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중에 더 그릴거임)





키 163 몸무게 46

앨리스터(Alistair)

생일 9.27

19살

R18금지!



성격

앨리스터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며,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을 추구 그리고 그녀는 차분하고 신비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미스터리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는 항상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이를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앨리스터는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신중하게 판단한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직한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의 신비로운 성격 때문에,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좆까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또한 앨리스터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혼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며, 흥미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은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그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기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정한 의미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






당신은 마치 한 장의 그림같아요. 

어둡고 까맣던 캔버스 위에, 

빛나는 색채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짙은 파란색으로, 

때로는 화려한 빨간색으로,

 그리고 때로는 부드러운 노란색으로, 

당신은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어 주죠. 


당신이 그려낸 것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글미션


하늘을 나는 배에 선착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녀는 조금 의문이었다. 선착장이라는 단어는 본래 바다내음이 물씬 풍기고, 거친 어부들의 땀과 근육이 느껴지는 단 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곳은 분명히 선착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바다는커녕 강도 호수도 보이지 않고, 거친 어부 대신 감색 제복을 입은 안내원들만이 탑승을 돕고 있을 뿐이 다. 이제 곧 소녀가 탑승할 차례였다. 소녀는 안내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안내원의 확인이 끝 나자 곧바로 배로 올라갔다. 이 배의 이름은 제리코- 36 대륙 횡단 비행선, 목적지는 루스델 린 행. 갑판 위에 오른 소녀는 바로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도 구름이 아름다웠다. 톱니바퀴와 마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는 곳, 하 늘. 그 풍경은 어쩐지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소녀는 잠시 하늘의 경치를 감상하다. 이 내 그녀의 옷태를 정돈하며 선실로 들어갔다. 소녀의 이름은 앨리스터, 마도기재연합 소속 3 급 해결사였다.

“대단해... 정말로 이 정도 질량의 선박이 고공 비행이 가능할 줄은.”

비행 시작 3시간째, 갑판 위에서 풍경을 바라보던 앨리스터는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사람을 제외한 순수 선박 배수량만 하더라도 24,800톤. 비행선으로서는 유례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이 즈였다. 이 정도 규모를 유지하면서 고공 비행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복잡 한 기술이 적용되었겠지. 그녀는 해결사였지만, 그 이전에 공학도이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구 조를 뜯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당연히도 제 3자의 구조 확인은 허락받을 수 있을 리 없다. 요즘에는 공학도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서, 톱니바퀴 하나라도 함부로 확인했다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추적자에 게 쫓겨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상상으로 그칠 뿐. 대신 나중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로 한다. 루스델린에는 수준 높은 공학자가 많다고 들었으니까.

갑판을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멀미인가? 하지만 여태까지 비행선 에서 멀미를 해본 적은 없는데.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녀는 일단 선실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딛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어라? 앨리스터 씨잖아. 앨리스터 씨도 루스델린에 가는 중이야?”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설마 하면서 고개를 드니, 눈앞에는 반갑지 않은 얼굴이 있다. 검 은 머리를 하고, 갈색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입은 금안의 소년, 여유로운 듯하면서도 교활해 보이는 미소를 하고 있다. 앨리스터는 이 소년을 알고 있었다.

“...토비아스?”

토비아스라고 불리운 소년은 자연스럽게 앨리스터의 어깨에 손을 둘러 왔다. 앨리스터는 굳이 싫은 티를 숨기지 않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토비아스, 마도기재연합 선정 제일 하는 말이 꼴 보기 싫은 해결사 1위. 그리고 허구한 날 앨리스터의 업무를 방해하는 인간이기도 했다.


“뭐야, 달라붙지 마.”

앨리스터는 토비아스의 손을 자신의 어깨에서 걷어내며 말했다. “에엥. 난 생존을 위한 행동이었는데.”

“어깨동무가?”

또 허언이다. 앨리스터는 토비아스를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지만,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이는 애초에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 아마 토비아 스가 딱 절반만 거짓말을 덜 했더라도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진짜야. 저어기 북쪽에, 티에르라는 지방에서는 그런다니까?” “그러시겠지.”

“속고만 사셨나....”

토비아스가 툴툴댄다. 앨리스터는 피식 웃고는 갑판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행선은 이미 최 고 고도에 도달해서, 머리 바로 위에 구름이 떠다니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래에는 광활 한 대지가 있다. 앨리스터는 어느새 그 경치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런 그녀를 놀리려고 앨리 스터 곁으로 다가온 토비아스도 어느새 그녀와 같이 저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도, 차도, 심지어는 마법사들의 탑도 전부 점처럼 작게 보인다.

그러나 잠시간의 감상은, 둘의 뒤에서 들려오는 쿵 소리에 의해 깨졌다. 동시에 고개를 돌아 보니, 거기에는 거의 제 몸만한 기계를 멘 채 넘어져서 버둥대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거 참, 고맙다. 욕심내서 사이즈를 키웠더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구나.”

앨리스터의 도움을 받아 일어난 남자가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남자는 감색 정장 조끼에 초 록색 넥타이를 메고 있었고, 입가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30대쯤이려나. 그러나 확신은 없었다. 앨리스터는 외모와 나이가 다른 인물들을 너 무 많이 봐왔으니까.

남자의 이름은 멜빈이었다. 멜빈은 자신을 발명가라고 소개했다. 그가 등에 멘 거대한 기계장 치도 멜빈의 발명품이었는데, 그 용도를 물어봐도 아직은 기밀이라며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멜빈의 태도가 워낙 완고했기에 앨리스터는 기계 얘기를 그만두고 대 신 일상적인 화제로 넘어갔다.

“멜빈 씨는 왜 루스델린에 가시나요?”


“으음, 연구비 때문이지. 지금 나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돈이 정말 한 푼도 남지 않았는데, 루 스델린에 오면 연구비를 후원해 주겠다는 편지를 받았거든.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간단다.”

멜빈이 멋쩍게 대답했다. 앨리스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티내지는 않았지만, 후원을 받으 며 연구하는 발명가는 흔치 않다. 소수의 인맥을 제외하면 몇 능력있는 연구자만이 후원을 받 을 수 있는데, 이 사람도 아마 꽤나 실력 있는 발명가라고 생각된다.

그때 갑자기 멜빈이 조끼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앨리스터에게 들이밀었다. 앨리스터 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는데, 멜빈의 손 안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도 금속 단추였다.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구나. 이것도 내 발명품 중 하나인데, 멀미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단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하나 선물로 주마.”

