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고 지는 언덕, 흩날리는 꽃잎이 사뭇 낯설다. 추억이 담긴 언덕은 이제 없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던 교정...

 

“아저씨, 뭐하고 계세요?”

 

긴 갈색머리를 가진 소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자세히 보니 머리에 작은 롤빵도 2개 얹어져있었다. 그녀는 내가 종이에 아무렇게나 써내려가는 글을 슬쩍 보고서는 오~ 하는 감탄사를 작게 내뱉었다.

 

“글을 쓰고 있지.”

 

“글을 왜 쓰는데요?”

 

“원래 전장에서는 센시티브한 사람이 미치지 않고 오래 살아남거든.”

 

짧은 문답이 몇 번 지나갔다. 카운터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듯 긴장한 모습의 소녀가 왜 내 앞에 멈춰 섰을까. 아마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면세계에 다이브하기 직전,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동료의 주검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전쟁터를 앞에 둔 소녀는 지금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녀는 마치 데생을 그리는 화가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구경꾼처럼 조심히 내 옆에 앉았다. 앉을 때 치마를 단정히 정리하는 그녀의 손은 작게 떨렸다.

 

“그건 무슨 이야기에요?”

 

반쯤 웃음이 담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일개 소총수지만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는데 도움이 될까, 나는 그녀의 질문에 커흠 작게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전쟁터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거든.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은 일찍 죽어. 도움을 못 받아 죽거나 미쳐서 죽지. 하지만 센시티브한 놈은 끝까지 살아. 그런 놈들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거든.”

 

근데 아저씨는 왜 죽었어. 문득 나한테 싸우는 법을 이야기해준 용병이 생각났다. 딸아이가 있다던 늙은 용병은 나에게 교전수칙이라는 이야기를 늘 하고는 했다. 오래 살아남는 방법, 바퀴벌레처럼 살아남는 방법, 그는 이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늘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 이 유쾌하지 않은 농담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요? 그러면 아저씨에게도 이유가 있겠네요? 글 쓰는 거 좋아해요? 나는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책 읽는 거를 좋아한다니. 요즘 젊은 친구들답지 않은데?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야. 아직 28이야.”

 

“보통 아저씨들이 젊은 친구들이라는 말 쓰는 거 알아요?”

 

정곡이었다. 나는 다시금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멀리 보이는 벚꽃나무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글 쓰는 거 좋아하지. 아마 그 일만 없었으면 지금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를 꿈꾸고 있었을걸. 더 이상 세상에는 많은 작가가 필요 없어졌어. 책을 읽는 사람도 없어졌거든. 그래도 누군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옛 추억들을 적는 거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 일, 소녀도 그 일이라는 말에 잠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계는 한 번 무너질 뻔 했다. 서울은 일찍이 사라졌고 점차 확대되어 이내 내가 살던 곳도, 이사온 집도, 그리고 내가 다니던 대학마저 무너뜨렸다. 내 추억이 무너지는 것을 나는 볼 수 밖에 없었고 끝내 총을 들었다. 처음에는 침식체를 죽이고 내 고향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추억은 흐려졌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소녀의 입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다시금 튀어나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꽤 예뻤다.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고 생기 넘치는 표정도 지을 줄 알았다. 분명 평범한 세상이었다면 나 같은 아저씨가 아니라 멋진 선배, 후배들이 잘 챙겨주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언제 완성이 될까요? 저도 읽을 날이 오겠죠?”

 

그녀의 말에 나는 나지막하게 웃었다. 내가 죽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내 글이 너에게 닿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런 날이 올까...

 

“아직 적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올 해 내에는 완성되지 않을까?”

 

“기다릴게요! 아니면 책 내기 전에 먼저 저한테 말해줘요. 1호 독자라도 되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한 소녀는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코핀컴퍼니 펜릴소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박수소리가 들렸다.

 

“자! 다들 출발해봅시다! 오늘도 세계 평화를 위해 힘내보자고요!”

 

돈이겠지. 세계 평화 같은 소리하네. 담당자의 목소리에 소녀가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꽂힌 검을 달그락거리며 먼저 앞으로 뛰어나갔다.

 

“아저씨! 그러면 나중에 봐요!”

 

나중에 보면 좋겠네. 가볍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는 나도 내 총과 머리만 겨우 지킬법한 투구를 뒤집어쓰며 일어섰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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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챈럼이 소총병과 평범한 카운터가 사랑하는 이야기 적어달라해서 먼저 프리퀄 적어봤다. 퇴고 안하고 가볍게 쓴거라 오탈자가 있을 수도 있음.


다들 마음에 들면 더 쓰고 아니면 프리퀄에서 다른 잘쓰는 친구들이 써주길 바람.


그리고 그 그림그려준 챈럼은 그림 써도 된다고 말하면 그림 나중에 맞는 장면도 글로 쓰고 그림도 넣을게. 다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