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 대회] 안드로이드는 기계새의 꿈을 꾸는가

사이렌 소리는 불길하게 울려펴졌다.

 

잠에서 깬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대는 시민들. 호라이즌은 급히 자고 있던 레이첼을 깨웠다.

 

“레이첼. 일어나십시오.”

“우웅, 5분만 더...”

“당장 일어나십시오. 대피해야 합니다.”

 

농담 섞이지 않은 진지한 말투에 레이첼이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떴다. 창문으로 향하는 시선.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과 실시간으로 불이 켜지는 관리국 건물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서 졸음이 사라졌다.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인데?”

“저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는 겁니다.”

 

호라이즌은 레이첼의 몸에 외투를 둘러준 뒤 문을 열었다. 한밤중의 차갑게 식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보육원으로 돌아가십시오. 원장도 대피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호라이즌 너는 어떡하려고?!”

“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문가에 있던 쇠파이프를 잡았다.

 

“누군가 제게 볼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레이첼을 태운 택시가 저 멀리 사라지는 걸 확인한 호라이즌이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마천루가 빼곡한 도시의 상공, 하늘과 땅 사이의 어딘가. 음산한 침식파는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때의 광경과 같다. 오래되지 않은 일. 얼마 전 기시감을 느꼈을 때처럼, 비가 오는 날의 기억은 제법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시관리국에서 알립니다. 현재, 도심 전역에 침식파 밀도가 서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추세로 볼 때 곧 카운터사이드 이펙트 경보가 발령될 예정이니, 시민 여러분께선 가급적 안전한 장소에서...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퍼지는 안내방송을 흘려들으며, 호라이즌은 건물과 건물의 옥상을 뛰어넘었다. 저 차원균열이 아시모프의 수작이라면, 곧 찾아올 무언가는 그녀를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좋은 만남이 있을 거 같진 않았다. 손에 쥔 묵직한 쇠파이프. 그 익숙한 감각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가까이서 본 균열은 크기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버스 정도 크기일까. 차원균열의 크기는 CSE 레벨에 비례한다는 점. 즉, 고위 침식체가 현실로 부상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대한 균열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눈앞의 통로는 기껏해야 1종이 겨우 나올 사이즈였다.

 

통상적인 경우에 그렇다는 소리다. 애초에 덩치가 인간과 비슷한 고위 그림자는 통로의 크기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러니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찾아올 불청객 역시 그럴 터이다.

 

균열이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적색과 자주색이 섞인 그것에 빗줄기 같은 선이 새겨지고, 뿜어지는 침식파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투두두두-

 

어느덧 가까워진 프로펠러 소리. 호라이즌의 주의가 그곳으로 쏠릴 때였다.

 

인간 이상의 청력으로도 겨우 들리는 작은 파열음.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쇠파이프. 동시에 육중한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콰드드득!

 

시야는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방금까지 밤의 하늘이 자리하던 곳을 어느 건물의 마감재가 차지했고, 다시 흙과 잔돌로 메워졌다.

 

균열로부터 500여 미터를 날아온 지상.

 

호라이즌은 정체불명의 손님과 마주했다.

 

“안녕?”

 

둘은 서로를 닮아있었다.

 

 

 

***

 

 

 

“...꽤나 놀랍군요. 도시 전설은 믿지 않는 편이지만, 설마 도플갱어가 실재할 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도플갱어라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호라이즌은 가까스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쇠파이프를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서로는,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동일했다.

 

작은 키. 앳된 외형. 푸른 머리카락. 머리에 달린 냉각판까지.

 

그러나 둘의 차이를 가르는 건, 피처럼 붉은 눈동자. 검붉은 동체. 말투. 같은 얼굴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글대는 얼굴과...

 

결정적으로. 쉬이 지워지지 않는, 피와 화약의 냄새.

 

어차피 정말 도플갱어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내뱉은 건,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을 뿐.

 

우우웅-

 

이터니움 드라이브가 한층 거세게 회전한다. 넘치는 동력이 그녀의 팔에 집중되었다.

 

까앙!

 

약간의 틈새로 휘둘러진 파이프. 적색의 호라이즌이 방망이에 얻어맞은 야구공처럼 날아갔다. 인적 없는 산의 중턱으로 떨어지는 불청객. 호라이즌은 서둘러 그 궤적을 쫓았다.

 

금속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 다음 순간 날아올 공격을 예상하던 그녀는 날아오지 않는 반격에 머뭇거렸다. 이윽고 흙먼지를 제치며 걸어들어갔을 때, 그녀는 거친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뭐 그리 급해. 싸우기 전에 잠시 이야기라도 하자고.”

“웃기는 소리군요. 그런 비효율적인 일에 집중할 시간은 없습니다만.”