앨리스터는 오해를 사과한 후,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하고 단추를 받아들었다. 단추를 집어들자 마자 과연 정말로 울렁거리는 속이 단숨에 잠잠해졌다. 신기해하며 그 구조를 궁금해하던 도 중 토비아스가 끼어들었다.

“아저씨, 제 건 없나요? 저도 멀미가....”

“그, 그래? 어... 다행이다. 하나 더 있구나. 자, 여기 받으렴.”

멜빈은 주머니를 열심히 뒤적이다, 가까스로 단추를 하나 더 찾아내어 토비아스에게 건네었다. “이런, 시간이 다 되었구나. 얘들아. 나는 슬슬 돌아가 보마.”

그렇게 말하고 멜빈은 기계를 다시 등에 메고 일어섰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며 멜빈 이 선실 문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던 앨리스터는, 멜빈이 들어간 문이 닫히자 이내 나지막히 말했다.

“...단추는 왜 받은 거야?”

“몰라?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지.”

배를 부여잡고 축 쳐져있던 토비아스는 어느새 멀쩡히 앨리스터 옆에 서서 어깨를 으쓱인다. 멀미 따위는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건강해 보인다. 앨리스터는 단추를 튕기는 토비 아스를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이 답없는 인간.”


*

오후 두 시, 하지만 주변은 온통 깜깜하다. 앨리스터는 램프의 작은 불에 의존해, 벽을 더듬으 며 출구를 찾고 있었다. 경황도 없이 방 탈출 게임을 하고 있는 이유는, 굳이 말하면 10분 전 선내에 가해진 충격이 원인이었다. 선체가 상승기류를 만난 탓이었는데, 그 때문에 앨리스터는 발을 헛디뎌서 운 나쁘게도 열려 있던 해치로 빠져 버린 것이다.

해치가 그리 높지 않은 덕분에 다리를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다시 올라가는 사다리 가 없는 것은 불운이었다. 아니, 애초에 해치에 빠져버린 것부터 불운이었다. 어떻게 그 타이 밍에, 심지어는 바로 옆에 열린 해치가 있을 수 있담. 그러나 억울해 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노릇이었다. 앨리스터에게는 그보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사람이 타 는 여객선이니만큼 별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비행선의 지하에는 온 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튀어나오곤 했으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서두르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아직 닥치지 않은 불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앨리스터 앞의 바닥이 사실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며, 그녀는 조그만 램프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전등이 없었기에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균형을 잃은 앨리스터가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으, 머리야.”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의 낙하를 경험하는지. 앨리스터는 얼얼한 머리를 붙잡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꺼운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박스가 흩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곳은 적재 창고 인 듯 싶었다.

그러던 중, 출구를 발견했다. 네모난 문 뒤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와 문의 실루엣을 만들 었는데, 덕분에 어두운 창고 안에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앨리스터는 안도의 한숨 을 내쉬며 출구 쪽으로 걸어가다,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고 멈춰섰다.

“.......”

확실하다. 절그럭거리는, 기계장치의 구동음 같은 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문 밖에서 난다고 생 각했지만, 잘 들어보니 소리는 분명히 방 안에서 나고 있었다. 앨리스터는 공학도적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했다.

다행히 소리가 나던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방금 전 충격 때문인지 시트가 풀어져 있는 한 상자에서 나고 있었는데, 앨리스터는 그 안을 램프로 비춰보았다. 그리고는 제 눈을 의심했다. 상자 안에는, 아홉 살 즈음의 소녀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던 것이다. 앨리스터 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녀가 든 상자와 정확히 똑같은 크기의 상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

“인신매매라고?”

토비아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 그냥 무임승차자들일 수도 있잖아?”

“그랬다면 깨웠을 때 일어났겠지. 다들 동공이 풀려 있었어. 절대 자연적으로 잠든 게 아니 야.”

앨리스터는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화물인 줄 알았던 그 무수한 박스들에 들어 있던 꼬마아이 들. 그녀는 등에 조금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뭐가 좋다고 꼬맹이들을 팔아넘기는데?”

“기계심장. 창고에 갇혀 있던 아이들은 전부 가슴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어.” “...정말?”

토비아스의 눈이 조금 커졌다. 기계심장, 언젠가 신문에서 ‘인간의 불로불사가 현실로 다가왔 다’ 라며 기계심장 이식술을 소개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어딜 가도 기계심장 이야 기 뿐이었지. 드디어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도 들어본 것 같다. 나 참. 기계심장은 사실 그런 거창한 류가 아니다. 기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엄청나게 부풀려졌지만, 기계심 장은 그저 심장병 등의 이유로 망가진 심장을 보조하는, 일종의 의료 보조 장치일 뿐이다.

심지어 기계심장이 구동하기 위해서는 동력원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그 동력원으로 마력석을 요구했다는 것에 있었다. 마력석은 작은 구슬 크기인 한 알이 웬만한 집 한 채 가격을 호가하 는 값비싼 보석이다. 원가 자체가 이렇게 비싸니 부잣집 아이들만 이따금 시술받을 뿐, 대중 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납치당한 아이들 전원이 기계심장 이식자라면 범인들의 속셈도 짐작이 갔다. 기계심장 의 중앙에서 동력원으로 구동하는 마력석. 그걸 갖다 팔 계획이겠지.

...당연히, 동력원이 사라진 기계심장은 구동을 멈춘다. 아이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겠지. 그 수많은 아이들이 말이다. 앨리스터는 제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좋 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장면을 보고도 모른척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녀 는 고개를 드고 토비아스에게 말했다.

“범인을 잡자. 비행선이 착륙하기 전에 인신매매범 일당을 구속하면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을


거야.”

솔직히 도움을 요청하는 게 영 내키지는 않았다. 웬만하면 혼자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앨리 스터였고, 실제로 그녀가 협력하여 일을 진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 신변을 파악하고, 체포하는 모든 과정을 비행선이 도착하기 전까지 모두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토비아스가 합류한다면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 이 생긴다. 토비아스는 적어도 정보전에 있어서는 그녀를 상회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하지 만 정보전을 제외한 모든 것은 앨리스터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그가 있 다면 제일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예상되는 범인 수색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비아스는 자기 머리를 꼬며 딴청만 피우고 있었다. 앨리스터는 인내심 있게 토비아 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토비아스가 하품을 한번 하고 툭 뱉은 말은,

“내가 왜?”

