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트

Rossette

머리장식은 팬지, 가슴장식은 보라/푸른 장미, 눈은 항상 감고 있다.

시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뛰어난 후각과 청각으로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은 없다.

눈을 뜨더라도 딱히 보이는 것은 없고, 초점도 없어 죽은 눈을 하고 있다.

던전 깊은 곳에 살고 있으며 아무도 오지 않는 날에는 노래를 부른다.

좋아하는 것 : 팬지꽃, 보라색 ,치즈, 노래부르기


로제트 스토리


어느 시골 마을 외곽에 자리한 숲속 어느 동굴에 있다는 오래된 던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했습니다. 한때 어느 마법사가 영생을 살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떼어내어 함에 담아 보관해 둔 비밀장소라거나 지금은 사라진 용들이 잔뜩 모은 재보가 가득한 비밀의 방이 있을거라는 둥 언뜻 마을 주민들의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이 곳의 주민들은 그날 그날 먹고 살기 위해 작물을 키우고 재배하는 일과 가축들을 돌봐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우유와 치즈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무언가 위험한 것이나 보물, 역사적 가치가 있었다면 진작에 수도에서 조사단이 파견되지 않았겠냐는 이야기에 수긍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이곳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던전이 자리한 숲은 계절이 바뀌어감에 따라 싹이 틔고 푸른 녹음이 우거졌다 울긋불긋하게 물든 잎사귀가 떨어져 겨우내 흰 눈 속에 뒤덮이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던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던전에는 엄연히 주인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왜 이 던전 깊은 곳에 자리 잡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요. 던전의 주인의 이름은 로제트. 그녀는 박쥐의 특징을 가진 수인족 중 하나인 꽃 박쥐족의 일원으로 장미를 연상하게 하는 매끄러운 보라빛 머리칼과 푸른 장미로 수놓은 드레스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있는 일이 많았지만 잘 발달된 후각과 청각은 그녀의 눈을 대신해 많은 정보를 얻고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여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해주었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현재 그녀의 삶은 바깥이 어떻게 흘러가던 상관없이 자신이 머무르는 방 안에서 조용히 그녀만의 평온한 시간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이 던전이 어떠한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고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그녀 또한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고 고요한 환경 중 하나인 동굴과 연결되어 있고 동굴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와 연결된 관을 통해 늘 맑은 물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는 로제트가 머무르는 방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한 개구리 석상의 입을 통해 맑은 물을 뿜어내고 그녀가 머무는 방과 던전 전체의 수로를 타고 끊임 없이 흐르며 던전 안에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작은 팬지꽃들과 장미를 계속해서 피워내고 가꾸게 해줄 수 있었습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깊은 던전 안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니 이 던전을 만들어낸 누군가는 지금의 로제트처럼 그저 조용하고 평온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 던전을 만들어낸 마법사 같은 자가 아니었을까요? 이 또한 알 수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찾아지 않는 깊은 던전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스스로가 택한 고요함 속에서 이 던전에서 살아가기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 [어느 여름의 이야기] 보라색은 로제트가 가장 좋아하는 색입니다. 눈을 떠도 거의 보이는 것이 없지만 자신의 머리칼과 같은 색이라는 것.. 그녀가 인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 싶은 색이었죠. 보라색을 띈 것 중 잘 익은 포도를 으깨고 잘 개어 짜낸 신선한 포도주스 보라색이 감도는 장미들, 팬지꽃은 로제트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치즈가 보라색이 아닌게 아쉬울 지경이기도 하군요. 이 이야기는 그녀가 마을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해도 눈이 안 보이는 것으로 인해 홀로 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지만 이전에 고향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과일 박쥐 수인인 모네는 로제트를 따라나서 마을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죠. 그녀들의 보금자리이자 생계를 꾸리기 위해 동굴에서 얼마간 가지고 나온 귀한 가치를 지닌 광물들을 팔아 사들인 낡고 허름했던 빈 가게는 그녀들이 머무를 집이자 머지 않아 늘 화사한 보라빛 꽃들을 피워내는 꽃집이 되었습니다. 라벤더와 다알리아 레드 클로버 가게 뒤편에 있는 작은 마당에서 피어나는 할머니꽃, 작은 연못 통해서는 부레옥잠을 가게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온통 보라빛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장미꽃으로 그녀가 가꾼 보라빛 장미는 오래도록 싱그러움을 머금었으며 꽃이 놓인 자리에 은은한 향기를 오래도록 머무르게 해주는 장미들이었습니다. 연보라빛 장미는 은은함을 짙은 보라빛 장미는 밤에 피어난 듯한 어두운 매력을 갖고 있었죠. 향을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해 짙은 보라빛 장미를 사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때로는 다른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연보라빛 장미를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더러는 모자에 장식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작은 정원에도 로제트의 장미를 피워내고 싶은 이들이 간혹 로제트에게 부탁해 장미 씨앗을 구해 심어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피어난 장미는 이상하게도 일반적으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붉은 빛의 장미였습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손님들이 간혹 로제트에게 보라빛 장미 씨앗이 따로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로제트가 내밀어 보이는 작은 보라빛 단지 속에 들어있는 장미 씨앗은 그들이 가져간 씨앗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꽃을 가꾸어내는데 자신들이 모르는 어떠한 특별한 비결이 있는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신들의 정원에서 로제트의 장미와 같은 보라빛 장미들을 피워낼 수 없는 것은 아쉬웠지만 로제트는 대량 주문이 아닌 이상 언제나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만큼 장미를 안겨 주었기에 사람들은 언제나 로제트의 가게를 찾았습니다. 