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 대회] 안드로이드는 기계새의 꿈을 꾸는가

“무슨 일이냐?”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 내뱉은 말의 주인은 벌게진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는 중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햄스워스.”

“웬일로 직접 찾아왔군. 보내준 냉각기는 잘 쓰고 있나?”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괴상한 디자인만 제외한다면.”

“버릇없는 놈. 나니까 그렇게라도 만들어 준 거다. 엔지니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놈팡이들은 엄두도 못 낸다고.”

 

깡. 깡.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진다. 팔뚝이 훤히 드러나는 작업복을 입은 건스미스는 말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바쁘니 용건부터 듣지. 뭐가 필요한가?”

“제 회로에 이상이 생겼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점검해 주시죠.”

“회로 검사라면 굳이 여기서 할 것도 없어. 다른 곳으로 가보게.”

“그건 어렵겠군요. 당신 말고는 알고 지내는 휴먼이 몇 없는지라. 전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제 소체를 맡기지 않습니다.”

“어이쿠. 그거 참 영광이군.”

 

이야기가 진전되질 않는다. 망치질에 열중하는 남자는 일을 맡아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햄스워스라 하면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건스미스다. 다짜고짜 찾아와 의뢰를 맡기려고 하면 받아주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예상했던 바다. 실패할 거라 생각했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호라이즌이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휴먼은 로봇이 꿈을 꿨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예상대로, 공방을 울리던 망치질 소리가 멎었다. 

 

한평생을 기름 발린 철과 부대끼며 살아왔을 장인이 듣기에는 머신 스피릿이나 여타 헛소리와 같이 신경쓸 가치도 없는 말이었겠지만, 강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 무게감이 달랐다. 고개를 돌린 햄스워스의 눈빛엔 오래간만에 보이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호라이즌은 몇 시간 전 레이첼에게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당연히 시무르그란 이름에 관해서는 빼고.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햄스워스는 상당히 흥미로워하는 기색이었다. 당장 장갑도 벗지 않고 턱을 매만지는 것만 해도 그랬다. 끈적한 윤활유가 수염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탓에, 호라이즌은 티가 나지 않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니까... 뭔가 보긴 했는데, 그게 진짜 꿈인지 아니면 회로 손상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군. 확실히 그런 건 일단 열어보는 거 말곤 방법이 없지.”

“가능하겠습니까?”

“어차피 주문 남은 것들은 일도 아냐. 잠시 기다리라고.”

 

그가 공방 뒤편에서 가져온 것은 선이 주렁주렁 달린 컴퓨터였다.

 

“이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건 이거 하나로 충분해. 전극을 연결해야 하니 작업대 위로 올라가게.”

 

호라이즌은 말없이 작업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소체가 연결된 이음을 퍼지하기 시작했다. 등부터 기립근까지 이어지는 인공근육. 그 안의 프레임이 천천히 분리되고, 목부터 어깨까지의 외장이 분해되듯이 벗겨졌다.

 

우우웅-

 

불빛 깜빡이던 컴퓨터에서 묵직한 구동음이 울렸다.

 

10분쯤 뒤, 모니터 화면을 살피던 햄스워스가 말했다.

 

“흠... 딱히 고장 난 곳은 없는 거 같다만.”

“확실합니까?”

“날 뭘로 보고 그런 소릴 하는 거냐? 정 못미더우면 딴 놈한테 찾아가 보던지.”

“아직 중추 프레임에 연결된 회로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햄스워스.”

 

호라이즌의 말에 햄스워스는 하, 하고 코웃음쳤다. 드물게 신경질적인 웃음이었다.

 

“몰라서 묻는 거냐? 메인회로는 못 열어. 내부 프레임을 뜯을 방법이 없다고. 이터니움 채굴용 플라즈마 천공기를 가져와도 구멍 하나 못 낼 거다. 퓨처 앳 워에서 만들었다고 했나? 정말 외계인이라도 감금한 모양이지.”

 

소체는 퓨처 앳 워에서 생산한 게 아니라 이면세계에서 발견한 거지만,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어쩔 수 없군요. 별로 도움은 안 된 거 같지만, 예의상 감사 인사는 하겠습니다. 휴먼.”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평소처럼 드론으로 왔으면 한 대 때려줬을 텐데. 하필 꼬맹이 모습이라 그러기도 어렵겠어.”

 

용무가 끝났으니 이젠 돌아갈 시간이었다. 가볍게 팔다리를 움직여본 호라이즌은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금속 특유의 날카로운 냄새가 흙먼지 섞인 차가운 공기로 덧씌워져 간다.

 

그대로 열린 문을 나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거지?”

“무슨 소리입니까. 휴먼.”

“내가 널 본 세월이 얼만데. 평소의 네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생산성 없는 일에 고민하는 건 단백질 반죽들이나 하는 일이지. 안 그러냐?”

 

떠보는 거라기엔, 지나치게 단정적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호라이즌은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작은 단서 정도는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무시하기도 애매하군요.”

“그러냐.”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돌아본 곳엔 남자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들려오는 말.

