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허억⋯!”
가슴을 쥔 나유빈이, 찡그린 채 피섞인 침을 닦아낸다. 위에는 탄환. 무차별로 공격하는 탓에 특수부대원을 커버 하느라, 패턴 시그마 이후로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같이 돌입했던 이들은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나, 얼마나 더 버텨야 되냐. 이 자식들아⋯!’ 하고 슬슬 푸념 섞인 말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려 할 때 쯤.
“사령관님!”
“웡 대원!”
치솟는 불길. 무너진 섹터의 벽. 내리는 비와 연기. 자욱한 유해가스. 그 끝에서, 카린과 제이크 워커. 조안나가 시선에 들어온다.
사막 속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나유빈이 외친다.
“목표는?!”
“탈취 했습니다!!!”
“그래. 잘했네! 웡 대원. 그리고 제이크. 자네⋯⋯!”
“하하, 뭘. 죄송합니다. 괜히 제 오기 때문에 늦었습니다.”
‘됐네’ 하고 나유빈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둘은 그 때처럼, 안경을 슬쩍 내린 후 맨눈을 교환한다.
그제서야 카린은 일전의 묘한 일들을 떠올리고서, 잇는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구나.
그 술집 혹은 그 이전. 둘은 처음부터⋯⋯.
“목표는 달성했다. 이제 여기에 볼 일은 없어. 전부 뉴 오하이오까지 퇴각한다!”
“자, 잠깐만요. 히로세 소령이 아직 밑에⋯⋯!”
“아키양이라면 알아서 잘 돌아 올걸세. 그렇게 믿고⋯⋯!”
-아니!!!
방송. 커다랗게, 매우 신경질적인 여성의 목소리.
-그렇게 안 돼. 그렇게는⋯!
베타트릭스의 수장. 준비해둔 패까지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만 세실리아 신.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밀치고, 누군가가 나선다.
“⋯⋯결국, 아티팩트는 빼앗겼나. 나유빈 사령관.”
“오오, 덕분에 잘~ 놀다 갑니다. 연방의회 님들.”
“⋯⋯그런가⋯ 그럼. 우리도 진짜 이러고 싶지는 않네만.”
‘준비하게’라는 말과 함께 돔 내부의 무언가가 올라간다. 천장, 그 위에 무언가가 구조물이 걷히고 철컥. 지면 아래까지 이어지는 진동. 돔 천장, 바깥으로 긴 무언가가 올라온다. 모습을 드러내고, 철컥. 철컥. 우우우웅하며, 천천히 돌고 있다.
“뭐, 뭐죠? 돔 천장 위에 뭔가가⋯⋯!”
-나유빈 사령관님 외부 견시인원으로부터 보고입니다. 돔7의 천장에 무언가가⋯⋯포 같은 게.
심소미의 외침에, 나유빈이 윗입술을 혀로 핥는다. 왠지 그러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했었다. 우주로 간다. 아무리 우주환경이 버틴다 한들, 차원함선을 내부에 보관한다한들. 그건 그거대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규모가 작은 스테이션, 위성이 아니다. 이 규모가 되면 매번 우주 데브리를 제거하기 위해 함선을 꺼는 것도 비효율. 그렇다면, 돔7은 원래 무장 같은 것은 없지만⋯⋯.
“하, 하하하⋯미친 놈들⋯!”
“자네 덕분일세. 나유빈 사령관. 자네가 이걸 손수 구해주지 않았나?”
“돔5에서 실험한 무장, 이거였나?!”
“지금, 가장 가까운 돔. 돔 10을 겨눴네. 이건 이터니움 드라이브를 다수 연결하여 사용하는 무장이지. 최대출력은⋯⋯뭐,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위협사격은 아니다. 공갈은 아니라고 나유빈이 직감한다. 실제로, 보고 받은대로의 테스트 병기는 아무리 봐도 함포에 가까운 크기. 파츠를 분해해서 이동 했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규모의 일은 벌일 수 있다.
“아티팩트를 놓고 돌아가게. 나유빈 사령관.”
“이대로 돔10을 잃을 것인가? 돔 주민 전원이 죽을걸세.”
돔10을 인질로 삼은 마지막 협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유빈이 하하하, 하하, 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이 아티팩트가 없으면 이 지표 위의 인간들은 대항책이 없다. 모조리 죽는다. 그렇지만, 여기서 저 돔10을 쏘게 만든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의를 잃는다.
