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때 이곳을 찾는다.


방파제에 부딪혀 새하얗게 부숴지는 파도와, 은은하게 밀려오는 소금냄새. 그리고 마음을 편하게하는 탁트인 전경이 그를 맡이한다.


마침 오늘은 왠지 모르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부사장도, 내부 보안망을 장악해 언제나 지켜보고 있는 딸도, 어느새인가 등 뒤에서 쓱 나타나는 최연소 소대장도 그를 방해하지 못하는 날.


그는 얼마만의 고독을 맛보며, 사장실 한 켠에 고이 모셔둔 가방을 챙겨 밖을 나섰다.

평상시의 숨막히는 양복도 벗어두고, 벙거지 모자 하나 푹 눌러쓴 채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접이식 의자를 꺼냈다. 그와 함께 꺼낸 낚시대를 꺼내 펴고 미끼통을 꺼내고 있자니,


"갑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어이쿠, 도탐정님 아니십니까. 얼마만이죠?"

"한 두달 쯤 된 것 같군요."


갑사장, 도탐정.

그것은 은밀한 취미를 공유하는 두 남자의 잠재적인 호칭이였다.

묻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부를 이름뿐이면 충분. 나이도 본명도 모르는 두 사람의 우정은 조금 특이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요즘 발길이 뜸하시길래 무슨 일 있는지 걱정했습니다, 갑사장님."

"회사일이 좀 바빠야지요. 요근래 일이 좀 많았습니다."

"하하, 그거 참 부럽지 않으면서도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저희 탐정사무소는 그다지 일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요."


그렇게 말하는 흰색 브릿지의 남자는 입술 주변의 햇빛에 반사된 피어싱이 반짝이는걸 알아채고는 조심스럽게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주인...아니, 소장님이랑 다른 직원인 동생은 그다지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오늘만 해도 일하러 간다는 핑계로 나가려니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어서 가라고 하더군요."

"하,하하...도탐정님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뭐, 괜찮습니다. 나름대로 주...소장님이 만족하고 계시는 모양이니까요. TV와 드라마 제작사에 감사를 표할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하던 도탐정도 가져온 접이식 의자를 펼쳐 자리에 앉고 바닷가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웠다.


낚시터에서 많은 말을 하는 것이 고기를 잡는데 그다지 좋은 행동은 아니라는걸 안다. 그러나, 두 남자는 오랜만의 재회가 즐거웠는지 소소한 사담을 이어나갔다.


"저런, 따님이 아버님을 많이 좋아하는 군요."

"가끔 무서울때가 있지만, 귀여운 아이죠. 동화책 한 권 읽어주는걸 그리도 좋아하는데 무척 귀엽습니다."

"저는 육아는 자신없습니다...아니, 자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따님에게 사랑받으시니 좋으시겠습니다."

"도탐정님 동생분도 오빠를 많이 좋아하는것 같던데요 뭘."

"글쎄요...그냥 밥주는 사람 말 듣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거기까지 생각한 도탐정의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히는걸 본 갑사장이 부랴부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평평한 직각사각형 모양에 집게 손과 캐터펄트가 달린 희한한 캐리어에서 그가 꺼내든 것은 다름아닌


"...소주 아닙니까?"

"스태미너 회복 포션이라고 해두죠."


낄낄 웃는 그의 모습에 도탐정은 피식 웃고 잔을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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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