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국 공인 태스크포스, 코핀 컴퍼니 부사장 이수연의 밤은 길다.


"사장이란 자가 서류란 서류는 전부 떠넘기고..."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사무실에서, 그녀는 명목상 상위 기관인 관리국에 올릴 보고서와 인사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전부 사장의 일인데 관리자로서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테라브레인과 메이즈 전대까지 데리고 훌쩍 사라져버렸다.


"... 후우. 아직 나도 현역인데."


비록 우선 순위가 떨어지긴 해도 비밀을 가장 많이 공유받고 있는 자신을 관리자가 개인적인 용무라며 쏙 빼놓고 가버린 사실이 괘씸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정지 상태인 머신갑을 발로 뻥 찼다.


"하아. 애도 아닌데 이런 깡통에 무슨 화풀이람."


마음 같아선 그 잘난 면상에 빅엿을 먹이고 싶은 이수연이었지만, 제아무리 그녀라고 한들 자신의 세계를 지켜주고자 큰 결단을 내린 관리자의 정체를 만천하에 떠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그가 코핀 컴퍼니에 소속된 순간 이수연도 그의 정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참으로 치밀한 사람이라며 그녀는 재차 관리자를 속으로 욕 같은 칭찬을 했다.


결국, 그녀는 관리자를 씹어대며 예정에도 없는 야근을 계속했다.


부르릉!


"응? "


한창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업무 관련이라면 회사 회선으로 왔을 테니 그녀한테 개인적으로 온 연락이다. 이수연은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하나 부장] : 부사장님! 지금 바쁘세요?


비교적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김하나 부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탁월한 일처리 솜씨에 감탄하긴 했지만, 면접 당시엔 고졸이란 소리를 듣고 이수연을 한참이나 고민시킨 장본인이다. 공교롭게도 지원자 중에 최저시급과 초과 근무를 받아들인 인재는 그녀밖에 없어 고민의 의미가 퇴색됐지만.


"무슨 일이지?"


오늘 그녀는 클로이와 레나를 대동한 채 소탈한 회식 자리를 갖기로 했었다. 이수연도 제안을 받았지만 야근을 변명으로 완곡히 거절했고, 간만에 논문으로부터 해방된 이윤정과 감초 역할을 맡는 나희린이 함께인 걸로 안다.


대체로 젊은 피끼리 놀러간 것이라 박정자와 아나스타샤 둘 역시 그녀들을 배려해 개인사를 빌미로 회식 약속에서 빠져나왔다.


뭐, 정확히는 술만 마시면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둘이 분위기를 곱창낼 게 뻔하니 일부러 피한 것에 가깝다.


"이상하네. 분명 노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텐데."


특히 업무적으로 급한 일이 아니면 도통 연락하는 일이 없는 김하나의 부름에 이수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 : (다크서클 커리어우먼이 일하는 이모티콘)

[김하나 부장] : 혹시 오래 걸리시나요?

[나] : (다크서클 커리어우먼이 꾸벅 조는 이모티콘)

[김하나 부장] : 그래도 보고 기한인 12시 전엔 끝나시죠?

[나] : (다크서클 커리어우먼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티콘)

[김하나 부장] : 그러면 끝나고 같이 놀아요! 모처럼 내일은 쉬는 날이잖아요! 찡긋!


"아. 내일이 쉬는 날이구나."


제멋대로인 사장의 방침 때문에 한 달에 하루, 코핀 컴퍼니는 최근 자체 공휴일을 지정했는데 그게 마침 내일이었다.


이수연은 오랜 업무로 뻑뻑해진 왼쪽 눈을 문지르다가, 조심스럽게 안대로 가려진 오른쪽 눈을 매만졌다.


"... 내일은 뭐하지."


어차피 하는 일 없어 또 출근할 미래가 뻔히 보였다. 집에 틀어박혀 잠을 퍼질러 자고 싶어도 젊은 시절부터 전쟁터를 뛰어다닌 예민한 육체는 결코 그녀에게 늦잠을 허락지 않았다.


"하아. 대충 끝내자."


현타가 온 이수연은 보고서 끝 부분을 대강 마무리한 뒤 냅다 관리국 전용 회선에 올려버렸다. 중간중간 고치자고 표시해두고 뒤로 미뤄둔 자잘한 오탈자 등이 뇌리에 밟혔으나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뭐, 어지간한 건 알아서 처리해주시겠지."


