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게 1편






인간의 악의는 때때로 인륜을 가볍게 거스른다.


도리를 지키려 한 자, 심연에 먹힐지어다.



*



"뭐야 대장. 갑자기 인원 보충이라니. 진짜야?"


동료에게 뜻밖의 소식들 전달받은 이유리가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물었가. 두 눈이 휘둥그레진 게 여간 궁금한 게 아닌 모습이다.


한창 회계부를 정리하던 강민우는 슬쩍 이유리의 행색이 무사한 걸 확인하곤 고개를 되돌렸다. 여전히 그는 친절과 거리가 조금 먼 남자였다. 


"... 하아. 기대도 안 했어."


이유리도 강민우의 냉대가 익숙한 듯 곧장 순직한 동료들의 향을 피워둔 사진 앞으로 향했다.


그녀가 합장을 마쳤을 때 불현듯 강민우가 입을 열었다.


"최지훈이 순직한 이후, 자잘한 사고까지 겹쳐 우리 민병대원의 수가 대폭 줄어든 건 알고 있겠지?"

"어? 그야 알고는 있지...."


아직도 민병대 은거지 구석엔 최지훈과, 나머지 동료들을 기리는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민병대에게 죽음이란 이웃과 다름없다. 때문에 누구는 타인의 죽음에 지독할 정도로 무감각해졌지만, 아직 그렇지 않은 자도 있었다.


"이번 작전에도 부상자가 발생했어.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나섰더라면..."

"아서라. 너는 우리의 비밀 병기다. 전투 경험도 모자란 녀석이 CRF 출력만 믿고 나대다간 죽기 십상이야."


강민우가 수첩을 덮고 의자에 기댔다.


"기억해라. 나는 아니어도, 지금 민병대는 너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드는 녀석들이 있다는걸. 네 목숨은 네 혼자의 것이 아니야."

"... 그것 참 팍팍 부담돼서 고맙네."


툴툴대면서도 이유리는 슬픈 기색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자금도 모자라고, 인원도 모자라다.


모두가 이유리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다. 강민우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일반인이 카운터를 죽이기 위해서 들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카운터는 각종 약품을 사용해도 내성이 있어서 끄떡 없는 편이고, 백린탄 같은 끔찍한 병기를 맞아도 아프다고 칭얼댈지언정 죽진 않는다. 자연스레 민병대 내에서 카운터를 제압하는 건 이유리의 몫이 되었다.


모든 게 돈이 모자라서 발생하는 문제다. 돈만 있었다면 아낌없이 무기와 약품을 구매할 수 있었고, 돈만 있으면 부상으로 동료가 죽는 걸 방치하지 않아도 됐다. 돈만 있으면 모두 만전의 컨디션을 갖춘 채 카운터 범죄자를 사냥을 할 수 있었고,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제기랄..."


해결도 되지 않는 주제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는 절로 욕짓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성냥팔이를 죽였을 때 그의 아지트에서 뭐라도 훔쳐올 걸 그랬다며 강민우가 한탄했다.


전부 불타버린 성냥팔이의 아지트에 쓸만한 장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괜히 배가 아팠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그랬다.


본부에서 4기동에 대한 지원을 끊었을 때, 강민우는 극심한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다. 공무원으로서 월급이라도 받아 사비를 보급에 충당할 수 있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멀쩡한 자금줄 하나 없다.


그렇다. 민병대는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돈이 지닌 무서움을 아나?"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 죽은 동료들에게 인사를 마친 이유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야 우리가 이렇게 쪼들리는 것도 다 돈이 없는 탓이니까 엄청 중요하다는 건 아는데... 그게 왜?"


자금 압박이 그렇게 심각한가? 이유리가 의문을 표했다.


그에 강민우는 양손을 맞대고 자신의 코를 감쌌다. 슬며시 감긴 눈에선 짙은 피로가 묻어나왔다. 퀭해진 눈가에 이유리도 눈살을 찌푸렸다.


"자아도취 그리고 우월감에 취해 변태적인 취미를 가진 카운터 범죄자야 널리고 널렸지.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탐욕에 잠식당한 녀석들이야."


