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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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평화로운 방 안.

 

그것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주거 공간과는 사뭇 다른. 사무적인 느낌이 무척이나 강한, 아니 연구실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새하얀 넓은 패널로 연결된 방이었다.

 

사방엔 기계 장치들이 즐비하고 인간들은 전혀 살지 않을 거 같은 느낌의 방이었다.

 

또한 공허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너무 휑하다고 해야할까. 공간이 무척 넓은 탓에 얼마 없는 가구는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집의 주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방이 넓으면 활동하기도 좋고 새로운 가구를 가져오거나 여러 가지 실험하거나 뛰어놀기 좋다.

 

활동적인 안드로이드, 아니 오토마타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라는 것이다.

 

초록색 잔디를 심으면 드넓은 초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이 장소에서 두 남매가 방 한가운데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간에 대한 조사라던지 언니를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작전회의라던지 그런 거창한 것을 하진 않았다.

 

이이이이익-! 그렇게 얍삽하게 할래?!”

히힛~. 누나가 못하는 거야.”

 

손에 딱 들어오는 게임패드를 잡고 인간처럼 게임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구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게임. 격투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먼저 시작한 건 둘째인 울로아. 인간들을 더욱 알고 싶었던 언니 안토니오가 찾아온 몇가지 중 하나였다.

 

솔직히 정상 작동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아무리 데이터로 남아있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이토록 오래 되었으면 복구는커녕 데이터가 존재할 지도 의문이었으니까.

 

그래도 운은 좋은 편이었다. 언니가 가져왔던 게임은 정상적으로 실행이 됐고 그대로 흥미에 이끌려 인간들이 하던 것처럼 게임 패드를 구현해 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에바가 다가왔다. 혼자 열심히 몸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하는 둘째 누나에게 흥미를 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슬그머니 그녀의 놀이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 결과. 게임의 정보를 데이터화 시킨 후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은 에바는 말 그대로 초보자를 데리고 놀아주는 고수처럼 울로아를 농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울로아도 그가 게임 데이터를 습득한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데이터를 습득한다면 그와 실력이 동등해지거나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시대의 인간의 게임을 그렇게 쉽게 접해버리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채로. 간단한 조작 방법만 익히고선 콤보라고 불리는 기술이나 어떤 기술 다음에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효과가 좋은지 직접 알아가고 있던 와중에 에바가 난입한 것이다.

 

그 덕분에 실시간으로 발리고 있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 너 계속 그럴거야?!”

분하면 나처럼 실력을 키우는 게 어때?”

 

대놓고 자신이 데이터를 다운로드 했다고 밝히는 에바.

그런 도발에 넘어갈 울로아는 아니었지만 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게임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자신의 즐거움을 망가뜨리려는 동생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게임으로 그를 압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실력은 무슨 지금까지 연습한 콤보라는 것도 넣을 틈이 없었다. 그래서 더 분했다.

 

이 상황을 좀더 늦게 발견당했다면 그래도 반격할 틈 정도는 만들 시간을 벌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콧김을 뿜어냈다.

 

그렇게 눈에 불을 키고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울로아를 에바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화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그녀가 짜증을 내면 낼수록 자신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실력으로는 이미 자신이 압도적 위. 하지만 그녀가 쉽게 굴복할 일은 없다는 걸 안다.

그러니 지금보다 좀더 짜릿하고 감칠맛 나는 짜증을 돋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결국 외부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천천히 그녀가 보지 못하는 사각으로 나노머신을 움직였다.

 

뱀이 움직임이 연상되는 모습으로 땅바닥을 기어가는 나노머신은 천천히 울로아를 옭아매기 위해 그녀의 주변을 감싼다. 눈치챌 법도 한데 그녀는 동생에게 처참하게 깨지고 있는 것이 분한지 시야가 매우 좁아져 있는 상태라 보지 못했다.

 

그렇게 한바퀴.

또 한바퀴.

또 다시 한바퀴.

세 번은 너무 짧으니까 또 한바퀴.

이왕 감기 시작한거 한 번더.

 

포위망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바닥에 과녁을 만들 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그려간 나노머신은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 이거 왜이래.”

 

그리고 그녀의 컨트롤러를 교란시켰다.

