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스트레가, 그리고 옌과 시엘

 “그대들의 성의에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오. 허나, 역시 너무 위험하구려. 본인 하나 뿐이라면 모를까, 낭자들의 안위까지 보장할 수는 없겠구려. 관계없는 이를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소.”

 시엘이 이렇게 말하며 등을 돌려 뛰쳐나갔다.

 “잠깐만, 기다려요!“

 유나가 안타깝게 외치며 쫓아가려 했지만 라우라가 말렸다.

 “유나, 돕고싶은 마음은 나도 이해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상황에 좋지 않아. 어차피 큰 도움은 줄 수 없었을 거야. 지금은 손님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어.”

 “그럴수가…….”

 짧은 대화가 끝난 사이, 시엘과의 거리가 벌써 크게 벌어져 더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시엘은 다리를 재촉하며 속도를 더욱 올렸다. 가장 가까운 용병들의 항구를 향해 달려가며 시엘은 학생회 동료인 미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카 낭자, 시엘이라오. 상황이 급하니 일단 대답하지 말고 계속 들어주시구려…….”

 시엘이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전달하자 미카는 당황하면서도 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알겠어, 시엘! 일단 이디스부터 깨우고, 선생님들께 보고한 뒤 다시 연락할게. 휴대폰은 계속 켜둬! 이디스라면 저심도 좌표까지는 추적이 가능할 거야! 지원 병력을 보낼 테니까, 절대로 혼자 가면 안 돼!“

 “그럴 수는 없겠소. 당장 30분 뒤에 함선이 출항하는구려. 다이브하면 다시 연락하겠소.”

 "잠깐만, 시엘……!”

 미카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시엘이 전화를 끊었다. 20분 정도 전력으로 질주한 끝에, 시엘은 늦지 않게 함선에 오를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함선을 호위할 카운터를 모집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 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함선이 다이브를 개시했다. 침식 수준이 서서히 상승해 시엘의 몸이 찌릿하게 떨려왔다. 이면세계의 서늘한 감각을 물리치며 소녀는 각오를 다졌다.

 한 시간 뒤.

 목표한 지점에 도착한 함선이 착륙했다. 시엘은 근처에서 침식체 무리가 느껴진다고 둘러대며 함선을 빠져나왔다. 만약 예정된 시각까지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구조대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며 그녀는 쪽지에 적힌 좌표를 향해 달렸다. 용병들은 탐탁치 않아 하면서도 그렇게 하라며 시엘에게 알겠다고 말했다.

 수십 초 후, 시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용병들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바보 같은 년. 자, 바로 돌아가자!”

 보스의 지시에 따라 용병들은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현실 세계로 부상했다. 애초에 이 용병들도 납치범들과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도 구조대가 올 리 없었다. 탈출구가 사라졌음을 깨닫지 못한 시엘은 오로지 앞만 보고, 침식체들을 도륙내며 달려갈 뿐이었다.

***

 벌써 한 시간 째, 시엘이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디스의 추적에 따르면 옌의 휴대폰 전파는 납치범이 알려준 좌표 근처에서 끊어졌다고 했다. 그녀가 전원을 일부러 껐을 리는 없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봐야했다.

 몇 분 뒤, 목표 지점에 도착한 시엘은 침식체 무리에 둘러싸인 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한 쌍의 소도를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심도가 낮아서 그런지 대단한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옌도 꽤 소모된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옌! 구하러 왔소!”

 “시엘? 왜 혼자서……. 시엘! 저한테 오지 말고, 언덕 너머의 용병들을! 저자들이 계속 침식체를 유인하고 있어요!”

 “알겠소! 잠시만 더 버티시구려!”

 “문제 없어요!”

 옌은 그렇게 대답하며 계속 칼을 휘둘렀다. 아직 어느정도 여력은 있는 모양인지, 그녀는 차근차근 침식체들을 쓰러뜨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시엘은 곧바로 옌이 가리킨 언덕으로 창을 쥔 채 달려갔다.

 “흥, 빨리도 오셨구만. 얘들아, 불러라!”

 “예, 대장. 이제 근처에는 두 세 무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년 완전 괴물이라고요! 혼자서 이 주변의 침식체를 싹 쓸어버렸어요!”

 “알겠다. 남은 놈들 싹 다 부르고 이동 준비 해라. 이 개새끼…… 여자애 두 명 잡아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더니 이게 뭔 고생이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내린 대장의 지시에 따라 용병들이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30마리 정도 되는 침식체들이 몰려와 언덕으로 향하던 시엘의 앞을 막았다. 그녀를 쓰러뜨릴 만큼 강한 개체는 없었지만 시간 벌이를 할 만큼은 충분한 숫자였다.

 시엘의 발이 잠시 묶인 사이, 용병들은 짐을 차에 싣고 퇴각할 준비를 했다. 침식체를 전부 처리한 시엘은 굳이 쫓으려 하지 않고 옌에게 달려갔다. 마침 옌도 섬멸을 끝내고 칼을 집어넣고 있었다.

