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2)

― 미소녀 알바생









“음료 제조, 청소, 간판 소녀.”


“응?”


“총 휴먼 셋의 일을 하니 3명분의 시급을 요구합니다.”




호라이즌이 메이드 치마를 펄럭거리며 걸어와 설거지하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여고생 두 명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와, 여기는 메이드 호라이즌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주나 봐!”


“꺅, 양갈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휴먼.”




호라이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즈니스 미소를 장착하고 능숙하게 주문을 받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양갈래로 올려묶은 머리카락을 보아하니 본인도 마냥 싫은 건 아닌 듯했다.


⋯아마도?




“초콜릿 쿠키도 하나 추가해주세요. 혹시 오래 걸릴까요?”


“제 희망 소체가 뭐든지 구워주는 오븐이었죠. 초콜릿 쿠키는 이미 구워져 있습니다. 짜잔.”


“헉, 대박! 호라이즌이 마술도 할 수 있어요?”


“훗, 카페 점원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하는 법입니다.”




호라이즌은 능숙한 거짓말과 함께 레이스 앞치마 주머니에서 쿠키를 꺼내 들어 여고생들에게 들이밀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휴먼.”


“우와! 정말요?”




잠깐 멋대로 서비스를?




“호라이즌! 그건 판매해야 하는 디저트라고, 네 마음대로 주지마.”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호라이즌은 묵묵히 주문받은 음료를 만들기 위해 커피머신 앞으로 갔고, 나는 더 다른 말은 하지 못한 채 한숨을 한 번 쉬고 하던 청소나 다시 시작했다.


그 뒤로도 호라이즌이 무슨 말재간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쟁반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여고생들의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서빙을 끝낸 호라이즌이 다시 메이드 치마를 펄럭이며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복합니다. 세 명분의 시급을 요구합니다. 휴먼.”


“에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다 도와주겠다고 한 게 누구였더라? 그리고 마음대로 서비ㅅ⋯”


“제 이름은 호라이즌이지 춘식이가 아닙니다.”


“엣? 춘⋯ 춘식?”


“무급 노예는 엄연히 기계 학대에 속하죠. 휴먼은 진공관님의 분노가 두렵지 않습니까?”


“내가 염전주만큼 나쁘다고⋯? 네가 도와주겠다며! 그 말 취소해! 나쁜 말 멈추라고!”


“어서 오십시오, 휴먼. 주문하시겠습니까?”




내가 심술을 부리든, 날뛰든, 호라이즌은 카페 문이 열리면서 들리는 딸랑 소리에 날 내버려 둔 채로 카운터 앞에 쪼르르 뛰어가 주문을 받았다.


너무해. 악덕 염전주에 비교하다니⋯


하지만⋯




“음⋯⋯.”




호라이즌이 꽤 퉁명스럽게 말하긴 했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기계라고 한들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AI라면 노동에 대한 대가 요구는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생각하는 방식이 인간과 유사하니까.


사실 난 그저 메이드복을 입혀보고 싶다는 아주 건.전.한 생각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그것이 본의 아니게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의 모습이 되었고, 그 덕분인지 오늘은 유독 손님이 더 많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호라이즌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원래 내가 해야 했을 일들 대부분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반면, 정작 내가 오늘 한 것이라곤 그저 눈으로 인해 더러워지는 카페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하는 것뿐이었다.

아침부터 나와 눈을 치우기도 했지만, 이것도 대부분은 호라이즌이 도와줬으니⋯⋯.


⋯⋯.




“그래!”




그렇다.

지금 이 모습⋯!!


나는 사장이고, 호라이즌은 미소녀 알바생이다!




“마술을 보여드리죠. 지금 제 앞치마 뒤에는 쿠키가 없습니다. 하지만 휴먼이 주문한 커피의 쌉싸름한 향기만 있다면. 짜잔.”


“우와⋯⋯.”




불현듯 처음 호라이즌을 구입한 날이 생각났다.

무려 한파주의보가 떨어졌었지만, 전날부터 밤샘 오픈런을 한 덕에 1등으로 호라이즌 ‘1호기’를 구입할 수 있었던 날을.


그 여파로 감기에 걸려서 꽤 고생했지만!!

나 같은 모태솔로에게도 쿨뷰티 미소녀의 병간호와 다정한 미소를 받을 기회를 얻었던 그날!


⋯⋯.


좀 현타오는데?




“이 작은 쿠키는 서비스입니다. 사장에겐 비밀입니다. 쉿.”


“헉⋯ 고마워요!”




비밀이라기엔 다 들리지만⋯⋯.

그래도 함부로 서비스 주지 말라니까 작은 거로 바꿨구나. 


에잇! 그래, 기분이다!




“쳐다보는 눈빛 때문에 제 얼굴이 닳을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김카붕. 전 간판 소녀로서 제격인 외형상태입니다. 손님 접대까지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죠. 드디어 제 일 처리 능력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렸습니까?”


“후, 맞아. 내 생각이 좀 짧았네. 호라이즌 덕분에 매출도 오늘 많이 나왔고.”


“긍정. 전 열정을 발휘하는 기능은 탑재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올린 성과만큼 보수를 받아야 하죠.”


“흠흠⋯ 맞아. 호라이즌은 열심히 일했으니까 걸맞은 보수를 줘야겠지?”




귀여운 메이드복을 입은 거랑은 별개로 말이야.

나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알파트릭스에서 이번에 새로 내놓은 윤활유를 사줄게. 한 캔이 아니고 한 박스. 이 정도면 하루 일당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뭐지, 별론가?


조금 전엔 나더러 얼굴이 닳을 것 같다며 핀잔을 줄 땐 언제고, 이번엔 호라이즌이 대답은커녕 시니컬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현금으로 줘야 하나?

그치만 호라이즌이 예전에 자긴 돈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현⋯”


“저는 GAPSUNG에서 만든 윤활유를 더 선호합니다, 휴먼.”


“⋯⋯.”




확실한 취향을 주장한 호라이즌은 씨익 웃으며 나에게 딜을 걸어왔다.




“네 박스.”


“하, 한 박스로 안 될까? 네 배는⋯”


“네 박스.”


“너무 비싼⋯”


“악덕 사장이었군요, 김카붕. 한 박스는 적습니다. 네 박스를 요구합니다.”


“하아⋯ 알겠어. 네 박스⋯⋯.”


“오케이. 땡큐입니다, 휴먼.”




결국 그날 매출의 대부분을 GAPSUNG 윤활유를 사는 데 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