모네가 과일을 이용한 잼이나 차를 만들기 위한 설탕 절임을 만드는 것에도 능했던 덕에 장미들이 많이 피어났을때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장미 꽃잎을 따서 잼으로 만들거나 해당화의 열매로 만들어낸 차를 판매하게 되면서 잼이나 차를 찾는 손님들 또한 많았습니다. 이따금씩 많은 손님이 거쳐가고 살짝 나른해질 무렵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을때 철 없는 아이들이 몰래 꽃들을 가져가는 일도 있었지만 내심 조는 것처럼 보일때 작은 아이들이 딴에는 살금살금 걷는 소리나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 , 작게 가슴을 콩닥이는 소리들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희미한 미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아이들이 너무나 귀여웠고 대부분은 꽃값을 치르기 위해 돌아오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로제트는 아이들에게 꽃을 더 안겨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날이 조용하면서도 따듯하고 평온한 나날이. 이어질 때였습니다. "언니는 왜 보라색 꽃들만 좋아하나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잼을 사러 온 어느 어린 소녀의 질문이었습니다. "보라색 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단다." "왜 보라색 밖에 보이지 않는건가요?" 아이의 악의 없이 순수한 의문에 로제트도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살며시 눈을 뜰 때였습니다. 아이의 작은 탄성이 들렸습니다. "아 알겠어요 언니 눈에도 장미가 가득 들어있어요 그런 예쁜 눈을 하고 계시니 이렇게 예쁜 꽃들을 피워내실 수 있는거군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라색 외에 인지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 어린 시절 초점이 없는 눈이 무섭다거나 눈이 안 보인다고 해도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받았던 상처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처음으로 있는 자신의 눈을 예쁘다 말해주는 아이를 마주한 로제트는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평소에 어지간한 일들은 차분하고 평온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어떤 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주문한 잼과 더불어 고마움을 담아 꽃 한 아름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거듭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손을 흔들며 떠나는 아이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어주던 로제트는 아이의 기척과 아이에게 들려준 꽃 내음이 느껴지지 않게 될 때 즈음 서서히 저물어 가는 노을 빛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보았습니다. 로제트는 어스름이 깔려올 무렵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서서히 날갯짓을 시작하며 짝을 찾는 풀벌레 소리를 통해 밤이 찾아오는 것을 느껴왔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선천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었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살아왔던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웃어주고 싶고 잊을 수 없는 오늘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단 하루라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소망이 피어올랐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날라주는 듯한 바람이 속삭이듯 부드럽게 로제트의 귀와 머리칼을 쓸어 주었고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물 한 방울이 로제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이후 로제트는 다시 그 소녀가 찾아온다면 지난 번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좋아하는 색으로 꽃을 피워내 안겨주고 싶었지만 가게를 정리하고 도시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떠나기 전까지 그 소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그날의 일은 로제트가 떠나기 전 스쳐 지나가고 교류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마을에 정착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흘렸던 어느 여름 날의 잊지 못할 하루였습니다. [어느 가을의 이야기] "로제트 혹시 잠든 건 아니죠? " "무슨 말씀을.... 그럴 리가 없잖아요."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청년이 장난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난 번에 한참을 아무 말씀 없이 계셨는데 결국은 곤히 주무시고 계셨잖아요 이번에도 그러시지 않도록 기다리는 동안 제가 계속 말을 붙여드릴게요." 로제트도 희미한 웃음기가 배어든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이러고 계실 시간에 연습을 더 하시는 건 어떨까요 마르코씨 다른 단원 분들은 오늘 집합 전까지 열심히셨다고요." 머쓱하게 웃음을 머금은 마르코와 로제트는 단원들이 모여있는 무대로 올라 오늘 있을 연주를 준비하였고 도시에 어스름이 깔리고 하나 둘 도시를 밝히는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할때 악단은 그날 저녁도 찾아온 관객들을 위한 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감탄사, 숨소리 ,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 만큼의 감정이 빚어내는 다양한 냄새들은 약간 긴장되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만큼은 어느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즐거웠습니다. 박쥐 아인 중에서도 로제트의 목소리는 특별했습니다. 