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썰


https://arca.live/b/counterside/20461919


1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4190216


- 현실세계

코핀 컴퍼니 내부

함선 격납고


다이브 아웃 절차를 마치고 함선에서 나오자마자 류드밀라는 마중나온 관리자를 볼 수 있었다.


임무 도중 귀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미리 연락을 했건만, 때 아닌 방문이라니. 류드밀라는 관리자를 보자마자 재빠르게 경례했다.


"보고드립니다, 관리자님."


"아니에요. 대략적인 상황은 인지했으니, 자세한 보고는 내일 듣도록 할게요. 다친 사람은요?"


"다행히도 대부분 무사합니다. 다만 알렉스가..."


관리자는 손을 들어 류드밀라의 팔뚝에 갖다 댔다. 고생 많았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 뒤로 관리자는 류드밀라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류드밀라는 애써 평온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형을 넓게 벌린 틈을 노려 갑자기 나타난 3종 침식체, 네르비에로부터 알렉스는 전대원을 탈출시키기 위해 천 단위의 침식체 군단에 홀로 맞섰다. 


전대 전체의 소환을 마치고 알렉스를 찾으러 나섰을 때, 이미 군세는 반파되어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전과였다.


동시에, 알렉스 또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피를 뚝뚝 흘리며 무기에 기댄 채 간신히 서서 네르비에를 흉흉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류드밀라는 즉각 알렉스를 그림자 세계로 소환한 뒤, 전력을 다해 네르비에의 군단을 공격해 전멸시켰다. 얄궂게도 네르비에는 도주했다.


"만일 놈의 소생 능력이 제한이 없다면 앞으로의 탐사에 큰 제동이 걸립니다. 그래서 탐사를 중단했고요. 면목 없습니다. 제가 수색 범위를 과하게 늘리지만 않았어도..."


"괜찮아요. 일단 대부분 무사하다면 그걸로 된거니까."


관리자는 고개를 푹 숙인 류드밀라를 고생 많았다며 달래주었다. 누군가 죽지 않았다면 문제 없다. 그저 걱정되는 것은 다친 사람이 알렉스였다는 점이다.


"류드밀라."


"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관리자는 류드밀라를 바라봤다.


"절 알렉스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시겠어요?"




- 코핀 컴퍼니 인근

메이즈 오피스텔


관리자와 류드밀라는 묘하게 검은색으로 물든 외벽의 건물로 들어섰다. 말로만 듣던 류드밀라가 그림자 세계의 능력을 활용하여 뒤덮어버린 오피스텔이었다.


메이즈 전대원들은 류드밀라의 이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현실의 공기는 따갑지만 현실의 생활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는 전대원들을 위해 류드밀라가 고안해냈고, 모두가 만족한 묘안이었다.


그 때 건물을 하나 마련해달라고 했던 류드밀라의 부탁이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알렉스의 방은 저쪽입니다."


류드밀라가 가리킨 곳에는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장식된 문이 있었다. 문에는 '노크하고 들어와!' 라는 메시지가 적힌 문패가 걸려 있다. 


문패를 보고 관리자는 속으로 웃으며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알렉스와 매우 친밀하게 지내고 있던 관리자는 알렉스가 보기와는 달리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전투용 클론으로 태어났다지만, 알렉스 역시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이제 겨우 19살에 불과한 소녀이다. 저런 취향 하나 있다고 해도 이상할건 없다.

 

"알렉스를 소환하자마자 전대원들이 응급 치료를 해서 생명에는 지장 없다고 들었습니다. 당분간 회복에만 전념한다면 금방 좋아질겁니다."


걱정을 덜어주려는 류드밀라의 한마디에 관리자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두들기는 것으로 답했다. 고생 많았다는 의미였다.


관리자는 문패에 적힌대로 노크를 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자고 있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관리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림자 세계로 잠식된 건물이라길래 건물 내부도 다 검은 색일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알렉스의 방은 정말 그 나잇대 여자의 특징이 물씬 흘러나왔다.


방은 흰색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고, 은은한 조명의 무드등이 침대 곁을 지켰다. 미니어쳐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시계가 현재 시간을 표시해줬다. 


이전에 관리자가 사줬던 분홍색 콩 모양의 바디필로우를 비롯해 여러가지 캐릭터 형상의 인형들이 방 한구석을 장식해줬다.


알렉스는 침대에 누운 채로 곤히 자고 있었다. 평소에 보던 땋은 머리 두 갈래는 어디가고, 머리를 다 풀어해친 채였다.