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조금 열이 뻗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정말 한 가닥 의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듯한 심드렁한 말투. 실망하지는 않았다. 앨리스터는 이미 토비아스 의 사고체계와 선악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사실 토비아스의 방식이 그 리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선악이 기술과 마법에 밀려 판단의 대전제라는 지위를 잃어버린 세 계에서, 오히려 별종은 앨리스터 쪽이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저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별종의 눈에는 다른 모두가 별종인 것이다.

앨리스터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도 자신의 특이성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구태여 바꿀 생각도 없었다. 남들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에는 그녀가 믿는 가 치가 너무 소중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사람들로 한정한다면, 토비아스는 의외로 제법 괜찮은 구석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네가 좋아하는 걸 줄게.”

그렇게 말하며 앨리스터는 엄지와 중지로 동그란 원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 제스처가 뜻하 는 바는 자명했다. 돈, 기술과 마법의 비대해진 몸집에도 위상을 잃지 않은, 인류의 가장 원초 적이고 본능적인 가치. 앨리스터는 토비아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눈치챘다.

“얼마나?”

아까와 비슷한 말투이지만, 훨씬 흥미가 가는 표정이다.

“나는 루스델린 마공학 협회지부가 주최하는 시상식에 참여하려고 이 비행선을 탔어. 시상자 의 자격으로 말이지. 만약 나를 도와준다면,”


일부러 한번 말을 끊고 토비아스의 반응을 관찰한다. 그의 눈이 살짝 가늘어지는 게 보인다. 집중하고 있다. 앨리스터는 약간 뜸을 들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상금의 7할을 보수로 줄게.”

토비아스의 눈이 더욱 가늘어져, 꼭 눈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곧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새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인다면 티없이 순수한 아이로 착각할 법한 깨끗한 미소. 그러나 그 안에는 교활함이 숨어 있다. 그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역시 앨리스터 씨는 말이 잘 통해서 좋아.”

그는 손을 내밀었다. 앨리스터는 약간의 꺼림칙함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며, 토비아스가 내민 손을 잡았다. 비행선 착륙 예정시각까지 앞으로 5일. 서둘러야 했다.

*

“내 생각을 말해줄게. 흑막은 선장이야.”

토비아스가 말했다.

“꼭 장담하듯이 말하네. 근거가 있어?”

약간은 딴지를 걸 요량으로 한 말이었지만, 토비아스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앨리스터 씨, 당신이 저 아래에서 본 꼬맹이들이 몇 명이었지?”

지도 꼬맹이면서, 라는 말은 꾹 참고 대답한다.

“박스 안을 전부 확인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박스의 개수로 추정해보자면 아마도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일 거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아이들은 일곱 명이었고.”

“그럼 스무 명으로 가정할게. 앨리스터 씨, 만약 당신이 납치범이라면 꼬맹이들이 담긴 박스 스무 개를 승무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배 안에 숨길 수 있어?”

“음... 화물으로 위장하고 싣는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싶은데.”

“일반적인 화객선1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이 배는 순수 여객선이야. 승객 개인이 배 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은 소지품으로 인정되는 50kg까지가 한계. 박스 하나를 50kg

1 화객선(貨客船) - 화물과 여객을 함께 운반하는 배

 

로 간주해도 공범이 최소 스무 명은 필요한 셈이지. 즉 승객이 범인이라는 전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어.”

“공범이 스무 명 이상일 가능성은 없는 거야?”

앨리스터가 질문했다. 이 배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선 중 하나이고, 승객으로만 한정해도 500명이 넘는 인원이 탑승해 있었다. 그렇다면 그중 스무 명 정도는 공범일 가능성도 있지 않 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흑막이 소수일 거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승객이 범인일 가 능성은 극히 낮아. 앨리스터 씨가 창고에서 본 박스는 모두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상자라고 했지?”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봐. 완벽하게 같은 디자인의 상자 스무 개가 각기 다른 승객의 소지품으로 접수된다 면, 선원으로서는 당연히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겠어?”

“...밀수품일지도 모르니까?”

이번엔 토비아스 쪽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조금만 신경쓰면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외관을 전부 나무떼기 박스로 통일했 다는 건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단 말이지. 그럴 필요도 없고.”

범인이 선원이라면, 선박 비행에 필요한 화물이라고 둘러대면 될 일이니까. 앨리스터도 이해할 수 있었다.

“좋아. 알겠어. 하지만 왜 하필 선장이야? 승객을 빼더라도 이 배에는 사람이 많잖아.”

토비아스는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잠시 후 그가 건넨 것은 작은 뱃지와 꼬깃꼬깃하게 접은 서류종이 한 장이었다.

“선장실에서 발견했어. 선장실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장소이니 이건 선장의 소지품이겠지.”

앨리스터는 먼저 뱃지를 확인했다. 방패 모양의 황동판 위에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용 모양이 새겨진 고급 뱃지였다. 이 심볼은 분명 프로스트 디어라는 이름의 마피아 조직의 심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악명 높은 조직이기에 앨리스터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범인이 프로스트 소속이라고?”


“그럴 가능성이 높지.”

프로스트 놈들이랑 엮이면 귀찮아지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앨 리스터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다음으로 서류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눈이 휘둥그레졌 다. 거기에는 만년필로 대충 휘갈겨 쓴 표가 적혀 있었다.

이블린 메벨 ... 안토니오 리델 ... 헨리 스턴디어 ... 페르마 리후버 ... ...

...

“이건.”

“아마도 납치당한 어.”

11세, 151cm, 47kg. 9세, 133cm, 32kg. 8세, 127cm, 30kg.

꼬맹이들의 신체정보 표겠지. 총 23명, 전부 열두 살 미만의 꼬맹이들이었

열두 살. 구체적인 숫자로 들으니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앨리스터는 서류를 부여잡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는데,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인간들에게 본능적인 혐오감이 솟아올랐기 때문 이었다. 나는 평생 그들을 이해할 수 없겠지.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성적인 사 람이었지만 인간의 본능에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앨리스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단죄자가 아니었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구출이고 범인 구속은 그 수단일 뿐 이다. 사심에 휘둘리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차분해져야 했다. 앨리스터는 손바닥을 짝 소리 가 나게 부딪쳤다. 토비아스는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토 비아스에게 말했다.

