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가은아 들어가도 괜찮니?"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간호사의 물음에 방 안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대답은 짧고 간결했지만 그렇다고 차갑진 않았다.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관리가 잘 된 듯 문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병실은 일인실로 넓고 정갈했으며 창가에서 비춘 따스한 햇볕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얗고 넓은 공간 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창가의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였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을 가진 그녀는 작고 연약해보였지만 사람의 시선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으며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풍경에 녹아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눈이 보이지 않는지 두 눈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녀의 눈은 간호사가 서 잇는 곳에 정확히 멈춰 서 있었다. 

 간호사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붕대를 풀게 되는데, 기분은 어떠니?"


 "..."


 간호사의 물음에 소녀는 머뭇거렸다.


 쓰디 쓴 약을 먹을 때도, 아픈 수술을 할 때도 이 아이는 울지 않았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버린 이 아이, 가은이는 분명 힘든 과거를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착했고, 마음을 닫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인 사람을 간호사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잠시 기다렸다. 가은이가 이렇게 신경쓰는 것이 '선생님'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 걱정 돼..."


 가은이의 말에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내일이면 앞을 볼 수 있는 가은이였다. 누구보다 기뻐해야할 그녀인데 걱정이라니.


 "걱정? 수술은 잘 됐단다 가은아. 부작용도 없고 내일이면 두 눈이 보일 거야. 하고 싶은 것도 다 할 수 있을거고."


 안심시키려는 간호사의 말을 들었지만 가은이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나... 눈이 보이면 선생님을 찾으러 갈 거야."


 선생님이란 남자. 가은이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를 낸 남자였다. 관리국 직할 도시로 선포된 지 얼마 안 된 사레이드에서 바로 허가를 받게 한 신비한 남자. 

 그 남자가 떠나가자 가은이가 얼마나 애처롭게 울었는지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남자의 쪽지 하나에 가은이가 바로 진정했다는 것도.

 

 가은이가 울지 않는 것도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게 만들려는 생각이란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남자가 가은이에게 얼마나 큰 존재일지 짐작이 안 갈 뿐.


 "그래 눈이 나으면 선생님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거야. 선생님도 두 눈으로 불 수 있고."


 힘든 수술도 선생님 하나만을 떠올리며 참은 가은이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응?"


가은이가 말했다.


 "선생님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모르겠어..."


 "아..."


 무심코, 안타까운 한숨이 나왔다.

이름도 행방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 남자. 행색도 남루하고 빨리 떠나 버렸기 때문에 그의 외형조차도 알 수 없었다. 요즘 같이 혼란한 이 때에 이런 빈약한 단서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였다.


 "나... 선생님 못 찾으면 어떡해? 만약 찾았어도... 그냥 지나쳐 버리면 어떡해?"


 말을 하는 가은이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떨렸다. 힘든 치료 과정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녀지만 다시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그녀를 눈물 짓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은이를 너무나도 무섭게 했다.


 간호사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같이 지낸 시간이 길다곤 할 수 없지만, 가은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겉만 번지르르하거나 실용성 없는 이야기를 해줘봤자 아무 소용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알았다.

 물론 그런 말이여도 이 착한 아이는 고맙다고 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 아이에게 도움될 만한 무언가가, 자신 안에 있을 거라고 믿으며 간호사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머리 속엔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가은아. 이건 나도 예전에 들은 얘긴데 말이야."


 "...?"


 "사람은 상대방을 목소리부터 잊어버린대. 처음에는 목소리를, 그 다음에는 얼굴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추억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고."


 말하면서 간호사는 가슴이 살짝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얼굴도 흐릿하게 떠오를 뿐,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때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그 감정도 흐릿하다.  사랑했던 기억처럼, 그의 목소리도 시간 속에 잊혀져 갔다. 만약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다 들으면 떠올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가은이라면,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격렬한 사랑을 하고 있는 이 아이라면



 "그러니까 만약 가은이가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억한다면 영원히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담아 그렇게 말해 주었다.



"선생님의... 목소리?"



 간호사의 말에 가은이는 앉은 그대로 멍하니 멈추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되새기 듯이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간호사는 그런 가은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말을 안 하던 가은이는 정리된 듯 말했다.


 "응. 나 선생님의 목소리 절대 안 잊어버릴 거야. 언젠가 스쳐지나 가듯이 들어도 찾을 수 있도록 절대, 절대 안 잊어버릴 거야."


 "그래. 우리 가은이는 귀가 밝으니까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간호사의 응원을 듣자, 가은이는 살짝 웃었다. 아직 잘 웃진 못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씩 웃으려고 노력한다던 가은이였다.

비록 아직은 서툴지만 그 선생님이란 남자를 만나는 날이 오면 분명 예쁘게 웃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선생님을 찾는 것 말고는, 뭘 하고 싶니?"


 간호사의 질문에 가은이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을 찾을 수 있고...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여전히 선생님과 관련된 그녀의 대답에 간호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 아이라면 분명히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럼 아이돌이 좋으려나?"


 "...아이돌?"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가은이의 반응에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항상 웃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란다. 가은이가 유명해지면 선생님을 찾기도 쉬울 거고."


 자신이 간단히 내뱉은 말이 하트베리라는 유명 아이돌의 리더를 탄생시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간호사는 가은이를 향해 웃었다.




만우절 때 챈 바뀌었을 때 대회인 거 봤는데, 창작물 떡밥일 때 놔두고 갑니다. 

카운터 사이드 잘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