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감히 현대에 들어서 '근로'라는 단어의 사용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통한 기저의식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본질적으로 그 자주성과 노동자 계급의 역동성을 무시하는 '근로'라는 단어의 사용은, '노동운동'과 같은, 노동자 계급의 권익을 대표하는 행동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거부감과 위화감을 만들게 함과 동시에, 그러한 단어들을 생활에서 배제하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일제에서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 뒤에 일본 내 노동조직을 전면적으로 탄압하는 동시에 전국에 대한 산업/노동인력 징발권을 정부에 부여한 뒤에 일본 각료회의에서 1940년에 "근로신체확립요강"이라는 조서를 발표하는데, 이것에서 "근로"라는 단어를 최초로 규정하게 된 바 있다.


“근로는 황국민의 봉사활동으로서 그 국가성·인격성·생산성 일체를 고도로 구현해야 한다. 따라서 근로는 황국민의 책임이며 영예로운 일이다.”


조선에서 근로라는 단어가 쓰였다 한들 일제의 근로신체확립요강이라는 조서가 발표된 이후 이것이 사용되는 목적은 전적으로 이러한 전체주의적인 목적성과 의미를 내포한 것이였음이 분명하고, 당시 조선총독부 내에서도 조선총독부 조직과 서류에서 노동이라는 말은 근로로 완전히 대체됐는데, 예시로 ‘노동관’은 ‘근로관’으로, ‘노무관리’도 ‘근로관리’로, ‘노무과’도 ‘근로과’로 바뀌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자주성 있는 자신에 대한 의지를 잃게 하는 수순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더욱 분명한 증거는 노동절이라는 개념의 명칭과 일자의 역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방이 된 이후에도 노동절이라는 것에 대한 지배계급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탄압이 지속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분명히 노동절이라고 불려야 할 터인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 또한 날짜부터 그 명칭까지 노동운동을 제약하려는 파렴치한 독재자들에 의해서 제약받았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노동절은 본디 1886년 미국에서 벌어진 파업과 과잉진압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총칭하는 "헤이마켓 사건"이 벌어진 5월 1일로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노동절이라는 개념은 1923년, 즉 일제강점기임에도 자의적인 노동의식과 계급적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서 한반도에 최초로 도입되어 여러 행사와 정보 공유를 통해 널리 퍼졌고, 빠르게 전국적인 기념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다분히 정치적인 의사와 노동조합 탄압의지로 인해서 5월 1일이라는 분명한 정해진 일자가 있음에도 그 의미를 변질, 그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관제성과 정치적 노동조합을 타파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으로 노동절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강제로 바꾸었으며, 5월 1일 일명 "메이데이"를 선전도구라고 주장하는 망발을 일삼았다.


 그리고 박정희 집권기가 되자, 상술했던 노동이라는 단어의 자주성과 역동성을 삭제하고, 노동자를 물적 자원으로 격하하고 취급하였던 박정희와 그 아래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노동절이라는 명칭을 아예 "근로자의 날"이라는 수동적이고 애매모호한 명칭으로 바꾸었다. 이런 것을 보고도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이 정상적이고 당당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1994년에 법령이 개정되어 "근로자의 날"이 5월 1일로 다시 돌아왔지만 "노동절"이라는 명사는 아직도 공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독재정과 노동탄압의 역사가 다분히 담겨있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게 재고해보아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