지며 그곳에서 떨궈진 검은 무언가에 변조된 목소리가 나오고는 픽하며 타더니, 이내 매캐한 연기를 피우며 바닥에 숯검댕만을 남겼다.


"씨발.....뭐 이딴 경우가 다 있어.....그 망할 비상콘솔은 어디에 있는건데!"


얼굴에 튀어버린 내장과 피를 손으로 닦으며 그녀는 짜증을 냈다.


"진정해. 그거까지 찾아내려다가 지원병력을 상대해야할 수도 있다. 일단 모든 목표는 완수 했으니 박사의 시체에서 중요한 걸 챙기고, 다시 기지로 복귀한다"


 아이온의 명령에 모든 부대원들이 다시 트럭에 탑승하고 정문을 계속 지키던 경비를 사살하고는 지원병력과 마주치지 않으며 기지에 돌아왔다.


기지로 돌아온지 1시간 반 뒤, 오스카는 개인막사에서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잠시 쉬고 있던 차였다.


"하.....눈 앞에서 그렇게 터트리는 악취미를 갖고 있는 새끼라니....설마 우리가 그 지랄한거 다 보고 있었던건 아니겠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도 짜맞춘듯한 타이밍에 일어난 사건에 충격을 잊지 못했다.


그 순간 그녀의 막사에 아이온이 들어왔다.


"괜찮아? 아까 피 뒤집어 쓴건?"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달려가 꼬옥 껴안는 그녀


"응.....다 씻어냈는데.....솔직히 믿겨지질 않아서...."


이런 일은 익숙하다는 듯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그였다.


"그래그래.....나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지.....심호흡하면서 풀어"


"흐읍 하아.....근데 그 박사, 루드비히의 이름을 부르고 뒤에 뭘 부르려고 하다가 몸이 터진건데,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었던건 아닐까?"



"그러진 않았을거야. 재머를 키면서 emp가 터졌으니 cctv제어서버도 비활성화 됐으니 그건 너무 걱정하지마"


그는 유난히 이번따라 자신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 같은 오스카를 쳐다보며 미묘한 한숨을 내쉰다


"너 사관학교에서 시가전 훈련에서 하위권 찍고 나한테 찰싹 붙어서 엉엉 운거 이후로 나한테 응석부리고 있는건 알지?"


"응.....솔직히 그 정도 충격을 받았으면 좀 봐주라.....잠깐이면 되니까"


그녀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벼대며 한동안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아...좀 이따 브리핑할거니까 그때까지는 알겠다....."


그러면서 미묘하게 그의 허벅지를 흘깃흘깃 스치는 그녀의 가슴의 감촉에 아이온은 살짝 홍조를 띄며 잠시나마의 휴식을 취했다.


그가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데이터 해독결과를 보고 브리핑 할 시간이 됐다.


"자 휴식 끝. 다시 베이스로 가자. 5분만 더라는 말 안통하니까 다시 냉정함을 유지하라고"


"에잉....그때처럼 원칙만 고수하니까 재미 없잖아....알겠어"


그의 복슬복슬한 털의 부드러움에 심취했던 그녀가 뾰로통한 얼굴로 일어나 몸을 늘리고는 방탄복을 다시 입고 막사를 나오는 그를 따라갔다.


"지부장님, 중앙관제소의 데이터가 모두 해독됐습니다. 필히 보셔야 할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베이스에서 데이터를 해독하던 요원이 그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그래. 음.......으음........당장 브리핑해야겠어. 지통실로 다 모이라고 해" 


태블릿을 보던 아이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빠르게 지통실로 걸어갔다.


"오케이" 


다급해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본 그녀가 부대원이 있는 막사로 갔다.


"브리핑이 예정됐다. 전 부대원은 2분 내로 지통실로 오도록"


모든 부대원들이 지통실로 들어오자, 분주히 자료를 정리하던 아이온과 오스카가 있었다.

