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는 보통 엘리트가 공동체를 이끌어간다는, 공동체에 앞장서서 기여한다는 미덕을 강조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엘리트주의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이런 성향이 있다 기술하는 것이지 실제로 엘리트주의가 작동하는 모습은 정 반대입니다.


실제 엘리트주의 시스템은 공동체가 엘리트에게 헌신하고, 엘리트의 안위가 국가의 안위라고 생각하여 공동체의 하위 다수를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멜서스주의자들부터 시작해서 20세기 사회진화론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랬고


현대 시대에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당시 미국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엘리트 금융회사들의 피 같은 돈다발을 채워주면서 


엘리트주의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지상주의와 자수성가의 상징이던 월가의 실체는, 미국이란 거대한 국가이자 공동체에 기생하면서, 미국의 목숨을 인질로 잡은 모습이었죠. 


현대 민주국가도 이러한 엘리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극복하지도 못한 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만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엘리트주의는 결국 비합리적 낭만주의로 귀결됩니다.


현 시대의 기성 보수주의자들처럼 기존 사회의 위계질서를 미화하고, 집단의 전통과 관념론, 신화적 요소(명백한 운명 등)들을 가미해 일종의 종교화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거나 


리버럴들처럼 실 없이 낭만적인 자유와 허울처럼 날아갈 공허한 공동체의 미덕만을 강조합니다. 


물론 사회주의에서도 이러한 엘리트주의가 존재합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기술관료주의 또한 엘리트주의로 직결되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사회주의가 주도하는 세계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부조리하고 무책임한 엘리트주의와 합일된 자본주의는 결국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그들은 소득과 빈곤 문제에 있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지만 


정작 엘리트들의 근시안이나 자기중심성이 초래한 참사에 대한 책임에 대해선, 경제를 인질로 삼아 나도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식으로 국가 권력에 호소하고 기생하여 공동체에게 전가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수십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 부터 이러한 모순을 따르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모순에 갇혀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미명 하에 엘리트주의-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원하든 간에 원하지 않던 간에, 그저 경제 체제에 불과한 자본주의를 '신앙'처럼 받들고 살 것이라면 


이런 모순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무엇에 왜 어떻게 시달리는지 모르는 채로 계속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