"....."


잘 자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만, 예쁘게 꾸며놓은 방과는 다르게 알렉스의 모습은 빈말로라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핏자국은 없어도 얼굴을 비롯한 몸 곳곳에 검은 기운이 붕대처럼 감겨져 있었다. 몸에 상처가 나도 그림자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낫는 것이다. 그림자로 변질된 카운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검은 기운이 서린 부분은 눈때중으로 봐도 7곳이 넘었다. 보통 사람이 봤다면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법한 광경이었으나, 관리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애틋한 마음이 들어 관리자는 알렉스의 침대 맡에 앉아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얼마나 격렬한 전투가 있었을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됐다. 그리고 얼마나 아팠을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천 단위의 침식체와 싸웠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아무리 알렉스가 일당백의 용장이라고는 하지만, 압도적인 숫자 차이의 전투에서 안 다칠 수 있을리가 없다.


네르비에의 존재를 파악해냈다는건 충분한 수확이었으나 그것 때문에 알렉스가 이렇게 다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관리자의 머릿속을 채웠다. 


마음 한 켠이 쓰렸다. 직접 다친 것이 아님에도 그녀가 다친 부위가 쑤시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던 찰나, 알렉스가 눈을 떴다. 


피곤한지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붉은 루비색 눈동자가 깜빡거렸다.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여웠다.

 

“일어났어요?”

 

“여기를 어떻게....”

 

때 아닌 관리자의 등장에, 그것도 자기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 알렉스는 놀란 기색이었다.


"류드밀라가 들여보내줬구나."

 

"맞아요. 다쳤다고 들어서 바로 달려왔어요. 몸은 좀 어때요?”

 

“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


알렉스의 말에는 살짝의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회복이 빠른 것과 몸이 아픈 것은 별개였다. 

 

알렉스는 괜찮은 것처럼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였다. 몸 곳곳이 고통으로 삐걱이며 비명을 질렀지만 억지로 무시했다.

 

"아까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좀 살만해. 몸도 그림자라서 그런지 회복도 빠른 것 같고. 이거 봐. 금방 낫는다니까?"


알렉스는 다친 곳 중 하나인 왼쪽 팔목 부근을 들어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미 재생이 다 끝나 있었다. 


보통의 그림자는 신체가 손상되더라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상처가 빠르게 재생된다. 한번 침식이 이뤄졌던 메이즈 전대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멸의 신체를 갖게됐다 한들 안심할 수는 없다. 상처가 복원된다 한들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니까. 아프지 않을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알렉스가 괜찮다며 팔을 흔들어보일 때도 관리자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관리자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간 거에요?"


관리자는 류드밀라에게 들었던 알렉스의 상태를 다시 떠올렸다.

 

류드밀라가 마지막으로 알렉스를 소환할 때, 그녀의 상태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핏자국과 침식체의 파편으로 얼굴이 얼룩져 있었다. 전신에 물어뜯기고 할퀴고 베인 흔적이 즐비했다. 


알렉스의 실력이 최상급이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상태였다.


“그야, 전대원들을 살리려면 그게 최선이었거든.”

 

걱정이 서린 관리자의 말에 알렉스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답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당신도 알테지만, 포격전대인 메이즈에 근접전이 주력인 내가 들어가 있는건 전선이 끝까지 밀렸을 때 조커로 활약하기 위해서야.”


그녀는 메이즈 전대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 


구 관리국 시절, 메이즈 전대가 가장 무사귀환율이 높고 사망률이 낮은 부대일 수 있었던 것도 류드밀라에 이어 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수많은 생명을 구해왔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관리자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르비에가 나타나 침식체 대군을 전개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았어. 저 규모 앞에서는 류드밀라가 넓게 전개한 우리 애들을 모두 불러들이기에 시간이 촉박하다고. 그래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혼자서 전선을 유지했던 거고. 


뭐... 오랜만에 거하게 얻어맞았지. 침식체들이야 한 두번 잡아본게 아니니까 별거 아니었지만, 네르비에는 여간 강한게 아니더라.”

 

"그러다가 죽을 뻔 했잖아요. 류드밀라가 제때 증원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났을거에요. 조금은 자기 몸을 소중히 여겨주면 안되는 건가요?"

 

"무슨 말 하고 싶은건지 알아. 하지만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움직였던 거야. 애초에 죽을 생각도 없는걸."


"궤변이에요. 살아 돌아오길 원하면서 위험에 뛰어들다니."