 전원이 착석한 것을 확인한 후, 아이온이 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무거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도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국제사회를 위협하던 미사일들도 무력화되고 우리들의 최종목표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최종작전에 대한 계획을 설명드리기 전에 고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으셨겠지만 박사가 사망하기 전 설명한 것처럼 중앙발사대의 미사일은 기계적 기폭장치를 설치하여 전파방해에도 구애받지 않고 발사될 수 있습니다. 현재 저희부대에 EOD팀도 부재하여 쉽사리 접근해서 해제하기에도 위험성이 상당히 높고요"


"또한 중앙관제소의 데이터에 따르면 라그나로크 계획은 12월 25일 오전 9시에 발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 시스템을 모두 무력화 했어도 비상콘솔의 존재가 있는 한, 현재로선 라그나로크 계획이 무산됐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화면을 넘기며 브리핑을 이어갔다


"저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연방에 EOD부대를 파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좀 아슬아슬하겠지만 그래도 라그나로크 계획이 시행되기 전에 폭탄을 해제하고 비상콘솔까지 비활성화할 것으로 봅니다. 이제 문제는 다음 작전인데....."


그가 잠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주저하더니 곧바로 화면을 넘겼다


"힘의 애국자들 본부를 습격하여 파괴하는 목표가 어렵습니다. 좀 전에 중앙관제탑에서의 통신기록을 통해 위치를 특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 서버에 접근하여 CCTV 권한을 따낸후 관찰하였는데, 저희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강화된 병력이 본부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병력이 늘은겁니까? 그 때 안가습격할때 탈출하던 병력들을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제로데이의 지정사수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기존병력대비 최대 50%인 것으로 보입니다. 병력뿐만 아니라 바리케이드와 참호 등, 습격에 대비한 시설물도 이전에 비해서 증가한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저희도 이에 맞춰서 작전을 변경해야 합니다"


그가 고개를 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자기자신도 이 작전에 대해서 마땅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오스카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무언가 다짐한 듯이 운을 뗐다.


"목표가 무엇이지?"


"힘의 애국자들의 수장인 엘함 루드비히 및 숨겨진 수장을 수색하여 역시 사살하는 것과, 본부에 설치된 난수방송국의 송출중단, 그리고 본부의 폭파가 있습니다"


"혹시 근처에 넓은 공터같은건? 헬기라던가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곳 말이야"


아이온이 화면에 띄워진 지도를 보며 대답한다


"본부 후면에 한 곳이 있습니다. 다만 이 쪽도 힘의 애국자들 소유영토라 은밀하게 진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흠......"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일 정도로 그녀의 고민이 깊어져만 갔다.

 모든 경우의 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확률만을 믿기엔 인생은 기회가 다 한번뿐인 게임과도 같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더더욱 신중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의 결단도 이를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그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전면에서 우리가 앞에서 그들의 시설물을 파괴하면서 주의를 끌고 그 동안 후면에 진입해서 작전을 수행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집니다. 막대한 병력을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그는 동공이 커지며 다그치는 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자폭차량을 쓰면 된다. 우리 군용차량 중 고장나서 폐차하기로 한 차 몇대에 폭약을 실어서 전방에 혼란을 주고 앞뒤로 양동작전을 펼치는 거지. 제로데이는 수장 수색 및 사살, 그리고 건물폭파를 맡고, SAX는 데이터 탈취 및 난수방송 송출 중단을 맡고 수행 후 후면 공터에 대기하고 있던 운송수단으로 탈출하는걸로 계획을 짜면 된다"


"하지만.....자칫하면....."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상황이야. 늘 죽음이 우리 주변에서 춤추고 있는거야 인지하고 있어. 그게 우리 제로데이의 제 1원칙이니까" 


그녀의 말과 함께 결연한 표정이 그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언제든지 죽음을 각오한 자세. 그녀를 충분히 설득시킬 수도 있지만 그는 그녀의 결단을 쉽게 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아......그야 그렇지만......"

그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걸로 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모든 제로데이와 SAX 부대원이 필요할겁니다. 각자 개인정비 해주시고, 장비가 다 준비된 이후 다음 지시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이상입니다"


"아주 열심들이구만. 열심히 하고 있어"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상자들을 나르던 블라다미르 중장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언제부터 거기 계셨습니까? 뭐 군수물품만 관리하시는 똥별이 브리핑을 듣는다고 저희 행운도가 올라가는게 아닙니다만?" 


