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 없이 쌓인 시체들, 침식체들의 썩은 냄새 그리고


내게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대원들의 목소리.


그들은 베테랑이었다.

침식체들의 두터운 피부를 가볍게 찢고 짓누르며 자신들의 죽음 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던 그런 베테랑들.


나 또한 그런 베테랑이었다고 믿었다.

그것들을 눈에 담기 전까진.


그것은 이형적인 존재였다.

온통 검은 물질로 이루어진 생물체였으며, 거대한 이빨을 제외한 나머지 이목구비가 전부 녹은 것 같이 흐물거렸다.

다만 한 가지. 그 생물체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 거대한 이빨은 인간 하나를 가볍게 씹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에 맥주 한탕 뛰자던 겔른의 몸이 산채로 뜯겼다.

소대장에게 오늘이야말로 프러포즈하겠다던 베른은 눈알 하나만 남겨졌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려야 할 브룬의 몸은 저들의 이빨에 처참히 갈려져 흩어진 지 오래다.

 

이 전장은 더 이상 인간의 사투가 아니었다.

그것의 포식을 위한, 단순히 먹이가 많은 사냥터일 뿐이다.


전장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살려달라며 절규하는 소대원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달렸다.

도망치는 내 뒤로는 나를 저주하는 소대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그 전장에서 어떻게 도망쳤는지는 나도 모른다.

눈을 떠보니 야전병원이었다.


나를 관리하던 서포터 카운터는 내가 있었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고,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 말헀다.


이상하다.


그것들의 이동하는 속도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빨랐다.

아니. 어쩌면 그것들은 내 소대원들을 뜯어먹느라 나를 따라오지 않은 것 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서포터 카운터에게 테라브레인이 그것의 존재에 대한 공지를 내렸다고 했다.


세계의 종결자 마왕


들은적이 있다.

언젠가 소대장이 내게 기밀이지만 네게만 말해주는거라며 하던 헛소리들.


세계에 종말을 불러오는 자들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곧이어 두려워진다.


그 전장에서의 우리들은 그저 유린당할 뿐이었다.

그것들은 우리들을 먹이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않았다.


그것들이 진정 마왕이라고 부르는 존재라면...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설령 살아남는다 해도 그것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일까?


그런 내게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