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 침식체와 스틸레인의 훈련된 방패병이 맞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분명 소형 침식체는 방패에 막혀 퉁, 튕겨나갔다가 날카로운 앞발을 다시금 다듬으며 다음은 확실하게 머리를 내려찍기 위해 더 높이 뛰어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소형 침식체 여럿과 방패병이 맞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투명한 유리창에 들이박는 새들처럼 방패에 들이박아 방패병을 넘어뜨릴 것 같지만 놀랍게도 녀석들은 영리하게 좌우로 나누어져 방패병을 덮칠 것이다.
- 스틸레인 전투 교범 3편, 대 침식체전 기초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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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탄이 올라간 지점으로 갈수록 불안함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무색무취여야 할 토양은 피를 머금었고 비린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 곳에서 누군가 죽고 죽였을 것이다. 다행히 날아간 팔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침식체에게 당한 인원은 없는 모양이다. 이윽고 앞에서 총탄이 돌에 돌에 부딪혀 튀는 소리가 들렸다.

 

“전열을 지켜! 방패가 물러서면 편대가 무너진다!”

 

한 손에 권총을 든 선배는 억지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부하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대원들은 생전 처음보는 엄청난 숫자의 침식체에 압도된 듯 삐걱거리는 팔을 억지로 들어 올려 겨우 막아내는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교전을 한다면 곧 포위되어 죽을 모습들이었다.

 

“플래시! 방패들어!”

 

주머니에서 대 침식체용 섬광탄을 꺼내들며 배 아래부터 소리를 끌어올려 외쳤다. 그와 동시에 방패병들은 방패를 들었고 소총병들은 방패병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섬광탄은 내 손을 떠나 부유하다 공중에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소량의 이터니움 분진이 흩날림과 동시에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선배! 일단 뒤로 빠져서 전열을 가다듬어요!”

 

“전 편대원 퇴각! 바로 뒤돌아서 함선을 향해 달려라!”

 

내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 마음이 통한 것처럼 선배가 소리쳤다. 플래시에 반응했던 편대원들은 선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사분란하게 후열의 습격을 대비하며 함선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시야를 잃은 침식체들은 소리보다도 본능에 따라 이터니움 분진 근처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착안했는지는 몰라도 이터니움 섬광탄은 침식체가 나타난 이래로 개발된 최고의 물건이 틀림없었다.

 

“그 비싼거 막 던져도 되는거야?”

 

“일단 살고 봐야죠. 비용은 스틸레인에 청구할게요.”

 

물론 비싼게 흠이었다. 그 비싼 정제된 이터니움을 갈아다가 섬광탄에 넣었으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하지만 모두가 산게 중요했다. 그깟 섬광탄은 다시 사면 되지만 편대원의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 돈을 아끼다 침식체한테 팔 한 개씩 내준 용병들을 보고 깨달은 교훈이었다.

 

“함선에서는 지원 못해준대요? B급 카운터는 어디가고? 방금 전 무리는 아무리봐도 1종 무리가 아니고 2종을 중심으로 한 1종 무리였어요. 우리만으로는 개죽음이었어.”

 

내 말에 편대장은 혀를 강하게 찼다. 그의 손에 쥐어진 무전기에서는 치익 하는 전파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거기 회사에 척진거 없죠?”

 

“있겠냐, 그런 게.”

 

스틸레인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입을 줄여서 이터니움 배분량을 줄이기 위해? 그래도 나름 군사기업에 편대원들 인사처리도 해주는 스틸레인인데 이걸 그냥 용병들 처리해버리듯 입 싹 닫아버린다고? 대체 어느 간 큰 기업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방금 전의 무리는 함선 레이더에서도 발견될법한 큰 무리였다.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에 우리는 함선 근처까지 근접하고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함선에 물어봐야 한다. 만약 고의로 지원하지 않은 거라면 이는 계약 위반이기에 용병들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사이 선배가 나를 건드렸다.

 

“야, 빨리 함선에 연락해봐. 함선 날아오르잖아!”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멀리 떠오르는 함선이 보였다. 미친놈들, 미친놈들이 분명했다. 아무리 용병이라지만 정말 사람을 버리고 이면세계를 떠버릴 생각을 한다고?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여기는 ghost 1, 함선 연락바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떠오른 함선은 이윽고 차원을 갈랐다. 그리고 그 틈으로 사라졌다. 멈추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모든 인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모두의 머릿속에 교범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이면세계에서 미아가 된 편대가 어떤 최후를 맞는 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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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쓴 거 같읍니다... 사실 중간고사와 야근때문에 바빠서 못썼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