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2종 침식체가 처음 나타났을 때 경찰특공대와 군대가 같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2m가 넘는 침식체를 보고 바리케이드를 세웠으며 그 뒤에 방패를 들고 응전했다. 바리케이드는 테러상황을 대비해 만든 물건이었고 자동차로 들이받아도 자동차가 멈춰서질 만큼 단단하게 세운 상태였다. 하지만 SUV보다 작은 침식체는 거리낌없이 달려들었고 견고한 진지 뒤에 서있던 경찰특공대는 다진 고기가 되었다. 그 후로 1년, 경찰특공대의 자리는 PMC들이 대체하게 되었다.

- 침식체의 역사,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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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5분내에 진지를 구축한다! 함선에서 내린 물건들 다 가져와! 그리고 관측병! 휴대용 레이더 설치 시작해!”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선배였다. 선배는 멍하니 서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멍하니 멈춘다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초에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탄띠 좌측 탄입대에서 소형 안테나를 꺼낸 병사는 바닥에 안테나를 꽂아 박았고 장비 하부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안테나가 확장되었고 이내 몇 번의 비프음을 냈다.

 

삑, 삐빅, 삐빅, 소리가 멈추고 관측병은 다른 병사들을 따라 함선 근처에 화기를 내려놨던 지점으로 뛰어갔다.

 

“선배, 이터니움 실드 잔량 확인했죠?”

 

“알아, 너도 알 거 아냐. 선입금을 그렇게 땡겨 주는데 심도 3에 떨굴거라 생각한건 아니지? 형은 너 그렇게 안가르쳤다.”

 

시발, 물론 말만 심도 3레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터니움 실드 소모속도도 평소와는 달랐고 컨디션도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이가 없는 것은 당연히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기업은 땅을 파서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선입금을 이렇게 쥐어 줄 때 침식체 무리에 던져 넣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심도 5레벨, 6레벨정도는 차라리 양반이다. 물론 안전한 상황은 아니지만 구조신호만 보낸다면 20분내에 구출될 것이다. 이터니움 실드 잔량은 30%, 아직 1시간은 버틸 양이었다.

 

“알고 있었죠? 함선에서 버려질 것은 예상 못하신 거 같기는 한데.”

 

“알고 있었지. 이번에 돈 많이 쥐어줬다고 목숨 챙길 생각부터 하라더라. 심도 3레벨 갈 거 아닐 거라고 최대한 챙기라고 하더만. 시발, 그렇다고 버리고 갈 줄은 몰랐지. 개같은 새끼들......”

 

하지만 선배의 목소리에 별다른 분한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차갑다고 느낄 만큼 침착했고 오로지 모든 신경을 장비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편대의 생사를 쥐고 있는 편대장다웠다.

 

주머니에서 간단한 통신기를 꺼낸 선배는 안테나와 선을 연결했다. 잠깐의 지직거림이 있었다 이내 귀에 거슬리는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 일이 끝나면 잠깐 좀 쉬다가 블랙타이드나 지원해볼까 했더니 마지막까지 이러네.”

 

“옛날에 돈도 안되는 곳에 왜 가냐고 욕하지 않았어요?”

 

주파수를 맞춘 선배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타이드는 돈이 되는 곳이 아니다. 기동대, 현실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더러운 돈을 빨아먹고 사는 용병들이 죽는 이면세계가 아닌 시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하고 그 무력감을 양 손으로 느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블랙타이드는 또 다른 악명이 있다. 인간 바리케이드, 몸 어딘가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반병신들을 기계의 힘으로 억지로 굴려서 도시로 오는 침식체들을 막아내는 최종방어선이라고 해서 용병들은 그렇게 비웃음담긴 악명으로 부르고는 한다. 돈도 안되는 일에 목숨을 건다고. 하지만 선배의 목소리에는 의지가 있었다.

 

“내가 앞으로 용병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냐. 분명 1년 내에 무릎이 망가지겠지. 어쩌면 앞으로 반 년 내에 팔 한 쪽, 다리 한 쪽을 내줄지도 모른다. 아니, 당장 다음 주에 머리가 여기 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르지. 이제 충분히 벌었잖아? 많이 땡겼는데 이제는 좋은 일 하며 살아도 되지 않겠냐?”