 

마음대로 캐릭터가 움직이지 않자 당황한 울로아는 패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애쓴다. 분명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캐릭터가 움직이긴 하지만 어딘가 엉성한 느낌. 인식 시스템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던 걸까. 아니면 너무 구시대의 게임이라 수명이 다해가는 것을 표현하는 걸까 고민하며 초조해 했다.

 

이 게임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기도 전에 수명이 다해 더 즐길 수 없게 된다면 무척이나 슬플 것 같았다.

 

하지만 버튼을 눌러도 조이스틱을 움직여도 캐릭터는 렉을 먹은 것처럼 끊겨서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캐릭터는 에바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을 뿐이었다.

 

약간 울상이 되어버린 울로아는 우선 게임을 멈추고 상태를 확인 하기 위해 패드를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주위로 둥글게 둘러친 이상한 문양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의 패드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핫! 누나는 가끔 보면 너무 순진하다니까?”

에바...!”

이렇게 게임을 할 때면 주변을 너무 안본다니까. 그러니까 항상 나한테 당하는거야.”

 

이상 현상의 문제가 에바라는 것을 안 울로아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군체형 나노머신인 그를 잡는건 사실상 불가능. 이상이형적인 모습으로 일순간 분해 됐던 그는 다른 곳에서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너 이리 안와?!”

 

울로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에바가 미리 깔아 두었던 나노머신의 무리가 하나의 끈이 되어 그녀의 발목을 묶었던 것이다.

 

나노머신들은 거미처럼 울로아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를 속박하기 시작했다.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끈으로 매다는 듯이 칭칭 휘감은 나노머신들은 에바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매번 나한테 당해놓고 발전이 없네, 누나는. 그리고 얼마나 집중했으면 몸이 이렇게 뜨거운 거야?”

약 올리듯이 손부채질을 해주며 울로아의 볼을 살짜쿵 찌른다.

움푹 들어가는 그녀의 볼살이 귀엽게 솟아 올랐다.

 

너 이거 당장 안풀면 혼날 줄 알아...!”

아이고 무서워라. 내가 누나를 혼냈으면 혼냈지. 누나는 날 한번도 잡은 적이 없잖아? 얌전히 포기하고 승부에 굴복해. 이미 51게임이나 연속으로 졌으면서 승복하지 않는 거야?”

네가 반칙을 썼으니까 그렇지.”

이상하다. 난 그저 게임 데이터를 읽었을 뿐인데? 그리고 누나의 컨트롤러를 조종한 건 방금 한 번 뿐이라고.”

거짓말 하지마! 분명히 막았는데 안막아지고 분명 공격 버튼을 눌렀는데 안나갔다고.”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물론 입력은 확실히 됐다. 에바가 말하는 대로 그의 방해는 없긴 했다.

하지만 에바의 반응이 좀더 빨랐을 뿐이고 가드 판정의 부위를 제외한 다른 곳을 공격한 에바의 판정승이었을 뿐이었다.

 

게임 시스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울로아였기에 그런 변명을 늘어 놓을 수 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된다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고 있겠지만,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에바는 짖궂게도 웃음을 참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울로아가 얼마나 부끄러워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화 나면 나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그러면서 울로아의 곁에 딱 붙는다. 하지만 그녀의 손엔 닿지 않을 위치에서 나노머신으로 결박당한 누나를 도발한다.

 

, 난 여기 있어. 날 잡고 싶다며? 얌전히 잡으면 오늘은 더 이상 누나를 괴롭히지도 않고 수발도 열심히 들어줄게.”

 

올로아는 낮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VR게임을 하거나 스트리밍을 할 땐 차분했지만 이상하게도 에바와 게임을 하면 금방 격양된다는 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물론 같이 게임을 하는건 즐겁긴 했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그의 장난이 조금은 귀찮기도 했고 그 장난이 게임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금방 화가 나버리기도 했으니까.

 

뭐해? 손을 살짝 뻗으면 바로 잡힐 텐데? , 내 군체들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나? 이거 아쉽게 되버렸네요~.”

 

단단하게 묶은 군체를 믿으면서 에바는 혀를 낼름 내밀었다.