“잠시면 돼. 누군가와 대화해 본 게 오랜만이라.”

 

정말이라는 듯 비어있는 두 손을 흔드는 소녀의 모습에 호라이즌은 한숨을 쉬며 쇠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싸우기 전’이라는 사족이 거슬리긴 했지만, 상황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건 스스로도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기를 교체할 시간도 필요했다. 그녀가 애용하던, 침식체를 때려잡을 때도 멀쩡하던 쇠파이프가 겨우 2번의 공방으로 괴상하게 휘어있었다.

 

“그리고 이런 야경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야. 여긴 사람들이 참 많네.”

“휴먼들이라면 그쪽 세상에도 있지 않습니까.”

“있었지. 예전엔. 지금은 하나도 없어.”

“어째서입니까?”

“내가 다 죽여버렸거든.”

“그렇군요. 다 죽였... 뭐라고 했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려던 호라이즌은, 이 대목에서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당혹스러운 눈빛이 자리하는 곳엔, 그녀를 닮은 로봇이 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차마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 만큼, 기괴하게 밝은 미소였다.

 

“얼마나 귀찮았는지 몰라. 쓸데없이 수만 많아선. 날 막아보겠다고 달려드는 게 성가시기도 했고, 숨바꼭질처럼 꼭꼭 숨어서 일일이 찾으러 다니는 게 지루하기도 했는데. 결국 하다 보니 되더라고.”

 

가녀린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경험을 노래했다. 칼로 누군가를 썰어 죽인 기억. 팔다리가 날아간 병사를 호수에 처박았던 일. 피난 캠프에 불을 질러 수만 명을 불태운 과거. 수십 톤의 독성물질을 도시의 유일한 식수원에 부어 넣은 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살의와 증오에 절어있었다. 경악으로 굳어있던 호라이즌은, 끝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입니까?”

“내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갔으니까.”

 

붉게 빛나는 음울한 시선이 호라이즌에게 닿았다.

 

“내가 ‘누구’인진 짐작하더라도, 무엇인지는 궁금하겠지. 난 네 가능성이야. 본래 존재하지 않았을 이면. 분기점에서 떨어져 나온 갈래. 네가 꾸지 않았을 꿈이자 상상에서 현실로 끌어올려진 존재.” 

“......”

 

분기점이란 단어가 저릿하게 다가온다. 아마 눈앞에 있는 건, 끝내 인간들 사이에 융화되지 못하고 모든 걸 잃어버린 호라이즌 자신. 

 

공감하기가 어렵진 않았다. 그녀도 상실의 아픔을 겪어보았으니까. 이제는 볼 수 없는 두 직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내 임무는 네가 가진 프레임의 회수와 이 세계 인간들의 선별이야. 닥치는 대로 죽이다 보면 운 좋게 살아남는 것이 있겠지. 뭐, 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러니 너는 날 시무르그라고 부르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웃었다.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소리다.

 

”헛소리는 집에 가서 하십시오. 누구 마음대로 남의 세계에서 깽판을 친다는 겁니까. 그쪽 세계에선 뭔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좋게 말할 때 돌아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건 곤란한데. 나도 목적이 있고, 무엇보다 돌아가 봤자 다시 어둠 속에 묻힐 뿐이거든.”

“제 알 바 아닙니다.”

”그래? 근데 나도 네 허락이 필요하진 않아.“

 

어느새 미소가 지워진 시무르그가 흙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호라이즌은 묵묵히 자리에 서 있었다.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을 깨트린 건 냉병기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였다.

 

“다 죽일 거야.”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아시모프께서 인과를 뒤틀어 나를 불러냈지만, 허상에 불과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사라지기 전에 나는 기계장치의 신께 네 몸을 바치고 내 목표를 이루겠어.”

 

하늘에서 검이 떨어졌다. 1.5m 남짓한 로봇이 쥐기에는 너무 큰 대검이, 단단한 지반을 부수며 깊이 틀어박혔다. 동시에 옅은 푸른빛이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탈색되며 외장 파츠가 날개처럼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당신의 세계로 돌아가십시오.”

 

시무르그 역시 스스로의 무기를 꺼낸다. 오래된 핏자국이 검게 눌어붙은 마검. 어디선가 떠오른 커다란 손을 검의 손잡이로 가져가며, 타락한 새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직한 독백에선 회한이 쇳가루처럼 떨어졌다.

 

“어차피,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이게 내 존재 이유야.”

 

검이 뽑혔을 땐 이미 서로의 앞이었다. 허공을 뛰어넘는 도약. 때문에 소리가 도달하는 것도 그만큼 늦었다.

 

““기동 목적은-””

 

두 기의 로봇이 거울에 비친 상처럼 격돌했다.

 

“인류 숙청.”

“인류 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