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헤어질결심] 아마도 당신이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11(1)~15(5) 完





https://www.youtube.com/watch?v=iND37qR0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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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들이 나타났던, 지도에는 보이지가 않는 공간.



 한때 관리자가 이곳에서 머신갑을 움직이며 코핀 컴퍼니의 배후로서 활동했다.



 …지금, 너무나도 적막하여.


 어떤 존재감도 없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평온할 정도의 고요함만 남아 그녀들을 반겼다.



 "……."


 카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주위를 둘러봐… 매섭게 노려볼 뿐이다.




 "이곳의 컴퓨터에 관리자 본인이 관여했던 작업물이 남아 있습니다."



 둘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엔 검은 기계가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수상쩍어, 카린에겐 스완이 정말 사실을 말하는지 믿기지 않았다.


 손을 대면, 권한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들려졌다.



 "…도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어떻게 아는 거죠? 당신은 여기가 관리자님이 있던 곳이라고 왜 확신하나요?"



 카린은 자신도 모르게, 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물었다.




 스완은 고개를 젓고는, 자신이 손을 대어서 억세스 거부를 해제하였다.




 "거봐요, 당신의 손에 의해 풀려질 정도라면…."


 "……."







 그리고 그곳에, 한 남자의 형상이 나타났다.



 "하하,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카린이 그걸 보고서 중얼거렸다. "…관리자님?"


 그리고 그녀는 달려갔다.



 달려가며, 소리쳤다. "관리자님, 여기 계셨군요! 모두가… 여태까지 모두가 엄청나게 당신을 기다렸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달려가도, 그의 형상엔 닿을 수 없다.



 카린은, 그대로 흔들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관리자님…?"




 "…나처럼 외출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겐 고역스러운 자리겠어."


 "……?"




 익숙한 남자의 형상은 그대로 말했다.


 "하긴, 부담스러운 건 자네겠지만."


 …마치, 혼자만 별개의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이게… 무슨…?"


 카린의 중얼거림은 닿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조금만 참게나, 친구."



 "……."


 "우리에게는 이 세계가 앞으로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남자는 말을 이었다.


 카린은 침묵할 뿐이다.


 "또 이 세계가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려 줘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계산에 따르면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라네."


 "결과적으로 잠들어 있던 신을 깨우는 데 성공한 셈이지."


 "수없이 많은 실패와,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마침내 우리가 넘어서야 할 상대에게."


 "탐미엘에게 다다른 걸세."




 카린은 얼굴을 찡그렸다. "……?"


 스완은 단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




 "최초의 세계 이후, 우리가 줄곧 이루고자 했던 계획대로."


 "하지만 말 그대로, 여기까지라네."


 "우리의 계획도. 우리가 쌓아 왔던 모든 것도."


 "이 시점 이후로는 상정하지 않았고, 상정할 수도 없었으니까."


 "현존하는 테라브레인을 모두 동원해서 그 이후의 미래를 몇 번이고 계산하려 했네만."


 "결과는 늘 같았어. 완벽한 미지수였지."


 "탐미엘이 다시 나타난 시기를 전후로 변수가 폭증하더군."


 "뭐,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자네라면 무기로 활용할 수 있겠지."


 "자네가 지금 서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사용했던 안배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던 것들일세."


 "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해서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한 나는…"


 "오직 자네뿐이야."


 "하늘 위의 신은 잡을 수도, 닿을 수도 없지만."


 "겁없이 지상에 내려온 신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최초의 기록은 관리국 본부에 안치시켜 두었어. 유용하게 써 주게나."


 "그럼 이제 작별이겠군."


 "부디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가 다다르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 주게."


 "해결해야 할 의문은 단 하나."


 "신은 쓰러트릴 수 있는가?"




 이때에, 스완의 눈동자에 이상할 정도의 증오와 적대가 녹빛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진정한 힘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겠죠."


 카린은 그녀를 돌아봤다.