“가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토비아스는 그녀를 뒤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문득 앨리스터가 너무 흥분한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곧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앨리스터의 뒷모습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평소와 같은 차분하고 곧은 걸음걸이. 토비아스는 그녀의 그림자를 따라 밟 으며, 앨리스터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없이 작게 미소지었다.


-루스델린 도착까지 앞으로 60시간.

*

체크 코트를 입고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남자가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방은 복도 맨 끝에 있는, 금장으로 장식된 팻말이 문에 붙은 방이었다. 남자는 뻐근한 어깨를 매만지며 손잡이를 돌렸다. 그날의 업무는 유독 피곤했기에, 빨리 들어가서 좀 쉬고 싶었다. 그러나 방 에 들어서는 남자를 맞이한 것은 달콤한 휴식이 아닌 혼란 마법이었다.

“......!”

극심한 어지럼증과 구토감에 머리를 부여잡던 남자는 이내 배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주저앉았 다. 남자의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토비아스, 구속해.”

남자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남자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마력 사슬에 칭칭 묶여 무릎꿇렸다. 위에서 이번에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은 여자, 한 명은 남자 같았는 데, 어지러움 때문에 목소리의 방향을 정확히 구별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시작할게. 이상이 생기면 바로 깨워줘.”

남자의 왼편, 침대에 걸터앉은 토비아스가 앨리스터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토비아스가 시작하 는 것은 정신 연결, 마력으로 서로의 정신을 잇는 마법이다. 범인의 기계심장 판매처를 알아 내기 위해 택한 방법이지만, 시전자 둘 다 고도의 안정 상태를 필요로 하기에 유사시 도움을 줄 수 있는 제 3자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앨리스터가 제 3자 역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춤의 레이피어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문 옆에 다가가서 섰다.

“.......”

토비아스는 곧 침대에서 기절한듯 쓰러졌다. 정신 연결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앨리스터는 두 사람과 문 밖의 상황을 계속해서 점검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에 대 해 생각하고 있었다.

저 사람, 뭔가 이상하다.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너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선장이 얼마만큼의 전투력을 가 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일부러 준비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가장 제압 성공률이 높은 방법을


택하긴 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상하리만치 기습에 대한 내성이 없다. 인신매매범이라는 작자가.

물론 범죄자라고 꼭 전투력이 높고 기습에 잘 대처하는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 남자 는 허리춤에 대충 달아둔 의장용 검을 제외하고는 아예 무장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유사시에 전투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무장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문에 그치고 있었다. 토비아스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저 서류가 있는 이상 선장이 범인이라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니 의심하면 안 되는데, 자 꾸 생각이 머리를 찌른다. 정말로? 정말로 저 사람이 범인일까? 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애초에 저 서류 자체가 우리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라거나.

“...아니, 그럴 리는 없지.”

너무 나갔다. 앨리스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범인이 무슨 수로 우리가 자 기를 추적한다는 걸 안단 말인가? 심지어 선장을 의심할 걸 알고 그의 방에 서류까지 가져다 놔야 한다. 범인이 망상병자가 아닌 이상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그녀는 문밖을 슥 보고는 다 시 돌아왔다. 마침 토비아스가 깨어나려고 한다.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곧 토비아스는 눈을 떴다. 멍하니 앉아서 눈을 끔뻑이는 토비아스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했지 만, 언제 이상을 눈치챈 경비원들이 들이닥칠지 몰랐기에 앨리스터는 일단 토비아스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났어? 빨리 빠져나가자. 저 사람까지 데려가려면 시간이 없어.” “잠깐... 앨리스터 씨. 기다려 봐. 뭔가 이상해.”

토비아스가 말한, 방금까지 그녀의 머릿속을 차지하던 의문에 앨리스터는 그의 팔을 잡고 있 던 손을 놓았다. 분명 시간이 없었는데도 어쩐지 토비아스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저 사람의 기억을 살펴봤거든. 일단 우리가 찾던 선장은 맞아.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어.”

“다른 곳에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야?”

“그게....”

토비아스는 말을 흐렸다. 평소의 그처럼 여유로운 표정이 아닌 진지한 표정이었는데,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애들을 납치한 기억이 없어. 수하들에게 시킨 것도 아니야. 애초에 기계심장을 팔아넘기겠 다는 거래 자체를 하지 않았어.”


“뭐? 잠깐... 그럼.” 토비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이 아니야.”

앨리스터는 무슨 소리냐며 따지려고 입을 열었지만, 토비아스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그만두 었다. 불쾌한 듯한 눈매와 굳은 입가.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앨리스터가 납득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토비아스의 주장이 자기 머릿속을 쿡쿡 찔러대던 의문의 방향 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해도, 서류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이상 전부 지엽적인 추측일 뿐이었 다. 앨리스터는 거친 날숨을 내뱉었다.

“믿을게. 일단 돌아가자.”

그러나 앨리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어쨌거나 둘은 협력 관계 다. 그런 이상 앨리스터는 토비아스를 믿어야 했다. 설령 그것이 한없이 거짓에 가까운 진실 이라고 할지라도. 둘은 쓰러진 남자를 두고 선장실을 빠져나갔다.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다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루스델린 도착까지 앞으로 28시간.

*

“선장은 범인이 아니다. 확실한 거지?”

앨리스터가 물었다. 토비아스와 눈을 마주친 채였다. “맞아. 기억을 삭제한 게 아니라면 확실해.”

“정말로 삭제해버렸을 가능성은 없는 거고?”

토비아스는 그럴 리 없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알다시피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기억을 삭제할 수는 있어도 복원하는 건 불가능해. 그 사람의 기억 안에는 프로스트 디어와 연관되기는 커녕 범죄 자체와 연루된 사건도 없었어. 손 씻고 평생 깨끗하게 살아갈 요량이라면 범죄의 기억 따위 없어도 상관없겠지만, 꼬맹이들을 납치하 는 인신매매범이 그러고 싶을 것 같지는 않네.”


“그럼 그 서류는 뭔데? 범인이 우리가 조사할 걸 미리 알고 거기 갖다놨다는 소리야?”

“그게 문제야.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단 말이지.”

둘은 팔짱을 끼고 마주앉아 고민했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도 마땅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 다. 범인이 토비아스와 앨리스터를 어딘가에서 24시간 감시라도 했어야만 사건의 전개가 이해 되는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대전제가 허무맹랑하니 나오는 의견들도 멀쩡할 리가 없었다.