 

"후훗. 나니까 그런게 가능한거 아니겠어? 구 관리국 최상급 카운터에 그림자 카운터라니.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강함이 아니잖아?"


알렉스는 괜히 자신의 강함을 어필하며 이야기를 무마시켰다. 관리자는 영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알렉스의 다친 부위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보다 당신은 괜찮아?”

 

"뭐가요?"

 

“봐버렸잖아. 상처가 낫는 모습. 보통 사람이랑 달라서 좀 놀라진 않았어?”

 

“글쎄요... 어땠을까요?”


반쯤 장난으로 관리자는 괜히 모르쇠로 나섰다. 불만스럽다는 듯 알렉스의 눈초리가 가느다랗게 변했다. 


입까지 삐쭉 나오려는 순간 관리자가 다시 말했다.

 

"놀라지 않았어요. 알렉스도 알다시피 전 별의별 광경을 다 보면서 살아왔으니까요. 그냥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생각 정도."

 

"나 참. 항상 이렇게 시덥잖은 장난으로 점수를 잃는다니까." 


그의 말은 언제 들어도 따뜻하다. 마지막 말을 듣고 알렉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래도 사려깊네. 이미 반쯤 인간이 아니게 된 내가 아플거라고 생각해주는 점이."

 

"원래 그 정도 다쳤으면 많이 아픈게 당연한 거에요. 상처가 재생된다고 해서 고통도 안느끼리란 법은 없을 테니까."


본래 침식되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으로 변해버리는 대신 이성을 잃는다. 그러나 메이즈 전대원들은 보통의 그림자와 살짝 달랐다.

 

전대원들은 침식을 류드밀라에게 넘김으로써, 그림자의 힘을 가진 대신 인간처럼 오감을 느끼고 이성을 유지하는 특이 케이스가 되었다. 상처는 회복되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낀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이중적인 존재가 됐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있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도 있다. 


자신이 인간인지 그림자인지, 둘 중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괴리감은 당사자를 계속 괴롭혀온다.


이 점은 메이즈 전대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알렉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자가 되어 다시 살아난 이후로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의 고민을 계속 반복해나갔다.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림자에 뒤섞인 몸이다.


이성만 유지하고 있을 뿐, 괴물과도 같은 몸이라면 그것을 인간이라고 정의해야 하는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괴물인 것이 아닐까?


알렉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검게 변한 채 회복중인 오른팔을 보았다.


네르비에의 침식체 대군을 맞아 싸울 때, 알렉스는 살면서 가장 격하게 싸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격렬하게 전투에 임했다.


힘은 카운터일 시절보다 훨씬 강해졌다. 아무리 다치고 조각나더라도 죽지 않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괴물과도 같았다.


오랜만에 나온 실전 임무 때 필요 이상으로 날뛴 것도 그런 심리의 반영이었다.


인간답게 싸우는 것이 아닌, 괴물답게 싸우는 것에 몰입하려고. 자신이 인간인지 괴물인지 그런 고민은 잊어버리려고.


그런 주제에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에게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그랬는데, 네 앞에서만큼은 거짓말 못하겠단 말야. 정말. 


알렉스는 속으로 되뇌였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 덕분에,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많이 아파. 사실.”

 

알렉스는 들켜버렸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재생은 되니까 죽을 걱정은 덜 하게 되지만 아픈건 여전하더라. 도플갱어들과 싸웠을 때처럼 아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과는 보다시피야." 


"그것 봐요. 아팠으면서."


"그래도 전대원들은 아무도 안다쳤으니 다행이지. 다치는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거든."

 

“내가 안 괜찮아요.”

 

말함과 동시에 관리자는 알렉스를 껴안았다. 갑작스런 포옹에 알렉스는 당황했다. 


몸이 겹쳐지며 느껴지는 온기와 향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벼락 같은 잔소리가 뒤따랐다.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는게 얼마나 마음 아픈데요. 게다가 많이 아팠다면서요. 아픈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는건 또 어떻고요?


실력을 믿으니까 개인적인 임무에 투입하긴 했는데 류드밀라한테 다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래서 와봤는데 괜찮은 척, 안아픈 척, 척이란 척은 다하고. 사실은 중상을 입었으면서 아프다고 말도 안하고."


알렉스는 안긴 채로 관리자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혼나고 있다. 화만 내지 않을 뿐 분명 혼내는 말투다.