 스완은, 듣는 사람도 이해하는 사람도 아예 없는데도 말을 계속했다. "필멸자들에게 세 개의 이름으로 불려, 그럼에도 어느 하나 신으로의 책임으로 이끌지도 않았으며… 그의 광신도들은 어떤 방식으로 숭배하고 찬양해야 할지 논쟁하며 다퉈왔죠. 그 신이라 불리는 악마가 끼쳤던 해악은 분열로, 지금도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스완… 잠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죠. 차라리 처음부터 그것의 존재가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더 나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단 것을…!"


 "…스완 씨…? 당신,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


 스완은 눈을 감으며 예언했다. "하지만 언젠가, 인류는 그의 행적을 깨닫고서… 영원한 망각에 그것을 파묻을 겁니다. 첫번째 관리자. 굳이 내가 아니어도, 당신이 아니어도 인류는 그러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앞당길 뿐이겠죠."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하지를 못하는 카린은, 그대로 관리자의 모습이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제서야, 스완은 눈길을 돌리며 카린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당신이 가야만 할 곳이 어딘지를 알고 있습니다."


 "……!"


 최초의 기록.







 그리고….


 카린은 모든 것을 보았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 이딴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에겐 확신만이 필요했던 거다.


 여기가 정말로 관리자가 있던 곳이었나?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스완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틀렸다는 증명만 할 수 있다면….




 하지만….


 애석하게,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하게… 증명해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남아 있는 대다수의 아티팩트 혹은 장비들은 마왕에게 전혀 통하지도 않을 잡동사니.


 유일하게 건진 것은 주인 없는 미스틸테인 한 자루 뿐.



 …이딴 걸 갖고, 도대체 뭘 어쩌란 건가.



 카린은 창을 던지곤,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마치 방금 스완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듣지 않는단 걸 알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정말로… 떠났던 거군요."



 "처음에는… 처음에는 정말 믿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 어렴풋이 알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우리를 버렸던 건가요?"



 "저는…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 군인이 됬답니다."


 "말씀해드린 적이 있었죠? 분명히…. 그리고 그것에 상당히 자부심을 느꼈어요. 항상 힘들 때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지금의 자신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를 위로해준 동료들이 많았지만… 관리자님만큼 제가 힘낼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은 없었어요."



 카린은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면 당신도… 그렇게 힘들었던 건가요? 하지만 어째서 말도 없이 우리를 떠난 건가요?"


 "저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만 할지 모르겠어요."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더이상 두려운 건 없다고… 그렇게 믿어왔었는데. 저는요… 설령 당신이 잘못된 지휘를 해서, 그걸로 죽는다고 했어도… 전혀 원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여태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이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네요…. 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당신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그 이상은 원치도 않았었는데. 다른 여자를 골라도, 안타깝지만 매일 같이 당신에게 임무를 보고하고, 커피를 타고, 농담을 하고, 하루하루 평화롭게 산다면 좋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예요, 이게… 정말 최악…."


 "이건… 실연보다 더한 거잖아요? 나는… 우리가… 서로를 소중히 여겨서… 서로를 지키고 싶다고, 그런 관계인 줄 알았었는데…. 도대체… 관리자님에게 저는 뭐였던 거예요? …네?"




 …하지만.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괴한 소리가 들려, 밖을 비추는 창을 본 카린은.







 소리조차 들리지는 않았지만, 몸짓으로 모두가 비명을 지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늘에 손을 펼치는, 손으로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보여지는 필멸자들하고, 마왕이 직접 보냈던 그 긴 머리카락 침식체들.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이 열려버린 거다.


 그 광경을 본 카린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러 모든 지역을 확인했지만….



 완전한 끝의 광경은, 이미 벼랑 끝으로 몰린 그녀의 정신을 아예 밀어버렸다.



 "…뭔가요, 이것은."


 "어떻게 이기란 건가요… 도대체…."



 카린은 그대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하…."


 "이제야 알 거 같네요. 어째서 지아 씨가 갑자기 죽었던 것인지."


