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라는 단어에는 다른 계절바람들에서 느끼지 못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산뜻하게 코끝을 감싸는 봄바람, 물론 이 곳에는 그런 향기도,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이면세계에서 불현 듯 소녀가 떠올랐다.

 

코핀컴퍼니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녀는 함선을 타고 이 곳까지 내려올까, 혹시 내가 있다는 소식을 듣지는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이렇게 막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그 꼬마애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몇 번 봤다고.

 

“북서쪽 3km방향! 2종 중형 침식체 발생! 화력 집중 요함!”

 

무의식적으로 탄창을 갈아 끼우고 북서쪽에서 방패 사이로 총을 쏘며 응전하는 소총수 머리 위로 수류탄을 던진다. 멀리 날아간 수류탄은 바닥에 떨어지고 틱 틱 몇 번 소리를 내다가 이내 붉은 빛을 점등시킨다.

 

“방금 뭐 던진 거야!”

 

“중력장 수류탄이요. 소규모 펄스를 만들어서 침식체를 저지한다던데 써보지는 않았네요.”

 

“이번에도 비싸겠구만!”

 

선배는 아직도 여유 있는 웃음을 흘리며 총탄을 흩뿌린다. 우리에게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원 요청을 한 지 30분이 지났지만 강습함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이터니움 실드는 이제 10%수준만 남았을 것이다. 더 늦어지면 이 자리에서 침식체가 돼서 저기 기어다니는 녀석들처럼 여생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 입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모두 아직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별로 안 비싸요. 나같은 거렁뱅이도 쓰잖아.”

 

등에 멘 라이플을 꺼내 2종 침식체를 겨눴다. 어디 특수부대가 쓰는 펄스라이플에 비하면 완전히 구식 무기지만 총구를 떠난 총알은 어디에 박히는 일 없이 무조건 꿰뚫고 보는 믿음직한 녀석이었다.

 

탕, 탕, 탕, 중력장 수류탄을 밟은 녀석이 펄스로 인해 둔해지는 것이 보이자마자 녀석의 머리를 노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평소였으면 총소리에 머리가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30분내내 총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오히려 리드미컬한 폭발음에 마음이 진정되고 있었다.

 

“강습함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2종 침식체로 쏠려 있을 때 방패를 꽉 쥐고 있던 한 방패병이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그렇다고 모두의 시선이 강습함으로 쏠리지는 않았다. 우리의 적은 앞에 있었으니까. 적에게 눈을 떼는 행동은 죽음과 다름없었다.

 

“테스크포스 코핀컴퍼니에서 구호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하늘을 가르고 나타난 함선에서 통신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2종 침식체 뒤를 쫓아오던 소형 침식체들이 바리케이드에 들이받았다. 

 

쾅, 소리와 함께 바리케이드가 흔들린다. 방패병들은 다시금 방패를 꽉 쥐고 몸을 기울이며 힘을 가한다. 하지만 쾅, 쾅, 부딪히는 소리는 끝이 없고 바리케이드는 흔들리다 틈이 생긴다. 소형 침식체의 긴 갈고리가 파고들만큼의 작은 틈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한 명이 잡혔다.

 

갈고리에 목이 잡힌 방패병은 갑옷이 버텨주는 듯 강하게 끌려가다 이내 목이 꺾여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같이 싸우던 동료가 어느 순간,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나뒹굴게 된 것이다.

 

“정신 차려! 방패 다시 잡아! 틈을 좁혀!”

 

시체를 걷어차고 소총은 몸 뒤로 재껴놓은 채 녀석의 방패를 대신 집어 들었다. 누군가 한 명의 자리를 메워주지 않으면 틈은 점점 커질 것이다. 누군가는 이 자리를 막아야한다. 다시금 끌려가 목이 잘려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강습함이 소리를 내며 점점 하강한다. 몇 침식체들은 강습함이 내려오는 소리에 도망치고 있었지만 우리와 부딪히고 있는 녀석들은 한 번 부딪히고 머리에 피가 돌았는지 더 저돌적으로 갈고리를 펼쳤다.