하지만 연방의회는 다르다. 어차피, 아티팩트를 탈취 당한 시점에서 계획은 끝이다. 계획이 완수 되어도 어차피 지표 상의 인간은 알 바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반드시 이기는 협박.
그럼 처음 함선끼리 싸울 때 꺼냈으면 된다. 그러지 않았다. 연방의회로써도 이것은 고르고 싶지 않은 패였다. 이것만큼은.
“빨리 결정해주게. 부디 우리가, 돔10째로 인간을 쏘아죽이지 않도록.”
“웃기고 있네. 이 개자식들이!!! 어차피 니네들이 튀려고 한 시점에서 다 죽어!”
“⋯⋯저기, 의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나유빈 사령관. 이 대화는 자네가 했던 방식 그대로일세. 지금, 전 돔에 중계되고 있지. 우리는 어차피 악으로 몰렸어.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네만, 미움 받아야만 한다면 그 이유를 만들 뿐일세. 우리도 인류라는 종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고⋯!”
째깍.
째깍.
째깍.
나유빈이 땀을 닦는다.
선뜻 고를 수 없다. 다 타버린 왼 팔을 쥐고서, 오른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다. 아직인가, 하고 혀를 찬다.
“그래? 잘 생각해 보쇼. 의회장. 당신이 그 버튼을 누른다면, 우린 그 때부터 멸망전이야. 당신들을 다 죽일 때까지 안 멈춰.”
“그럼, 자네가 아티팩트를 놓고 가면 되지. 안 그런가? 지킬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도, 그대들의 대의가 의미를 가질까?”
“핵전쟁 협박도 아니고⋯! 당신들 정말로 그걸로 괜찮나? 그냥 버리고 도망친 거면 그래, 차라리 나아. 인질협박이라고? 그러고, 잘났다고, 새끼들 까서⋯⋯! 그게 인류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나? 염치라는 걸 몰라?!”
침을 삼킨다. 카린이 손을 꽉 쥐고서, 제이크를 돌아본다. 제이크 또한, 지친 몸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나유빈의 선택을.
“왜 모르겠나? 알면서도 하는것이다 정치는! 나 혼자 살고 싶다면, 횡령을 해서라도 개인 쉘터를 마련해 죽을 때까지 살면 된다. 그러면 되는거다. 나 혼자가 아니기에 우리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니네들이 절차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몰래 결정 했으니까 나도 이렇게 나온 거라고!”
“하, 이게 받여 들여지려면 도대체 몇 년이 걸릴 것 같나? 자네는 민주주의의 단점을 모르는군.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그 4종 침식체는 온단말이다!”
“닥쳐 이 자식아! 그만한 시간과, 설득을 할 용기도, 신념도 없는 주제에 전인류를 종을 걸고, 도박하지 말라고!”
“도박은 자네가 하고 있어! 4종 침식체를 다른 세계로 떨어트려? 그게 될 거 같나?! 그걸로 몇 년을 버는건가? 이 세상, 이 대륙 자체에 박힌 쐐기가 몇이나 되는 줄 아나?!”
“앞으로 벌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0년, 아니 2년이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답게 싸워서⋯⋯! 마지막까지 우리가 일군 문명에 책임을 져야 해. 우리가 쌓은 문명은 우아하게 쌓은 탑이 아냐. 구질구질하고, 토악질 나오는 인간끼리의 다툼이 낳은 거지. 그 후예. 그리고 마지막을 맡았다면, 마지막까지 구질구질하게 싸워야 한다고!”
“먼저 죽어간 이들에게 뭐라고 변명 할거야?! 다음을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 뭐라고 빌거냐?! 너희가, 만약, 너희가 진짜 그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왜 우리를 안 믿었어? 우리는, 진짜,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거의 절규. 목을 긁으며 내는, 피를 토하는 말.
“그런가. 안타깝군, 나유빈 사령관. 이야기는 이걸로 끝을 내지. 우선은 돔10. 그 다음은 돔4다. 다음은 메갈로 돔. 돔5은 멀긴 하지만, 닿을걸세. 결정하게, 여기서 인류를 끝낼지. 아니면, 우리를 보내고 남은 돔으로 저항할지.”
“⋯⋯”
나유빈이 입을 열고, 말을 담았다 버린다. 눈을 감는다.
‘여기까지인가.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알고 있었다. 몰리면 저항하는 것이 인간. 어떤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인간. 저들은 틀리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합리. 종의 관점에서는 무엇보다 옳다. 불확실성에 기댈 수 없다. 하지만⋯⋯.’
