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세계. 끝 없는 지평선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 이 곳은 전 메이즈 전대의 쉼터.


그들은 이 곳에서 끝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대장이 부르는 그 시간까지.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은가 싶기는 해. 우리는 언제 나가볼 수 있으려나.”


“어쩌겠나. 당장은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테니 그 때가 되면 나갈 수 있겠지.”


전 관리국 메이즈 전대 소속. 예고르와 발레리는 오늘도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포커를 치고 있네요.


“야야. 너희들도 그만 놀고 얘들도 좀 고쳐봐라. 다른 애들은 눈도 안 뜨고 움직일 수 있는 건 세명 뿐인데 류드밀라가 부르기 전에 기계들은 다 고쳐놔야 싸울 때 문제 없을 거 아니야.”


“부전대장님도 너무 그러지 마시고 잠깐 쉬시죠. 그래도 전대장님이 저희들 심심하지 말라고 술이나 장난감 같은 건 많이 만들어 두지 않았습니까. 이 보드카 생각보다 맛이 죽이는데 같이 한 잔 어떠십니까?”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사실 너희나 나나 법적으로는 미성년인 건 알고 있지? 나가게 된 다음에 술 먹고 다니면 그 때는 혼쭐이 날 테니까. 지금 많이 마셔둬라. 야 예고르. 도망치지 말고 이리 오라고!”


그리고 부전대장 알렉스는 오늘도 기계정비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 류드밀라가 관리자에게 듣고 만들어준 매뉴얼을 보고 수리하는 것 뿐이지만요.


“예전부터 엄마같은 잔소리는 여전하시네. 뭐 어때요. 적응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전대장님은 바깥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다니실텐데 저희도 이제 침식체를 죽이기 위해서만 살지말고 좀 하고싶은 걸 찾아보는 게 더 생산적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예고르는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다녔습니다.


“그렇게 움직이면 전투복에 먼지 묻는 거 모르냐! 군인은 청결할 의무가 있어. 썩 일어나지 못해?. 발레리 너도 술 좀 그만 먹고 일어나서 수리 좀 하란 말이야!!!”


마침내 알렉스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자식들이 둘밖에 안 남아서 그러려니 내버려두니까 한도 끝도 없이 군기가 빠져가지고는. 발레리 소대장. 예고르 소대장. 집합해라. 군명이다.”


알렉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두 명은 장난 치는 것을 멈추고 그녀 앞에 집합했습니다.


“총사대 대장. 예고르. 명령을 받들어 도착했습니다.”


“검방대 대장. 발레리. 명령을 받들어 도착했습니다.”


“야. 지금 니네가 그러는 거 류드밀라가 다 봐주고 있잖아. 밖에서 류드밀라가 너희들 좋아하는 거 먹고 다니면서 여기다가 만들어주는 것도 일부러 너희들 신경써주는 거고. 안 그래도 술도 못 먹는 애가 일부러 독한 술 먹어가면서 맛도 재현해주는데 너희들도 전투 준비는 끝내고 쉬라는 말이지. 당장 언제 다시 침식세계로 들어가서 싸워야할 지 모르는데 가서 무력하게 쓰러지면 관리자 앞에서 류드밀라가 얼마나 부끄럽겠냐.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전대장을 위해 최소한의 일은 하고 놀자. 알겠어?”


“대장 예고르. 명령을 받듭니다.”


“대장 발레리. 명령을 받듭니다.”


그녀의 한바탕 잔소리가 끝나고 그저 뒹굴거리던 그들은 자동화병기의 정비를 시작했습니다.


“뭐 얼어붙기전까지만 해도 매일 이런 정비는 도와주러 다녔으니 할만하네.”


“어렵네. 나는 내가 들고다니는 총도 정비하기 어려웠는데 이걸 매뉴얼을 보고 할 수 있을까 싶다만 도리가 없겠네.”


예전 구 관리국 시절부터 정비반과 어울리며 자동화병기의 정비를 도왔던 발레리와는 다르게 예고르는 매뉴얼의 시작부터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걸 이렇게 연결하고... 이 선은 잘라내고 이 펌프는 잠궈두고.. 최신형이기는 해도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구만. 금방하겠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통 알 수가 없네. 부전대장님. 이걸 대체 어떻게 읽고 하라는 겁니까. 차라리 침식체놈들을 그냥 싹 쓸어버리는 게 훨씬 쉬워보입니다만.”


“닥쳐.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일단은 해야할 거 아니야. 검방대 애들이 일어나면 금방할텐데 아직 적응 못한애들을 깨울수도 없고 정비는 해야하고 나도 힘드니까 할 수 있을만큼은 해야지. 좀 있으면 류드밀라가 올텐데 저번처럼 또 술병이나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실망하겠어. 오기전까지 최대한 고쳐놔.”


