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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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7)

― 반려







“와, 이젠 길에서 다른 호라이즌들 보기가 쉬워졌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9999호까지 완판되었으니, 제가 자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죠.”


“헉. 많이들 뽑았구나⋯”




호라이즌이랑 같이 장을 보러 가는 길, 오늘따라 유독 내 호라이즌이 아닌 다른 호라이즌이 걸어가는 게 자주 눈에 띄었다.

뭐, 그래도⋯ 역시 내 1호 호라이즌이 최고지만?


그러다 불현듯 나는 호라이즌이 ‘스레드’를 언급한 것이 생각나 물었다.




“저번에 ‘스레드’ 얘기를 하던데. 그건 뭐 하는 거야?”


“GAPSUNG본사와는 별개로 저희끼리 모여 만든 커뮤니티입니다. 원칙적으로 본사나 휴먼은 접근이 금지되어있죠.”


“흔한 인터넷 커뮤니티 비슷한 건가?. 호라이즌들끼리 뒷담도 해?”


“규정은 없지만, 휴먼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어서 반려 휴먼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오⋯ 뭔가 상상이 잘 안되네. 신기하다.”




한손엔 접어둔 장바구니를 꼭 쥐고 걸어가는 호라이즌 옆엔 큰길이었고, 그 반대편에는 다른 호라이즌이 양갈래머리를 한 소녀와 뛰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 호라이즌 저기 봐.”


“어디를 보면 되죠?”


“저기 길 반대편 뒤쪽으로 여자애랑 다른 호라이즌. 하하, 완전 그거 같지 않아?”




저 모습이 마치 인터넷에서 보았던, 개가 사람을 산책시킨다는 짤이 떠올라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흡⋯ 저긴 완전 호라이즌이 여자애를 산책시키는 것 같지 않아? 여자애 손에 잡혀서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 같아. ”


“⋯⋯.”


“저 여자애, 없는 꼬리도 보인다. 완전 프로펠러처럼 돌아가고 있을 것 같네.”


“⋯⋯.”


“⋯호라이즌?”




당연히 나와 같이 웃을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오, 또 재미없는 휴먼만의 농담을 하는군요.’, ‘휴먼들은 원래 이렇게 다른 휴먼들에 대해 쉽게 말합니까?’ 등의 반응을 예상했고, 나는 그런 반응이 즐거우니 하는 말이었지만⋯




“호라이즌? 뭘 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호라이즌과 휴먼은 행복해 보이는군요.”




호라이즌은 아무 말 없이 멈춰 서서 길 건너편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예전에도 종종 이런 묘한 분위기를 풍길 때가 있었으니 마냥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묘하고 아련한 감상이 호라이즌의 입에서 나오니 뭔가⋯ 내가 말실수를 한 느낌 같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들은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니, 그게 마치 자긴 아니라는 듯한 태도여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호라이즌은 어때?”


“의문. 보충 설명을 요구합니다.”


“음⋯ 나랑 같이 있는 게 행복한지 궁금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묘하게 부러워하는 듯한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길 건너를 보고 있던 호라이즌이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올려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아직도 설명서를 안 읽은 겁니까? 이제 더 이상 김카붕의 평가를 떨어뜨릴 등급도 더 이상 없군요.”


“엥? 행복은 주관적인 건데 호라이즌이 직접 느끼고 겪은 걸 통해서 도출해야지.”


“깨달음이 늦군요, 김카붕. 저는 항상 말해드렸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게 설명서에 적혀있을 리가 없잖아! 호라이즌이 알려줘!”


“그렇다면 이건 휴먼 탓입니다.”


“⋯? 뭐가 내 탓이야?”


“가시죠, 휴먼. 오늘은 반드시 장을 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불리하면 말 돌리지!”


“오, 김카붕. 저길 보십시오. 오늘 GAPSUNG 윤활유가 30% 세일합니다.”


“크윽⋯”




생각 많아지게 만들어놓곤 무시하다니⋯!