“⋯⋯돔10을 쏘게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아티팩트는 넘기지 않는다.”
“뭐?”
“못 알아들어? 이거, 여기서 부숴버릴거다.”
“⋯⋯미친건가?!”
“사령관님?!”
“사령관님, 대체⋯⋯!”
https://www.youtube.com/watch?v=pKVJ35qaFVo&list=PLoRyB3OVL7hH4GWwXBNjNMaPG3b1VGJdY&index=79
주변의 인원들이 당황해서 달려 올 정도로, 정신나간 대답.
그 대답에 쾅. 하고 하늘이 갈라진다. 열. 빛. 그것보다 번쩍임. 일순, 모든 것이 빛을 잃고. 모든 것이 빛이 된다. 마치, 케이크를 자르듯이. 중식도로 케이크를 자르듯이 섬세하고, 거칠고, 엉망진창으로 돔 천장이 갈라진다.
“뭐, 뭐야 도대체!!!”
“의회장님 이게?!”
쩌적, 쩌적, 쩌저저저적. 벽이 녹고, 금속이 녹고, 시멘트가 용암이 되고, 모든 것이 터지며, 그 상자를 여는 새하얀 몸. 손. 가늘고, 길다란 동체. 굳은 갈기처럼 혹은 피어난 연꽃처럼 퍼져나간 새하얀 갑각. 뒤의 사람머리처럼 늘어진 거대한 갈기. 머리 위의 보라, 혹은 화이트. 끝도 없이 흉흉한 원반.
10M가 넘는 괴물이 웃고 있다. 얼굴, 표정을 구성할 눈도 코도 입도 없지만. 웃으며, 갈라진 상자 돔7을 기다렸던 택배라도 되는듯 열어보고 있다.
“4⋯444444⋯⋯사사사, 사⋯4종 침식체⋯⋯!”
그 얼굴과 몸을, 존재를 모르는 이는 없다. 과거 미대륙 서부를 말 그대로 지워버린, 침식체. 인류절멸의 악마. 어떤 마을에서는 신으로 여겼던. 최강의 침식체. 겁에 질린다. 모든 이가 안다. 저것은 절망.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 이제 그들에게 도미닉 킹 레지날드는 없다. 이길 수 없기에, 도망치려 한 것이니까.
“아, 아아아아아⋯⋯왜?”
“꿈을 꾸고 있는건가?”
“꺄아아악, 거주구가! 거주구, 내, 내 딸⋯!”
CLOSED RAOD
여명의 수레바퀴
챕터 3 월홍(月虹)
-14
“돔13⋯⋯상황은, 괴멸적입니다. 사령관님.”
“그런가⋯후우, 알겠네.”
-레지날드 중장. 의회허가가 내려왔네. 돔째로 묻게.
“아직 안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함포를⋯⋯발사하게.
“홀리데이와 그 동조자들이 밉겠지만, 나는 정치와는 상관 없어. 아직, 사람들이⋯⋯.”
“뭐, 뭐하는거야. 아저씨.”
무기력하게, 서서 공허한 눈을 가린 선글라스. 본래의 검은 피부가 백반증처럼 벗겨져 나가는 대머리. 도미닉 킹 레지날드. 세계를 구하겠다며, 나를 군인으로 만든 사람을 쳐다본다.
“의회명령이야. 이건⋯그, 아쉽지만, 해야 해. 알지?”
“⋯⋯유빈.”
“알잖아.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저거 어떻게 못 해. 급하게 온 거 이 뉴 오하이오 하나. 수용도 못 해. 옮길수도 없어. 일부만 구하고, 일부는 안 구하는 짓을 하면⋯⋯”
나를 보고 있다.
함교 모니터에는 폭발이 일어나는 돔11.
포기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여기서 함포로 천장을 쏴서, 무너트려야 해. 일단은 침식체들을 조금이라도⋯⋯.
왜냐면 그게 합리적이니까.
그러니까.
“난 지금껏.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웠지.”
“그래, 그러니까 이 꼴이 된 거 아냐? 4종 침식체 해치웠잖아! 지금 당신 몸 꼬라지가 어떤 줄 알아?”
그러니까. 제발. 그만.
타협해야 해.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다.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심플해.
지금은 참자. 지금을 참고, 어떻게든 넘겨서, 다음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여기서, 인간끼리 다투지 않도록.