그렇게 그들은 류드밀라가 심상세계로 오기전까지 수리를 진행했지만... 

단 두 대를 고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아. 진짜 정비반 애들이 매일같이 투덜대던 이유를 알 것 같구만. 뭐가 이렇게 복잡한거야? 발레리. 넌 얼마나 해봤길래 그렇게 척척해내는 거냐?”


“전투 끝나고나면 총이나 닦던 니들이랑 다르게 우리는 방패를 정비반애들한테 맡겨야했거든. 

그렇게 친해지다 보니 서로 도와주고 하다가 배운거지. 나라고 뭐 다르겠어? 

눈 뜬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잔소리 그만하고 슬슬 준비해. 전대장님 오실 시간이니까”


“슬슬 오겠네. 전원 위치로.”


세 명이 정렬하고 나고 잠시 후. 그들의 눈 앞에 류드밀라가 나타났습니다.


“전대장님께 보고드립니다. 메이즈 전대. 총원 437. 휴식 434. 활동 3. 자동화 병기는 두 대 수리 완료하였습니다.”


“정말 이제 그런 것 좀 그만하면 안될까? 알렉스.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질 않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격식을 차려야하는 거야. 우리가 나가게 됬을 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류드밀라와 알렉스는 서로 미소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늘은 또 무슨 음식을 들고오셨으려나? 저번에 준 딸기 파르페는 꽤 맛있었는데 말이지.”


“후후. 기대해도 좋다고. 너를 위한 디저트도 있을 뿐 더러 예고르와 발레리한테 줄 안주도 준비했으니까 말이야.”


“오오. 역시 전대장님이야. 우리 마음을 정말 잘 아신단 말이지.”


“감사합니다. 전대장님.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군요.”


모두가 입맛을 다시며 류드밀라의 손에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이건 알렉스가 좋아할만한 달콤한 음식이야. 마카롱이라고 해. 나도 밖에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라고. 

 일단 냉장고에 넣어둘테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꺼내먹어.”


“보기만해도 맛있어보이는 걸. 잘 먹을게.”


“이상하게 생긴 건어물은 과메기라고 하는 건데 관리자님한테 추천받은 음식이야. 쫀득하니 맛있어서 

 술안주로는 그만이라고 하시던데 나는 조금 별로더라.”

“흠.. 뭔가 생긴게 좀.. 이상한데?”


“그래도 한 번 믿어볼만하지 않나. 관리자님이 추천해주셨다고 하니”


알렉스와는 다르게 둘은 과메기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먹는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도 좀 머물면서 같이 먹고 싶지만 만드는 것도 꽤 힘든일이라서.. 미안하지만 먼저 돌아가볼게. 너희들도 적응된 것 같으면 같이 나와서 지내자.”


“걱정하지 말라구. 조만간 적응해서 나가게 될테니까 말이야. 나가면 관리자 붙잡고서 왜 우리를 버렸냐고 한바탕 따져줄게.”


“아하하; 그러지 마. 관리자님이 안계셨으면 너희를 구하지 못했을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전대장님. 저희가 태어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어도 은혜를 모르는 짐승새끼는 아닙니다.”


“어차피 침식체 놈들이나 죽이려고 태어났는데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이지.. 너희들은 예전과 달라지질 않는구나.”


모두가 웃고 있는 상황 속에서는 얼굴을 찡그리는 게 더 어려운 걸까.


류드밀라도 작게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 이제 그만 가볼게. 내일 또 만나자.”


“야 니들 자세 잡아. 경례!”


““ 감사합니다 전대장님! ””


이윽고 류드밀라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그들 3명만이 남게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도 잠이나 자자. 취침 준비해.”


“근데 저희도 이제 반쯤은 침식체 아닙니까. 침식체가 잠을 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제발 그만 쫑알대고 시키는 대로 해. 이러한 행동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류드밀라한테 들었잖아. 아직도 류드밀라의 명령에 의문이 있는거냐?”


“예이 예이. 알겠습니다. 어이 발레리 내 침낭좀 던져줘봐”


“니 물건은 제발 니가 좀 챙기지 않겠나. 동기라고 언제까지 니 물건을 챙겨줘야하는지 모르겠군”


“에이 좋은 게 좋은거라고 좋게 생각하라구”


“자자. 불 끌테니까. 잠이나 자라.”


“좋은 꿈 꾸십쇼. 부전대장님.”


“너도 술이나 진탕 먹는 꿈 꿔라”


원리를 알 수 없는 스위치를 누르자 황량한 세계에 존재하던 빛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 세계에서 잠이 듭니다.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언젠가 그들이 인간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오늘도 그들은 이 곳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설정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