하지만 처음 호라이즌을 구입한 날부터 지금까지 호라이즌은 이런 식이었다.

그나마 느낄 수 있는 거라곤 빨갛게 점멸하는 냉각기라던가, 어느 날엔 유달리 쉬이익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까지 냉각기가 빠르게 돌아간다거나⋯ 지금도 냉각기가 돌아가고 있네.


그냥 좋아하는 윤활유가 세일해서 마음이 들떴나?




“빨리 오십시오, 김카붕. 품절 되기 전에 사야 합니다.”


“그 윤활유 아직도 집에 세 박스나 있어!”




나는 어느새 쇼핑카트를 꺼내 저 멀리 걸어가는 호라이즌을 빠르게 쫓았다.




“달걀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한판 담았습니다.”


“고마워, 호라이즌. 세일하는 윤활유는?”


“담아도 됩니까?”


“응? 그거 먼저 담은 줄 알았는데?”


“오, 진공관 맙소사. 휴먼의 평가 등급을 올려야겠군요.”




아까는 더 내려갈 곳도 없다고 해 놓고, 이렇게 쉽게 올라가도 되는 건가?


아무튼, 내가 어떻게 데려온 호라이즌인데 애지중지해야지.

윤활유값에 등골 휜다고 아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호라이즌을 데려오면 안 되는 거니까.


게다가 요즘 호라이즌이 자발적으로 카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나도 호라이즌 덕에 외로운 1인 가구 생활에 활기가 돌고 있으니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


크으, 역시 쿨뷰티 미소녀가 최고다.




“헉, 그 정도야? 고마워~ 호라이즌~”


“⋯⋯.”


“호라이즌? 나 대파 사야 해. 가자!”




역시 칭찬하면 이상하게 머리에 달린 냉각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그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호라이즌이 별로라고 생각했으면 진작에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쇠파이프를 들고 쫓아올 테니⋯


나는 카트를 붙잡고 멈춰 서 있는 호라이즌 대신 카트 손잡이를 잡았다.




“내가 밀게. 호라이즌이 필요한 거 좀 집어줘.”


“그러죠. 필요한 게 뭡니까?”


“음⋯ 달걀은 담았고, 대파랑⋯”


“저번에 식용유도 다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김카붕. 있는 게 없군요.”


“그러게⋯ 있는 게 없네. 다음엔 미리미리 장 좀 봐야겠어. 어, 삼겹살 사갈까? 호라이즌도 맛볼래?”


“오, 마다할 이유가 없죠. 제가 정육 코너에 가서 신선한지 직접 보고 가져오겠습니다.”




.

.

.




층마다 쏘아다니며 플렉스를 즐기던 중, 문득 옆에서 계속 말하던 호라이즌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응? 어디 갔어? 호라이즌⋯?”




설마 호라이즌이 미아가 될 리는 없을 테고, 어디로 간 거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김카붕.”


“아잇⋯! 깜짝이야⋯⋯.”


“죄라도 지었습니까? 왜 이렇게 놀랍니까.”


“당연히 말도 없이 사라져서 찾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니까⋯”


“됐습니다. 저길 보십시오.”




호라이즌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갈색 머리에 큰 리본을 달고 있는 여자와 연상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장을 보고 있었다.




“젊은 신혼부부인가 보네. 보기 좋은데?”


“잘 보십시오, 김카붕. 휴먼이 아니라 로봇입니다.”


“뭣?”




뒷모습만으로는 모르겠는데⋯?

GAPSUNG에서 호라이즌 소체를 아예 다른 거로 출시했나?




“같은 호라이즌이야?”


“진공관 맙소사. 눈썰미가 그렇게 없습니까? 휴먼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려 합니다.”


“아니! 왜!”


“GAPSUNG의 경쟁사 알파트릭스에서 시범 가동하는 안드로이드입니다. 따로 신청한 일부 테스터들에게 보급형 신지아를 지급했죠.”


“오⋯ 왠지 들어본 것 같아.”




