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포 이벤트 스토리를 아직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포가 될 수 있음.

본 글은 쓴놈의 망상이고 실제 스토리와는 일말의 관계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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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멕크레디, 그녀는 평생에 있어 단 세 번의 공포를 느꼈다. 

첫 번째 공포는 '지식의 호수'를 계승받던 순간. 

두 번째 공포는 '지식의 호수'를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리고 세 번째 공포는, 바로 지금. '지식의 호수'를 마주한 바로 이 순간이었다.


 "안 돼...... 안 돼......!"


이제까지 자신의 수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포식의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을 '먹어치우려' 하고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안나는 질척하게 뭉개진 파편들 속에서 몸부림쳤다. 아니, 그 초라한 움직임은 몸부림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었다. 움직일 사지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 꿈틀거렸다.  


"제발 제 무지함을 용서해 주......!"


온 세상이 시커멓게 뒤덮였다.

그리고, 다시 온 세상이 새하얗게 번져 나갔다.


...

..

.




 "......!"


세상 모든 것이, 신체의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눈이 뜨였다. 시신경이 타는 것 처럼 아팠다. 너무 밝은 빛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다가 질끈 감기를 세 번쯤 반복했을 때가 되서야 무언가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그제서야 숨이 터져 나왔다. 폐를 몇 번 쥐어 짜고 나서야 뒤늦게 숨이 막힌다는 감각이 살아났다. 새하얀 빛이었던 시야가 회색 빛으로, 그리고 곧 이어 시퍼렇게 물들어 갔다.


내가...


팔, 손, 손가락... 사지가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움직일 때 마다 손발 끝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눈 앞에서 확인할 즈음에야, 차갑게 물들어 있던 세상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말인가. 그 공포와 어둠이 설마 악몽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한참을 몰아 쉰 숨결에 목이 말라 붙었다. 건조한 입술은 소리없이 움직였다. 입술을 스치는 혓바닥까지 말라있음을 느낄 즈음, 안개가 낀 것 같은 의식이 개이기 시작했다. 


물...


안나는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던 침대에서 어딘가 부스럭거리는 촉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침대 시트의 감촉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직도 저릿거리는 발을 딛고 일어나서, 방 깊숙히 파고든 햇살을 지나, 책상 앞에 섰다.

언제나 연하게 우려낸 허브차 반 정도를 채워둔 주전자가 있을 터였다. 분명히-


아아...


있었다. 자주 쓰던 물결무늬 주전자가 아닌 검은 색 주전자였지만, 아무래도 좋다. 한 컵 가득히 차를 따라 입안 가득히 머금자, 그제서야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공포와 어둠이 꿈이 아니겠는가.

또 한 모금을 넘기자, 의식이 선명해졌다. 메마른 입에 차 맛 같은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아"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나는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며, 안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런 날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지식의 호수를 계승한 그 날부터,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귓가에 지식이 들려오던 그 날부터였다.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에 잠긴 꿈이 찾아오면, 그것이 꿈인지 깨어난 자신의 모습이 꿈인지를 애써 구분해야만 했다. 그런 안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깨어난 자신의 모습을 꿈에서 보고 난 뒤로는 더욱이 그러했다. 


오늘은 유달리 깊은 꿈이었기에, 안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안나의 '꿈'은 분명 꿈이었지만, 그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식의 호수가 아직 전하지 않은 파편들의 조합이었고, 안나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일들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까지 안나의 꿈은 어떠한 형태로든 실제로 일어났고, 그것에 대비해 왔기에 이제까지 학회의 주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레지나 그것의 나약함과 무지함을 다시 보게 해 준 것도, 그 아비의 배신을 알게 해 준 것도 모두 이 '꿈'이 아니었던가. 호수가 안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지식 뿐만이 아닌 이러한 '예지'도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꿈 역시도 그러할 것이다. 안나는 꿈을 천천히 되새겼다. 에델, 갑자기 굴러들어온 근본도 모를 것. 안나는 방금 전까지 정신이 없던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꿈을 되새기며 확실하게 떠올랐다. 


 "어느 새 굴러들어와서는 학회의 일에 끼어들고 참견해 대던 그 잡것이, 레지나 그 괘씸한 것과 작당해서..."


그래, 우선은 레지나였다. 그것이 돌아와 헛수작을 벌이기 전에 먼저 손을 써야 한다. 에델은 그 다음 문제였다. 어떻게 해서 그 '꿈'속의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까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과정을 모른다면 원인을 차단하면 되는 것이다. 능력도 지식도 보잘것 없는 레지나를 굴복시켜 끌고 오는 것은 어려울 것도 없다. 안나는 역대 그 어느 선조 학회장들보다도 강력한 지식의 호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제까지 그 하찮은 것을 그냥 풀어 둔 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안나는 이미 레지나를 살려 둘 생각따위는 없었다. 시일의 문제였을 뿐. 그리고 그 예정을 조금 앞당기게 될-


아니, 분명 그 전에도......


안나는 다시 잠시 눈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레지나 그것을 없애겠다는 결정을 하던 자신을 꿈에서 보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더욱 서둘러야 한다.


달칵.


...

..

.



이제 햇살이 깊숙히 파고든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푸라기 침대와, 책상 모양으로 대충 깎아진 썩은 나무조각. 그리고 물이 조금 고여 있는 검은 색 유리조각.

창인 것 처럼 대충 뚫려 있는 구멍, 골판지로 대충 조립된 모형 집.


그 집을 나서고 있는 손바닥 만한 검은 덩어리.


그 덩어리를 재미있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에델의 모습이 있었다.


 "부인은 여전하시네요. 듣고 싶은 지식만 듣고,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시는군요."


검은 덩어리를 집어들자, 사지가 달려 있을 법 한 위치에 돋아 있는 촉수들이 꿈틀거렸다. 


 "아직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남아 계시길래, 다시 독립된 의식을 가지게 되면 어떨까 하고 궁금했었던 것 뿐이지만요.."


조금은 시무둑한 듯, 안타까운 듯, 에델은 검은 덩어리를 잡아 들고 바라보았다.


 "소득 없는 일은 이만 마칠 시간이에요, 부인. 저희들이 레지나 님을 대하는데 있어서 아직은 부인의 지식이 도움이 되거든요. 그러니 이만 돌아오셔야겠어요."




이제 햇살이 깊숙히 파고든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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