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한 오늘날은 지금 선거 시기, 넓게 잡아 윤석열 정권기를 의미합니다.)

비판으로서 정의가 실현된다면 청년 헤겔학파에 대한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은 부정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는 비판에서 정의를 찾는게 아니라, 실제 운동에서 찾아야합니다. 비판은 운동에 유의미한 수준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겁니다.

이때,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노급세력의 지배력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비판은 유의미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보당이 민주당과 비례정당을 결성한 지금, 노급세력은 민주당과의 동맹을 투쟁 수단으로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민주당의 지지층이 국힘 패권을 공격하는데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미를 함의합니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은 맹동주의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와의 일정 동맹을 통하지 않고선 비당파적 세력을 노급세력으로 회유시킬 수 없고, 노동계급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투쟁도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주당에 대해 이전 문재인 정권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취급해야합니다. 그 말은 즉슨 윤석열 집권기의 민주당의 국힘당 비판이 어느정도 효과적이였음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민주당에 대해 비판해야할 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국힘당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지, 본질적으로 '민주당의 본래 성질'이나 '민주당의 악행' 때문이 아닙니다.

운동은 항상 유동적이여야합니다. 유동적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