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말이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 말은 어쩌다가 탄생하였고

이 사상이 어쩌다가 현재우리사회에도 유행하게

돼었는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사회주의는 왜 탄생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가 생겨난 이유가

자본주의의 안티테제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할꺼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의외로 사회주의에 대한

담론은 오래전부터 지속돼었다

사회주의의 기원은 매우 멀리 지속되어 왔다

이런증거로 자주 사용되는 사례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사유재산없이 공동생활을 했다던가,

르네상스 시기 영국을 대표한

인문주의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악질적인 영국사회를 비판하면서

이상적인 유토피아라는 국가에서는

하루 6시간 노동으로 국가가 운영돼는

이상적인 농업국가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사회는 훗날 많은

세기 사회주의자들의 지향하는 사회랑

많이 닮아있는데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칼 카우츠키는

유물론적 사관에서 역사속 담론들이

근대 사회주의의 시발점이라고도 하였다.

예를들어보자,

사회 구성원들의 호혜적 협력을 통하여

공동선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무관하게 인류사에서 꾸준히 

이여저 왔다고도 할수있다



한편,18세기는 기술발전인 시대였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한텐 고통의 영겁 그 자체였다

이때당시 자본주의만 하더라도 사실상

무정부적 폭력적 자본주의나 다름없었고

이게 진리였던 시기였다


자본가들은 최대한 이윤을 짜내기위해

아동노동,18시간 노동,인신매매,빈부격차는

자본주의의 어쩔수없는 기회비용이라

여겨지던 시절이였다 그리고 이러한

탐욕스러운 괴물의 마수는 유럽대륙을

넘어 아프리카대륙에도 그 손길이 펼치게 됀다


유럽인들은 총균쇠를 내세우며 아프리카,아시아

대륙을 수탈의 현장으로 만들고

대량살상,강제착취,자원수탈 같은

악몽같던 체제가 아프리카,아시아에 이식되던

시절이였다.


하지만,이러한 상황을 지켜볼수 없던

지식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르네상스시절의 사회주의를 재건하여

자본주의 안티테제로 근대적 사회주의를

성립한 이들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상황이 두드러지게 두각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 과 프랑스였다

당시 영국은 산업발전으로 꽃이피던 시기이기도

하였으며 프랑스는 민중혁명으로 피바람이

불기도 하였던 혁명이 발생했지만

혁명의 원인이 달랐으니,

이를 [이중혁명]이라 한다.


이들 중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 있었으니

로버트 오언,생 시몽,샤를 푸리에,프랑스아

노엘 바뵈프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인본적, 즉 윤리적

시각으로 보왔으며 휴머니즘과 계몽사상을

뿌리로 삼았다


그들의 사상은 어땠을까?


문명사회는 계몽된 사회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수탈은 정당화됄수 없으며

자본가든 노동자든 동등하게 협력하고

협동하며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이중에서도 특기를 보인 인물이 있었다,

영국의 로버트 오언이랑 프랑스의 프랑수와

노엘 바푀프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우선 오언은 사상을 설명하는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실행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사회의 핵심이념은 바로 " 협동"이라는

것이다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사회의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며 협동하며 사회를 이끌어내지

않는가?

따라서 그는 교육에서부터 협동의

원리를 가르치면 자본주의보다 호율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가 됄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따라서 그는 그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협동조합적인 체제로 실천하며 이끄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름하여,[뉴레너크]이란 산업공동체였다

실제로 그는 당시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반자본주의적 협동조합체제로 운영되는

뉴레너크는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발상과 실천을 오언은

[사회주의]라고 명명하였고 이러한 실험은

영국의 한 공동체에서만 이루어졌지만

그 정수는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주의

되었고

이 사상에서 윤리적인 관점은

사회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친다


한편 시민혁명으로 다양한 사상이

꽃피던 프랑스에선 급진적인 사상가가

두각을 드러낸다 바로 프랑수아 노엘 바푀프였다

바푀프는 프랑스 혁명가들 중에서도

급진적인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혁명을 민중혁명으로서의 전환을

바랬고 불평등의 근원을  사유재산에서 찾을려고

하였다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권리선언]이라는

선언문이 발표돼었지만 프랑스 민중들의

삶은 별반 다른게 없었다 


이에대하여 바푀프는 달라진게 없는

부르주아들이 이끄는 혁명사를 강렬히

비판하였다.


그는[호민관]이라는 잡지를 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냈는데

특히 그는 토지개혁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주장을 토했는데 이로인해 그는

"그라쿠스"이라는 별명도 얻게됀다.

