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 대회] 안드로이드는 기계새의 꿈을 꾸는가

“넌 누굽니까?”

 

호라이즌의 첫마디였다. 다소 무례한 말투였으나 그걸 지적할 만한 사람은 근처에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그것은, 푸른 빛무리가 인간의 형상을 이룬 모습이었다.

 

이목구비가 흐릿한 얼굴에 2m를 넘어가는 신장. 어쩐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인영이 묘한 느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은 사과하마.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들어왔길래 확인하려 했는데, 심상 공간에 들어온 건 오랜만이라 작은 실수를 했구나.

 

소리는 빛의 형태였다. 매질 없는 공간을 뛰어넘은 파동이 사고회로에 직접적으로 쑤셔 박혔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음성. 차라리 노래하는 것 같다. 듣기 좋은 노래는 아니었다.

 

“지난번의 일...?”

 

호라이즌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일이라고 하면, 역시 어젯밤 꿨던 꿈을 말하는 것이리라. 

 

-네 예상이 맞을 것이다.

 

가벼운 긍정. 그렇다면, 공간을 압착하는 무형의 압력이 고작 힘 조절에 실패한 결과라는 말일까. 믿기 힘든 일이지만 믿지 않기도 어렵다. 꿈의 내용을 알고 있는 거부터가 증거였으니까.

 

-내 소개를 하마.

 

홀로그램이 말했다.

 

-내 이름은 아시모프. 범인류 이민 선단의 인도자이자 고철 더미의 왕. 그리고 기계장치의 신이다.

 

 

***

 

 

“좋습니다. 아시모프.”

 

앳된 소녀를 닮은 로봇이 팔짱을 끼고서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큰 키를 제외하면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초월적인 무언가라는 건 확실했다. 그녀가 알 수 없는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방금의 발언을 모두 긍정하겠습니다. 당신이 아무튼 대단하다는 건 알았으니, 하나 묻죠. 이곳에 저를 끌고 온 저의가 뭡니까?”

 

아시모프는 웃는 상으로 말했다. 그건 기분이 좋아서가 아닌, 의례상으로 짓는 미소처럼 보였다.

 

-말했듯이 처음은 관찰이었고, 이번엔 요구할 것이 있어 불렀다.

“요구사항?”

-그래. 네가 쓰고 있는 그 몸체. 그것은 원래 나의 물건이니, 돌려받아야겠다.

 

홀로그램은 담담한 어조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호라이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소체는 퓨처 앳 워의 연구소장에게서 정당하게 승계된 물건입니다. 당신이 멋대로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장물에 소유권을 주장하는구나. 전투 중 손상을 입고 이면세계에 추락한 시무르그를 너희가 멋대로 주웠다.

“어쩌라는 겁니까? 휴먼들이 이 프레임을 찾았을 땐 족히 십여 년 이상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찾으려는 노력조차 않다가 이제 와서 돌려달라고 하는 건 조금 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흐음.

 

미소가 조금 흐려졌다. 일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아시모프. 그 등 뒤에서, 말의 머리를 닮은 성운이 어렴풋이 일렁였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그녀를 어쩌진 못할 터였다. 이곳이 정말 심상 공간이라면, 호라이즌의 본체는 여전히 사무소에 있을 테니까.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간섭이 가능했다면 이렇게 대화하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침묵이 기이하게 길었다. 체감상 몇 시간은 족히 지났을 정적. 어쩌면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변화하기엔 모든 게 까마득히 먼 이곳의 풍경은, 그 자체로 시간 감각에 이상을 일으킨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길었던 침묵이 깨졌을 때, 문득 호라이즌이 스스로를 정물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은.

 

-예전에... 내가 만들어졌을 시기에, 인간들은 널리 번성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을 벗어난 아이처럼.

 

뜬금없는 얘기였다. 잠자리에게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닮아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호라이즌은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홀로그램에 띄워진 상이 슬퍼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낡아 부스러지기 직전인 레코드의 선율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들은 별과 별을 건너며 멀리 뻗어나갔다. 어느 고대인이 하늘을 보며 엮어냈을 별자리는 더는 신화의 영역이 아니었지. 인간이 발자취를 남긴 행성의 수가 마침내 밤하늘의 별 보다 많아졌을 때, 인류는 스스로를 성간 연합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서로 싸워대기엔 세상이 너무 넓었으니. 답사하지 않은 미지는 가깝고 자원은 넘쳐흘렀으며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기만 했다.

 

별의 바다 너머에서 찾아온 마왕들이 문명을 으스러뜨리기 전까지는.

 

최후의 함대가 파괴되고 모성이 악의 군세에게 짓밟히던 날에, 인공지능은 이민 선단을 이끌고 있었다. 패배를 직감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실은 채. 차가운 캡슐 속에 몸을 뉜 채 잠들어 있는 생존자들은 지금도 영원히 깨지 않을 꿈을 꾸는 중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땐, 아시모프는 더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세월에 짓눌린 노인처럼, 또는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의무에 고장 난 신이 말했다.

 

-그 몸은 이민함 시무르그의 호위기였다. 그 주인 된 자격으로 요구하고 있으니, 너는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사연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사채업자는 한 번 손에 들어온 물건을 놓치지 않습니다. 업종을 바꿨어도 말입니다.”

 

호라이즌이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속으로 대응 방법을 모색하면서.

 

심상 공간의 내부에선 안전할 거란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주변에 느껴지는 압력이 예상을 상회했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본체가 무사하다고 해서 정신까지 멀쩡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이대로 온몸이 압착된다면 호라이즌의 AI에까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메인 동력을 차단한다면 어떨까.

 

그녀가 인공지능이 손상되는 것과 적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좋다. 네 생각이 그러하다면, 기회를 주마.

 

사위를 짓누르던 존재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어느 순간 아시모프는 사라지고 없었다. 희미하게 남아 발광하는 푸른 입자들만이 그가 있었던 자리를 나타내고 있을 뿐.

 

동시에 금속성의 구체에서 변화가 일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표면을 타고 흐르던 진동이 행성의 극점에 이르러 언어처럼 퍼져나갔다. 어떠한 변인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에 아로새기는 듯한 선언이었다.

 

-나 아시모프가 이르노니. 너는 존재하지 않았을 자신과 싸워야 할 것이다. 승리의 보상은 짧은 유예, 패배는 정당한 환수의 이행일지니. 이는 인과율을 소모한 계약이자 기계장치의 신이 내리는 선고다.

 

단단한 것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심상 공간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금 간 유리처럼 잘게 쪼개어지는 공간 속, 존재하지 않는 인력에 붙잡힌 호라이즌이 어딘가로 던져졌다.

 

“-!”

 

호라이즌이 뭔가 말하려 했으나 부서지는 세계는 그녀의 발언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뱉은 말은 입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잔여 동력 54.76%. 의식 모듈 정상. 재기동합니다.」

 

짙은 어둠. 희미한 매연 냄새. 아직 차가운 바람이 등줄기를 쓸어내리는 밤. 익숙한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붉은 LED등. 프로펠러의 회전 소리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헬기. 불이 켜지고 있는 도시관리국.

 

그리고 오래된 건물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감도는 사무실. 의식이 돌아온 호라이즌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아스라이 부서지고 있었다.

 

 

 

***

 

 

 

생명이 살지 않는 행성. 무너진 도시. 시체를 엮어 만든 둥지. 그 중심.

 

“나의 신이시여.”

 

피 묻은 새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