“선실에 도청장치가 붙어있는 거 아냐? 범인이 방마다 몰래 심어놓은 거지. 승객들을 감시하 려고.”

앨리스터가 의견을 냈다.

“범인이 남의 선실에 어떻게 들어가는데? 500개가 넘는 선실에. 물리적으로 무리잖아.” 기각.

“바람에 휘날려서 서류가 우연히 방문 밑으로 들어갔다던가?”

앨리스터가 다시 의견을 냈다.

“그냥 꼬맹이들 박스 23개가 창고로 우연히 흘러들어갔다고 해라.”

다시 기각.

“이 배는 제리코 사 거잖아. 제리코 사의 사장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거 아냐?” 앨리스터가 또다시 의견을 냈다.

“만약 그게 사실이면 3급 해결사인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또다시 기각.

“그럼 우리 몸에 도청장치라도 붙여놨나 보지!”

또또다시 의견.

“범인이 무슨 수로?”

또또다시 기각.


“망할!”

앨리스터는 테이블에 쿵 소리가 나게 머리를 박았다. 사건을 조사한다고 며칠 동안 밤을 새서 그런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과는 상관없이 토비아스에게 조금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말 좀 이쁘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정말 하는 말마다 얄밉기 그지없다. 사실 토비아스가 하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더 짜증난다. 하지만 자기가 토비아스와 나 서운하오 화났소 하고 마음 이야기를 할 사이는 또 아니었던지라, 앨리스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푹푹 쉬어댈 뿐 이었다.

한편, 토비아스 또한 고민하고 있었다. 앨리스터의 의견을 칼같이 잘라버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토비아스가 더 나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단한 철벽에 가로막힌 기 분이다. 해답의 해 자도 보이지 않는 기분. 애초에 범인이 우리를 감시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가. 도청장치를 몸에 붙여놓은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정말로 앨리스터의 말이 맞을지도.

토비아스도 얕게 한숨을 쉬며 앨리스터 쪽을 곁눈질했다. 여전히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 깔끔하게 정리된 단발도 오늘따라 푸석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시간이 없 긴 했지만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토비아스는 문득 멍하니 앨리 스터를 관찰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옷은 참 단정하다. 검정 레이스가 달린 진홍색 원피스 드 레스에 흰 조끼, 다시 검은 망토.... 신경써야 할 것도 많을 텐데, 앨리스터는 망토에 달린 단 추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옷차림을 하고 있다.

“...잠깐.”

그때 토비아스가 멍하니 말했다. 앨리스터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다. 덕분에 더 잘 보였다. “알겠다, 범인.”

앨리스터는 영문도 모르고 토비아스를 쳐다보고 있다. 앨리스터 말이 맞았다. 도청장치니 뭐 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것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앨리스터 쪽 을 가리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앨리스터의 망토를 가리킨다. 견장 역할을 겸하는 흑색 케 이프, 거기 달려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그것을 가리킨다.

금속 단추.


-루스델린 도착까지 앞으로 4시간.

*

얼마 전 있었던 선장 피습 사건 때문인지 갑판 위는 한적하다. 무릇 이런 장거리 이동수단 안 에서는 여행의 설렘이 깃들어야 하거늘, 다들 서로를 경계하며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으니 안 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갑판에 아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방에만 박혀 있는 게 답답 해서인지 애초에 습격 따위 신경쓰지 않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갑 판 위로 나와서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남자도 그중 하나였다.

안경을 쓴 마른 인상의 남자, 멜빈은 저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바다 위를 날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 와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쳤다. 이제 곧 루스델린 에 도착한다. 남자는 뻐근한 몸을 땡기며 기지개를 쭉 폈다.

“...저기, 멜빈 씨 맞으신가요?”

멜빈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무해한 인상의 남자아이가 있 었다. 항해 첫날 만난 기억이 있다. 토비아스라는 이름의 해결사 소년이다.

“오, 꼬마야. 무슨 일이니?”

“그냥요. 날씨가 좋지 않나요?”

둘은 나란히 서서 배의 선수 쪽을 바라봤다. 확실히 화창한 아침이었다.

“그렇구나. 정말 좋은 날씨인걸.”

“맞아요. 빨리 루스델린에 도착하고 싶어요. 아저씨는 루스델린에 도착하면 어디부터 가실 건 가요?”

“나? 나는 당연히 내 후원자를 먼저 만나러 가야겠지. 루스델린에 가는 목적이 그거니 말이 야.”

“아! 맞아. 그랬었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소년의 미소가 옆에서 보니 어딘가 비틀린 것처럼 느껴져서 멜빈은 눈을 비볐다. 다시 보니 역시 순수한 웃음일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세요. 후원을 받으며 연구하는 발명가는 많지 않잖아요? 아저씨는 무슨 물건을 발명하시길래 그 까다로운 부자들의 눈에 들었대요?”


소년의 눈이 반짝였다. 멜빈은 소년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글쎄. 한번 맞춰 볼래? 힌트를 주자면 내가 항상 들고 다니는 이 큰 기계란다.”

소년은 멜빈과 그 옆에 놓인 커다란 기계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해결사라도 문외한이라면 당 연히 맞출 수 없을 테니 멜빈은 적당히 지켜보다가 정답을 말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소 년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는 기계는 잘 몰라서. 그래도 왠지 용도는 알 것 같아요.”

“오, 한번 말해 볼래?”

“음....”

멜빈은 싱글싱글 웃으며 소년의 대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자 멜빈은 저도 모르게 숨죽인채 굳어버렸다.

“뻔하잖아요. 꼬맹이들 들어간 박스 창고로 이동시킬 때 썼겠지.”

“...뭐?”

멜빈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년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제기랄. 설마 위상 변환기를 껴안고 비행선에 탄 미친놈이 있을 줄은 몰랐지. 뭐? 발명품? 발명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걸 네가 만든 거면 이미 떼돈 벌었겠지.”

위상 변환기, 프랭클린 기계조합의 역작. 그 뜻 그대로 물체의 위상을 변환, 즉 공간을 이동시 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정거리는 약 300m 정도. 처음 등장했을 때의 기대와는 달리 애 매한 사정거리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오늘날에는 거의 잊혀진 물건이다. 그렇기에 자 기 발명품 행세를 해도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위상 변환기를 알고 있다면 다른 것도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전부 들켰다. 어디서 새어나간 거지? 멜빈의 질문에 대답하듯 그의 발치에 작은 단추가 떨어졌다.

