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해 침식체로 인해 죽어가는 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시민을 보호할만한 인원들이 부족하고 또 사설 군사기업밖에 없다보니 자체적으로 시민들을 지킬만한 방위군을 꾸려야한다는 이야기가 다시금 거론되고 있는데요......”

 

낯선 천장이다. 그리고 낯설지 않은 뉴스다. 언제나처럼 답이 없는 이야기를 오늘도 TV에서는 반복하고 있었다. 미국도 아니고 서울도 못 지킨 사람들을 모아다가 어떻게 방위군을 꾸려보자는 건지.

 

눈을 뜨자 누군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깁스라도 단단하게 묶어놓은 모양인데 이렇게 묶어놓으면 숨 못 쉬는 거 아니야?

 

“아저씨! 간호사 불러올게요!”

 

너무도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병문안에 왔을 때 깨어난 모양이었다. 몸 상태를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온 몸이 어딘가에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오른 팔이었다. 오른 팔이 움직이면 죽어버리겠다는 듯 조금만 힘을 줘도 삐걱삐걱 소리를 질러대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 죽지는 않고 죽기 직전의 상태로 실려 온 모양이었다.

 

다급한 발소리가 여럿 겹쳐 들렸다. 소녀와 의사가 분명했다. 의사는 내 옆에 서서는 고개를 내밀어 위에서 아래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내 목의 깁스를 조금 느슨하게 풀고 소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이제야 편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굉장히 오랜만에 침대에 누운 것 같다. 사무소에 침대 하나 둘까. 언제까지 소파에서 대충 잘 수도 없고......

 

다시금 잠이 들려고 할 때 무언가 내 몸을 통 하고 건드렸다.

 

“아저씨! 어쩌다가 그런 곳까지 가게 된 거에요!”

 

“어... 그러게.”

 

“아저씨 숙련된 베테랑이라면서요! 그런데 자기가 어딜 가는지도 몰라요?”

 

굉장히 화난 목소리였다. ......걱정했나? 이럴 때 너스레 잘 떠는 주인공이었으면 웃으면서 이야기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별로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애초에 엑스트라니까.

 

“돈을 많이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들 하잖아? 아, 머리가 울린다.”

 

“머리가 울려요? 다친 부분이 많이 아파요? 간호사 불러올게요!”

 

“아니, 가지는 말고. 괜찮으니까 소리 지르지마......”

 

애초에 너스콜 버튼이 있는데 왜 자꾸 뛰어가는 거야. 소녀는 나를 걱정되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한 톤 낮춰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돈 많이 벌어서 뭐하려고 그래요?”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녀는 뭐가 웃기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미소는 좀처럼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돈이 있어야 뭐든 하지. 좋은 집, 좋은 차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지만 사무소를 꾸려나가는 데 돈이 드는걸. 또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먹을 돈도 필요하고.”

 

“아이스크림 사먹는 데는 그렇게 돈 많이 필요없거든요. 아이스크림 사먹을 돈 없으면 말해요. 그 정도는 사줄게요.”

 

“푸흡......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런거야. 꼬마아가씨.”

 

내가 말하고도 느끼하다. 비즈니스 잘하게 생긴 느끼한 갈색머리 용병이었으면 여기서 소녀의 머리에 손도 얹어줬을까.

 

“그런 안 어울리는 흉내 내지 마요. 땀 닦아줄게요.”

 

손수건을 든 소녀가 다가온다. 봄바람을 담은 듯 산뜻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귀여운 소녀의 미소에 잠시 시선이 멈춘다. 그녀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좋은 미소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누군가와 좋은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위험한 세계를 모르는 채로 살고 평범한 삶을 살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일어나서 다행이에요.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한다고 말해야겠네요.”

 

“무슨 소리야?”

 

“아, 아저씨 며칠이나 자고 있었는지 말을 안 해줬지 참. 아저씨 일주일 내내 자고 있었어요. 처음 여기 데려올 때는 팔도 다리도 어디 부러지고...... 머리서 피도 막 흐르고 그랬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내일부터는 퇴근하고 올게요!”

 

땀을 닦아주던 소녀는 이야기를 꺼내다 휙 뒤돌아서더니 그대로 뛰어나갔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고 있었고......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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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뭐하는거야 시벌


내일 점심 요리하다가 쓴 글이라서 8편은 짧다. 아무튼 늘 고맙읍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