먼저 자리를 뜬 관리자에게 소소한 복수를 한 뒤, 이수연은 정장 외투를 챙겨 곧장 사장실을 나섰다. 드디어 멀게만 느껴지던 퇴근 시간이다.


평소라면 퇴근 전, 류드밀라와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았을 그녀도 오늘은 메이즈 전대가 관리자의 개인 용무로 자리를 비워 넘어갔다.


결국, 회사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녀가 경비원 말고 마주친 사람은 단 한 명 없었다. 


유리문을 지나쳐 바깥 공기를 마주친 이수연은 싸늘한 밤공기에 한 차례 몸을 떨었다.


"후우. 이제 나도 늙어서 그런가."


이수연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익숙한 자세로 팔짱을 껴 가슴을 받쳤다.


"예전엔 스승님 따라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는데."


세월이란 참으로 무상하다.


젊을 땐 신경 쓰이지 않던 가슴 크기도, 나이를 먹으니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가슴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형태가 망가질까봐 말이다.


아직 연애도 못해봤는데 가슴이 너무 쳐지면 늙어 보일까봐 노심초사한 적도 있다. 그녀가 점점 높으신 분들을 만나거나, 거래처와 미팅하는 횟수가 증가하면서 이런 초조함은 더욱 강해졌다.


처음엔 입맛을 다시며 쩝쩝거리던 늙다리들이 이제는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에게 맞선을 제안한다. 본인보다 못난 인간들의 걱정어린 시선은 이수연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어디 두고 보라지."


마지막까지 웃는 자가 비로소 진정한 승리자다. 그녀는 고개를 털어 징그러웠던 늙다리들의 음흉한 눈빛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벚꽃은 벌써 졌으려나?"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흐른다.


어느덧 그녀가 송년회의 뒷처리를 한 뒤로 벌써 넉달이 지났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엔 알록달록한 꽃잎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출근 시간마다 싱그러운 꽃내음이 가득해 봄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연한 봄이 다가왔음에도 짙은 어둠이 깔린 도시는 제법 싸늘했다.


"벌써 1년인가..."


현역에서 은퇴하고 20년이 흘렀다.


"지나와서 든 생각이지만, 정말 용케 버텼네."


예전엔 지금보다 많이 힘들었다. 온갖 비난의 화살이 그녀한테 날아왔고, 이수연은 그때마다 피보다 진한 차가운 눈빛과 철가면으로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피도 눈물도 없는 블랙기업의 사장, 이수연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풀고 싶고, 힘들면 누군가한테 매달려 하소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 주변엔 그럴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스승이란 작자는 멋대로 잠적해서 회사를 기울게 만들고, 친한 동료는 자신들이 만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선 안 된다며 연락 마저 끊어버렸다.


이수연은 사원한테 좆같은 사장이라는 욕까지 얻어먹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렇게 처절하고 빈곤한 세월이 지나 스승인 힐데가 돌아왔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코핀 컴퍼니는 보란 듯이 다시 관리국 공인 태스크포스로서 저 위에 우뚝 섰다. 걸린 시간은 지나치게 짧았다.


"뭐, 전부 그 애 딸린 바람둥이 덕이지만."


종잡을 수 없는 남자지만, 입은 은혜가 더 큰 건 분명하다.


이수연은 한가하게 인적 드문 거리를 누볐다. 방향은 늦은 시간에도 시끌벅적한 번화가였다.


"지금쯤 뭘 하고 계시려나...?"


메이즈 전대로 모자라 테라브레인 시그마까지 동원될 정도면 꽤 큰 사안일 텐데.


어째서 자신은 데려가지 않은 걸까? 


"아니. 어차피 가봤자 부끄러운 차림으로 싸울 텐데 이게 뭐하는 짓이람."


문득 친우보다 그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이수연이 얼굴을 붉혔다. 결코 부끄러운 최신 장비 탓이 아녔다.


쌀쌀한 밤공기도 달아오른 체온엔 이기지 못하는지 이수연은 후끈해진 얼굴을 손부채로 파다닥 식혔다.


주변이 조용하기 때문일까? 부끄러움은 생각보다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머릿속 정리를 끝마칠 즈음, 그녀는 자신이 번화가에 들어선 걸 깨달았다.


