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 대회] 안드로이드는 기계새의 꿈을 꾸는가

“후우...”

 

담배가 타들어간다. 꺼멓게 타버린 그의 속을 대변하듯 떨어지는 담뱃재 또한 검은색이었다.

 

도시관리국에 근무하는 리처드 잭슨은, 오늘도 스트레스에 머리를 긁었다.

 

“한밤중에 침식경보가 울린 건 그렇다 쳐도, 균열이 갑자기 없어지는 건 또 뭐냐고... 그것도 하필이면 오늘...”

 

달달달달. 다리가 수전증 환자처럼 떨린다.

 

회의실에서 바라본 바깥은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깬 시민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개중에 몇몇은 생존주의자였는지 미리 싸뒀을 가방을 챙겨 가족들과 어디론가 대피하는 중이었고, 다른 몇몇은 관리국 앞까지 찾아와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관리국과 계약해 도시 방위를 책임지는 태스크포스는.

 

“경보가 울렸고 균열도 열렸는데 정작 침식체는 없다? 지금 나랑 장난해?”

“침식체가 없다는 게 아니라... 아직 출몰하지 않을 거일 수도-”

“그 균열 이미 닫혔다면서! 나왔을 거면 진작 나왔지 이런...!”

 

침식체 대신 직원들과 싸우며 카운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거기 형씨. 담배만 뻑뻑 피우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보시지.”

 

조무래기만 상대해선 끝이 없겠다는 판단이었을까. 카운터는 여기서 가장 직급이 높은 잭슨에게 다가왔다.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잭슨도 까라면 까는 말단에 불과했으니까. 상사 갑질에 떠밀려 당직을 떠맡았을 뿐인.

 

“우리가, 경보 듣고서, 출동은 했는데, 침식체가 없네? 그래서 실적으로도 안 치고 출동 수당도 안 준다고 하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으응?”

“아... 저, 그게...”

“말해 봐. 어떨 것 같으냐고. 저 돼지 같은 헬기에 비싼 항공유 처먹여가며 왔는데, 한 푼도 못 건지게 된 우리 기분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OK를 해주면 그는 좆되는 입장이었다.

 

상황이 그랬다. 하다못해 다 죽어가는 1종 하나라도 잡았다면 모를까, 허공에 생겨난 균열에선 쥐새끼 하나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전투 자체가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예상되는 지출은 어마어마했다. 저들이 타고 온 헬기랑 장갑차 기름값만 해도 그의 몇 년 치 연봉이다. 여기에 카운터 출동비나 정비 비용, 수당 등을 더하면 최소가 억 단위였다.

 

이걸 그냥 OK 해줬다간 잭슨에게 당직 근무를 맡긴 상사가 그를 죽이려 들 것이다. 일단은 미뤄야 했다. 그가 떠넘길 수 있는 직급이 올 때까지. 관료제 특유의 어쩔 수 없는 폐해였다.

 

“...일단 아침까지 기다려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서억-!”

“헛소리하지 마! 니들 일 처리를 내가 한두 번 겪어본 줄 알아?!”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려 했지만, 이미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 있는 사람인 듯싶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아저씨는 싫다니까.

 

실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카운터에게 멱살을 잡히니 세상이 미친 듯 요동친다.

 

“흐아아아아아-”

“수당 내놔! 우리 돈! 내 돈!”

 

경악한 직원들이 서둘러 손을 떼어내려 하지만, 일반인이 카운터를 당해낼 리 있나. 책상물림 특유의 비실비실한 체력 때문인지 조금만 밀쳐도 픽픽 쓰러진다. 결국 헥헥대며 주변에 널브러진 부하직원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존나 쎈 침식체라도 하나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그때였다.

 

콰앙!

 

산등성이에서 울리는 거대한 충격음. 개판 5분 전이던 사무실에 침묵이 깔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의 발원지를 살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잭슨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농담이었는데.”

 

아니겠지?

 

 

 

***

 

 

 

어두운 하늘을 두 섬광이 가로질렀다.

 

격돌의 여파는 봉오리가 만개한 꽃과 같았다. 한순간 어둠을 지워내듯 터지는 불티. 그런 이유로 허공엔 주홍빛의 꽃다발이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일견 대등해 보이는 싸움이었으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벌써 지친 거냐? 아까보다 느려진 거 같은데?”

“하루종일도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애초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의 바로 옆에서 수만 명이 거주 중이다. 불과 수 킬로미터만 더 가면 샤레이드였고, 그 주변에 다시 십여 개의 위성도시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기동은 항상 바깥을 점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로 향하려는 시무르그를, 호라이즌이 억지로 틀어막는 형국. 수 싸움에서 매번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호라이즌으로선 전장을 이곳에 붙들어놓는 걸로 한계였다.

 

칼이 흐르는 궤적은 밀리미터 단위의 싸움이었다. 시간을 앞서나가는 연산으로 미래를 계산해,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 연산 회로가 빠르게 뜨거워졌다.

 

「CPU 온도 상승. 냉각기 가동합니다.」

 

머리에 달린 냉각기가 작동하며 회로에 냉기를 흩뿌렸다. 그러나 좀처럼 식지 않는다. 전투 모드를 유지하기 위한 연산조차 아득히 방대했던 까닭이다.

 

카앙!