이전에도 노래를 잘 부르기로 이름난 박쥐 족의 인간들이 더러 있었지만 로제트의 목소리는 사람들이 듣는 것보다 더 넓은 곳까지 목소리를 실어 보낼 수 있었으며 다른 이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만큼 그녀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있어서도 영향력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목소리는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연일 로제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먼 도시에서도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부모님을 따라온 철 없는 아이들도 칭얼댐을 그치고 음악회에 오기 전까지 다툰 일로 서먹해 하던 연인들의 마음도 풀어지고 하루하루 새로운 내일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슬픈 생각에 젖어든 사람도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악단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로제트가 이전에 살던 마을의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것이 고향을 방문했던 악단 지휘단장의 귀에 들어오게 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이 내린 재능을 펼치지 않겠냐는 제안은 로제트로 하여금 거절할 수 없는 진심 어린 열의와 간곡함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단원들도 비록 이름난 음악가들도 아니고 실력도 그리 빼어나지 않지만 서로 따듯하고 독려해주는 분위기와 스스로의 연주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인 것은 단장과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악단에 어렵지 않게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노래에 많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의 행복과 즐거움운 감정은 로제트 본인도 있어서도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이 한데 모이는 구심점이자 돈을 버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들을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인 단장 포르테 그리고 유쾌하고 서글서글한 바이올리니스트 마르코 ,사실 피아노보다 현악기가 더 좋았다는 피아니스트 알토 좋지 않은 폐활량을 극복하고 플루트 연주자가 된 아리아 도심에 익숙하지 않은 로제트를 가장 가까이서 도와준 동료들 덕에도 낯선 도시에 익숙해지고 관객들 앞에 서는 것도 어렵지 않게 느껴질 무렵 로제트는 그 어느때보다도 즐겁고 감정적으로 충만한 다시 찾아오지 않을 밝고 행복한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악단과 로제트가 겨울의 감사 축제에서 처음 만난 이후 어느새 다시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습니다 단원들이 모여있는 단상 앞에 서 있는 단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듯 푸석해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고 늘 밝고 경쾌한 걸음걸이, 활력 있던 목소리로 단원들에게 인사했던 평소와 달리 한참이나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안정적이지 못한 호홉과 불안함과 미안함, 그리고 슬픔이 함께 섞인 감정들에서 빚어진 냄새를 통해 로제트는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어떤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인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미 결말이 정해진 느낌이지만.... 피할 수 없는.. 부디 자신이 틀리기만을 바랬지만 단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앞으로의 공연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 악단의 재정적 문제와 더불어 이전부터 빚을 져 오면서라도 단원들의 봉급을 미루지 않았던 단장은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되었고 단장이 반 평생을 보내 일구어낸 음악회장의 소유권은 다른 유망 악단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일이었습니다. 단원들의 탄식.. 그리고 이따금씩 피어나는 소금기를 머금은 냄새와 훌쩍이는 소리.. 로제트는 자신이 서서 노래하고 거닐었던 복도와 단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웃음 지었던 대기실 지난 시간 동안 익숙하고 아늑하게 느껴온 공간들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무대는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며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자신에게 있어서 집과도 같은 음악회장 그리고 동료들과도 헤어질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시큰하게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한참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때.. 불현듯 마르코가 일어나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고 자리에 모인 소수의 단원들도 각자의 악기를 들고 그동안 함께 해왔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평소보다 공허하고 넓게 느껴지는 무대와 객석을 단원들의 연주 그리고 로제트의 노래가 가득 채우는 듯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연주자이자 관객이었으며 서로의 행운을 기원하는 동시에 이 정든 곳에 헌사하는 마지막 연주였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곡까지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회장을 나섰을 땐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그들의 이정표를 자처하듯 별들이 하나 둘 총총 뜨기 시작하는 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정든 딘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주고 받고 음악회장을 뒤로 하고 떠날 때였습니다. "로제트 !" 마르코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마르코..!" 약간의 망설임이 묻어나는 듯한 느낌 로제트는 그가 입을 열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었습니다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평소라면 잘 알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만큼은 헤아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들 두사람이 그리고 오늘까지 함께한 다른 사람들 모두의 감정이 한데 어우러졌던 직후여서 그녀의 감도 무뎌진 것이었을까요? "미안했어요.. 그 예전에 처음 뵈었을때." "처음..? " 두 눈을 감은채 사뭇 진지라게 생각을 곰씹어 보던 로제트는 잠시 후 기억난 듯이 작게 눈썹을 찡그렸습니다. "아... 처음 뵈었을때 일이면 그때 말이군요...! 악보를 왜 안 보고 계시냐고 연습에 열의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었죠...!"