"김하나 부장이 여기 근처에서 논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면 느긋하게 여가 시간을 즐기지 못한지도 꽤 오래됐다.


어차피 내일은 쉬겠다. 이수연은 김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김하나의 번호를 누르는 와중에도 이해되지 않는, 그녀로서도 굉장히 충동적인 행위였다.


짧은 발신음 후에 김하나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코핀 컴퍼니 소속 김하나 부장입니다!

"저예요. 방금 업무가 끝나서 전화드렸는데. 혹시 폐일까요?"

- 아녜요! 오히려 다들 환영할걸요! 그쵸 여러분?


대체 얼마나 즐기고 있는 건지 왁작지껄하고 떠들썩한 소음에 답변은 들리지도 않았다. 다들 꽤 취한 모양새라 이수연은 여기 끼어드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뒤늦게 살짝 후회가 들었다.


뭐, 회사 이미지를 감안해서 적당히 부사장으로서 위엄을 보이고 집에 돌려보내자. 술값 좀 내주면 알아서 부사장 찬양 좀 하다가 해산하겠지.


변명거리가 생긴 이수연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통화에 임했다.


"다행이네요. 달아오른 분위기를 보아하니 상급자가 합석한다고 분위기가 확 깨지진 않겠어요."

- 헤헤. 아! 부사장님, 저희가 지금 있는 곳 바로 문자 보내드릴게요!

"네, 부탁할게요. 김하나 부장."

- 옛썰!


통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김하나가 메시지를 보냈다.


[김하나 부장] : XX동 XX로 14-3 4층 브ㅜㄹ족 헤븐즈사이ㄴ 입니당! ٩(๑❛ワ❛๑)و


김하나의 오타 가득한 문자에 이수연이 피식 웃었다.


"맞선에서 차일 정도로 술주정이 심하다 들었는데..."


이 정도면 꽤 귀여운 편 아닌가?


다행히 위치는 예전부터 사장의 추천으로 자주 가본 곳이라 익숙하다. 이수연은 북적해진 거리를 지나쳐 족발집으로 향했다.


불족 헤븐즈사인.


각자 사연이 있는 손님들이 우연한 계기로 합석하며 불족을 먹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는 독특한 광고를 내서 슬금슬금 유명세를 알리기 시작한 족발 프렌차이즈.


신기하게도 광고의 영향 탓인지 서로 낯선 타인간의 합석이 잦고, 남녀가 합석하는 경우 연인으로 맺어질 확률이 높다고 알려진 곳이 바로 오늘의 술자리였다.


"맞선에서 블랙리스트로 찍히다 못해 이제는 미신까지 믿는 걸까..."


자신이 잘 위로해줘야겠다며 이수연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안에 들어섰다.


딸랑!


"어서 오십쇼! 손님 혼자신가요?"

"일행이 있는데요. 여자들뿐인."

"아, 혹시 이수연 고객님 맞으십니까?"


점원의 응대에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니 점원은 곧장 그녀를 칸막이 룸 안으로 안내했다.


"아! 우리 부싸장님 오셨다! 부싸장니이임! 이쪽이에여 이쪼오옥!"

"김하나 부장. 아무리 취했어도 가게에서 그렇게 큰소리를 외치면 남에게 민폐예... 요?"


뭔가 이상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 있다.


이수연은 왼쪽 눈꺼풀을 문질렀다.


"에헤헤. 우리 부싸장님이세요! 엄청 근사하시죠?"

"아으아으. 타이탄 할아부지이, 거긴 안 돼여... 거기 밟으시면 소중한 함포작약이... 으으!"


평소보다 한층 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취객 김하나와 완전히 맛이 간 나희린 사이에 낑겨 뭇 여러 남성의 눈총을 받고도 남을 남자.


"아, 아하하. 아, 안녕하십니까?"


코핀 컴퍼니의 사장, 즉 그녀를 두고 빤스런을 친 관리자였다.


"안녕하지 못한데요."


급격히 냉랭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관리자는 떨리는 입가를 술로 입가심 하며 이수연의 시선을 피했다.


허나 그의 한쪽 팔을 꽉 껴안은 김하나가 바짝 들러붙자 식겁한 그의 술잔이 위태롭게 출렁거렸다.


"이분 겁나 잘생겼죠! 그쵸, 부싸장님!"

"... 네, 그러네요. 여자 꼬시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처럼 생겼네요."