오스카가 중장을 보자마자 얼굴을 팍 찌푸리며 짜증나는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뭐, 전쟁은 언제나 보급이 중요하다는 철칙을 잊어먹었나? 도움이 되려고 뭐가 필요하나 싶어서 들었을 뿐인데 섭섭한 소리만 하는군"


"그 좆같은 세치 혀 때문에 희생된 장병들을 생각하면 섭섭할건 이 쪽입니다. 말을 잘 못할 것 같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게 중간은 갈겁니다" 


중장을 대하는 것을 길거리의 똥 대하듯 귀찮은 티를 팍팍 내는 그녀


"자네와 상관없는 일은 끌어들이지 말게. 여튼 지금 군수창고에 가서 물자를 챙겨올건데, 특별히 요청할게 있나?"


"하......그럼 텍사스 글레이즈 도넛 3개만 갖고와주십쇼. 죽을지도 모르니까 단 거라도 먹어둬야죠"


"그래 알겠네. 쉬고 있게나" 하며 중장은 행정병들이 운전하는 레토나에 타고는 기지를 떠났다.


중장과 그녀 간의 날 선 대화가 끝나고 그녀는 매우 피곤하다는 듯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자기 혼자만 남아있던 지통실을 나섰다.


"에휴 저 좆같은 똥별새끼.....그냥 미친척하고 머리를 쏴버릴걸 그랬나...."


 그러면서 은근슬쩍 아이온의 개인막사로 또 다시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노트북을 응시하며 쉴틈없이 자판을 두들기던 그였다.


"됐다.....이걸로 한 시름은 덜었...아이씨 깜짝이야!!!"


"뭐, 내가 그렇게 무섭냐?''


뜬금없이 갑자기 옆에 앉은 그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가 내심 서운한 그녀였다.


"아 미안, 워낙 집중하고 있던 차라.....그냥 힘의 애국자들 난수방송을 해독하고 있었던 차였어. 만약에 끌 수 없으면 가짜 방송이라도 송출을 해야하니까"


"알았어. 얼른 이 작전도 다 끝났으면 좋겠다~못해도 크리스마스 아침까지는 다 끝나는거 아냐"


하품을 하며 그의 어깨에 기대는 그녀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렇지.....그래서 이번 작전이 중요한거야. 피의 성탄절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이온은 그녀의 시선에 응답하듯 눈을 마주치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엣휴~평소같으면 내칠텐데 오늘만 특별 허락해준다~"


[치지이이익-칙-]순간 그녀의 무전기에서 울리는 다급한 목소리


"쿼터!쿼터! 여기는 시에라!! 지금 총격을 받고 있다!!-탕!-'아아악!!!' 코드 레드! 즉시 지원을 요ㅊ--"


[탕!]


무전기를 꿰뚫을 정도로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그녀를 향한 무전도 급작스레 끊어졌다.


"시에라! 시에라 여기는 쿼터 응답하라!"

그녀의 외침에도 이미 무전기는 정적의 묵음만이 흘렀다.


"이런 씨발! 시에라면 그 똥별이 타던 레토나잖아!!! 갑자기 이런 일이 왜 겹치는건데!!!" 


그러면서 그녀는 막사를 뛰쳐나왔다. 아이온 또한 긴급 상황에 그녀를 따라 나섰다.


"준장님! 지부장님! 긴급상황입니다!"

막사에 같이 나온 둘을 향해 통신병 한 명이 급하게 뛰어나왔다.


"또 무슨 일이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성을 잃어버릴 것 만 같은 그녀의 고성이 통신병의 고막을 강타했다.


"그,그게.....저희 군용차량이 습격을 당하고 블라다미르 중장이 실종됐다고 합니다...."


"습격에 실종까지 당했다고?? 위성사진같은거라도 뒤져봐서 찾아봐!!!"


"예, 준장님!" 아무리 똥별이라고 해도 자신의 상관이다. 최소한 군인으로서의 예우때문에라도 그녀는 위성사진을 통해서라도 대관절 무슨 일인지를 파악해야만 했다.


찬물을 마셔도 진정되지 않는 불안감이 10분 동안 지속되고, 그녀의 손톱이 다그닥거리며 책상을 연신 두들기며 기다리던 중 통신병이 그녀를 불렀다.


"그 차량은 찾았나?"


"네 준장님. 여기......"


통신병이 그녀에게 연기를 뿜는 레토나 사진을 보여줬다


그녀가 사진을 점차 확대하면서, 흐릿했던 레토나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조수석에서부터 생긴 핏자국과, 밖으로 흩어진 차량 유리 조각이 있던 레토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