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후회가 뒤섞인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해요 그리고 늘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당신의 목소리는 아름다울 뿐더러 사람의 마음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있어요. 저는 당신을 뵙기 전 확고한 목표도 없이 정체된 삶에서 더 나아갈 생각도 하지 못했지요... 이제 악단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저는 앞으로도도 다른 악단을 찾거나 홀로 일어서볼 생각입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셨음에도 늘 열정적으로 겸허하게 노래하시던 당신께 감명받고 존경하고 있었어요 항상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로제트는 옅지만 분명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그때 일은.. 엄밀히 말하면 악보를 안 보고 있던 게 맞긴 했죠(이 부분에서 마르코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처음엔 다소 얼결에 이곳에 왔고 재능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척, 감정을 느끼고 다른 분들이 들어주실 수 있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 제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여러분 덕택에 다시 없을 아름다운 추억을 안고 떠날 수 있어서 기뻐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바래요." 마지막으로 로제트는 마르코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흔들어주었고 로제트는 언뜻 드레스의 장식과도 같이 보이던 날개를 펼쳐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멀리 날아 보름달 빛을 받으며 멀리, 멀리 날아가 보름달에 드리워진 베일 같은 구름 아래를 날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희미한 꽃내음이 감돌았고 마르코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떠나간 로제트를 바라보던 마르코의 표정은 쓸쓸하기도 하고 아직 못 다한 말이 있는 것 같은 오묘한 표정이었지만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자유로이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이따금씩 자신들을 떠올리며 노래 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되뇌였습니다. "잘 가요... 로제트.." ++++ 바깥에서의 일들이 늘 평화롭고 좋은 일들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에서 단체, 국가 간의 싸움으로 번져 지나는 곳마다 피와 삶의 끝에서 피어나는 악취들 그리고 쇠와 철로 벼려낸 날붙이에서 서서히 불의 정령들을 강제로 구속시키며 만들어낸 무기들에서 피어나는 화약 냄새들이 세상을 덮을때 로제트는 많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한 목소리들과 감정에서 피어나는 냄새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게 되었고 세상을 뒤덮은 전쟁이 닿지 않는 멀고 먼 숲으로 떠나 지금의 던전 깊은 곳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세상은 평온해졌고 하나 둘 다시 집들이 생겨났고 집들이 모여 마을이 되고 도시를 이루기도 하면서 세상은 다시 이전처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로제트가 거주하는 던전까지 서서히 사람들의 흔적이 닿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던전이 있는 마을의 주민들도 로제트도 서로의 영역에 들어설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홀로 있는 것이 언제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것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한편 이따금씩 슬프고 외롭기도 했지만 그녀를 따듯하게 해주었던 이들과의 추억은 오래도록 남았고 잠을 이룰때마다 그들이 꿈에 나온 것이 기억날 때가 그녀에게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감정이 솟아날 때면 로제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이 어둡고 깊은 던전을 찾아온다면 혹은 자신이 던전 밖을 나가 다른 새로운 만남과 이야기를 다시 한번 만날 날이 올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옛날,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채우는 많은 감정들과 기억 희망을 담은 노래였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던전과 동굴을 울리고 더 나아가 던전과 인접한 마을까지 퍼져나갔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이 어렴풋이 느끼는 것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그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누군가가 던전을 탐험하고 가장 깊은 곳에서 그녀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 의상 설정

Elchoa님께서 설정 짜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평행세계의 지구. 이 곳은 우리와 거의 똑같아 보이지만, 인류가 동물의 특성을 발현하도록 진화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피부색이나 눈 색, 머리 색 정도만 다른 우리 지구의 인류와는 달리 종족이라는 개념이 살아있는 지구이다.


그러다 보니, 이 지구에서도 종족으로 인한 차별 등이 많았지만, 점점 사회가 발전하면서 종족 간 평등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의식이 퍼지면서 그간 멈춰있던 기술의 진보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200여 년이 지나고, 이 곳의 사람들도 2021년의 지구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게 되었다.


로제트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로, 그녀는 박쥐의 특징을 갖고 있는 인간이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의 직업은 플로리스트로, 작은 화원과 온실을 운영하면서 꽃을 키우고, 때로는 새로운 종의 꽃을 개발하는 등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올 여름은 폭염으로 인해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고, 온실의 꽃들도 여러 송이가 죽어나가는 등 고난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쩌기 힘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많이 속상한 느낌은 숨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변에서 권한 대로, 꽃집을 잠깐 쉬고 어딘가로 떠나기로 했다. 


로제트 컨셉스케치





로제트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