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1)

엑스칼리버







“뭐⋯ 뭐라고?”




익숙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왔는지는 둘째치고⋯ 뭘 엑스칼리버라고 하는 건지 궁금했다.




“호라이즌?”


“뽑았습니다. 엑스칼리버.”




호라이즌은 엑스칼리버라고 지칭하고 있는 제설삽을 높게 들어 올렸다.

묘하게 뿌듯해 보이는 표정이, 나도 모르게 잠깐 본분을 잊을 뻔했다.




“아, 아니⋯ 무슨 소리야. 그리고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카페 주소는 알려준 적이 없는데.”


“무르군요. 전 휴먼의 윙스타그램을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윙스타그램 계정도 알려준 적 없는데⋯”


“그보다, 요즘 휴먼들은 제설삽을 엑스칼리버라고 부르기로 했습니까? 상당히 독특한 사회적 약속이군요.”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리고 대체 어떻게 내 계정을 알고⋯ ”


“설마 휴먼만의 재미없는 농담입니까?”


“아, 아잇! 진짜! 그냥 윙스타그램용이잖아! 그래! 농담이라고, 농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휴먼들의 농담은 매번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저도 썰렁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너무해⋯⋯.

눈더미에 꽂은 제설삽을 찍다가 생각난 내 회심의 드립을 윙스타그램에 올린건데 그걸 볼 줄은⋯⋯. 


가뜩이나 아침 일찍 나와서 피곤한데, 엄한데다 에너지를 쓰고 있다.

아무튼 곧 오픈해야 하니, 투덕거릴 시간이 없었다.

나는 다시 두툼하게 쌓인 눈더미를 퍼날랐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디를 치우면 됩니까?”


“괜찮아, 안 그래도 돼. 집에 가서 쉬고 있어.”


“미련하군요, 김카붕. 조만간 없는 한숨 모듈을 만들어서라도 설치해야겠습니다.”


“에헤이! 네가 힘드니까 그렇지. 하늘을 봐. 계속 눈이 오고 있잖아?”




열심히 치우는 노력이 무색하게, 오늘은 유독 함박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3월인데 오라는 봄은 안 오고, 무슨 폭설이 이렇게 내리는 건지.


이렇게 투덜대는 것도 무의미했다.

내가 아무리 이른 새벽에 나와서 눈을 치우더라도, 내가 카페 업무를 보는 사이에 눈은 계속 내리고⋯

아니, 어차피 손님도 잘 없으니까 종일 눈만 치우려나⋯⋯.




“그렇게 비실한 몸뚱아리로 개인 카페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 알아봤습니다.”


“뭐⋯ 뭣?”


“일이 힘드니 실없는 농담이나 SNS에 올리고 밍기적거리는 겁니다. 지금 눈 쌓이는 것 좀 보십시오.”


“⋯⋯.”


“차라리 카페 스트레가 체인점으로 시작했으면 전담 마녀가 도와줬을 겁니다. 장사도 더 잘됐겠죠. 윙스타그램에 올린 내용은 죄다 손님은 별로 안 오고 한가하다고 한탄하는 게시물이 대다수. 벌이가 되지 않으니까 알바생도 구하지 못―”


“그, 그만! 팩트도 폭력이라고!”


“애초에 단백질 반죽이랑, 기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지는 휴먼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아, 알았어⋯⋯. 도와줘. 호라이즌⋯⋯.”




크윽,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고통스럽다.


결국 난 도와주겠다는 호라이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어. 호라이즌 말대로 미적대기도 했고, 혼자서는 전부 치울 각이 나오질 않으니.


나와 호라이즌은 말없이,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치웠다.

둘이서 하니까, 시간은 한⋯⋯




“다 치웠습니다. 이제 휴먼이 삽질하는 자리만 남았군요.”


“버, 벌써?”


“비키십시오. 제가 마저 하겠습니다.”


“⋯홀리 쉣.”


“⋯?”


“오오⋯ 호라이즌님⋯!”


“의문. 왜 무릎을 꿇는 겁니까?”




나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신이 존재한다면 이 모습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의 유능함⋯⋯.

원래 압도적인 성능 앞에선 누구든 굴복할 수밖에 없다.


진작에 도와달라 할걸. 나 혼자서는 몇십분을 내리 치워야 하는 이 눈밭을 5분 만에⋯ 아주 깨끗하게 처리할 줄이야.

내가 치우던 구역을 빼고 깨끗해진 카페 주변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젠장, 찬양하라! 호라이즌!




“당신의 우월한 성능과 능력에 반했습니다.”


“진공관 맙소사. 제 가치를 이제야 알아본 겁니까? 실망스럽군요.”


“크윽, 이 미천하고 우매한 단백질 반죽 김카붕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호라이즌님!!”




바닥에 바짝 붙어 있어서 호라이즌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이때를 노려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

제발요. 호라이즌님. 저 좀 봐주십쇼.




“그럼, 휴먼의 성의를 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드리죠.”


“어? 정말?”


“그럼 속고만 살았습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제 성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럴 리가! 절대 아냐! 정말, 다 도와줄 거야?”


“가능한 것이면 해드리죠.”




이렇게 쉽게?

절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나는 항상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지.

큽, 추운 겨울날⋯ 이틀 전부터 밤샘런을 하던 내가 생각나는구나.




“흐흐흐흐⋯⋯.”


“의문. 음침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군요.”


”크흑⋯ 역시 호라이즌님. 자비로우십니다.”


“왠지 후회되는 기분입니다. 김카붕, 당신은 건실하고 바른 휴먼 아니었습니까?”


“어허! 이상한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날 믿어.”


“⋯⋯.”


“일단 여기 눈 좀 치워줄래?”


“⋯그러죠.”



마참내!

드디어!


나의 오랜 염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크크큭⋯ 미소녀 점원이다⋯ 메이드⋯ 메이드를⋯!”


“⋯⋯스레드에 한숨 모듈은 없는지 물어봐야겠습니다.”








+)

문학 부문 참가합미다

맨처음 웹소설 표지를 가장한 날림 그림은 직접그렸음


가볍고 쉽게 먹을 수 있게 열심히 써보겠음..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