 "…그리고 왜 관리자님이 떠났던 것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로부터.


 그리고 자기가 지켜야만 했었던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의미를 완전히 부정당한 그녀는, 단 하나의 선택 밖에 남지 않았다.




 "……."


 그녀는 말없이 카운터 워치를 풀어서 바닥에 던지곤….


 그대로, 권총을 머리에 대었다.




 탕.

















 이젠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스완은 카린의 주검을 보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단지, 조용히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스완도, 고개를 돌려 밖의 상황을 보았다.


 "호오…."


 하지만 그녀는 묘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진부한 기술이군요."


 "하지만 그녀가 타기리온이기에… 이러한 힘을 다룰 수 밖에 없는 거겠죠. 하지만, 언젠가 인류 전체가 하늘을 본다고 해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세계… 상상할 수 있나요? 언젠가, 우리는 거기까지 닿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곤, 백조는 다시 그곳에서 사라졌다.







 마치 개미집을 갖고 놀던 아이가 질려 그냥 물을 부어서 전부 죽여버리듯….



 잔혹한 타기리온의 장난에, 비명소리가 사방에 펼쳐지고 있었다.




 더욱 높아지는 침식파의 강도.



 그리고 타기리온 본인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예 모든 것이 침식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구관리국 최강의 카운터였었던 그녀가, 분노에 의한 발악을 하듯 한 마리라도 더 많은 마녀를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끝이다.




 …그녀도 결국은 카운터.


 한계에 달한 것이다.




 류드밀라하고 옆에 서서 같이 싸웠지만… 이젠 그녀가 아예 누군지도 몰라 희미하게 인식되는 상태.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고, 그녀가 말했다.




 "…류드밀라."


 "왜 그러나, 이수연?"


 "동료이자 친우로서… 마지막 부탁을 해도 될까?"




 류드밀라는 고개를 끄덕여, 강철의 날개를 접듯 지상의 건물로 내려가서 주저 앉는 이수연에 다가갔다.


 상처는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류드밀라는 오해한 채로 자기 얘기를 했다. "어차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이 몸, 너희들을 위해서면 언제 죽어도 상관이 없다. 이수연, 어떤 불가능한 작전이라도 말하도록."



 "……."


 "이수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바보. 어차피 전부다 끝났어."


 "……."


 "여태까지… 억지로 내가 하자고 하는 것들 모두 받아주고… 고마웠어."



 류드밀라는 옆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팔을 잡았다. "갑자기 무슨 약한 소리냐, 너답지 않잖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진짜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야."


 "……."



 류드밀라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전대장 이수연. 넌 내가 본 최고의 지휘관 중 하나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좋지는 않아."



 "……."


 "……."



 수연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안에… 아직 나의 일부가 남아 있는 동안에… 나를 끝내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자기 귀를 의심하며 역정을 내는 그녀에, 이수연은 카운터 워치를 보여줬다.



 "이… 이건…! 너, 이렇게 되도록…!"


 "나는 카운터로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싸웠어."



 "……."


 "그리고… 네 앞에서만큼은, 같은 긍지 높은 전대장으로서 있고 싶어."



 수연이 쓰던 검은색 장비들이, 그대로 꺼져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류드밀라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끝까지 거부하였다.



 "아군을 내 손으로 죽이다니… 그럴 수 있을 거 같나?!"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너라고 생각했었다…. 이수연, 웃기지도 않는 소린 그만해라!"



 그리고, 현실도피성 발언을 하였다.



 "…그래! 버티는 거다, 버티면 된다. 나도 그림자가 되었지만 결국 버텼지 않았나?!"


 "어째서 조금만 더 노력할 생각은 없는 거냐, 이수연! 무적의 펜릴 전대장인 네가 여기서 무너져선 안 돼!"


 "나도 할 수 있던 건데…! 너라고 할 수 없을리 없잖은가!"