 

“마음대로 해요. 연결됐다. 빨리 구조신호 쏴요.”

 

- 여기는 울프팀, 심도 6레벨 이면세계에서 도움을 요청한다. 이터니움 실드 잔량 30%, 방전 예상 시간 1시간, 현재 13명 생존 중. 여기는 울프팀, 심도 6레벨 이면세계에서 도움을 요청한다. 이터니움 실드 잔량 30%, 방전 예상 시간 1시간, 현재 13명 생존 중.

 

선배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진지를 구축한 편대원들의 시선이 무전기로 모인다.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까 전의 전투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주위에는 생명체가 돌아다니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 여기는 코핀컴퍼니, 구조요청 신호를 받았다. 강습함을 보낼 예정이니 좌표 송신 바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여기는 코핀컴퍼니, 구조요청 신호를 받았다. 강습함을 보낼 예정이니 좌표 송신 바란다.

 

침묵을 깨고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코핀컴퍼니...... 그 소녀가 일하는 곳 아닌가? 선배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면서 무전기의 좌표 송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무전기를 바닥에 꽂아놓고 구축된 진지 앞으로 이동했다.

 

스틸레인의 자랑, 방패병의 상징, 포인트 테이커를 만들 때 사용되는 합금으로 이루어진 바리케이드는 방패 몇 개를 붙여다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 말 그대로 허술한 긴급 진지였지만 모든 인원은 조금의 걱정도 없이 절도 있게 그 뒤에 2열로 정렬해 편대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는 기죽지 않은 편대원들의 모습에 호탕하게 웃으며 총을 꺼내 들었다.

 

“이 진지는 2종 침식체의 돌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자랑이자 긍지다. 우린 이보다 더한 역경에서도 살아남은 최강의 울프팀이다. 탄환, 폭탄, 무엇이든 아끼지 마라. 우린 여기서 살아나간다.”

 

“네!”

 

“위치로!”

 

선배의 한마디에 모든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방패병은 바리케이드 위에 가로로 방패를 얹으며 권총을 꺼내고 소총병은 방패와 방패 사이를 노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스틸레인 전술의 집대성이 여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목숨 값만 겨우 받겠는데. 코핀컴퍼니 놈들이 온다니...... 지금 강습함을 굴리는 구조팀 중에 코핀만한 곳이 없다고는 하지만.”

 

“코핀컴퍼니? 어떤 곳이길래 그래요?”

 

“몰라? 최근에 막 살아나고 있는데 하는 짓이 호라이즌 파이넨스 뺨치는 거로 유명해. 아, 거기는 이제 없지. 뭐, 말 그대로 목숨 값 빼고는 다 털어가는 놈들이지. 살려는 주니까 별다른 말은 못하겠지만.”

 

평가를 들으니까 말문이 막힌다. 용병업계에 대해 후하게 쳐주는 선배가 저렇게 말하는 곳이라면 멀쩡한 사장이 있는 곳은 아닌 거 같은데...... 소녀가 착취를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지금 살아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여자 생각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 때 멀리 침식체 무리가 만드는 흙먼지가 보였다. 아까 드론을 띄운 용병이 갔던 방향이었다.

 

“아무래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나본데요? 5km 밖 침식체 무리 접근 중. 교전 준비.”

 

“자, 교전 준비. 하나, 교전 수칙을 지킨다.”

 

“하나, 교전 수칙을 지킨다!”

 

“둘, 내가 물러서면 동료가 죽는다.”

 

“둘, 내가 물러서면 동료가 죽는다!”

 

“셋, 우리는 스틸레인 최정예다.”

 

“셋, 우리는 스틸레인 최정예다!”

 

“좋아, 파티 시작이다. 30분,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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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다음 화에 나옴 사랑하는 이야기라면서 3화째 안나오는거 직무유기 아닙니까 하면 직무유기 맞습니다...


카운터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