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 속에서 칼을 자주 쓴다.


칼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칼이란 것을 자주 쓰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주방일 것이다.


우리는 칼을 가지고 고기와 야채, 과일 그리고 기타 여러 식재료들을 썰고 그것들을 요리하여 먹는다.


스테이크를 자를 때에도, 빵을 자를 때에도 역시 칼을 쓴다.


그런데, 가끔 이 칼을 사람을 죽이는 데에 쓰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 일어난 서현역 칼부림 사건의 사례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은 식칼을 비롯한 칼 자체를 생산을 중단하자거나


쓰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걸 가지고 사람을 해쳤다가는 법적, 사회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고 있고, 교육을 통해 칼을 바람직하게 쓰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걸 가지고 사람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안되는 이유가 뭔지 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칼을 쓰면서 설령 자신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상기한 것들을 인지하고 있기에 칼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게임과 창작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FPS 게임에서 사람을 죽인다고 하여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가?


만화에서 좋아하는 캐릭터가 죽었다고 작가를 실제로 죽이는가?


물론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겠지만,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을 비롯한 '이익집단'들은 이상하게 그런 게임과 창작물을 규제하려 든다.


마치 식칼을 쓰면 사람을 죽이려 드는 충동이 든다는 것처럼 이상한 논리 같은 걸 가지고 말이다.


심지어 게임의 경우엔 거기에 중독된 것을 게임중독 질병이라 하여 질병화를 시켜 게임에 대한 소비를 억제시키려는 시도도 등장했었다.


게임과 마약, 알코올은 달라도 너무 다른데 말이다.


마약은 누구에게나 통제 불가능하며, 게임은 마약처럼 몇 번 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중독에 걸리지도 않는데


왜 그런 시도가 등장했는지 의문이 들 따름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과 창작물 등에 대해 어떠한 부정적 악영향과 몇 가지의 극소수 사례 등을 가지고 규제하고 검열하려 드는 것은


필자의 생각에 적절치도 않을 뿐더러, 국민의 수준을 대단히 평가절하하는 우민화 정책이다.


식칼의 예시를 다시 가져와보자면 우리들을 마치 식칼이란 걸 쥐어주면 곧장 사람을 해하는 데에만 쓴다는


지극히 편협한 시각으로 국민들을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울타리는 필요하지만, 족쇄는 분쇄해야 한다.


우리는 저런 우민화 정책이란 족쇄를 분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 또한 조그마한 혁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