 

또 한 번의 격돌. 결과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기습적으로 출력을 올린 시무르그가 강하게 검을 밀어붙여왔다. 힘의 평형이 깨지며 호라이즌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폭발하는 나무의 파편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얕게 팬 구덩이 속에서 일어난다.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가려진 시야가 문제였다. 손을 움직여 연막을 걷어내려는 찰나, 위기 감지 시스템이 경종을 울렸다. 공간이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졌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대검. 아슬아슬한 차이로 호라이즌이 있던 곳에 내려꽂혔다. 폭탄이라도 터진 듯 토사가 물기둥처럼 솟아올랐다.

 

무너지는 산맥의 등줄기에서 어렴풋이 적색의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호라이즌은 소리 없이 그 뒤로 이동해 가는 다리를 움켜잡았다.

 

“잡았습니다.”

 

공간 도약 시퀀스. 순간,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뒤집힌 채 나타난 호라이즌이 시무르그를 강하게 던졌다. 중력을 거스르던 추진력이 고스란히 낙하 에너지로 전환되며 산의 꼭대기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 중심을 향해, 백색의 로봇이 검을 꽂아 넣었다.

 

콰우우우-

 

산의 봉우리가 쪼개지는 소리는, 대형종 침식체가 내지르는 단말마를 닮아있었다. 분화구처럼 거대하게 패인 폭심지. 그러나 한발 늦었다.

 

“제법 잘 싸우네. 놀고먹기만 한 건 아닌가 봐?”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호라이즌은 말없이 검을 들어 막아냈다. 강렬한 충격파가 주위를 휩쓰는 순간에 호라이즌은 검을 비틀어 시무르그의 목을 겨냥했다.

 

“-!”

 

시무르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틀었다. 이런 공격도 할 줄 알았냐는 듯 지나치게 과장된 표정은, 상당히 거슬리는 얼굴이었다.

 

프레임의 성능은 동일하더라도 경험의 차이가 너무 컸다. 호라이즌도 나름 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시무르그의 그것은 노련한 베테랑을 연상시켰다. 저만한 경험치를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서, 호라이즌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을 놓아버린 호라이즌이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이번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굳어버리는 얼굴. 크게 메어쳐 땅바닥에 내리꽂은 백색 로봇이 파운딩 자세를 잡았다. 장갑차도 뭉개버리는 완력이 시무르그를 강타했다.

 

콰앙-!

 

청각 회로를 먹먹하게 만드는 타격음. 호라이즌은 멈추지 않고 주먹을 내리쳤다. 파일 벙커를 상회하는 파괴력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

 

몇 번째일지 모를 주먹질이 내리쳐지기 직전, 시야가 반전했다. 도저히 호라이즌을 떨어트릴 수 없자 인근 공간을 통째로 도약한 것이다. 때문에 구름 낀 하늘에선 흙과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고, 불안정한 도약의 여파로 온몸의 프레임이 삐걱거리고 있었으나, 둘은 여전히 붙어있었다.

 

“이거... 놔!”

“커뮤니케이션 중입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억센 다리가 그녀의 몸통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자, 시무르그는 대단히 입체적인 궤적의 비행을 시작했다. 구름의 내부를 날아가다 수직으로 낙하하고, 지표면을 뚫고 들어가 암반을 깨부수다가, 비스듬히 상승해 산의 경사를 따라서 숲을 갈아버리는 비행경로.

 

그럼에도 호라이즌이 떨어지지 않으니, 방향을 바꿔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땅이 멀어졌다. 지상의 불빛이 반짝이다가 흐린 구름에 뒤덮이고, 지평선은 휘어지다 못해 공처럼 둥글어졌다.

 

종착역은 밤과 공허의 경계였다. 행성과 우주를 분리하는 기준이 되는 공간. 이곳에선 푸르른 별이 발아래에 있었다. 극도로 차가워진 기온에 응결된 수분이 보석처럼 주위를 떠다녔다.

 

희박해진 대기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외계에서 밀려오는 침식파였다. 검게 이미지된 에너지가 심장의 회전수를 높였다.

 

「아베스타 드라이브 기동. 침식파 정제를 개시합니다.」

 

소체가 원래의 기능을 되찾는 건 시무르그도 마찬가지였다. 뒤엉키는 싸움이 더욱 격렬해졌다.

 

꽈드득.

 

어렵사리 한 손을 빼낸 흑색의 새가, 호라이즌의 주먹을 붙잡았다. 불길하게 들리는 소음은 과도한 압력을 버티지 못한 프레임이 우그러지는 소리였다. 비명을 지르는 게 누구의 프레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검게 이글거리는 안광과 푸른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야만스럽기는. 할 줄 아는 게 주먹질밖에 없어?”

“그쪽은 제 얼굴에 침 뱉기란 말을 모르나 보군요.”

“뿌리가 같아도 가지가 다 똑같이 생긴 건 아니지. 우린 너무 많은 게 달라. 넌 야만적이고 멍청하며 한심한 데다가...”

 

시무르그의 입꼬리가 불길하게 비틀렸다.

 

“...이럴 배짱도 없지.”

 

다음 순간, 호라이즌의 눈앞에 다가온 건 초속 7km 이상으로 공전 중인 거대한 무언가였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레벨의 충격.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일어난 충돌은 알루미늄과 티타늄의 파편을 전방위로 퍼트렸다.

 

인공위성이 산산조각 나는 폭발의 한가운데에서, 호라이즌의 의식이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