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문예대회] -  펜릴 전대 - 어느날 거짓말처럼 1


"…나……."


시끄럽다. 이제 막 잠든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짜증이 난다.


"…데……나……!!"


새벽 3시에 침식 현상 발생으로 긴급 출동하고 해뜰 즈음에 겨우 들어와 씻고 잠들었는데 도대체 누가 깨우는 걸까?


"힐데 누나!!!"


"누가 누나라는 거야!!"


짜증이 잔뜩 섞인 어조로 소리 지르며 펜릴 소대의 소대장, 힐데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 깜짝이야, 왜 짜증이야."


자신을 깨운 사람을 얼굴을 확인한다. 눈을 뜬 듯 안 뜬 듯이 있는 소년── 주시윤이 볼맨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선 채로 힐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오늘 누나가 회사 견학 시켜준다고 했잖아."


…?? 자신이 지금 잠에서 덜 깬 것일까, 아니면 주시윤이 정신이 나간 것일까? 평소였으면 '스승님', '소대장님'이라고 불렀을 녀석이 아까부터 계속 '누나'라고 부르고 있다.


또 호칭은 호칭 대로 이상했지만 평소에 입고 다니던 펜릴 소대 제복은 어디가고 교복을 입고 있는 것도 위화감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깨어난 위치도 이상하다. 분명 야간 작전을 마치고 자신의 집에 들어와 씻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잠들었을텐데, 깨어나보니 코핀 컴퍼니의 힐데의 사무 책상에서 엎드려 자다가 깨어났고, 옷도 잠옷이 아니라 하늘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H라인 스커트의 오피스룩 차림이었다.


'잠깐… 일단 주시윤에게 윽박지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지금 위치는 코핀컴퍼니 사무실이고, 나는 잠옷이 아니라 생전 처음 입어보는 오피스룩을 입고 있어. 그리고 주시윤은 교복을 입고 있고 나한테 '누나'라고 하고 있지.'


눈을 감은 채 양손 검지 손가락을 양쪽 관자머리에 누르고 두뇌를 풀가동 시켜본다.


"누나 왜 그래? 머리 아파? 감기 걸렸어? 타이에놀 사올까?"

평소 같았으면, "하하하, 나이가 나이다 보니 혈압으로 인한 두통 같네요. 혈관계에 신경 좀 쓰셔야겠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릴 제자놈이 다정다감하게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는 것도 짜증날 정도로 이상하다.


"아─ 알겠다!"


두뇌 연산 결과,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콩하고 내려찍으며 다 이해했다는 듯이 재스쳐를 취하고는,


"주시윤, 몰래카메라인거 다 아니까 그만해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지만, 소년은 손가락을 머리 옆에서 빙빙 휘돌린다.


"누나 머리 어떻게 된거야? 뭔 헛소리야."


'이런 들켰군요.'이라고 할 줄 알았지만 해괴한 사람이라도 본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더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무슨 일이죠?"


발뺌하는 주시윤에 혈압이 상승할 즈음, 복사기에 복사를 뜨러가던 김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함을 감지하고 다가왔다.


"김하나 부장, 주시윤 이 녀석 이 재미없는 삼류 연극 좀 그만하고 일이나 하라고 해."


"……네?"


"김하나 부장까지 왜 그래? 그나마 우리 회사에서 정상인이었잖아."


"아이 참 '힐데 이사님'이야 말로 장난이 심하시네요. 아무리 만우절이라도 그렇지 대리가 하루 아침 사이에 '대리'가 '부장'으로 승진됐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죠."


멋쩍은 듯 웃는 김하나의 사원증을 보자 그곳에는 김하나의 증명 사진과 직급── '인사과 대리 김하나'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하아… 이것들이 진짜 단체로 짜고 놀려먹는구만…… 야,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그렇지──!!"


자리를 벅차고 의자에서 일어난 순간 다시 한 번 위화감을 느낀다.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한 사람이 힐데의 시야에 들어왔다.


 회색 정장에 검은 구두, 긴 머리를 묶은 30대 후반의 여성── 이수연이 저 복도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복장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누가 봐도 평소의 이수연과 다르다는건 어느 누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거…짓말이지…?"


20년 전, 이수연은 제주도에서 위험하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호기롭게 전장을 휘졌고 다니다 오른쪽 눈을 잃었고, 그 후 이수연은 오른쪽에 안대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팔을 잃었으면 의수라고 할 수 있었을테지만, 눈은 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는 구 관리국의 과학 기술로도 복구 시킬 수 없는 신체일 터이다.


그런 이수연의 양쪽 눈이 멀쩡하게 있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눈을 비비고 다시 이수연을 바라보아도 그녀의 두 눈이 멀쩡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두 사람 무슨 일이시죠? 이사님이 또 무슨 꼰대 같은 소리를 하시고 계신 건 아니겠죠?"


"이수연… 너 눈… 어떻게 된 거야…?"


"크으으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잖아!!"


이수연은 한 번 더 헛기침을 크게 하고는 허리 숙여 힐데에게 귓속말을 한다.


"선생님!! 저 쌍수한 거 비밀로 하자고 했잖아요!!!"


"뭔 헛소리야 이건 또!!"


이수연도 힐데를 부르는 호칭이 이상하다. 좋든 싫든 지난 수십 년간 이수연은 자신에게 단 한 번도 '스승님'이라는 칭호 외에는 부른 적이 없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이사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분명 뭔가 이상한 것이다.


휴대전화를 키고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을 기동 시킨 후 포털 사이트에 노출되는 헤드 라인 뉴스를 확인해본다.



[유채꽃 절정, 제주 성산일출봉 일대 봄철 국내 관광객으로 가득.]


[봄꽃 구경으로 인산인해. 하지만 그들이 버린 무단투기 쓰레기로 관광지는 몸살.]


제주도는 20년 전에 초토화되면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을 터고, 관리 실패 이후 세계 곳곳에서 침식 현상이 일어나게 됨으로 전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더 이상 많은 인원이 모이지 못 모이게 하고 있을 터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에는 유채꽃밭에서 여유롭게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과 여의도 윤중로에 모인 인파 사진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이… 무슨……."


이상한 기사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국군 창군 이래 최연소 중령 승진 나유빈 중령, 재산 1억을 불우이웃에 기부해…]


나유빈이 육군 중령이라는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