이른바 브레이크가 고장나 악셀밖에 밟을 줄 모르는 또라이. 철저하게 자신밖에 모르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괴물들이다.


이미 누렇게 바래진 기억 속에서, 강민우 일생일대의 적이자 목표였던 성냥팔이가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그림으로 그린 듯한 전형적인 악당이었다.


'후우. 이게 무슨 짓이람.'


강민우가 고개를 흔들어 제정신을 차렸다.


평생토록 그를 괴롭히던 망령은 죽었다. 다름아닌 같은 민병대원 이유리 손에 활활 타올라 잿더미가 되었다. 강민우는 자신을 괴롭히는 망령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권력욕, 금전욕, 과시욕, 성욕, 식욕, 그리고 그 밖에도 인간이 가지게 되는 욕구는 세는 게 귀찮을 정도로 다양하지. 그리고 돈은 그런 정신나간 녀석들을 충족시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자 수단이다."

"즉 뭐야. 돈에 눈 돌아가는 인간이 많다는 거야? 실제로 우리가 죽인 녀석 대부분이 지 잘난 맛에 살아서 사치도 팍팍하는 타입이긴 했지만..."

"아아. 특히 탐욕에 눈이 멀어 우발적으로 죄를 저지르는 멍청이와, 치밀한 계산 하에 모든 게 계획적인 지능범. 둘 중에서 우리가 주의해야할 건 후자다."


방금 전까지 살피던 수첩을 가득 채운, 경찰 시절에도 들어본 적도 없는 후원자 목록이 강민우의 뇌리를 스친다. 과연 여기서 민병대를 진심으로 후원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몇이나 될까?


뭐 말해야 입만 아프지. 강민우가 피식 웃으며 비니모자를 쭉 내렸다.


피곤하니 그만 자겠다는 신호였다.


"... 하여간. 당분간 의뢰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받는다. 그리 알아두도록."

"뭐야, 싱겁게."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할 것처럼 굴더니 결말은 의뢰가 더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유리는 작게 투덜대며 개인 정비를 하러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씁쓸한 혼잣말이 은신처에 울려퍼졌다.


"머리 좋은 미친놈들은 결코 작은 조직에 머물지 않지..."


조만간, 구미가 당기는 의뢰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며 강민우는 의식을 꺼버렸다.



*



민병대의 인원 모집 방식은 주먹구구식이다.


자원해서 들어오는 대원도 있으면 눈에 띄어 입단 제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과거엔 전자의 방식을 주로 따랐다. 쥐새끼처럼 집요하긴 해도 결국 무장한 일반인이 모여서 만든 자경단이다. 대다수 조직이나 범죄자들은 이들에게 큰 위협은 느끼지 못했고, 견제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병대에게 죽은 카운터는 그들의 하룻밤 안주거리가 되곤 했다. 무능한 녀석,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비웃음을 당하면서 비카운터에게조차 두고두고 씹고 뜯겼다.


이러한 흐름이 뒤바뀐 건 성냥팔이 조직 와해, 그리고 성냥팔이의 사망이 공식화된 이후다.


처음엔 주모자로 민병대가 꼽히자 모두 설마, 하면서 쉬이쉬이 했다. 하지만 연달아 민병대의 소행으로 보이는 카운터 살해 사건이 일어나자 평가가 뒤집어졌다.


당초 검은 평의회의 자금줄을 담당하던 성냥팔이가 사라졌을 땐 하이에나 떼 마냥 빈자리를 탐하려는 자들이 이제는 전부 민병대를 노렸다. 검은 평의회 마음에 들기 위한 아첨 행위였다.


때마침 이유리가 카운터로 자각해 민병대 활동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자 민병대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하지만 언더 그라운드에서 주목도가 올라간다는 건, 민병대에게 있어 결코 달가운 소식이 아녔다.


"쯧! 역시 활동량을 조절했어야 하나. 나도 모르게 카운터의 힘에 너무 의존해버린 모양이군."


민병대 지원자 명단을 훑은 강민우가 혀를 찼다. 카운터 범죄자를 전담하던 4기동 소속이었던 팀장답게 명단에는 굉장히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이토록 민병대를 얕보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 아직 내 존재를 들키진 않은 모양이긴 한데...'