“이거, 우리 말고도 건네준 사람들이 있더라? 군인이라던가. 용병이라던가. 뭔가 싸움 잘 할 것 같은 사람한테는 다 던져줬던데, 그렇게 들키는 게 무서웠나 봐?”

더 들을 필요 없었다. 멜빈은 토비아스에게 달려들었다. 이놈만 제거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 다. 하지만 멜빈의 공격은, 미처 닿지 못하고 그의 목에 겨누어진 얇은 레이피어에 의해 중단 되었다. 멜빈은 천천히 레이피어가 겨누어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멜빈 오브라이언, 당신을 해결사의 권한으로 구속합니다. 저항하거나 도주를 시도할 경우 향 후 취급되는 죄질이 무거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세요.”

레이피어를 멜빈에게 겨눈 채 앨리스터가 말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경찰에게 멜빈을 넘기면 사건에서는 손을 뗄 생각이다. 앨리스터는 정의 를 옹호하지만 정의 그 자체는 아니었고, 토비아스는 아무것도 옹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가 혼돈의 대변자인 것도 아니었다. 둘은 그저 인간이었고, 이 정도면 해야 할 일은 충분히 해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아까 나보고 꼬맹이라고 했었지? 어이가 없어서. 누구보고 꼬맹이래? 한번도 햇빛 못 쬐본 당나귀처럼 생긴 놈이.”

옆에서 토비아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담아두고 있었구나.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앨리스터는 일부러 멜빈만 쳐다봤다. 그를을 경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냥 끝 날 리는 없다. 이 정도로 경계심이 강한 범인이라면 분명 다른 수단을 더 숨겨두고 있을 테 니.

“...여기까진가.”

그러니 멜빈의 행동에 앨리스터가 조금 당황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저항 의지 없이 천천히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물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저 제스처가 통용하는 바는 항복 이다. 결투에서 패배한 고양이과 짐승이 배를 까는 것처럼, 멜빈도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다. 몸과 달리 그의 입만은 멈추지 않았지만 내뱉 는 말도 거의 자기변명과 궁금하지 않은 과거사 따위였다.

“들어주렴.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려던 건 아니었단다. 마력석이 없어진다고 기계심장이 꼭 작동을 멈추지는 않아. 운이 좋으면 기계심장을 달고 다니던 동안 진짜 심장이 고쳐졌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그럼 아이들은 거추적거리는 기계심장이 없어지고 나는 연구비를 얻고 서로 이득 아니겠니. 그러니까....”

앨리스터는 굳이 그의 말을 끊지 않았지만 듣지도 않았다. 지금은 항복의 의사를 표하고 있긴 해도 루스델린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경계해야 했다. 순순히 잡혀주나 했더니 막판에 도망치 는 적들을 앨리스터는 너무 많이 봤던 것이다. 그들을 놓치진 않았지만, 다시 잡을 때까지 꽤 나 고생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습관의 잔재이다. 토비아스 쪽을 흘끗 보면, 거기도 딱히 멜빈의 말을 듣는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한편, 토비아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시감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그 원인이 멜빈의 지 나치게 장황한 사연 팔이인지. 기이할 정도로 얌전한 포기 때문인지, 혹은 곧 도착하는 루스 델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체 에 집착하며 조각을 억지로 끼워맞추면 퍼즐은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하나하나 되짚어 봐야


했다. 분명 이유가 있었다. 생각해 보자.

역순으로 진행해본다. 범인은 멜빈 오브라이언, 34살의 발명가(이런 놈과 같은 직업으로 묶인 세상의 발명가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는 도청기능이 감춰진 단추를 통해 배 안에서 위험해 보이는 인물들을 감시했다. 그중에는 토비아스와 앨리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토비아스는 단추를 받은지 얼마 안 되어 바다로 던져 버렸기에 도청당할 여지가 없었지만, 앨 리스터는 소지품으로서 들고 다녔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덕분에 창고에서 범행을 발견한 것도, 범인 추적을 시작한 것도 모두 도청당했고, 멜빈은 선장을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 의 방에 서류를 숨겨놓았다. 아마 이것도 위상 변환기의 힘을 빌렸겠지.

그래, 위상 변환기. 저 기계로 의식 없는 꼬맹이들이 든 박스를 몰래 창고에 갖다놓았다. 꼬맹 이들을 납치한 이유는 그들이 전부 기계심장 이식자이기 때문이다. 기계심장에 든 마력석을 팔아치워 그 대가를 받는 것, 그게 멜빈의 근본적인 목적이리라. 물론 개인 간의 마력석 거래 는 불법이기 때문에, 거래를 대행해 줄 조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 만 멜빈이 꼬맹이들을 데려가면 조직이 마력석을 회수하여 값을 치러 주는 방식이겠지. 그 조 직이 프로스트 디어고 말이다.

잠깐, 그런데 멜빈은 기계심장 꼬맹이들을 조직까지 어떻게 데려가지? 위상 변환기는 무언가 를 전송시킬 순 있지만 그것을 다시 회수할 수는 없다. 단방향 전달이고, 만일 회수를 원한다 면 변환기를 박스 옆에서 작동시켜, 물체를 재전송하는 식으로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 말 은 멜빈이 변환기를 들고 창고까지 직접 잠입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애 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위상 변환기를 쓸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그럼 대체 어떻게 박스를 회 수한다는 말인가. 멜빈에게 수하가 있다고 해도 개인 단위의 규모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때 토비아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길한 예상이 있었다. 토비아스는 저도 모르게 표 정이 굳어졌다.

‘만일 멜빈이 조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조직이 멜빈에게 오는 거라면?“

모든 의문이 단번에 해소되는 명쾌한 정답. 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 또한 명확했다.

“앨리스터!”

다급한 외침, 앨리스터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본다. 토비아스는 급하게 손가락으 로 배의 선교2 쪽을 가리켰다.

“배의 목적지를 바꿔야 해! 위험해, 녀석들이 루스델린에 도착하게 둬서는 안 돼!”

인신매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멜빈은 그 정도면 충분할지 모르지만, 그 위에 있 는 조직의 생각은 달랐을 거다. 마력석 몇십 개 때문에 제리코 사와 충돌할 위험을 감수한다

2 선교(船橋) - 배가 항해를 할 때에, 선장이 항해나 통신 따위를 지휘하는 곳.

