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소총병들이 왜 투구를 쓰는지 알아? 머리를 지키기 위해? 그런거랑은 좆도 관계 없어. 침식체들은 이런 싸구려 철쪼가리 그냥 반으로 갈라버려. 그럼에도 이 투구를 쓰는 이유는 옆에 누가 죽었는지 모르기 위해서야. 투구를 쓰면 우리는 너와 내가 아니고 소총병 하나 둘이거든.’

 

내게 이 말을 해준 편대장은 그 날 죽었다. 자신을 백전 노병이라고 부르던 사람도, 불사신이라고 부르던 사람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스틸레인, 멋드러진 이름을 가진 군사기업도 한국 땅을 밟자 속히 말하는 조선화된 기업이 되었다. 본사가 하청을 맡기듯, 하청이 2차 하청에게 맡기듯 다국적 군사기업은 총을 쥔 용역업체가 된 것이다.

 

스틸레인 이름표를 달고 침식체들과 싸우는 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멋지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은 돈 이야기에 모여 방아쇠 당기는 방법만 겨우 배운 밑바닥 인생이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에 포함되었었다.

 

그녀를 만난 지 며칠이 지났다. 그녀는 다이브 중인 함선에서도 그녀의 소대와 소대장에 대해 몇 마디 경외심 섞인 말을 꺼냈고 실제 그녀를 교육하고 있는 듯한 한 여성 선배는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몇 번 고개를 끄덕여줬고 침식지대에 도착하자 그녀는 긴장감을 숨기듯 억지로 웃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일의 거리는 여느 날처럼 북적였다. 침식재난의 여파로 대다수의 학교는 파괴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컴퓨터로 수업을 들었고 학교에 모여서 수업을 듣는 건 정말 소수의, 그러니까 흥미 위주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물론 카운터 아카데미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학생들은 사회 교육을 조금 더 일찍 받게 되었고 소년병이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이런 곧 망할법한 세상에서 무슨 인권이 중요하겠는가.

 

거리를 걷는 도중 도심 어디에서도 보일법한 거대한 전광판에 스틸레인 4글자가 박혀있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더러운 놈들, 세상은 더러운 놈들이 살기 좋게 흘러가고 있다. 한 때 더러운 놈들의 돈을 받아먹던 나는 이제 용병사무소를 차렸다. 그래도 그 더러운 투구는 아직 벗지 않았다. 편대장의 말이 자꾸 생각나서이리라.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익숙한 가게 앞에 발걸음이 멈추면서 생각들 또한 멀리 사라졌다. 총포상, 지난 일을 마무리하고 늑장을 부리다 이제야 온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지난 일 이후의 보충이었다. 

 

“요즘 가게 앞에 거지들이 꼬이는구만.”

 

“거 참, 나는 그래도 돈은 내잖아요. 돈도 안내고 받아가는 손놈들도 있다면서.”

 

딱 봐도 위험해보이는 철문을 밀자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영감이 나를 반겼다. 말은 이렇게 해도 정 많은 늙은이다. 나보다 더 돈없고 위험한 놈들도 도와준다는데 돈은 못벌어도 총맞을 짓은 안하면 좋겠는데. 애초에 나같은 놈도 손님이라고 받는 시점에서 돈은 분명 못벌겠지.

 

“반만 낼거면 아예 내지 말어. 내가 무슨 자선기부 받는 늙은이인줄 알아? 살거나 빨리 골라와. 문 앞에서 떠들기만 할거면 나가서 카페나 가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 발걸음은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테디셀러들이 모인 장소에서 나는 5.56mm 탄약을 찾았고 한 상자 빼내와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대 근처에서는 가게에서 나는 냄새보다 더한, 아주 퀴퀴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습한 곳에서 총포를 파는데 녹이 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고는 했다.

 

“이거 하나 줘요. 그리고 낡은 역사관은 언제 리모델링해요?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해 아주. 젊은 친구들 다 도망가겠어.”

 

“너 같은 거지들한테 제 돈 다 받아야 리모델링을 하든 물건을 새로 사든 하지. 그리고 젊은 친구들 오기도 하니까 걱정 말고 돈이나 내.”

 

젊은 친구들 같은 소리하네. 누가 봐도 범죄냄새 짙게 풍기는 총포상에 어떤 머리 빈 놈이 온다고. 해봤자 나 같은 인생 밑바닥들이나 꼬이겠지. 노상강도도 무서워서 안 찾아오겠다. 그 때 누군가 철문을 밀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목소리, 가벼운 발걸음, 생각보다 눈길이 먼저 갔다. 지난번에 만났던 소녀였다. 길게 내린 갈색 머리와 그 위에 달린 롤빵 2개, 소녀는 며칠 전과 똑같아보였지만 최근 잠을 설친 듯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길게 드리워있었다.

 

“어? 아저씨는?”

 

나보다도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피곤해보였던 소녀는 나를 보고 위험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나도 손을 들어 가벼운 인사를 했다. 그와 동시에 주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뭐야, 하루살이주제에 여자도 만나고 다니냐?”

 

“그런 거 아니야. 총알도 제 돈 주고 못 사는 거 보면 몰라요?”

 

“또 모르지. 총알은 반값주고 사고 남은 돈으로 여자나 후릴지.”

 

딱 봐도 나이차가 꽤 나잖아 영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도 똑같이 따가운 시선을 늙은이에게 보냈다. 그러는 사이 소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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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하고 밥먹고 대충 휘갈겨써봄


진짜 소설 오랜만에 쓴다. 한 2년만에 쓰는거같은데 또 쓰니까 재밌네


보니까 나랑 똑같이 소총병이랑 카운터 사랑이야기 적는 챈럼있던데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끄적이는 방향으로 갈듯 아마 침식체랑 싸우려면 한 세월 걸리지 않을까 생각날때마다 계속 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