그는 토지개혁을 토지공동소유 및 집단농장

이였으며 아예가서는 토지 사유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라

받아들여질수가 없었다

이러한 그는 혁명의 이상을 배반한

부르주아정부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결국 체포돼어 단두대에서 처형돼고 만다

하지만 그의 균등 및 분배 사상

혁명적 독재는 후일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오언과 바푀프는 사회주의를 성립할려고

하였고 운동을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에도 결국엔 한계가

있었다


그들의 사상은 사회변화를 제대로 바꾸고

그 변화를 추동할 총제적 이론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은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조직회됄 힘을 끌어모을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대안

내었다는 점이 있다

그들의 사상은 후일 사람들에게

[공상적 사회주의]이라는 사상으로

불리우게 됀다



1-1.혁명가인가?철학자인가?마르크스의 등장

영국이 산업혁명을 할동안

프랑스가 시민혁명으로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

자본주의의 변방이자 이제 막 근대국가가

탄생할려는 게르만 민족의 국가 독일에서는

어떠한 천재 사상가가 샛별로 떳다

이름하여 칼 마르크스이였다

그도 역시 자본주의 극복 및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일생의 업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다가가는 방식이 초기 

이상주의자들의 면모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사회주의를 인간을 연민적으로 보는

일종의 감정이나 자선사업이 아닌,

역사적 운동법칙을 이용한 일종의

과학적으로 이론화하였다


질문을 해보겠다

자본주의는 갑자기 우연히 "번쩍!"등장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마르크스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우연히 탄생한게 아닌

고대 그리스부터 18세기까지

인간을 움직이게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인 시너지가 결합하여 생긴

일종의 "법칙"으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생산발전수준에 따라

사회구성체가 다르게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원시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

보았고 이중에서 특히 자본주의가 

생산력 증대에서 최고수준까지 달성하였으며

자본주의의 결함과 모순으로 인하여

노동자 계급투쟁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 진다고 주장하였다


이 중에서 그 새로운 사회가

바로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를 사적 유물론이라 명명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을 필연적으로

나타날밖에 없는 과학이라 주장하였다

잠깐,마르크스는 이러한 현상을 왜"과학"이라

주장하였을까?


이러한 이유는 시대배경적인 이유가 있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지식인들을 휩쓸던

이론들을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헤겔을 변증법,포이어바흐의 유물론

프랑스의 사회주의,영국의정치경제학을

섭렵-및 재구성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을 제작한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세상을 휩쓸면서

본격적으로 근현대 사회주의를 토대를

이루는 사상–[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게

됀다.


1-2 사회주의도 있는데 굳이 공산주의이름을?

자,지금까지 공상적사회주의랑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살펴보왔다

특히 이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얼마나 영향이

컸으면 마르크스주의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정도로 영향이 컸다

하지만 마르크스도 언급했지만 그는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제작하고 성립한 이론이였다

따라서 그가보기엔 오언이나 바푀프의 사상은

어떠한 이론도 없이 무작정 사회주의로

갈려는 구시대의 한물간 몽상가로 보일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랑

자신의 이론을 차별화할려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랑

차별화할려는 새 대안으로

선택한 용어가 [공산주의]이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신의 이론에

쳘학을 이식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후의 모습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으로 보왔다

즉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려는게 아닌

자유로운 개인들이 협력하여

서로 필요한만큼 생산하고 분배하는

공동체 연합이라는 의미를 이식하였다


이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생산수단은 자본가가 독점하는 모순에서부터

자본주의가 흔들린다는 뜻이므로,따라서

독점체제를 무너뜨리고 "생산수단 사회화"를

해야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가 온다는 주장이였다


마르크스 별세이후에도 그의 이념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자본주의를 

넘으려는 혁명가들이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하며 적기아래 계급투쟁을 하게되며

자유로운 사회가 만들어졌다


라고 하면 다른사상이라던가  온건적인

사상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마르크스주의도 한계점이 있었다

"혁명을 성공시키고 그 이후 사회는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야 하지??"


여기 동지들은 아시겠지만 마르크스의

본업은 "사회주의 이론가"가 아닌

"자본주의 연구분석가"가 맞는 사람이다


[공산당 선언]을 제외하고

마르크스의 다른 저작을 보면

정치경제학,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혁명의 방법론이나

혁명이후의 사회건설의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마르크스주의의 후계자들은

어떻게하면 사회주의사회를 앞당길수 있는지

토론으로 치고박고 말싸움하는게 일상이였다

그들의 주장을 여부를 파악할

마르크스2.0같은 사람이 나오면 좋을려만

아쉽게도 그런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주장의 타당성을 인증해야 하였다

에초에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논쟁의 역사이다.


그결과 수정주의 논쟁,공황론 논쟁,국가론 논쟁

같은 이념논쟁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고  전국무협시대처럼 온갖 사상이

나돌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싸움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었으니....