 

“잘은 모르겠지만 네가 직접 싸돌아다니는 꼴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닐 거 같아서 말이다. 젠장. 나이를 먹으니 걱정만 늘어선. 아무튼, 몸 성히 돌아오라는 얘기다.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말의 앞뒤가 엇갈린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중년의 떡대가 쑥스러워하는 건 시각회로에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싫지만은 않은 기분인 건 어째서일까. 가끔 마주하는 누군가의 선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진공관 맙소사. 몸만 멀쩡하게 돌아오면 아무래도 좋다는 겁니까? 휴먼도 결국 제 몸이 목표였군요.”

 

짐짓 농담처럼 던지는 말. 햄스워스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지는 듯싶다가, 이내 부드럽게 풀어지고, 결국은 호탕하게 웃어버린다.

 

“크하하하! 인제 보니 농담도 잘하는구만! 아무렴, 너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은 좀처럼 찾기 어렵단 말이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호라이즌은 사무소로 돌아왔다.

 

사무소는 불이 꺼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막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라이즌이 아직 사채업자이던 시절, 대금 대신 받아온 브라운관 TV가 시끄러운 음성을 토해낸다. 가죽 소파 위에서 감자칩을 오독이고 있던 레이첼이 호라이즌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왔어? 어딜 다녀왔길래 이제야 오는 거야?”

“햄스워스한테 다녀왔습니다. 예상보다 좀 늦어졌군요.”

“아. 그 근육 아저씨? 생긴 거랑 다르게 섬세한 면이 있던데. 냠.”

 

레이첼은 킥킥 웃으며 감자칩을 입에 넣었다. 소파는 이미 과자 부스러기로 엉망이었다. 레이첼은 청소라는 걸 하질 않으니, 저걸 청소하는 건 높은 확률로 자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로봇의 관점에서 높은 확률이란 인간이 생각하는 100%에 한없이 수렴한다.

 

호라이즌은 의미 없는 한숨 대신 원인을 제거하는 편을 택했다.

 

“아, 뭐야! 내 감자칩 돌려줘!”

“그만 먹으십쇼. 살찝니다.”

“뭐래. 난 아직 날씬하거든?”

“자기 입으로 뚱뚱하다고 말하는 휴먼은 잘 없습니다. 레이첼.”

 

잠시 소란이 지나간 후. 호라이즌은 평소 업무를 처리하던 책상에 앉아있었다. 이 자리는 창문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훤히 보여 그녀가 좋아하는 위치였다. 검게 깔린 어둠 너머, 불빛 반짝이는 네온사인의 아래는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청각 회로를 간지럽히는 잠꼬대 소리. 고개를 돌려보면, 사무소에 하나밖에 없는 직원은 부스러기가 들러붙은 소파 위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대체 무슨 꿈을 꾸는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입가엔 희미한 호선을 머금은 모습.

 

“음냐... 호라이즌... 거긴 안대에...”

 

진짜 무슨 꿈을 꾸는 거지.

 

벚꽃이 떨어진 계절이었으나, 아직 도시의 밤은 쌀쌀했다. 호라이즌은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몸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직원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대표로서의 덕목이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으나 이미 거리의 행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건 길가의 가로수와 아스팔트, 때때로 깜빡이는 가로등일 뿐. 잠든 레이첼에게 시선이 옮겨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언젠가의 말괄량이 같은 모습과 대조되는, 평온하게 잠들어있는 얼굴. 보고 있으면, 괜히 한 번쯤 건드려보고 싶어진다.

 

꾸욱.

 

“으에에...”

 

자고 있던 소녀가 작게 인상 썼다. 이제야 평소의 그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껴지는 건 말랑한 볼살과 맥동하는 혈류.

그리고 따뜻한 체온.

 

전부 호라이즌에겐 없는 것들이다.

 

“...레이첼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평상시엔 자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은 역시 자신이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고야 만다. 오늘과 마찬가지로.

 

꿈이란 수면 중 일어나는 뇌의 정보활동이다. 생명체의 뇌는 자는 중에도 활발한 전기 신호가 오가지만 로봇은 다르다. 전원 꺼진 회로가 저절로 작동한다면, 그건 그냥 오작동일 뿐이다. 고장 난 기계에 다른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잔여 동력 2.16%. 동력 충전을 권장합니다.」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문장이 깜빡거렸다. 남은 동력은 2% 남짓. 전투 모드의 가동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코핀 컴퍼니의 도움을 받은 건 좋았지만, 평상시에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기술력 하나는 최고라더니, 전기세 때문에 파산하게 생겼군요. 휴먼들을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녀 형상의 안드로이드는 책상 아래에 놓인 충전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자를 전극에 연결했다. 순식간에 나른해지는 몸.

 

호라이즌은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절전 모드를 실행했다. 아침이 밝거나 충전이 끝나는 시점에서 자동으로 부팅되도록.

 

어딘가로 빨려나가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든다.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 분명 암전되었어야 했을 의식은 성운이 냇물처럼 흘러가는 우주의 한복판에 던져져 있었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행성이 그녀를 맞이했다.

 

-반갑구나.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