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네? 무슨 말씀이시죠?"


"하지만 나도 더 이상은…… 더 이상은 거절할 수가 없어…… 난, 맹세를 지켜야하니까."


"대체 무슨 소릴?"


주시윤이 의문을 품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흑백으로 변하고 알 수 없는 액체가 흩뿌려진다.


"좋았어~ 컷─!!!"


40대 초반 남성의 기분 좋은 함성과 함께 잠시동안 긴장감에 휩쌓였던 분위기가 한 순간에 밝게 변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야~ 레이 선배님 역시 연기력 대단하시네요."


"마, 내 연기 갱력이 몇 년인디 이까짓 거 모하겠나?"


세련된 이름과 곱상한 외모와 달리 경상도 방언을 쏟아내는 남자는 다름 아닌 조금 전까지 소심하기 짝이 없던 박레이(23세 경남 창원 출신 미필)였다.


"그리고 쥬씨윤이, 나가 그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못 먹는다 캤나 안 캤나? 확마 쥑이 삘라."


"죄송합니다 선배님!"


"정신 차리래이? 이래서 쓰울놈들이 안 된다카는거야."


박레이는 주시윤(18세 서울 강서 출신 신인 배우. 미필)의 어깨를 세게 툭 치고 지나간다. 주시윤은 마음 같아선 뒤돌아 붙잡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예능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기도 하고 참아야만이 성공할 수 있으니까.


"하아… 시발 진짜……."


"야, 시윤아 네가 참아라 저 새끼 옛날부터 저랬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을 삭히자 맞은 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긴 은발의 여성, 김힐데(22세 서울 종로 출신)가 삼각형 모양의 비닐팩에 담긴 커피 우유를 마시며 주시윤을 달래줬다.


아역 배우부터 연기를 시작한 김힐데는 경력 16년 차 배우다. 이름이 한국인 치고 특이한 건 외국인인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과 어머니 성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런 김힐데 씨는 현재 절찬리 방영중인 시즌제 드라마, '카운터 사이드'에서 주시윤과 함께 주연을 맡고 있다.


"저 병신 4수까지 하고도 대학 못가고 일도 안 잡히길래 안쓰러워서 감독님한테 새 배역에 꽂아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일자리 만들어줬더니 또 저 지랄이네? 죽여버릴까?"


"아, 누나 괜찮아요. 저러다가 또 스텝 한 명한테 갑질하다 폭로 당해서 알아서 망하겠죠."


"아니 저번부터 괜히 너한테 시비잖아."


데뷔 동기인 박레이를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째려보며, "저걸 조져, 말아?"라고 중얼거리자 주시윤은 일을 키우기 싫은 지라 김힐데의 두 어깨를 잡고 감독 앞으로 밀고 갔다.


"류 감독님 이번 시즌도 덕분에 좋은 작품에 출현했습니다! 캐스팅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낚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다음 시즌 대본을 확인하던 40대 중년의 남성── 류금태 감독(42세(?) 대구광역시 출신 추정)은 자신의 앞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후다닥 대본을 덮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감사는 무슨! 시윤 씨가 연기 잘해준 덕분에 나도 너─무 고맙다고! 아니,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글쎄 시청자 분들이 시윤 씨가 진짜 부모님이 없는 줄 안다니까!"


"하하하하……."


기분 좋게 웃으며 주시윤의 연기를 칭찬하는 류 감독의 말에 주시윤은 그 칭찬 앞에서 차마 활짝 웃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릴 적 사고로 진짜 부모님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시발… 진짜 이 새끼고 저 새끼고 하…….'


오늘도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는 신인 배우 주시윤이었다.




갑자기 랑또 SM플레이어랑 가스파드 전자오락수호대 생각나서 메다닥 써봄

나중에 더 생각나면 더 써봄