"과, 과찬이십니다."


여전히 냉랭한 이수연의 시선과 싸늘한 대답. 불행히도, 술에 취한 김하나는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했다.


"어라? 그세 얼굴이 더 창백해지셨어여. 가뜩이나 피부도 하야신데. 호시 어디 아프세여?"

"그, 제가 지병으로 건강한 편이 아니라..."

"저런! 근데 술 마셔도 괜찮으신 선가여? 제가 막 무리한 부탁 드린 거 아니져? 에? 네? 그쵸? 아니죠?"


점점 집요해지는 김하나의 모습에 관리자가 고개를 돌렸다.


"왜 갑자기 외면하세여? 에? 혹시 제가 맘에 안 두시나여? 만약 그런 거라면..."


김하나의 눈빛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빛이 사그리든다. 관리자의 팔을 껴안은 힘도 아까보다 더 세져서 꽉 조인다.


명백히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모습에 이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이 사원을 꼬시는 모습, 참 보기 좋네요."

"그, 그런 말 말게나. 나도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하진 못했다네."

"예상치 못한 거라면 제가 이곳에 나타난 거 말씀이신가요?"

"그것 말고도 김하나 부장의 술버릇 말일세."


그가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매달린 김하나를 바라봤다.


"클로이 씨가 말했어여... 제 운명의 상대를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된다고! 그러니까 절대 안 놔드려욧!"


이젠 팔을 껴안은 걸로 모자라 상체를 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비빈다. 관리자는 난감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후우. 시그마 이상의 응석쟁이더군. 자네가 오기 전까진 이보다 심한 육탄 공세까지 벌였다네."

"그것 참 좋으셨겠네요. 영계의 품에 안긴 소감은 어떠신지?"

"아니. 하나도 안 좋네. 그러니까 휴대폰 카메라도 저리 치우게, 부사장."


자고로 가장 힘든 표정 중 하나가 웃는 얼굴로 화내는 거라고 한다.


분명 이수연은 웃고 있는데 무서웠다.


"하아. 좋아요. 다른 분들은 어디 갔나요? 나희린 양과 김하나 부장밖에 안 보이는데."

"전부 늦지 않게 집으로 돌려보냈네. 겸사겸사 계산도 대신 해주고. 아, 자네 이름 좀 팔았는데 괜찮겠지?"

"어차피 이쪽도 그럴 생각으로 온 거니까 상관없어요."

"하하. 마음이 통했군."


퍽이나. 이수연은 뾰루퉁해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류드밀라와 시그마는 어디 있죠?"

"볼일이 끝나고 코핀 컴퍼니로 돌아갔다네. 아마 쉬고 있지 않을까 싶군."


그러니 이 두 사람 옮기는 것 좀 도와달라며 관리자가 애원했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급선무는 관리자의 해방이었다. 사원이 얽힌 일이니 이수연도 강하게 반대하진 못하고 결국 그를 도왔다.


"나희린 양은 마침 근처에 친구가 자취하는 걸로 알아요. 대충 거기다가 던져놓죠."

"일처리를 남에게 떠넘기는 솜씨가 일류로군."

"불만 있으신가요?"

"... 아니, 훌륭한 계책일세."

"흠냐. 간다 나의 쓰알 싼다보올투으으..."


둘은 나희린을 친구네 집 앞에 던져놨다. 프로답게 초인종을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김하나였다. 관리자가 비틀거리며 등에 업은 김하나를 힐끗 쳐다봤다. 술에 취해 연신 곤란한 상황을 연출하던 그녀도 결국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골아떨어졌다.


새근새근 잠든 모습은 마치 천사 같다.


"김하나 부장은 어떡할 건가?"

"글쎄요. 대충 숙박시설에 던져놓고 오는 건 어떨까요?"


이수연의 제안에 관리자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되도록 피하도록 하지."

"(바람둥이)."

"방금 뭐라고 했나?"


작게 소곤거린 이수연이 딴청을 피우며 다른 제안을 제시했다.


"아뇨. 그러면 회사로 가는 건 어떨까요? 마침 회사 숙직실이 아직 비어 있을 텐데."

"좋은 아이디어로군. 겸사겸사 김하나 부장을 놀려먹을 건덕지도 하나 생기겠어."

"쓰레기."

"..."


죄인은 말이 없다.