일어선다.
그만해.
“그랬다고 믿었어. 하지만, 틀렸었어. 이 절망은 다른 누군가에게 주지 않기 위해 제이나와 둘이서⋯.”
“크로펠 부관 이야기가 왜 나와? 아저씨, 이 대머리야. 정신 차려! 크로펠 부관은 이제 없어. 알잖아! 아티팩트 수색하러 가서 실종이야. 그러니까 제발⋯⋯!”
걷는다. 제독모를 벗고, 휘장을 뺀다. 코트를 벗는다.
“뭐 하는거야⋯?”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나유빈. 일평생을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했어. 난⋯실패했다.”
“인간은 서로 화합할 수 없어. 멸망한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달려 간다. 달려가서, 멱살을 잡는다.
함교의 전원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뭐 하는거야? 뭐하자는건데? 응? 아저씨 이러지 말자. 우리 이러지 말자고. 당신은 영웅이잖아. 당신이 좋든싫든, 당신이 준비해서, 응? 4종 침식체 바다에 밀어넣었잖아?! 왜 이러는건데? 어?”
여기만 넘기자. 제발 넘기자. 당신은 영웅이다. 당신이라는 아이콘으로 앞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걸 할수 있어. 여기서 의회의 손을 들어주자. 눈을 감자. 그것만으로 우리는 막대한 지원을 얻을 수 있어. 델타세븐. 약속 된 미래. 그걸로, 피에 얼룩진 총으로 우리는 인류를 지키자. 그러자.
제발. 그러기로 했잖아. 납득 해줬잖아.
나도, 그러려고, 여기에 있는 거 잖아.
‘나유빈. 넌, 재능도 있고 연줄도 있잖아. 아키랑, 민서. 잘 부탁해. 부디⋯이 세계를⋯ 우리 같은 무임승차자들도⋯⋯.’
여태껏의 희생을 제로로 만들 수는 없어.
그래선 안 돼.
대머리가 고개를 천천히 젓는다.
“아니, 난 영웅이 아니다. 미래를 알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한, 추악한 실패자지. 그 무장, 아티팩트를 한계까지 끌어다 쓴 탓에 이젠 싸울 수도 없지.”
“개소리 좀 하지마! 그럼, 가만히 좀 있어. 어? 그냥 명령 내리고 가만히 있어. 지금 뭐하려고? 어디 가려고? 실패자 새끼면 실패 했으니까 좀 가만히 좀⋯⋯!”
탁, 하고 쳐낸다.
팔을 쳐내고, 내 손에 쥐여준다.
그의 코트, 마지막 휘장. 그리고 키. 4종 침식체 퇴치를 위해 델타세븐 사령관에게 주어진
차원함선의 절대 소집명령권. 프리덤 스트라이크의 패스 키.
“뭐야⋯이거, 뭐하자는거야?”
“전시임관이다. 난 저들을 구하겠다. 군인으로써 하면 안 된다면, 군인을 그만 두겠다. 유빈. 네가 이제 델타세븐 사령관이다. 발라리안, 함장. 그리고 기함 뉴 오하이오의 모두들. 고생 많았네.”
“기다려! 어디가?! 나, 나나나, 나 이거 안 한다?!”
걸어간다. 브릿지를 힘 없이 걸어 내려간다.
“나, 안 할 거라고! 돔11에 가기만 해봐. 내가 함포로 쏘라고 한다. 당신째로 죽여버릴거야. 가지마! 돌아오라고!!!”
씨발, 하고 손에 잡힌 것을 내던지려고 하는 것을 누군가 잡는다.
팔을 잡은 것은, 발라리안 함장. 침을 삼킨 뒤에 내뱉는다.
“어떻게 할까요. 임시 사령관님.”
“⋯⋯난민을 구조하겠습니다. 마크 핀리 차관. 전 사령관의 명령입니다.”
이상한 열매 사태. 돔13에서 일어난 궐기. 그리고, 침식체의 습격. 도미닉 킹 레지날드 중장의 죽음.
알파트릭스의 신동혁의 실각. 더욱 견고해진 연방의회. 줄어드는 돔. 죽어가는 병사. 내몰린 난민.
이 세상은 지옥이다. 아무리 싸우고, 구해도, 힘을 길러도, 아무짝에도 소용 없다는 듯.
‘마치 세계자체가 죽으라고 목을 조르고 있다.’