 

고? 수지타산이 너무 맞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애초에 제리코 사를 공격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마피아 조직들이 흔히들 하는 회사 박살을 통한 세력 과시, 그 표적이 제리코 사라면 인과가 맞았다. 제리코 사 소속의 비행선을 부숨으로서 제리코 사를 도발하고 자기네들의 세력을 과 시하려는 속셈이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두 세력 간의 충돌이 벌어진다. 누가 이길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제리코 사와 프로스트 디어, 둘 모두 거대한 세력 규모를 보유하고 있 다. 그럼 그 뜻은 간단했다. 루스델린 시내 한복판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 소리였다.

다행히 앨리스터는 당황한 것 같아 보이긴 해도 별말 없이 바로 선교 쪽으로 달려갔다. 알아 들었을까. 분명 알아들었겠지. 앨리스터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토비아스는 앨리스터 쪽을 잠깐 응시하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앞에는 방금 전의 항복은 어디로 갔는지 얼 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멜빈과, 행인으로 위장하던 일당 두어 명이 있었다.

“잡아! 잡으라고! 놓치면 네놈들 다 총살일 줄 알아!”

멜빈이 어느새 온갖 무기들을 꺼낸 채 악을 쓰고 있다. 그의 말을 따르려고 한 사람이 달려나 갔지만, 이윽고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얼굴을 부딪혀 고꾸라졌다. 토비아스가 세운 결계였다.

“안돼. 나랑 놀아 줘야지.”

“망할 애새끼가....”

맬빈이 이쪽을 노려본다. 상대는 세 명, 말단 같기는 해도 일단은 프로스트 디어의 조직원 두 명, 그리고 불법 무기들로 무장한 발명가 언저리. 토비아스는 그들을 도발하듯 손을 흔들었다. 너희 따위는 하등 상관없다고 말하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 하지만 뒷덜미에 흐르는 식은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입안에서 작게 읆조렸다.

“...이런. 전투는 내 전공이 아닌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도와줬지.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토비아스는 그들을 가로막고 서 서, 난처한 쓴웃음을 지었다.

-루스델린 도착까지 앞으로 30분.

*

앨리스터는 선교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녀가 토비아스의 기대만큼 모든 상황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절반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단순한 눈치였다. 적어도 루스델 린에, 최소한 목적지인 선착장에 도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하지만 저번의 선장 습격 사건 이후 선내의 보안이 강화되었던 참이다. 그래봤자 일반 선원들 을 경비 역으로 돌리고 순찰 주기가 더 짦아진 것 뿐이지만, 선교에 침입하려는 사실을 들키 면 아마 이 배의 모든 경비원들이 뛰쳐나올 테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자기 업무를 할 뿐인 사람들에게 레이피어를 꽂아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더욱.

“저기, 혹시 어디로 향하시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선상의 복도, 앨리스터가 처음 가로막힌 것은 중간쯤부터였다. 복도를 순찰하던 경비원의 단순 한 검문이었지만, 한가롭게 대화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던 앨리스터는 그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다. 말한다고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때부터는 전투의 반복이었다. 앨리스터는 그 직업 특성상 비살상용 제압 도구를 많이 가지 고 있는 편이었지만, 그 대부분이 소모성이었다. 경비원의 수는 앨리스터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많아서, 그녀는 선교로 향하는 문도 못 보고 준비한 도구들을 다 털어버려야 했다. 결국 그녀의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언제나의 레이피어였다.

사실은 죽이지 않는 게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정신계 마법에 능숙한 토비아스라면 조 금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앨리스터는 레이피어로 사람을 상처를 내지 않고 기절시키는 법을 알지 못했다. 선교 주변에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상대해야 하는 경비원의 수는 점점 많아 졌다. 앨리스터는 설사 잘못해서 그들을 죽여버릴까 겁이 났기에, 결국 레이피어를 뽑지 않고 맨손으로 전투하기로 했다.

“멈춰라! 이 이상 배를 혼란스럽게 만들 순 없을 거다. 루스델린에 착륙하면 네 죄를 묻지.”

그녀의 눈앞에 근육질의 장정들이 여럿 나타났다. 이번이 스무 번째던가, 아니, 서른 번째? ... 지금 생각할 건 아니지. 앨리스터는 가장 앞에 나와 있는 구릿빛 피부의 선원의 턱을 시원하 게 올려쳤다. 선원은 별 대응도 못하고 쓰러졌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뱃사람들이란 힘은 세 지만 싸움을 잘하냐고 물으면 또 다른 얘기니까. 직업적 차이일 뿐이다.

“뭐 이런...!”

짧은 단말마를 남기고 두 번째 선원도 쓰러졌다. 그녀는 별로 격투전을 선호하지 않았다. 신 체조건상 절대 맨손격투가 유리하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선호하는 쪽은 마법을 사용한 요격이 나, 그게 불가능할 때는 레이피어를 이용한 중거리전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했 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재를 뒤집어 쓰며 싸우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숨도 편히 쉬지 못할 정도로 바쁜 상황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 하고 싶은 대로만 굴러가던 가. 그녀는 앞입술을 살짝 물었다.


“잠깐...! 멈춰 봐!”

마지막 남은 사람은 한껏 당황하다가 눈을 꼭 감았다. 애초에 그는 싸움을 경험해 본적도 없 는, 운 나쁘게 경비 업무가 걸린 선원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에게 공격 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다리가 길었고, 앨리스터가 한참 전에 그의 다리 사이로 슬라 이딩해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앨리스터는 어리둥절해서 가만히 굳어있는 선원을 뒤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고 길을 서두를 뿐이었다.

그 후로도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앨리스터는 마침내 겨우 선교에 다다라 문을 열었다. 경비 원들 태반이 무장이 없거나 곤봉 정도밖에 없어서 다행이지. 제대로 된 무기라도 있었으면 정 말 큰일날 뻔했다. 지금도 거의 한계였다. 한참을 굴러서 그런지 깔끔했던 복장은 잔뜩 구겨 지고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그녀도 사실 자신의 복장과 꽤 비슷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끝 나지 않았다.

선교 안에는 당연하지만 사람이 많았다. 저번에 봤던 선장부터 항해사로 추정되는 인물에, 조 타수, 그 외 선원 여럿, 그들 전부를 상대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앨리스터는 품속에서 아껴 두었던 진동 폭탄을 던졌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비살상용 제압도구였다.