 "이제… 너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거다. 이 세계가 무너진다고 하여도, 둘이서… 이제까지 희생한 모두를 복수하기 위해 살아가면 되는 거다!"




 자기만의 결론에 빠져버려, 류드밀라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곤 외쳤다.




 하지만 수연은 더이상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하… 너 정말… 진짜, 강해졌구나…."


 "당연하지, 누굴 보고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해서 계속 피나는 훈련을 했던 거 같나?"


 "침식체는… 이면세계를 떠돌더라도, 영원히 살 수 있겠지?"




 류드밀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 멋대로 아무런 망상을 말했다. "이제는 관리자님을 찾으러 갈 수 있을 거야! 영원히 시간이 걸려도, 우리 같은 전투력을 가진 개체라면 마왕들만 조심해서 피해가면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을 받아줄 세계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지만….


 수연은, 힘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살아… 류드밀라."



 "…이수연?"



 그리고, 다시금 아스널 윙의 드론들이 푸른 빛을 뿜으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래야 내가 알던 펜릴의 전대장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그녀의 눈 앞에서….




 이수연은.


 그대로 자길 찌르며.




 죽어버렸다.




 얼굴에 친구의 피가 튄 류드밀라는, 생명의 빛깔이 꺼져가는 그녀의 탁한 눈동자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질 못했다.




 "……."


 "…이… 수연…?"




 "너…… 이게… 무슨…."







 아….



 이건… 그러네요.



 사람은 죽기 직전에 자기가 제일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하던데.



 얄밉게도, 당신이 제 눈 앞에 다시 나타나다니….



 …….



 관리자님.


 당신이 사라진 이후에… 그딴 남자는 결국 없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저로서는 결국 부족했던 것이겠죠.




 당신 앞에서는 그냥 솔직해질 걸 그랬어요.


 저는….


 그때, 류드밀라처럼 정이 없다 했었지만… 사실 그 아이보다 제가 정이 더 많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어서….




 언제나, 언제라도, 다시금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까….


 매일 같이, 기다렸었는데….




 …….




 지금 생각하면, 솔직하지 않은 것은 저도 당신도 같은 것 같군요.


 방주의 에너지를 다 썼었기에 다음은 없을 것이다… 그렇죠. 그런 뻔한 거짓말.




 괜히… 믿고 있었네요.


 항상 거기 있으니까,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그래도….


 당신이라면, 안전하니까.


 그래도 당신은 살아서 도망쳤으니까….




 …….


 한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우리가 행복했던 기억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렇, 다면….


 용서… 할… 수… 있으니… 까….



 오빠….



 여태… 까지….


 철…없이… 굴어서… 미안… 해….







 "……."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류드밀라의 뒤로, 이 세계에 남은 단 둘의 생존자 중 하나가 찾아왔다.



 "이수연 전대장…. 그래요, 그녀도 결국 갔군요. 스스로의 결정으로…."


 "……."


 "바람이, 고요하네요."


 "그렇군…."



 붉은 눈의 두 여자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까지 나왔다.




 엔드 오브 더 월드.




 침식체였기에, 애초에 이런 환경에서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거니는 류드밀라.


 한때 자랑스러운 문명의 흔적을 보면서, 그녀는 멍하니 감상에 젖어들었다.


 그녀의 옆으로 스완은 사뿐하게 발을 놀리면서 우아하게 아무런 말도 없이 따라왔다.




 "…스완."


 "왜 그러시나요?"


 "너는… 도대체 뭐지?"




 그러던 류드밀라가 갑자기 든 궁금증. 그게 바로….




 "전우여. 너는 이미 내가 뭔지는 알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이제는 아예 인간이, 아니, 존재하는 어떤 물체라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침식파가 쏟아지고 있다.


 타기리온은 아예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아예 세계 자체에 공성을 건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스완이 말했다. "살짝 다르긴 해도, 관리자 같은 체질이 하나만 있진 않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말씀하셨지. 그분은 침식파에 영향 받지 않는다고 하셨던가…."