잠시 후, 우여곡절 끝에 김하나 부장을 숙직실에 눕히는데 성공한 둘은 바람도 쐴 겸 땀도 식힐 겸 회사 옥상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별이 수놓인 밤하늘을 구경하며 관리자는 캔맥주를 하나 깠다.

 

"그대도 한 잔 하겠나?"

"참고로 저는 국산 맥주 잘 안 마십니다."

"음. 다음부턴 꼭 기억해두겠네."


모처럼 제안했으나 공교롭게도 수입산 맥주는 관리자 손에 들린 것 하나뿐이었다. 그는 맥주를 딱 한 모금만 들이켠 뒤 이수연에게 건넸다.


잠시 복잡한 시선을 보낸 이수연은 두 손으로 캔맥주를 받았다.


"... 오늘은 무슨 일로 메이즈 전대로 모자라 시그마까지 데리고 가신 거죠?"

"잠깐, 추억이 담긴 장소에 가보았지. 공교롭게도 이전 세계와 달리 지금 그곳은 초 고위험도 침식 지대가 되어서 말일세. 혼자서 가는 건 조금 위험해 따로 부탁을 했지."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이었군요?"

"그래. 내 개인적인 억지를 메이즈 전대장은 흔쾌히 들어주었어. 무능한 관리자로서 감사할 따름이라네. 시그마는 아빠인 내가 위험한 데를 간다니 멋대로 따라온 거라네. 참으로 기특한 아이야."


관리자의 자조적이나 자식을 대견하게 여기는 뿌듯함이 느껴지는 자랑을 끝으로 둘 사이엔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어렴풋이 서로의 목적은 일치하고 있지만, 관리자는 숨기고 있는 사실이 너무 많았다. 그를 감싼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나갈 때마다 기쁨과 쾌락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겹겹이 쌓인 비밀은 대화 주제를 섣불리 고를 수도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둘은 하염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을 구경했다.


문득, 전조도 없이 밤하늘에서 유성이 하나 지자 이수연은 허황되면서도 건설적인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만약, 세상을 구하신다면 이후엔 어쩔 생각이시죠?"

"엔딩 이후의 세계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미래로군."

"막상 구하신 다음엔 바빠서 계획 세울 정신도 없으실 걸요. 미리 생각해두세요."


현실을 바라보고, 그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기 바빴던 이수연이 형체조차 모호한 미래를 논하자 관리자는 즐거운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그래. 봄소풍을 가고 싶군. 코핀 컴퍼니의 모두와 함께."

"정체를 모두 밝히신 뒤에, 말이죠?"

"그때가 되면 내 정체를 세상에 밝히지 못할 것도 없지. 침식체의 위험이 사라지면, 관리자란 직함은 딱히 필요가 없을 테니까."


오히려 상쾌할 것 같다며 관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은근히 낭만적이시네요. 어울리지 않게."

"무슨 소리. 나는 늘 낭만과 로망을 추구한다네."

"그럼 저희가 입는 장비도 로망을 추구해서 그런 것인가요?"

"음. 노코멘트."


캔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그나저나, 나만 말하는 건 불공평하군. 수연 군 자네는 어떤가?"

"글쎄요. 저라면..."


문득, 자신 역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단 사실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관리자를 쳐다봤다.


밤하늘을 쳐다보는 순진무구한 얼굴과 대비되는 총기 잃은 눈동자. 이 남자는 사연이 사연이라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웠다.


뭐가 됐든 자꾸만 눈길이 가는 남자였다.


"정 말하기 싫으면 무리하지 않아도 된ㄷ..."


간접 키스가 된 캔맥주로 관리자의 말을 끊고, 이수연은 조심스럽게 관리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대충. 이런 거요."










원래 알트 소대랑도 점점 소원해져서 혼자 땅파는 찐따 유진이 모네 로이 빠밤좌 일본인남캐 듀오랑 엮여서 새친구 사귀는 내용이랑 리코리스x마크핀리 쓰다가 막혀서 걍 다 지우고 새벽 감성에 이거 썼음.



갠적으로 관리자x이수연 주시윤x서윤 마크핀리x리코리스 유진x로이 같은 느낌의 커플 좋아함. 질척한 건 잘 못 쓰고, 겪어본 적이 없어서. 남녀 나이가 어떻든 풋풋한 걸 좋아함.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지운 거 다시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