 

“아저씨! 금방 갈게요!”

 

함선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죽음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세계에서도 생각이 났던, 나의 첫 애독자가 될 소녀였다. 강습함이 착륙하며 후방의 문을 열자마자 강습병들과 함께 소녀가 뛰어내렸다.

 

“앞에 봐, 새끼야!”

 

쾅, 팔의 통증과 함께 몸이 떠오르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면 바리케이드에 앵커 몇 개라도 박아서 이렇게 날아가는 일은 피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이제야 주변에 튀는 피가 보였다. 더러운 피와 붉은 선혈이 뒤섞여 내 하늘을 꾸미고 있었다.

 

바닥을 나뒹굴자 더러운 흙먼지의 맛이 입에서 가장 먼저 느껴졌다. 뒤집어 쓴 낡은 투구는 바닥에 떨어지며 박살났는지 깨끗하게 트인 하늘이 보였고 내 눈 위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시선을 붉게 물들이는 피였다.

 

삐- 이명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이대로 머리를 바닥에 놓으면 몸도 마음도 편해지겠지. 

 

“-씨! 정신 차려요!”

 

심연 속으로 잠겨가는 나의 의식을 거친 발소리가 깨운다. 누군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몸만 겨우 일으켜 바리케이드를 쳐다봤다. 그 곳에는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르기 무엇한 것들만이 남아 있었다.

 

방패를 들었던 팔, 목이 잘린 채 움찔거리는 몸뚱어리, 짓이겨진 발, 그리고 나를 끝맺기 위해 달려오는 작은 침식체들... 등 뒤에 맨 소총을 앞으로 바로 잡은 뒤 나를 향해 뛰어오는 놈들을 노리고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무차별적인 총성과 함께 총은 마지막으로 불을 뿜었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왼손은 마지막 한 발을 뱉어낼 때까지 총을 굳건히 잡아줬고 끊임없이 떨리던 오른팔은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게 녀석들의 머리를 날리기 위해 방향을 잡아줬다.

 

마지막 한 발, 한 놈까지 모두 쓰러짐과 동시에 내 몸도 뒤로 쓰러졌다. 이번에는 머리가 아팠다. 바닥에 곧바로 머리를 부딪쳤으리라.

 

“아저씨! 움직이지 말아요. 더 움직이면 진짜 위험해요!”

 

앞이 다시금 뿌옇게 흐려졌다. 급하게 뛰어온 소녀는 내 머리를 받치면서 나를 내려 봤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머리 위의 롤빵 2개는 선명히 보였다.

 

“아... 꼴은... 어때, 보이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목에서는 피가래 같은 것이 끓고 있었고 바람 새는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소녀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해... 보여요. 병원에서 3달만 쉬면 될 거 같아요...”

 

그 정도면 시체지 않을까... 그녀의 말에 나도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이 잘 움직이는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온몸이 쑤신다.

 

“그래...? 일 끝나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맛있는 곳 찾았는데...”

 

눈이 감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악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녀의 머리카락을 보며 눈을 감았다.


-----------------------------------


챈질 그만두고 근황



카사 재미없어서 대가리 봉합될거같아서 소림이 110찍어주고 블레이즈 풀세팅해줌


튜바 450장 사서 깡돌려봤는데도 마음에 드는 세팅이 안나오더라 부옵 추천받음


소림이 110찍어주고 느낀건데 이새끼 왤캐 잘죽음 구관총수준 참피네 풀세팅하고 전당 4에서 메인딜러짓 가능할거라 생각했는데 맞으면 뒤져 시벌


아무튼 늘 읽어줘서 고맙읍니다 카문대 며칠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5월 막주쯤이 마지막 아닌가? 그때 전까지는 완결 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