 “옌! 다친 곳은 없소?”

 “하아, 하아, 네, 괜찮아요. 그것보다도 빨리 저자들을 쫓아야 해요.”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나도 같지만, 너무 위험하구려. 심도가 낮다고는 해도, 이미 상당히 오래머물렀소.”

 “저자들의 장비가 주변의 전파를 왜곡하고 있어요. 그걸 파괴하지 않으면 통신도 불가능하고, 탈출도 못해요.”

 그 말을 들은 시엘이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미카, 이디스와 연결되어 있던 통신이 어느새 끊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고온 함선의 좌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면세계에서 방향이 제멋대로 바뀌는 일은 드문 일도 아니었기에, 사실상 복귀할 방법이 없다고 봐야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기 전에, 용병들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용병들도 그것을 아는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소녀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큭……!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티시오. 잠시 정비하고 바로 쫒는 것이 좋겠소.”

 “저는 괜찮아요. 그것보다, 왜 혼자서 온 건가요?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왔고요?”

 “지원 병력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소. 자세한 것은 이동하면서 설명하리다.”

 정비를 마친 소녀들이 다시 용병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는 중에도 침식체 무리가 한 번씩 그녀들을 덮쳤다. 개체수가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시엘이 합류하기도 해서 그럭저럭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열 번 정도 침식체 무리를 섬멸 한 뒤에, 용병들을 30미터 거리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몰려든 침식체 무리를 모조리 도륙낸 소녀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수 시간 째 침식체 무리를 상대하거나, 전력 질주를 한 탓에 지친 기색이 보였다. 소녀들은 자신들을 이곳으로 불러온 원흉들에게 다가갔다. 수수께끼의 용병들은 총을 겨누며 저지하려 했지만 소녀들은 쳐내거나 피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날뛰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 썅년들아!”

 그 때, 용병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치며 손에 쥔 버튼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홀로그램 화면이 주변에 떠올랐다. 화면에서는 어떤 전시장의 CCTV를 해킹한 영상이 나왔는데, 금발머리를 곱게 묶고 걸어다니는 여자 아이들과, 아이들을 인솔하는 은발의 늘씬한 미녀가 보였다. 모두 소녀들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아카데미 초딩들이 여기로 현장학습을 갔다며? 내가 이 버튼을 누르거나, 내 심장이 멈추면, 전시장에 숨겨둔 폭탄이 쾅! 알아들었지?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당장 무기를 버려!”

 소녀들은 놀라며 다가가던 발을 멈추었다. 그녀들은 용병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속삭였다.

 “죽이지 않고 버튼만 빼앗을 수는 없을까요?”

 “거리가 너무 멀구려. 반드시 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소이다. 저 스위치가 허세일 가능성은 없겠소?”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정도 기술력을 갖춘 자들입니다. 속단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뭘 쫑알쫑알거리는 거야! 내 말 못 들었어? 에잇!”

 용병 대장이 스위치를 한 번 꾹 하고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사람들이 주저앉거나 쓰러졌다. 전시장의 바닥과 벽에 금이 가며 흙먼지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며 소녀들이 크게 당황했다.

 “경고는 한 번 뿐이다! 다음엔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릴 거야!”

 소녀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없이 무기를 바닥에 던졌다. 그녀들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무기를 걷어차 먼 곳으로 보냈다.

 “원하는 대로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이제 당신도 스위치를 내려놓으시죠!”

 “내가 바보냐? 이걸 내려놓으면 바로 달려들 속셈이겠지! 헛소리 하지 말고, 당장 이걸 차!”

 용병 대장이 소리치며 수갑 네 개를 소녀들 쪽으로 던졌다. 소녀들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한 번 버튼에 엄지를 올리며 당장이라도 누르겠다는 듯이 위협하고 있었다. 소녀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한 개씩 채웠다.

 그 순간, 용병들의 총에서 ‘퓩!’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됐다.

 “”꺄아아아악!!!””

 카운터 범죄자 제압용 특수 전기탄이었다. 평소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겠지만, 지치고 소모된 탓에 반응이 늦어졌다. 강력한 전격에 소녀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통전이 끝나고, 마비된 소녀들에게 용병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투명한 약물이 든 주사기 두 개를 꺼내 지체없이 소녀들의 목에 꽂아 내용물을 주입했다. 그러자 소녀들의 신음이 커지더니 눈알이 점점 위로 말려올라갔고, 곧 정신을 잃었다.

 “대장님! 이년들은 어떻게 할까요?”

 졸개들이 소녀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차로 옮기며 물었다.

 “안 그래도 방금 연락이 왔다. 작업실로 보내라는군.”

 “이야… 얘네들 벌써부터 인생 종쳤네요.”

 용병들은 이런 대화를 하며 차량에 올랐다. 소녀들의 패배가 완전히 확정된 순간이었다.

***

2-2부터 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