왜 아직, 이 지표 위에 남아 있냐고. 박멸이라도 하듯. 저주하듯이, 땅이 침식으로 오염되고, 사람들도 병들고, 아아.
응.
“받들어------총!”
돔 천장 위로 발사 된 탄환. 공포탄.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허공 위에서 쓰레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래도, 포기 안 한다.
포기 못 해.
그 어떤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절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에는⋯⋯.
모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소중했던 이를 모조리 이 손으로 지옥에 밀어 넣더라도, 그러더라도, 우리가 이길 수 있게.
다음 세대는 이길 수 있게. 디딤돌을 만든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나는 안다.
인간의 추악함을 안다.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것까지. 전쟁사에 흥미가 있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결국 인간이란 배가 고프면 먹고, 섹스하고 싶으면 하고, 똥을 싸고 싶으면 싸고, 잠을 자고 싶으면 자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피로, 피를 씻어가며, 그 피로 교훈을 써내리고, 지식을 쌓아 여기까지 왔다.
지금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쌓은 시체 위에서 서 있다.
그러니, 나도 다음을 위한 디딤돌이 되리라.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나는 이기지 못하지만, 이길 수 있다.
영웅 한 사람은 순간을 구하겠지만, 시대를 구하지는 못 해.
그럼, 모두가 영웅이 되자.
0.0000001퍼센트 함유. 트러플향 과자에 들어간 함유량 정도라도 괜찮으니
하나가 된다면.
지금까지 쌓인 것이 무언가의 충격과 쇼크라면, 그에 반하는 쇼크로.
끄집어 내자.
그러자.
.
.
.
“4종 침식체입니다!!! 돔을 열어 젖히고 내부로 들어옵니다!!!”
입을 연다.
전부라고는 못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이다.
“델타세븐 총원. 잘 듣게. 돔5. 너희들도 들어라. 지금부터 북쪽 게이트, 뉴 오하이오가 있는 곳까지 달려라. 전원 퇴각이다. 전사자와 부상자, 돔 내의 인원도 가능한 한 태워서 메갈로 돔까지 퇴각해라.”
“자, 잠깐만요. 돔5의 배신자들도 태운다구요?”
“살고 싶다면, 뛰어!”
“사령관님은요?”
웡 대원이다.
나를 아티팩트를 쥔 채 나를 보고 있다.
안경을 벗는다.
“누군가는 저걸 막아야 해. 뭘, 내가 저걸 어떻게 쓰려트려? 시간만 버는거지.”
“안 됩니다!”
제이크 워커. 워커 대령인가. 아까도 그랬지만, 엉망진창이다. 코트는 찣기고, 셔츠는 피투성이. 보아하니, 그 신념을 끝까지 지킨 모양이로군. 나와는 달라. 흐흐흐, 다행이다. 자네는 아직, 손에 피가 덜 묻어서. 그거면 됐어.
“시간을 벌어야한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저라면 더 효과적으로 이탈 할 수 있고⋯.”
“아니, 여기서 자네를 잃을 순 없어. 사령관 명령이다. 발라리안 함장! 준비되는대로 이함하게. 그리고 바이에른은?!”
-곧 도착입니다.
“최대한 우회해서 태울 수 있는만큼 태워가게! 그리고⋯!”
-네, 그걸 내려드리면 되는거죠?
“좋네.”
자, 막바지다. 진짜 막바지.
다른 부대원과 멍한 표정으로 있던 용병 아가씨가 끌려서 사라졌는데.
그런데, 너희들은 왜 아직 그러고 있나.
웡 대원. 워커 대령.
“사령관님을 혼자 둘 수는 없죠. 여기는 제가⋯⋯.”
“맞아요. 우리 계획은, 다음이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아⋯⋯.
음.
응.
아니.
난 여기까지다.
펑, 하고 위의 구조물이 뜯겨나가고 그 지긋지긋한 얼굴.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빼빼마른 앙상한 동체가 걸어온다. 갈비뼈가 드러난 곳에 두근두근. 새빨간 무언가. 긴 머리카락. 머리 위의 헤일로.
잠깐, 손을 든다.
그건, 그건 안 된다!!!
“제, 젠장! 늦었다! 뭐 해!!! 당장 뛰어!!!”
여기서 저 둘을 잃을 수는 없다.
달린다. 이건, 이건, 이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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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렐레 까꿍 4종 침식체 네피림장 등장.
역시 세계정상화는 신피림
기침이 안 멈춰요.
진짜 몸이 안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