 "……."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설마, 네 특기로 그 힘을 배꼈던 건가?"


 "……."


 "미안, 의심한단 것이 아냐. 여태까지 함께 싸워왔던 전우가 아닌가. 하지만… 도대체 넌 뭐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애초에, 카운터가 맞긴 한가?"


 "네?"




 "전우는 원래 본업이 배우이지 않았나? 그리고 그 파노라마란 아티팩트는… 설마, 카운터 워치도 거울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닌가? 설마, 그냥 여태까지 카운터인 척했던 거라면…?"


 "……."


 "게다가 전우는 매우 의심스러운 이상한 말을 자주 했었지. 신비주의인 것은 좋지만 전혀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없는 것도 많았으니까. 클리포트 게임하고 마왕들에 대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대체 세피로트의 나무… 그건 뭐지?"




 류드밀라는 걸음을 멈추곤 말했다. "도대체 전우는… 애초에 왜 여기에 있나?"


 "……."


 스완도 걸음을 멈추곤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그것만으로 제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충분하지 않겠나요?"


 "그게 아냐. 알고 싶은 것은 더 많아. 특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가끔씩 이상한 말을 하는 건지도…."


 "……."


 "그리고, 전우는 정말 우리 세계의 사람이 맞는 건가? 자신이 그런 각본을 쓰기 위해서, 단순히 우리의 세계가 전우의 고향이라고 속였던 건 아닌가?"


 "아하… 그걸 알고 싶었던 거군요."




 스완은 우산을 휙 돌려서, 원을 그리듯 다시 잡았다.


 "애초에 존재는 세계로부터 독립적인 것입니다. 구축되진 물리적인 차원… 그게 없었다면, 당신 자신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요? 그런 말에 너무 심각하게 연연하는 것도 딱히 좋진 않겠죠."


 "……?" 류드밀라는 잠깐 고개를 기울이고는 말했다. "그래, 나는 전우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야. 스완, 너는 가끔…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했지. 단지 마지막이니 그걸 짚고 싶었을 뿐이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 그래서라니?"


 "당신은 이 세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생각하나요?"




 류드밀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겠군… 미안하네."


 "…존재는 자신의 전체를 보고, 어디까지 알 수 있나, 할 수 있나… 그런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죠."


 "흐음…."


 "…그냥, 거울 빌려드릴까요?"




 류드밀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맙지만 됬어. 지난 번에 한 번 해봤더니, 도플갱어 침식체랑 다시 만나 끊임없이 싸우다가 전우 덕에 간신히 나왔던 거니까."


 "아… 당신의 내면엔 아직도 그녀가 있었죠."


 "…부끄럽군. 스스로를 정복하질 못하다니."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떻게 할 건가요, 류드밀라?"


 "……."


 "타기리온은 아무래도 우리를 쫓지 않겠죠. 자신이 망가트린 세계를 보고 비웃으며 과시해도, 정작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에는 너무나도 신중하고 조심스런 성격이니. 그녀는 죽음을 찾아 떠도는 전사가 아니니까요."




 한참 아무런 말도 없이 걸었던 류드밀라는, 이내 한숨을 쉬곤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만 해도… 전우를 완전히 까먹고 있었군. 그래… 만일 이수연이 아직까지 있었다면, 셋이서 같이 무한한 이면세계를 떠돈다는 것도 재밌게 들렸을 텐데."


 "……." 스완은 피식 웃었다. "당신, 낭만적인 면도 있었네요."


 "음? 뭐… 낭만적이라고 부를 수 있나."


 "……."




 스완은 조용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해 이젠 싫다는 것이겠죠."


 "……."


 류드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우가 날 이해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내 마음에 아직도 남은 것은 결국은 사명감 뿐이야."




 "…사실, 어느정도 짐작하곤 있었어요."


 "……."


 류드밀라는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전우와는 달리 비극이란 운명에서 스스로 벗어나질 못하는… 마치, 새장에 갇힌 솔개와 같은지 알겠지?"