11-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고?!

1917년 페트로그라드의 여성 노동자들의

일으킨 파업으로 인하여 러시아 혁명에

횃불을 지펴줬다


그리고 그 중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영향을 끼친자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였다 

레닌은 다른 공산주의자들과는 다르게

많이 특이한 자였다 

다른 공산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곧이곧대로 욱여넣으려 했다면

레닌은 교조적 인사도 어느정도 수용할줄아는

무언가 "다른"인물이였다


사실,레닌이 이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자신의 조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응용할수밖에 없었다.


또한 혁명의 발생지가 엉뚱하게도 러시아란

나라였는데 그 이유가

마르크스는 생전에 첫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국가로 영국을 꼽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본주의가 극도로,아니고도조에 도달했으니깐"

이러한 이유로 생산관계와생산력의 모순으로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닌은 엉뚱하게도 아직까지

차르가 통치하던 러시아에서 혁명을 이뤄냈다

레닌은 러시아의 역사적 특수성을 보고

그에 어울리는 혁명전략을 만들어냈다

근본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부르주아 혁명이

성공해야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나아갈수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레닌의 생각은 달랐다.

레닌의 입장에선 부르주아 권력 하에선

노동자들이 혁명을 하는 원동력을 잃을수 있으니

소수의 혁명가들의 중심으로 당을 창당하고

당이 이끄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릴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주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론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랑 폭력혁명론이였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이게 매우

모호한 답이다


"생산수단을 누가,그리고 어떻게 점유하고

관리해야 하는가?"


레닌은 이에대해 어떠한 답을 했을까?

간단한 답안을 내놓았다

혁명가들의 지휘에 따라 노동자들이

폭력혁명을 통하여(자본가들이쉽게 내놓겠는가?)

생산수단을 전취하고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산당이 이걸 일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하는대신,

노동자들의 의견이 당간부들을 거치며 

의견이 숙의되므로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다수결보다 더욱 민주적이란게 밝혀졌으며

이러한 논리가 레닌의 주장이였다


이렇게 공산주의 정치의 토대인

민주집중제,즉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이렇게 체계화 되었다


이처럼 레닌의 혁명론으로 완성됀

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한다

그동안 마르크스주의의 빈 부분 즉,

"어떻게 혁명을 성공시키고 그이후 사회는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레닌주의가 보완시켰다.


하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점도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폭력성과

중앙집중성을 토대로 삼고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큰 문제점이

됄수밖에 없다.


특히 이사상들이 훗날

스탈린주의,마오주의같은 사상이 나오면서

같은 사회주의 진영내에서 비판이 커지게

되었다.


그러니깐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도자에 대한 숭배와 당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수 없는 관료주의가

뭔 민주주의고 사회주의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4혁명을 점진적이고 온건하게!사회민주주의

잠시 타임라인을 보자


그래,한 마르크스 사후가 적당하다

근현대 사회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로 이여져 왔다

하지만 이것이 공산주의,사회주의 분파는

아니다 그러면 마르크스 사후

생겨난 사회주의 사상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마르크스주의가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비 마르크스주의적 분파도 의외로 많고

스펙트럼도 넒다

마지막으로 알아볼것은

"사회민주주의" 혹은"민주사회주의"이다

그들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의회민주주의 옹호,다당제가 있으며

민주집중제,폭력혁명반대가 큰 특징이다

즉,쉽게말해 선거를 통한 정치적 참여와

시장경제를 통한 관리로

민주주의 관리랑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시킬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사상의 족보는 어떻게 될까?

이 사상을 성립한 시초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일으킨

수정주의 논쟁에서 시작됀 사상이다


하지만 이 이념도 비판은 피해갈수 없었는데

우선 자본과의 즉, 부르주아 계층과

타협했다는점에서  문제가 돼었고


자본을 인정했다는 뜻이 돼니

거기서 나오는 잉여가치를 얻기위해

더 많은몫을 얻는 즉 자본주의 시절에

있었던 경쟁이 다시 생겼다는 점이며


국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니

국가하는건 괜찮겠다 같은 무비판적

시민의식이 싹틀수 있는 환경이 조성됀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에서 유명한 3대 

공산/사회주의를 알아보았다

사실 어찌보면 모든것엔 빛이 있는 법이고

어둠이 있는 법이다 이러한 어둠을

비판하면서 그 어둠을 고치고

상호보완하면서 담론하고 토론하는게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럼 오늘은 물러나고


다음엔 구좌파와 신좌파의 역사와

특징이 뭔지, 또 그들이 힘을 합쳐 상호보완

할수없는지 그러한 글을 갖고 오겠다

좋게 봐주었다면 고맙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면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