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착륙합니다. 흔들림에 주의하세요.

 

세계선을 지난 함선이 보랏빛으로 변한 대지에 내려앉는다. 쿵, 바닥이 닿는 거친 소리와 함께 발바닥부터 다리까지 흔들림이 느껴지고 이내 함선 안에는 짧은 적막이 흐른다.

 

이면세계는 몇 번을 와도 익숙지 않다. 현대 사회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은 없어진지 오래다. 같은 인간보다 더 위협적인 적이 나타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고 불리지는 못할법한 작은 분쟁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터니움을 놓고 싸우는 자들, 정체불명의 신을 알리기 위해 싸우는 자들, 위기를 기회삼아 은행을 터는 강도들, 용병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몇 번이고 부딪혀봤다. 그런 분쟁이 있는 곳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지울 수 없는 짙은 피 냄새가 안개가 되어 거리에 뿌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세계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 그 자체인 세계다.

 

“같이 안 움직인다고 했지? 나 먼저 내린다.”

 

“네, 그래도 무리가 보이면 신호탄은 쏠게요.”

 

“그리고... 여기 낌새가 이상하니까 조심해라.”

 

전 편대장,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이 열리자마자 가볍게 뛰어 이면세계에 발 도장을 찍었다. 2m에 가까운 거구는 언제나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선봉장이었고 응집시켜주는 깃발이었다. 든든한 등을 보며 잠깐 숨을 돌리다 모두가 내렸을 때 나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면세계에 발을 디뎠다.

 

고개를 돌리자 오늘의 거래처가 목소리를 높이며 박수를 쳤다.

 

“자! 다들 오늘의 목표 다시 말씀드릴게요! 여기는 심도 3레벨 침식지대입니다! 소형종 1종, 2종 침식체가 나올 예정이고 특수한 침식체가 나올 확률은 20%미만입니다! 여러분은 침식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이터니움을 발견하시면 저희에게 신호를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터니움을 채굴하고 그 일부분만큼을 환산해서 돈으로 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면 다들 힘내봅시다!”

 

다들 힘내봅시다 는 얼어죽을, 전문 용병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빠르게 정찰을 위해 발을 옮겼다. 내 역할을 이터니움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터니움을 캐는데 방해가 되는 침식체를 찾는 역할이었다. 회사에서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침식체 무리가 근방에 움직이고 있으면 신호를 달라고 부탁하면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꺼림직한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고작 3레벨 침식지대에서 정찰병이 필요할 리가 없는데, 3레벨 침식지대라면 지금 함선 근처에서 놀고 있을 B급 카운터 한 명이면 문제가 없을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심에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선입금이었다. 다음에도 또 아이스크림 먹자는 소녀가 생각나서였을까, 오랜만에 돈 욕심이 조금 생겼고 그 자리에서 덥석 도장을 찍어버렸다.

 

“오늘 날이 안좋아. 울프팀 이동한다.”

 

내가 언덕으로 뛰어올라가자 선배가 팀을 통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선배가 있는 이상 문제는 크게 없으리라. 그런 생각과 함께 근처 언덕 위로 뛰어올라갔다.

 

모래바람만 날리는 침식지대에서 만들어진 언덕은 바람에 깎인 기암괴석처럼 날카롭고 고고하게 솟아오른다. 몇 학자들은 침식체의 뼈와 이터니움이 뭉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언덕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나는 솔직히 믿지 않는다. 그 말을 믿고 실제로 언덕을 팠다가 허탕만 친 거래처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언덕은 주변 침식지대가 모두 보일 만큼 높게 솟아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뛰어올라간 후 망원경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허허벌판과 그 사이의 이터니움이 보였다. 모두 사전답사를 온 업체가 캐기로 예정해두었던 물건들이었다. 3레벨 침식지대치고는 적지 않은 양이다.

 

“근데 왜 침식체가 안보이지...”

 

이터니움이 있는 곳에 침식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식체는 보이지 않았다. 사전답사를 오면서 근방의 침식체를 다 처리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마음 속에서 불안함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멀리 작은 드론 하나가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나와 같이 정찰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있었나? 지난 몇 차례의 착륙 후 채굴기간동안 나처럼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는데... 드론을 띄운 두 사람은 이내 드론을 쫓아 뛰기 시작했고 그들을 따라 몇 용병들이 따라 뛰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약 나와 같은 정찰임무를 맡은 용병이 한 팀 더 있다면 똑같은 북쪽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나같이 망원경 하나에 의지해 주변을 둘러보는 나보다 드론을 사용하는 팀이 더 효율적으로 정찰을 하겠지. 목에 건 망원경을 한 손으로 잡고 슬라이딩하듯 엉덩이를 데고 흙먼지를 내며 언덕을 내려왔다. 그 때 멀리서 신호탄이 한 발 하늘로 올라가 터졌다. 붉은 색이었다.

 

“여기는 ghost 1, 함선 동남쪽 5km방향 확인바람. ghost 1, 함선 동남쪽 5km방향 확인바람.”

 

-여기는 함선, 5km방향 스틸레인 울프팀과 침식체무리가 교전중입니다. 소형 1종 침식체 일부 무리인거로 봐서는 위험해보이지는 않네요. 계속 정찰 부탁드립니다.

 

무전기에 대고 말을 꺼내자마자 함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저 붉은 신호탄은 아무 상황에서나 쏠 법한 물건이 아니었다. 울프팀 편대만으로는 인원이 부족할 때, 내게 주위에 도움을 청해달라는 의미에서의 신호탄이었다. 저 신호탄은 함선에서 지원을 거부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더러운 놈들... 용병 하나 둘 죽는 건 신경 안쓴다 이건가.”

 

내 몫만큼 누군가는 못 받을 거라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 문제는 다르지 않은가. 지원을 요청할만한 용병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던 스틸레인 이상의 장비를 지닌 유사 군인 놈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날이 안좋구나. 하지만 불평할 틈은 없다. 일단 신호탄이 올라온 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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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어디가고 4편 나왔냐고 묻지마라 지난번에 불탈때 올리고 밥로스 아자씨가 그린 그림보고 사람들이 따라 그리다가 묻힘...


대회탭에 옮겨놨으니 그거도 추천좀 눌러줘


와 글쓰기 재밋다 오늘 글쓰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