 마치 그녀가 거울에 대고 말하듯, 스완은 류드밀라와 비슷한 억양과 어조로 말했다. "이전에는 관리국에 대한 사명감에 의해 배를 지켰었고, 이후에는 관리자에 대한 사명감에 의해 코핀에게 협조했고, 이후에는 부사장에 대한 사명감에 의해 헌신했죠."




 "…정확히 맞췄어. 무서울 정도군."


 "……."


 류드밀라가 슬픈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술집에서 전우가 물만 마시고, 내가 보드카를 마실 때에 전우가 나에게 했었던 말을 기억하나?"


 "아하…."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은 약점이라 말했었지. 전우가 즐겨 했던 말이야."


 "맞아요."




 "…그러니까, 그런 거지."


 "……."


 "너는 딱히 누군가가 자기에게 사명감을 갖는 것을 원하지를 않아. 스완, 그런 태도가 너를 어떤 초월적인 위치로 격상시킨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와 같은 짐덩이를 품을 그릇은 되지 못하게 막는 것 같군."




 스완은 눈을 감으며 피식 웃곤 말했다. "한 방 먹었군요, 저도."


 "그럼에도 고민하는 남을 보면 조언하고 싶어하는 전우 또한… 싫지는 않았어."




 류드밀라가 말했다. "이런 비극으로부터 구하고 싶었던 거지? 나 같은 괴물이라고 해도…."


 스완은.




 묘하게, 너무나도 알아듣기 쉬운 말투로서 답변했다. "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요. 더이상 이상한 고민과 고뇌는 그만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류드밀라는.



 그렇게, 돌아봐.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 너도… 수연이도… 내가 바라던 최고의 전우였으니까."


 "……."



 "한가지 부탁이 있다."


 "뭔가요?"



 "마지막으로… 혼자 마왕과 맞서고 싶군. 하지만 네가 여기에 있으면 타기리온은 오지 않아."


 "……."


 "그러니까… 여기에서 떠나주지 않겠는가?"


 "……."


 "질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 세계에 태어난 존재로, 그리고 거기에 속박된 존재로… 끝을 내야하는 운명에서 나는 벗어나질 못해. 너와 달리…."




 그래서.


 류드밀라는, 수연이 자신에게 했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살아… 스완."




 스완은.


 결국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드밀라가 눈을 깜빡이면,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그래, 이걸로 됬다."



 그리고 그녀는 바위에 올라가서, 그대로 천공에 대고 타기리온의 이름을 외쳤다.


 …마왕은, 그제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며 괴수의 위압감을 뿜어내었고, 대지 전체가 아예 눌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류드밀라는 그대로 하늘을 꼿꼿이 보고는 외쳤다.




 "나는 그분하고 약속했다… 관리국을 위해 영원까지 헌신하겠다고!"


 "마왕 타기리온… 네가 이제까지 저질렀던 죄를, 네가 이제까지 저질렀던 악을 심판하는 것은 나다!"


 "이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최후에 넌 강철의 눈보라를 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을 본 마왕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모든 손을 일제히 펴냈다.

























































































































 작전 기록 녹음. 그렇지, 관리자님에게….


 만일 지금 이것을 보고 계시면, 아마도 저는 패배해 죽었다는 뜻일 테죠.


 …어떤 작전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저는 어떤 후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저는 침식체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관리국이 제일 증오하고 척결하는 대상임에 불구하고….


 관리자님은 저를 걱정하시고, 지켜주시고, 돌봐주시려 하셨습니다. 과분할 정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림자임에도 불구하고, 침식체임에도 불구하고… 원본과는 다른 저만의 자아를 갖게 됬습니다.


 당신을 볼 때마다… 언젠가부터 사모한다는 연심을 품게 됬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을 바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기에… 저는 저 나름대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관리자님이 구해주신 목숨으로서…. 그러니까….



 사랑했습니다. 행복했어요.



 관리자님도… 행복하세요. 그리고….



 저를, 잊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