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무장한 용병들의 총탄이 곧장 몸을 꿰뚫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수는 다만 그의 목에 마취제가 담긴 주사바늘을 찔러 넣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윌버는 기억할 수 없었다. 깨어나보면 어딘가에 실려 옮겨지고 있고, 어느 창고에 쑤셔 넣어졌다 싶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비척거리며 걷고 있는 일이 반복됐다.


한 시간이 지난 듯도, 한 달이 지난 듯도, 혹은 몇 년이 지난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윌버는 퍼뜩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낯선 응접실이었다. 어느 저택인 듯했다. 가구들은 비싸 보였지만 하나 같이 고리타분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 앞을 보니, 처음 보는 여성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잿빛 머리에 외알 안경을 쓴 창백한 피부의 여자였다. 품이 넓은 옷차림이었지만 육감적인 몸매가 드러나는 미인이었다.


윌버는 마구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뭐, 뭐야! 이거 풀어! 풀라니까!"


그제야 윌버는 자신이 의자에 묶인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너, 넌 뭐야! 그래, 너도 그 교수 새끼랑 한 패구나. 당장 풀어! 안 그러면 내가......"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그 찢어죽일 교수와 한패거리일 여자는 윌버가 부리는 난동을 보며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아... 불편하시군요. 그래요. 그럴 것 같았어요. 하지만 교수님께서 묶어두지 않으면 곤란할 거라고 하더군요."


"뭐... 뭐?"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왕 베풀어주신 친절인데 모른 체할 수도 없고...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날 테니까요."


그쯤 되자 윌버는 혼란스러워졌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여잔가?


하지만 윌버는 곧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어쩐지 멍청해보이는 년이다. 잘 구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 너... 그래, 교수랑 한 패인 건 맞는 것 같군. 그런데 생각 좀 바꿔먹어봐. 지금 날 풀어주는 거야. 어때? 내가 도망칠 수 있다면 그 교수 놈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야!"


여자의 고개가 갸우뚱, 넘어갔다. 말을 이해는 하고 있는 건가? 윌버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진짜라니까! 내가 합법적으로 이면세계에서 발굴한 온갖 아티팩트를 무단으로 갈취해갔잖아! 여, 여기서 도망만 친 다음에... 내가 아는 언론계 인맥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연락 몇 번이면 그 놈은 희대의 범죄자, 난 미래 최고의 고고학자가 되는 거라고! 다시 생각해봐. 누구한테 붙는 게 좋을지. 응?"


다행히 그 말에는 여자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아티팩트."


"그래, 그래, 아티팩트! 산더미 같은 보물들이 있었다고! 원한다면 너한테도 나눠줄 수..."


윌버는 말을 하다 멈칫했다. 별안간 여자가 얼굴을 바짝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외알 안경 너머로 어쩐지 느슨하게 풀린 눈동자가 보였다. 내면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기묘한 눈빛이었다.


"뭐, 뭐하는 거야?"


"거기에 뭐가 있었죠? 아는 대로 말해봐요."


그 말에는 이상한 중압감이 있었다. 윌버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이면세계에서 있던 일을 모두 고해바쳤다.


"됐지? 다 말했어. 이제 날 풀어줘! 진짜야, 후회 안 한다니까!"


하지만 여자는 조용히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타기리온."


"뭐... 뭐라고?"


"당신은 벌레만도 못한 작자지만, 성찬에 올릴 가치는 있겠어요."


별안간 들어온 욕설에 욱할 찰나였다. 여자의 옷소매 안쪽에서 뭔가가 꿈틀대는가 싶더니 곧장 윌버의 코앞으로 덮쳐왔다.


그리고 비명도 없었다.




--





에델 위장에서 소화되는 윌버 시점도 쓸까 했는데 귀찮아서 여기까지


에델은 참 여러모로 재밌는 캐릭터라 얘깃거리 나올 게 많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