폭탄이 터지자 커다란 굉음이 나면서 선교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쓰러졌다. 미리 귀마개를 쓴 앨리스터를 제외하고. 진동 폭탄은 소리를 통한 진동으로 의식을 차단시키기에 생명에 지 장이 갈 우려는 없이 안전했다. 하지만 그만큼 기절에서도 빨리 깨어나니 서둘러야 했다. 앨 리스터는 지체 없이 조타수를 의자 밖으로 던지고 키를 잡았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선체는 착륙이 진행중이었다. 앨리스터는 전력으 로 키를 돌렸다. 참고로 그녀는 소형 비행선 면허가 있었고, 대형은 없었다. 물론 이 배는 대 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질 땐가.

총 배수량 24,800톤의 거대한 비행선이 땅을 가로지르듯 활강했다. 정상적인 착륙에서 보여줘 야 했을 부드러운 움직임은 이미 없었고, 선체에 엄청난 흔들림을 주며 떨어질 뿐이었다. 갑 자기 하늘에 드리운 그림자는 구름으로 착각할 만큼 거대했는데, 이는 실제로 선체가 높은 건 물은 거의 맞닿을 만큼 낮게 활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목적지인 선착장은 지나쳤다. 하지만 부족하다. 토비아스의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루스델린 안이라면 결국 큰 의미는 없을 거다. 도시를 벗어나야 했다. 더, 더 멀 리. 높고 낮은 건물들을 지나 녹음이 가득한 숲에 도달했을 때가 돼서야 앨리스터는 속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엥.”

...낮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 배는 구조 자체가 다른 대형 비행선이었고, 앨리스터의 방식으로 는 속도를 낮출 수가 없었다. 이 속도 그대로라면 땅에 부딪쳤을 때 배도 사람도 무사할 수


없다. 다급히 방법을 모색하던 앨리스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호수였다.

“...저거다.”

비행선도 일단은 비행‘선’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고로, 앨리스터는 배를 호수에 떨구기 시작 했다. 배가 물에 닿는 순간 무지막지한 흔들림이 선내에서 요동쳤다. 연기, 굉음, 흔들림, 다시 굉음. 앨리스터는 몇 초가 지나, 선체가 완전히 멈췄다고 판단될 즈음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다행히도, 배는 연기가 나고 있긴 해도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

*

다시 갑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방해꾼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갑판에 나와보니 알 수 있었다. 배에서 빠져나가려는 승객과 선원들이 앞다투어 출구로 뛰어가고 있던 것이다. 다행히 다들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았다. 앨리스터의 착륙 때문에 다친 사람이라도 있으면 양심이 많이 아 팠을 거다.

한편 저 밖에서도 익숙한 웅성거림이 들렸다. 공권력 특유의,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는 웅성 거림인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구출보다는 체포를 목적으로 온 것 같았다. 그새 토비 아스가 신고한 걸까?

그녀의 체력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의 탈출을 먼저 도왔다. 어쩔 수 없 다고는 해도 그녀가 벌인 일이었으니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이내 웬만한 사람들이 모 두 성공적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한 앨리스터는, 출구의 반대편, 갑판 저 끝으로 향했다.

유독 그쪽은 분진 연기가 많이 나고 있었다. 그녀는 딱 봐도 그 연기가 단지 선체 손상 때문 만이 아닌 전투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깊숙이 들어가자, 선실 쪽으로 들어가는 문 옆 벽에 토비아스가 엉망이 된 채 기대어 있었다. 앨리스터는 주변을 둘러봤다. 멜빈과 그 일 당도 근처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다행히 이쪽도 성공했구나.

“...성공은 무슨.... 죽을 뻔했는데.”

생각이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온 것인지, 저 구석에서 토비아스가 기듯이 말했다. 앨리스터는 피식 웃고는, 그의 어깨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워 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한 게 맞는 거지?”

앨리스터의 물음에, 토비아스가 이쪽을 흘겨본다. 그는 지친 목소리로 사건의 전말을 앨리스터 에게 설명해주었다.

“휴우. 그럼 여기 착륙하기를 잘했네. 실수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다행? 그 착륙이 다행이면 대체 다행이 아닌 건 뭐지....”

토비아스는 진심으로 고민하는 듯한 말투다. 앨리스터는 살짝 열받았지만, 빈말로도 자기 착륙 이 능숙하다곤 못한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넘어갔다. 둘은 천천히 출구로 향했다. 앨리스터가 토비아스를 부축한 채였고, 너나 할 것 없이 지치고 다친 몸이었기에 누가 배려하 며 걸음을 맞출 필요도 없었다. 잠깐 동안 묵묵히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때 문득 토비아스가 말했다.

“...저기, 앨리스터 씨.”

“왜?”

“그때 한 말 기억나? 티에르라는 지방에서는 어깨동무가 생존을 위한 행동이라고 했잖아.”

앨리스터는 잠깐 생각하다가 긍정했다. 아마 여행 첫째 날이었던가. 그때 토비아스가 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거 진짜야. 티에르는 365일 내내 눈이 와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체온을 공유 해야 했어. 그 수단 중 하나가 어깨동무였지.”

토비아스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체온을 공유한다는 건 곧 자신이 스스로 상대의 공격 사거리로 들어가겠다는 말이야 ... 상대도 마찬가지고.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위였지.”

“.......”

그래서 보통 어깨동무는 절친한 친구나 연인들끼리만 했다고 해.” 앨리스터는 묵묵히 걷고만 있다.

“저기, 어때? 앨리스터. 우리도 드디어 체온을 공유할 만한 사이가 된 건가?”

토비아스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앨리스터는 옆을 보지 않았고, 그럴 기력도 없었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호수로 던져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

그 이후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앨리스터는 발걸음을 딛으며, 푸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입이 방정인 놈이다. 행동이라고 해서 더 나은 건 아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


었다.

...그래도 오늘은 수고했다. 그녀는 토비아스가 이렇게까지 엉망인 모습이 된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뭐, 앨리스터의 맘 속 토비아스의 평가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은 아니었 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다. 적어도 루스델린에 도착하면 맛있는 저녁 정도는 사줄 수 있겠지. 그에게 주는 값싼 수고비이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출구로 걸어가는 둘의 그림자가 뒤로 길게 드리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