 

이런게 즐거운걸까. 기쁘게 웃는 에바의 얼굴을 보면 너무 얄미웠다.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아하하하하하. 아쉽지만 이번 게임의 승리는 내가 가져가겠네. 덤으로 일일 시종권도 말이야!”

 

그의 눈빛이 사악하게 빛났다. 무슨 장난을 치려고 저리 좋아하는 걸까 불현 듯 느껴지는 불안함과 동시에 처음하는 게임으로 섣불리 내기를 걸었던 자신을 원망했다.

 

히히히히히, 그러면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간신처럼 사악하게 손을 비비며 이런저런 장난을 떠올리는 에바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

 

에바가 뒤늦게 눈치체고 황급히 물러나려했지만 늦어버렸다.

 

! 누나한테 그러면 못쓰지!”

 

시원하게 손날 당수를 맞은 에바는 고통에 신음하며 쭈그리고 앉았다.

 

장난기 많은 남동생의 옆을 지나쳐 나노머신에게 묶인 울로아를 풀어주면서 웃었다.

 

그래도 재밌게 놀고 있었나보네?”

“....”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울로아가 안토니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아직 쭈그려 앉아있는 에바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정정당당한 승부는 아니었으니까. 그 소원권은 무효야.”

하지만 게임은 내가 이겼는걸?”

그건 반칙이었으니 노 카운트.”

 

울로아와 에바가 서로 노려본다. 두 사람의 시선에 스파크가 튀는 듯한 착각이 올 정도로 매서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사나운 기운은 안토니오에 의해서 금방 와해돼버렸다.

 

싸우면 안되지. 장난치고 노는 건 좋지만 그렇게 싸우면 이 언닌 너무 슬픈데.”

 

그런 말을 하자 울로아와 에바는 멋쩍게 눈빛을 거뒀다. 그리고 안토니오에게 다가가 붙는다.

 

위로라는 목적으로 그녀의 등을 같이 쓰다듬어주니 그녀는 언제 풀죽었냐는 듯 양 팔을 활짝 벌려 동생들을 끌어 안았다.

 

다음부턴 싸우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한다?”

“....”

알겠어. 적당히 할게.”

 

동생들의 다짐을 받아낸 안토니오는 바깥에서 가져왔던 바구니를 꺼내들었다. 전신이 기계로 된 자신들이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긴 하지만, 음식을 먹음으로써 오는 안도감은 그 누구나 납득 될 정도로 평화로웠기에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짧고도 긴 요리시간이 지나고 음식이 완성되자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은 남매는 식전 인사와 함께 식기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무슨 게임 하고 있었어?”

저번에 언니가 찾아왔던 구시대 유물.”

“.... 그거 말하는 건가? 그게 게임이었구나.”

덕분에 재밌었어.”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웠다고 말하는 울로아.

 

누나가 좀만 더 늦게 왔으면 더 재밌었을텐데.”

 

울로아를 충분히 괴롭히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에바가 투덜거렸다. 막내의 귀여운 투정에 안토니오는 미소로 화답하며 그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가볍게 닦아줬다.

 

그러니까 이 정돈 나도 할 수 있다고!”

 

아직도 안토니오에게 애 취급을 당하고 있는 에바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 모습도 귀여운 앙탈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안토니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때다 싶었는지 울로아는 안토니오에게 아까전에 있었던 일과 내기에 관한 것을 일러바쳤다.

겉으로 듣기엔 아무런 문제 없는 대화 내용이었지만 에바의 검은 속내를 잘 알고 있는 두 누나에겐 반대로 막내를 괴롭힐 좋은 건덕지였으니까.

 

마침 밥도 다 먹었겠다. 눈빛이 달라진 누나들이 에바를 바라본다.

 

오한을 느낀 에바가 그대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에바는 유일한 천적인 안토니오에게 그대로 손목을 잡힌다.

 

이상하게도 군체의 움직임은 그녀에게만은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그대로 누나의 품에 안겨버린 에바는 부끄럽게도 뚱한 표정을 지으며 과할 정도의 스킨십을 당하며 작은 누나의 소소한 복수에 어울려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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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 받아서 한시간에 6천자!


재밌는 설정이어서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커미션 진행하다가 다른 분 버스 할 예정이군요.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재밌는 글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