이를 바꿔 말하면 반대로 민병대가 얼마나 코너에 몰렸는지 보여주었다.


"역시 인원을 확충하는데 기존 방식은 더 쓸 수 없겠어."

"대장. 설마 이 많은 사람이 죄다 탈락이라고?"


분류 작업을 도운 이유리가 식겁했다.


차라리 포화 속을 뚫고 지나가면 갔지, 다시는 서류의 산이 쌓인 지옥으로 발을 들이고 싶진 않았다.


"역으로 질문 하나 하지. 이 많은 사람이 대체 어디서 솟아났다고 생각하지?"

"그, 그건..."


명단 중에는 민병대원의 가족이나 친구를 살해한 범죄자도 당당히 끼어 있었다. 해당 대원이 분노하는 모습을 본 이유리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강민우가 지체없이 라이터로 지원자 명단을 태워버렸다.


"아무래도 방식을 좀 바꿔야겠어."

"어떻게 바꾸게?"


이유리의 질문에 강민우가 품에서 권총을 한 정을 꺼냈다.


"만약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에게 총기를 쥐어주면 어떻게 반응할 거 같나?"

"그, 아마 호신용으로 쓰지 않을까? 이 동네는 의외로 위험하니까."

"훗. 역시 아직 어리군.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적어도 10명 중 한 명은 이렇게 답했을 거다."


누군가를 쏴 죽인다고. 강민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 한 명을 찾아내서, 가입 권유를 하는 거다. 이해되나?"

"어, 응. 이해했어 대장."


가장 좋은 타겟은, 역시 카운터에게 증오심을 품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와 각별한 관계였던 자들이다. 그들에겐 복수만큼 달콤한 제안도 없을 것이다.


대장의 발언에 반대하는 대원은 없었다. 원래부터 민병대는 목표를 죽이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에, 약간 강압적이고 몰아붙이는 방식을 채택해도 이견이 있을 리가 없다.


"좋아. 그럼 가장 먼저 한때 대원이었던 자들의 가족, 그리고 친구와 접촉한다. 예전엔 합류하길 꺼렸지만, 지금은 또 모르지."


그리 말한 강민우가 슬쩍 이유리를 눈에 담았다. 카운터에게 사적 제제를 가하는 주제에 카운터에게 의존하는 건 내부 결속적으로도 부작용이 컸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대안책도 없으니 그는 끝내 눈을 꾹 감고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용병 출신이거나 하면 최상이지만, 최악의 경우 훈련을 받지 못한 민간이어도 상관없어. 처음엔 현장에 투입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해라."


현재 민병대는 즉 전력감보다 자금이나 보급품 조달 등 전투 외의 충당이 더 급했다. 전투 방면은 이유리가 커버할 수 있지만, 나머진 아니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용병 출신보다 민간인 영입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대원들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대장, 그 밖에 조건은?"

"침식 재난이나 이면세계와 관련된 사고 등으로 후유증을 앓게 된 자들이 2순위다."


군인이나 용병은 카운터가 활약할 무대를 위해 소모되는 총받이다. 억울한 일도 가장 많이 겪고, 재난 현장에서 카운터의 배신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은퇴한 자들도 많았다.


"세상의 불합리함으로 쌓인 분노를 토해낼 수 있는 합당한 배출구를 마련해준다고 하면 녀석들도 꽤 괜찮은 반응이 나올 거야."


그 밖에도 대원들이 머리를 맞대자 민병대 징집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됐다. 하나같이 위험 부담이 있으나 성공하면 전력이 대폭 증가하는 방안들이었다. 대원들의 의견을 통합한 강민우는 곧장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이유리가 엄지를 잘근 씹었다.


"이거 괜찮으려나..."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붙잡아 화기애애한 현장에서, 오직 이유리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동분서주하는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구상대로면 다음 파트에서 검은 평의회가 나와야 하는데 얘네가 나온 게 별로 없다보니 일단 여서 접고, 다음은 아마 유미나랑 관남충 달달한 거 하나 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