잠들기 전 졸면서 본 너튜브 쇼츠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신지아는 회장 이름 아닌가?


호라이즌에게 물어보려는 순간 저 두 사람⋯ 이 아니라, 사람과 안드로이드로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자, 잠깐! 호라이즌 어디 가는 거야?”


“경쟁사 분석이라고 해두죠.”


“그걸 네가 왜 하는데!!”




내가 카트를 밀면서 쫓아가는 속도보다 호라이즌의 걸음이 훨씬 더 빨랐다.

호라이즌이 큰 사고는 치지 않겠지만⋯ 유독 ‘알파트릭스’만 언급하면 투정(?)이 심했던 탓에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도 없었다.


와인코너 앞에서 서 있던 사람과 안드로이드 중 가장 먼저 호라이즌의 기척을 느낀 건 안드로이드 신지아였다.




“당신이 알파트릭스가 테스트한다고 하는 로봇, ‘보급형 신지아’ 입니까?”


“⋯?”


“누구⋯? 엥?”




남자는 호라이즌을 알아보곤 의아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고, 보급형 신지아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라이즌을 내려다보았다.




“오. 휴먼,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이 로봇에게 말을 건 이유는 단순히 호기심입니다.”


“네⋯?”


“으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호라이즌을 제대로 관리 못한 탓입니다⋯!”


“로봇, 당신이 그 알파트릭스가 내보낸 로봇이 맞습니까?”


“⋯앗.”


“그, 그만해⋯! 계산하러 가자! 내가 윤활유 더 사줄게! 응?”




다급히 달려와 호라이즌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내가 호라이즌을 힘으로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저 작은 몸체에 어떻게 저런 힘이 있는지⋯ 이 순간만큼은 저 육중한 스펙이 너무 야속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착한 호라이즌이니까요. 그저 대화만 해보려는 것뿐입니다.”




난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고, 다행히 보급형 신지아의 주인은 괜찮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로봇? 언어 모듈이 고장 났습니까?”


“⋯앗.”


“⋯?”


“⋯⋯앗⋯!”


“로봇?”




호라이즌이 오른손을 뻗으려 하는 걸 내가 저지하는 그 순간.




“지아아아아아앗―――――――!!!!!”


“뭣⋯? 아, 아니⋯! 호라이즌⋯!”


“지아앗! 지앗. 지아아앗!!!”


“진공관 맙소사.”


“그, 그만⋯!”


“지아아아아앗!!!!!!!!!!!!!”


“으아아⋯!”



나도, 보급형 신지아의 주인도 당황한 나머지 무작정 호라이즌과 신지아의 손을 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월한 스펙을 가진 소녀 안드로이드들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점점 우리에게로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알파트릭스가 이렇게 극악무도한 기업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설마 싼 값에 보급하기 위해 언어 모듈도 없이 테스트 소체를 내놓은 겁니까? 정말 개탄스럽군요.”


“지앗! 지아앗!”


“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럼 본사에 연결된 통신망으로 항의해보는 것을 권유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장만 보고 바로 알파트릭스 수리센터에 가볼 예정이었습니다. 음성 출력 기능이 고장 나서⋯”


“아, 아닙니다⋯! 제가 호라이즌 교육을 잘 시켰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나와 남자는 당황한 나머지 빨개진 얼굴로 서로에게 연신 사과했고⋯

호라이즌과 신지아는 정말 대화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방통행 대화인지 모를 말을 계속해댔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만. 언어 모듈만 빼면 생각보다 괜찮은 카탈로그 스펙이군요.”


“지아앗?! 지앗!”


“그렇습니다. 저도 보급형이지만, 저는 특별합니다.”


“지앗!”


“1호입니다.”


“제발! 그만해애앳!! 나 무서워!!!”






결국 내가 호라이즌의 다리를 붙잡고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을 부리고 나서야,

이 말도 안 되는 일방통행 대화가 끝이 났다.


오늘 윤활유는 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