몸을 함부로 위험 가운데 내몰았다며, 아플 텐데 안아프다고 거짓말했다며, 혼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알렉스는 누군가에게 혼이 났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클론으로 살 적에 상관과 과학자들에게 뭘 못한다는 이유로 혼나는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를 이렇게 신경써준다는 것이 내심 기뻐서, 껴안고 있기 때문에 체온이 전해져서.


"제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부전대장이니, 그림자니, 그런건 됐어요. 류드밀라도 제 앞에서는 류드밀라고, 알렉스도 알렉스일 뿐인걸요."


너는 너다. 그러니 솔직해져라. 


그 말 한 마디에 알렉스는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다. 머릿속에 솜사탕 같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 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웃는걸 숨기려고 알렉스는 대답 대신 관리자에게 몸을 맡기고 얼굴을 부볐다. 한 번, 두 번, 부빌 때마다 몸의 아픈 것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에 화답하듯 관리자도 알렉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 상태로 둘은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요? 솔직해지는거."


대답 없이 계속 붙은 채로 있던 알렉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몰라. 바보야."


겨우 내뱉은 그 한마디가, 시선을 피한 채로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는 그 모습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소녀와도 같았다. 


머리 스타일도 땋은 머리가 아닌 생머리여서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더욱 여성스럽게 비춰주었다.


예상 외의 반응에 관리자도 내심 놀라워했다. 이전에 코핀 컴퍼니 옥상의 화단에서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부끄러워하는 자신을 알렉스가 되는 대로 놀려먹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반대였다. 알렉스가 반대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으... 몸도 지금 엄청 아픈데 당신이 괜히 그런 말이나 하면서 자꾸 마음을 흔드니까 더 아프잖아. 아파 죽겠는데 그런데 뭐? 솔직해지라고? 몰라. 못해, 바보야."


말하면서 알렉스는 한 순간도 관리자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진짜 엄청나게 귀여웠다. 


항상 여유롭고 나긋나긋하고 강인했던 사람이 이렇게 병약한 상태로 있다. 거기에서 오는 갭이 귀여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실례지만 알렉스 씨 지금 엄청 귀여운거 알아요?"


결국 알렉스의 얼굴이 화악 하고 빨갛게 달아올랐다.


"실례인줄 알면 말을 하지 말든가. 바보야."


괜히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알렉스는 손을 들어 관리자의 가슴팍을 툭툭 두들겼다.


19살의 나이에서 나올 수 있는 앳됨과 부전대장으로서 살았던 성숙함이 적당히 어우러져 안그래도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그녀의 매력이 폭발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알렉스는 귀여웠다. 정말로, 진짜로 귀여웠다.


"그래도 고마워. 예전엔 클론이었고 지금은 그림자에 섞여버린 나를 여전히 사람으로 봐주고,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나를 사람으로 안아줘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알렉스를 향해 관리자는 싱긋 웃어주었다.


"고맙긴요. 당연한 건데."


"이건 그 보답이야."


관리자가 뭐라고 말하려 하기도 전에, 부드러운 감촉이 맞닿았다. 이번에는 이마가 아니라 입술이었다. 


입술에 느껴지는 솜이불 같은 촉감과 꿈 속을 걷는 것 같은 포근함. 이성의 향긋한 체취가 오감을 자극했다.


몽실몽실한 무언가가 관리자의 머릿속에 아지랑이를 자아내다가 폭발했다.


입술이 맞닿은 채로 한 번, 두 번, 더 겹쳐졌다. 타액이 섞이고 부드러운 감촉은 이내 끈적하게 변하며 두 사람의 입에 꿀타래를 만들어냈다.


서로 입만 맞췄을 뿐인데 몸이 완전히 섞인 것만 같았다. 마음이 온전히 열린다.


이 초유의 사태에 관리자는 놀란 눈으로 뭔가 말하려 들었다. 그러나 알렉스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윽한 시선과 애정어린 눈동자가 말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소녀의 고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정말 좋아해."


대답하지 않고 관리자는 알렉스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맞대었다. 두 사람의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침묵 대신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다친 몸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


2편에서 끝냄. 이 글을 꼴림캐 분야로 제출합니다.


마지막에 근데 시간도 없고 해서 너무 찍싼듯. 키스를 해본적이 없으니 더 묘사하기가 힘드노 시바....


리플퀸이 나왔지만 마망은 알렉스 단 한명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카사챈 여러분. 존재 자체가 꼴림입니다.


중요) 알렉스의 신체 나이는 10대이다


이러니 꼴리지 않을수가 있겠냐고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